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의 성령체험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천지창조나 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 탄생, 십자가와 부활 등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으나 내가 고등학교 1학년 그 날 이후로는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다녔던 교회생활은 말 그대로 ‘취미생활’ 그 이상이 아니었다.
고1 무렵 얼마 전 새로 부임하신 어떤 목사님이 우리 집으로 심방을 오셔서 내게 방언기도라는 것을 해주시겠다며 무릎을 꿇게 하고서는 내 머리 바로 위에 손을 펴고서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가며 무슨 기도를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혀가 움직이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해봐.”
바로 그 때 성령의 불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빛이 번쩍이며 내 입에서 방언이 쏟아져 나왔다면 조금은 은혜로웠겠으나 결과적으로는 20~30분에 걸쳐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의미도 모르고 뜻도 모르는 기도가 끝나고 목사님은 귀가하셨는데, 그러고는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튼 이유도 모르고 울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대성통곡이었다. 교회생활은 그래도 많이 해서 기도를 받고 울거나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울긴 왜 우나?’ 라는 식으로 보았는데, 이유인즉 다소 연극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울고 있으니 설명이 불가능하다.
당시 옆에 계셨던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분께서 대책 없이 통곡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야, 너 왜 우냐?” 라고 물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나와 함께 우리 어머니도 남들의 그런 모습을 별로 달갑게 보고 있지 않았었는데, 정작 자기 아들 녀석이 방성대곡을 하고 있으니 당황하신 듯하다.
울었던 이유. 나는 그 때 내가 왜 울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의 그 질문에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사실 이유를 말하기가 대단히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울었던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라 정확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오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해서” 울었다. 통곡을 했다.
이런 체험을 ‘성령세례’라고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도 나름대로 평소에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하면서 살고 있으며 부끄럽지 않을 만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오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마음은 이후 내 마음에 더욱 깊이 자리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