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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
[ 95개조 반박문의 8가지 내용 ]
1-4 : 신자들의 회개의 삶
5-7 : 좌에 대한 교회의 죄사함 권한 없음
8-29 : 교황이 사죄할 수 있는 범위
30-55 : 면죄부를 통한 고해행위의 무용함과 사라으이 실천
56-68 : 가톨릭교회의 보물이론 비판
69-80 : 면죄부 설교의 부작용 지적
81-91 : 면죄부에 대한 평신도들의 비판적 질문
92-95 :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난과 참된 평화
[1-4 : 신자들의 회개의 삶]
1.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참회(penitence)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2. 이 "회개하다"라는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수행되는 고해(告解)와 보속(報贖)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3.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는 마음속에서의 참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참회가 육신의 여러 가지 정욕들을 죽이는 외적인 표지(標識)들을 낳지 않는다면 그 참회는 아무것도 아니다.
4.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 존재하는 한(즉, 진정한 내적 참회) 죄의 형벌은 존재하게 된다. 즉,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존재하게 된다.
[ 5-7 : 좌에 대한 교회의 죄사함 권한 없음 ]
5. 교황은 자신의 직권 또는 교회법에 의해 부과된 형벌들 이외에는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의지나 권세를 지니고 있지 않다. sin. forgive. power
6. 교황은 스스로 죄를 사할 수 없으며, 단지 죄가 하나님에 의해 사하여졌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확증할 수 있을 따름이다. 기껏해야 그는 자신의 직권에 맡겨진 경우들에 있어서 죄를 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죄는 그대로 남는다.
7. 이와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겸손하게 복종하지 않는 자의 죄를 결코 사하지 않으신다.
[ 8-29 : 교황이 사죄할 수 있는 범위 ]
8. 참회에 관한 교회법은 오직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며, 교회법 자체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죽을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9. 그러므로 교황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교황의 규례들은 죽음 또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는 언제나 적용하기를 멈춘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10. 사제들이 죽은 자에 대한 연옥에서의 교회법상의 형벌들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무지에 기인한 그릇되니 행위이다.
11. 교회법상의 형벌들이 전환되어 연옥에 적용되게 된 것은 감독들이 잠자고 있을 때 가라지들이 뿌려진 것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12. 이전 시대에는 교회법상의 형벌은 진정한 통회의 시험으로서 사면의 선언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부과되었다.
13. 죽음은 교회의 모든 요구들에 종지부를 찍는다. 임종을 맞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교회법에 대하여 죽은 것이며 더 이상 교회법에 의해 구속받지 않는다.
14. 임종을 맞고 있는 사람의 결함 있는 경건과 사랑은 반드시 커다란 공포를 수반하게 되는데, 이 공포는 경건 또는 사랑이 최소일 때 최대가 된다.
15. 그 밖의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공포는 그 자체로 연옥의 고통을 이루기에 충분하다. 그 공포는 절망의 공포에 매우 가까이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16.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차이는 절망과 불확실과 확신의 차이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17. 사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고통은 경감되어야 하고 이에 비례하여 자비는 증가되어야 한다.
18. 더욱이 이 영혼들이 공덕의 상태 바깥에 있거나 은혜 속에서 자라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성 또는 성경을 근거로 입증될 수 없는 것 같다.
19. 또한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확고하게 확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영혼들이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 언제나 사실이라는 것은 입증될 수 없는 것 같다.
20. 그러므로 교황이 모든 형벌의 완전한 사면을 말할 때 그것은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의 "모든"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 의해서 부과된 형벌들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21. 따라서 면죄부(indulgences)를 설교하는 자들이, 교황의 면죄부에 의해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사면되며 구원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22. 실제로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 대하여 교회법이 현세에서 치러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그 어떠한 형벌도 사할 수 없다.
23. 만약 완전한 죄사함이 그 어떤 사람에게 허용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사면은 단지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경우에나 가능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차별적이고 어마어마한 약속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25. 교황이 연옥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행사하는 권세는 모든 감독과 교구 사제에 의해 자신의 감독구나 교구 안에서 제한적으로 행사되고 있다.
26. 교황이 열쇠의 권세 (이 권세를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행사할 수 없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방법으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사면을 허락한다면 그것은 아주 잘하는 일이다.
27. 연보궤에 넣은 돈이 바닥에서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빠져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다. -> 돈으로 구원을 사고팔 수 없다.
28. 연보궤에 넣은 돈이 바닥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탐욕이 증가한다는 것은 확실히 그럴듯하다. 그라나 교회가 중보기도를 올릴 때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29. 마치 성 세베리누스(St. Severinus)와 성 파스칼리스(St. Paschalis)에 관한 전설에 비추어 볼 때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그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떤지를 누가 알겠는가!
