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의회 2차 선거에서 좌파 연합이 이겼네요.
아래 사회 정치적 프랑스를 넘어서
정치경제학적으로 좌파와 우파도, 자유와 소유에 연관되어 있다.
좌파는 공공재 우선이고 우파는 사적 소유를주장한다.
울나라에서 하늘길, 땅길, 물길, 전파길을 공공재로 국가 소유로 만들자면, 허 참...
들뢰즈, 혁명의 미래를 말하지 말라 한다. 그래 현재 여기서 혁명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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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의 성립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민중이 함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혁명 일주년(1790년)이 되는 축제에서 프랑스 왕국의 국민은 혁명을 지지하는 인민으로 성립한다고들 한다. 왕권을 그대로 두는 입헌 군주제파(미라보)와 공화제를 수립하자는 혁명파(자꼬방) 사이에 줄타기가 되다가, 국왕 일가가 국외 탈출하려는 것을 저지하고, 1791년 인민들의 제헌 의회의 성립에 의한 국민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다음해 1792년이 되면서, 자꼬방파의 일부로서 지롱드파가 내각을 구성하였으나, 왕은 지롱드파의 내각을 여러 파들의 집합인 온건파인 푀이양파에게 내각을 맡겼다. 그런데 1792년 9월에 의회선거에서 산악파 200석, 지롱드파 160석 온건파 389로 결정되었다. 이 국민공회(Convention nationale)는 단원제로서 혁명이 끝날 때까지 이어간다. 이때 의회의 좌석 배치에서 좌측의 산악파들이 좌파이고 우측에 앉은 온건파가 우파로서 불리게 될 것이다. .
혁명 3년을 지나, 혁명을 계속하자는 파들이 왕정을 폐지하고 국민공회의 결정을 통해서 보안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혁명은 더욱 가속화 하였다. 1793년 1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드를 단두대에 이슬로 보내고, 혁명정부는 주변국의 반혁명과 국내의 왕당파들의 연결고리를 끊는 혁명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프랑스 국내에서 일어난 리용에서 반란과 방데에서 반란을 진압하였다. 혁명의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보안위원회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공안위원회로 바꾸었다. 이를 지지하는 파리 인민과 국민방위대는, 혁명의 수행에서는 주축인 자꼬방파 내에서 지롱드파보다 산악당을 지지하게 된다. 혁명의 수행은 로베스삐에르와 생쥐스트 등이 참여차례로 참여 하는 9인 공안위원회가 이끌어 가면서, 소위 말하는 자꼬방 독재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 혁명의 수행을 뒷받침 해준 국민 공회에서, 타원형 배치로 된 의회에서 자꼬방 산악당이 좌측을 차지하고 그 우측으로 자꼬방의 계보였던 지롱드파 그리고 혁명의 완화와 외국과 화해를 주장하는 수평파들이 우측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좌석 배치에서 생겨났으며, 혁명에서 혁명을 계속하자는 쪽이 좌파이, 혁명을 마무리하자는 쪽이 우파이다.
혁명의 지속을 주장하는 자꼬방 산악당이, 혁명의 진행을 방해한다고 여기는 당통(Danton, 1759-1794)을, 그리고 혁명에서 언론을 통해 혁명을 고조시킨 대믈랭(Desmoulins) 1760-1794)같은 과거의 동지들을 단두대로 보냈다(1794년 4월). 이로써 혁명의 동력이 떨어지고, 의회에서 자꼬방 산악당이 소수로서(이로부터 소수의 급진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혁명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1794년 7월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1758-1794), 생 쥐스트(Saint-Just, 1767-1794)[스물일곱], 쿠통(Couthon, 1755-1794),르 바(Le Bas, 1764-1794)[서른]등 22 명이 단두대에서 사라지면서, 프랑스 대혁명은 막을 내렸다.
다시 한 번, 사회 변혁에서 특히 프랑스 대혁명에서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형성되었다. 좌파는 심장이 붉다고, 혁명에서 자유의 나무를 심으면서, 프랑스 깃발의 붉은 쪽을 상징한다. 우하는 혁명을 완화하면서 그래도 왕정과 종교의 전통을 유지하는 쪽으로 하늘의 색으로 푸른색을 상징하며, 프랑스 깃발의 우측에 해당한다고들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1792년 9월 국민의회 선거에서 산악당(Montagnards : 200석), 지롱드당(Girondins : 160석), 수평파/온건파(Marais : 389석)을 차지했는데, 좌편에 산악당, 중간좌편에 지롱드파 우편에 온건파들이 앉았다. 이로부터 좌측에 앉은 이들이 좌파이며, 혁명을 계속하자는 쪽이고, 우측에 앉은 우파는 혁명의 속도도 늦추고 국민 총화를 이루어 주변국에 혁명전쟁을 수행하기보다 화해하자는 쪽이라 화해파라고들 한다.
프랑스의 사회 정치적 분류에서 좌우를 분류할 때, 평등과 자유를 주장하는 쪽이 좌파이고, 사회의 안정과 정치적 구습의 유지를 우파라고 한다. 간단히 보면, 특히 18세기에 유물론과 무신론을 전개한 철학자들은 루소와 같이 인민주권설을 주장하는 공화파에 가깝고, 종교를 갖는 성직자와 교인들은 교황의 무오류를 믿듯이 왕권신수설을 믿는 왕당파였다. (57RKE)
로베스삐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년 7월 28일)[서른여섯]
그는 1789년 삼부회 의원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작업으로부터 시작했다.
1789년의 일로서 , 로베르삐에르는
- 사형제 폐지와 노예제 폐지 옹호하였다.
[그럼에도 혁명에서는 단두대를 실행했다.]
- 지대 납부자에 반대하여 권리들의 평등성과 보통선거(남성)와 마찬가지로 유색인들, 유대인들, 희극배우들이 선거권을 옹호하였다.
지금도 좌파가 이길 수 있는 것은, 프랑스는 앵글로 색슨 족과 달리, 색갈의 편견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40여년전에 흑인을 해방시키고 피를 섞어서 인지 프랑스에서는 피부색갈로 인종차별은 거의 없다. 내가 보기에 자유 때문에 종교의 편견은 아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신론자 또는 자연론자는 세계만방의 동지들이다. 편견이 없기 때문에...
첫댓글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