5월3일 아침7시30분. 시민회관 마당 한 모퉁이 손수레 위, 끓고 있는 주전자에선 연신 뜨거운 김을 쏟아 낸다. 커피를 휘젓는 길마담의 손끝에도 힘이 붙는다. 만면에 가득한 길마담의 미소가 서민의 삶을 보는 것 같아 맘이 시리다. 속속 사람들이 도착하고, 500원의 모닝커피 한잔으로 만남의 인사가 이어진다. 간밤에 내린 비로 마음까지 씻겨 내린 듯 상쾌한 일요일은 이렇게 아침을 열어갔다.
독산성산악회의 주흘산 행 등산버스, 버스에 오르니 5월의 연휴기간이어서인지 버스가 한량하다. 드문 드문 빗겨 앉은 서른 뎃 명, 눈에 익은 얼굴들도 여럿 보인다. 김밥과 안주 등 간단한 요깃거리가 나오고 한잔씩 주고 받은 해장술이 입담을 높여 버스 안은 벌써부터 시끌벅적하다.
오산에서 부터 아예 국도로 들어선 버스는 일죽을 거쳐 장호원을 지나 충주의 수안보로 들어선다. 봄갈이에 나선 농부들 손놀림이 분주한 차창밖에는, 빨갛고 파란 농가의 지붕들이 원색으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이런 삶의 모습들은 여행길에 흔히 볼 수 있는 것, 산행에 더하여 덤으로 느끼는 새로움이다.
차량통행이 뜸해 막힘없이 달려 온 버스는 어느 새, 문경새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문경새재, 영남의 옛 선비들과 상인들이 한양으로 통하는 길로서 수많은 설화를 간직한 채 세월이 무게를 이겨온 이 고개. 이제 그 자취 간데없고, 영남이 아닌 오산의 산객이 이 자리에 서서 옛날 그들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그려 보고 있으니, 이것이 인생무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재를 넘으면 충청도다. 문경새재의 새재(鳥嶺)란 무슨 뜻인가 하고 살펴보니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란다. 그 만큼 높고 험하다는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상가로 이어진 주차장을 벗어난 자리에 있는 제1관문이 출발지라 한다. 제1관문을 들여다 보니 성곽에는 령(令)이 깃발들이 창검에 나부끼고, 남대문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대문이 있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던 선비들이 이 문을 통과하여 지나갔음을 느끼게 한다.
오월의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걷다 보니 물줄기가 세차게 떨어지는 여궁폭포에 이르렀다. 왜 여궁폭포인가 하고 봤더니 폭포의 모양이 여성의 상징과 같아서인듯... 폭포를 뒤로하고, 계곡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산과 계곡사이에 나 있는 협소한 길을 따라 혜국사로 향한다. 길 바닥에 솟아 있는 돌멩이들이 매우 날카롭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혜국사가 조그맣게 서 있다. 혜국사는 통일신라 시대인 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물기도 했던 곳이라 한다.
혜국사를 지나고 부터는 별 특징이 없는 밋밋한 흙길이 이어진다. 사방은 막혀 답답하고, 열린 나무사이로 잠깐씩 들어내는 햇살에 땀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마땅히 앉아 쉴만한 바위조차 찾기가 힘들다. 가끔 길 옆에 피어난 들꽃만이 오월의 상징처럼 나를 반긴다.
드디어 1,075m의 주흘산 정상에 섰다. 멀리 소백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들이 호위하듯 서 있고, 골짝마다 산골마을을 이룬 주흘산. 그 정상에 서니, 조금 전까지의 지루함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뿌듯함이 고개를 든다.
이제 점심을 먹을 차례다. 서른 뎃 중에서 겨우 열두명만이 정상까지 왔다. 빙 둘러앉아 반찬들을 꺼내는데, 와! 독산성의 총무(도경자 님)가 금방 담근 김치 한포기를 통째로 가져 왔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 것만이 아니다. 여기 저기서 오이, 풋고추, 김, 간장게장, 튀김, 목은 김치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반찬들... 이것이 산행의 멋이다.
하산길은 제2관문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지만, 제2관문에서 주차장까지의 길이 평지여서 지루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왔던 길을 돌아서 내려 가기로 하고 제1관문을 향해 하산을 하였다.
하산을 하고 보니 명승 제32호인 문경새재의 제1관문은 마침, 문경도자기축제라는 이름으로 별의 별 잡다한 상인들이 점령한 가운데, 굉음과 소란으로 뒤 덮인 광란의 장이 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각 가지 문화유산을 보유한 문경새재가 장삿꾼의 장터가 되어버렸으니...
오늘도 수고를 아끼지 않으신 집행부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
출처: danbiz 원문보기 글쓴이: 멋쟁이
첫댓글 휴우~~맛깔스런 글과 함께한 멋진 산행였네여~~진짜 다리아푼거 가터..........ㅎㅎ
오늘 공연 준비 바쁘실텐데, 감사해요...
이 글을 읽고나니 주흘산이 생생하게 뇌리에스치네여~~~
오산인과 함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물씬, 냄이 장터에서 놀던 걸 올리려니 좀 미안합니다.
어쩜~~글을 잘 쓰세요...산을 정말 좋와 하시나봐요..전 맘만 있지 사실 잘 ~~~
일요일이믄 딱히 갈 곳 없어 이리저리 냄 잔치에 얹혀서 다니는 것뿐, 사실 나도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이라우...
제가오산산악회에 맨처음 산행한산이 주흘산이었는데 맹물만일곱병마시고 탈진한생각이나네요 8년전완전왕초보라서 산행기초 지식이전혀없었거든요
그러셨구나. 좀 지루해서 다시 찾고 싶지 않던데...
2관문에서 오르다보면 야생오가피도 만나게 되고 너덜지대쉼터등 덜지루하셨을텐데 쬐끔 아쉽군요 1관문~2관문 평지길도 절대 지루하지 않고 또다른 상상을 할수 있는길입니다.
대장님이 계셨더라면 아마도 따랐을 것인데...그 쪽엔 별 볼일이 없다고 해서리...
단편 소설을 읽은 듯하면서 주흘산에 같이 같다온것처럼 눈에 선합니다. 수고하셨어요.산은 역시 위대합니다.
처음님, 이번 오산 산행에 얼굴 좀 뵈 주세요...
어쩐다요...셋째주일요일날 모내기해서 이번에도 몬갈듯합니다.6월엔 꼭 맞춰볼께요.
통제라! 그래두 쌀은 맨들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