[ 30-55 : 면죄부를 통한 고해행위의 무용함과 사랑의 실천 ]
30. 그 누구도 자신의 통회의 진실성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완전한 죄사함을 받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31.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이 드문 것같이 진심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드물다. 즉, 실제로 극히 드물다.
32. 면죄부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면죄부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면죄부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화해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각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34. 왜냐하면 이 면죄부가 가져다주는 은혜는 단지 인간에 의하여 규정된 성례적인 "보속들"의 형벌들과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35. 영혼들을 속량하거나 고해장(告解狀)을 사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죄들을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든지 형벌과 죄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누리게 되는데, 이는 면죄부 없이 그에게 주어진다.
37.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죽은 자나 산 자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유익들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 참여는 면죄부 없이 하나님에 의해 그에게 허락된다.
38. 그렇지만 교황의 면죄와 그이 특별사면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 대로 그것들은 하나님의 사면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에 담겨진 커다란 유익을 사람들에게 칭송함과 동시에 하나의 미덕으로서 통회를 찬양하는 것은 아무리 박식한 신학자들에게라도 매우 어렵ㄴ다.
40. 참으로 통회하는 죄인은 자신의 죄들에 대한 형벌을 구하며 이를 달게 받는다. 그러나 면죄부의 만연은 사람들의 양심을 무디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형벌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41.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들이 그것을 그릇되게 이해하여 다른 선한 행위들 곧 사랑의 행위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된다.
42. 면죄부의 구입이 자비의 행위들에 비견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교황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곤궁한 사람에게 꾸어주는 사람은 면죄부를 사는 것보다도 더 좋은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왜냐하면 사랑의 행위들로 말미암아 사랑이 자라고 사람은 더 선한 사람이 되지만 면죄부에 의해서는 사람은 더 선하게 되지 못하고 단지 어떤 형벌들을 피할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45. 곤란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은 비록 면죄를 위해 돈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교황의 면죄로 인하여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의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것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면죄를 위하여 낭비하여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사람이 면죄부를 사는 것은 자발적으로 해야 하지 그렇게 하라고 강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허용함에 있어서 준비된 돈 보다도 자기를 위한 경건한 기도를 더 필요로 하고 바란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이 면죄는 사람이 그것에 의존하지 않을 때에만 유용하고, 사람이 그서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아주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약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강매 행위를 안다면 자기 양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느니 차라리 그 성당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면죄부의 상인들로부터 구슬림을 당하여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필요하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재산으로 그 돈을 갚아주려고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비록 판매 대리인 또는 교황 자신이 면죄부의 유효성에 대하여 자기 영혼을 걸고 맹세한다고 할지라도 면죄부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헛된 것이다.
53. 면죄부를 어떤 교회들에서 설교하기 위하여 다른 교회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을 금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敵)이다.
54. 설교에 있어서, 면죄부에 관한 설교에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설교와 동일한 분량의 시간 또는 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손상을 입게 된다.
55. 만약 면죄부(아주 작은 일)를 하나의 방울과 하나의 축하행렬과 하나의 의식으로 축하한다면, 복음(아주 중한 일)은 백 개의 방울과 백 가지 축하행렬과 백 가지 의식으로 설교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교황은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 56-68 : 가톨릭교회의 보물이론 비판 ]
56. 교황이 면죄를 베푸는 토대가 되는 교회의 보화들은 그리스도의 백성들 가운데 충분히 말해지거나 알려져 있지 않다.
57. 이 보화들이 현세적이지 않다는 것은 많은 상인들이 이 봐화들을 자유롭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고만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58. 또한 그 보화들은 그리스도와 성자들의 공로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공로들은 교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언제나 속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겉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59. 성 라우렌티우스 (St. Laurentius)는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화들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당시의 관례에 따라 이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60. 교회의 보화들은 교회의 열쇠들인데,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61. 왜냐하면 형벌들의 면죄와 보유 사건(reserved case)들의 면죄를 위해서는 교황의 권능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참 보화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다.
63. 이 보화는 먼저 된 것을 나중 된 것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증오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64. 반면에 면죄라는 보화는 나중 된 것을 먼저 된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매우 애호를 받는다.
65. 그러므로 복음이라는 보화는 이전 시대에 부자들을 낚던 그물이었다.
66. 면죄라는 보화는 오늘날에도 부자를 낚는 데 사용되고 있는 그물이다.
67. 상인들이 가장 큰 은총이라고 칭송하는 면죄부는 사실 돈을 긁어모으는 좋은 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68.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에서 보인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
[ 69-80 : 면죄부 설교의 부작용 지적 ]
69. 감독들과 본당 사제들은 직무상 교황의 면죄의 대리자들을 전적인 경의를 가지고 받들어야 한다.
70. 그러나 이들이 교황이 위임한 것 대신에 자기들의 꾸며낸 말들을 설교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하는 한층 큰 의무 아래 그들은 놓여 있다.
71. 사도적 사죄의 진리를 부인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72. 반면에 면죄부 상인들의 설교의 뻔뻔스러움과 방종에 대항하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73. 마찬가지로 면죄부 판매를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을 교황이 파문하는 것은 당연하다.
74. 면죄를 구실로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려고 기도하는 사람을 파문하는 것은 교황의 뜻에 훨씬 더 부합한다.
75. 교황의 면죄는 아주 큰 능력이 있어서 불가능한 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라도 면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76. 우리는 그 정반대를 단언하는 바, 교황의 사면은 그 죄책에 관한 한 가장 작은 죄라 할지라도 그 죄를 없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77.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혜를 나누어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우리는 그 정반대를 단언하는 바, 베드로 그리고 그 밖의 교황들은 면죄보다 더 큰 은혜 즉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선언되고 있는 복음과 영적인 능력들, 병 고치는 은사 등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79. 교황의 문장(紋章)으로 장식된 십자가상이 그리스도가 매달려 죽으신 바 있는 그 십자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80. 이런 유의 가르침들이 사람들 가운데 선포되는 것을 묵인하는 감독들과 본당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81-91 : 면죄부에 대한 평신도들의 비판적 질문 ]
81. 이와 같은 뻔뻔스러운 면죄부 설교는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비방들 또는 평신도들의 날카로운 비판으로부터 교황에 대한 적절한 존경을 수호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82. 그들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묻는다: 왜 교황은 사랑(가장 거룩한 것)과 그 영혼들의 최고의 필요를 위해서 연옥에서 모든 영혼들을 해방하지 않는가? 이것은 도덕적으로 모든 이유들 가운데 최고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한다는 아주 사소한 목적으로 인하여 가장 썩어지기 쉬운 것인 돈을 받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있다.
83. 또 이렇게 묻는다: 왜 죽은 자를 위한 장례와 기년(忌年) 미사는 계속하라고 하는가? 그리고 왜 교황은 이제 구원받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목적으로 교회에 바친 기부금을 돌려주지 않으며 또 그것의 반환을 허용하지 않는가?
84. 또 이렇게 묻는다: 불경건한 자와 하나님의 원수로 하여금 하나님의 벗인 경건한 영혼을 돈을 지불하여 연옥으로부터 구하도록 허용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 경건한 영혼이 구원의 필요성과 사랑을 위하여 돈의 지불 없이 연옥에서 구원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정녕 하나님과 교황의 새로운 유의 자비임에 틀림없다.
85. 또 이렇게 묻는다: 참회에 관한 교회법은 사실상 오랫동안 사용치 않아 사문화되어 왔는데 왜 마치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 그 교회법이 면죄의 부여에 대한 그 대가로 돈을 걷는 데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가?
86.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Crassus)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 베드로 사원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7. 또 이렇게 묻는다: 오늘날 교황의 수입은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의 수입보다도 더 많은데 왜 교황은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성 베드로 성당 같은 성당 하나를 세우지 않는가?
88. 또 이렇게 묻는다: 교황이 이러한 면죄와 특별사면을 해당 신자의 유익을 위하여 지금처럼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백 번 준다고 한다면 교회에 더 큰 유익이 될 것이 분명하다.
89. 교황이 면죄부를 통해 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왜 교황은 이전에 인정되었고 여전히 이전처럼 효력을 발휘하는 증서들과 면죄부들의 효력을 중지하지 않는가?
90. 이러한 질문들은 평신도들의 양심을 괴롭히는 중대한 문제들이다. 이 질문들에 대하여 정당한 이유들을 들어 반박하지 않고 다만 힘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그들의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91. 그러므로 만약 면죄가 교황의 취지와 생각에 따라 설교된다면 이 모든 난제들은 쉽사리 해결될 것이고 아니 실제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92-95 : 그리스도를 따르는 고난과 참된 평화 ]
92. 따라서 평안이 없는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향하여 "평안, 평안"하고 말하는 선지자들은 물러가라.
93.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향하여 "십자가, 십자가"하고 말하는 선지자들이여 만세, 만세.
94.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열심을 내도록 그리스도인에게 권면하여야 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평안에 대한 그릇된 확신이 아니라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더 확고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