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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뎬무에 이어 곤파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로 인해 연일 계속 되는 비 소식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기예보에서 눈을 뗄 수가 없게 한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태풍의 소용돌이 치는 모습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일기예보에서 보이는 태풍은 항상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소용돌이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 방향이 언제나 반시계방향이다. 신이 태풍을 만들 때 꼭 반시계방향으로 휘저어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사실은 신이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구 자전에 의해 발생하는 ‘전향력(轉向力)’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이지만, 몇 세기 전만 해도 ‘지구가 구형이며 돌고 있다’는 말은 미치광이의 말로 여기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구가 항상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으며,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들은 우리 삶에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공전으로 인해 계절이 바뀌며 자전으로 인해 밤낮이 바뀐다. 이는 우리에게 1년, 1일이라는 시간 개념을 갖게 해줬다.
이 외에도 지구의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향력’이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태풍의 반시계방향 소용돌이도 이 전향력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전향력이 미치는 영향
전향력은 발견한 학자의 이름을 따 ‘코리올리 힘(Coriolis force)’이라고도 한다. 이는 지구가 일정한 회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으로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힘은 아니다. 자전하고 있는 지구 위에서 우리가 봤을 때,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이 보일 뿐, 지구 밖에서 본다면 전향력이란 힘은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상의 힘은 더 쉬운 예로 원심력이 있다.
지구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의 움직임, 즉 해류의 방향이 이 전향력과 관계가 있으며 대기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대기의 움직임이 전향력의 영향을 받아 편서풍과 같은 큰 바람이 발생하며, 태풍의 회전 방향이 일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전향력 발생시키는 원인, 관성과 회전
그렇다면 지구 자전이 어떻게 이런 현상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회전하는 물체와 관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관성은 배우지 않아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버스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을 때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 등이 모두 관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성질, 이것이 관성이다.
다음으로 회전의 문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전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큰 원판 가운데 막대를 꽂아 놓고 팽이처럼 돌리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원판 위는 안쪽이든 바깥쪽이든 같은 시간에 1바퀴, 즉 360도를 회전한다. 하지만 이동거리는 다르다. 같은 한 바퀴를 돌더라도 안쪽의 한 바퀴보다 바깥쪽의 한 바퀴가 훨씬 길기 때문이다. 즉 같은 시간에 한 바퀴를 돌았다면 안쪽보다 바깥쪽의 속력이 더 큰 것이다.
이는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회전축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적도이며 고위도로 갈수록 회전축과는 가까워진다. 즉, 적도 부근이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빠르기는 우리가 보통 속도를 말할 때 사용하는 ‘움직이는 속도’인 선속도다. 반면 같은 시간에 같은 바퀴 수를 돈다고 할 땐 회전하는 속도, 즉 각속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각속도가 같을 때, 회전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선속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말을 뒤로 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지역이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은 앞서 말한 팽이를 생각하더라도 당연하다. 이런 현상 때문에 전향력이 발생하게 된다.
놀이터에 있는 회전하는 놀이기구를 생각해 보자. 바깥쪽에 서 있는 사람이 안쪽으로 공을 던졌다. 정확히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던졌다 하더라도 그 공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 회전으로 인해 움직이고 있는 동안 상대적으로 적게 움직이는 안쪽 사람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때 바깥쪽 사람이 던진 공은 바깥쪽 사람이 운동하던 방향으로 관성이 작용해 휘어지게 되고, 선속도가 느린 안쪽 사람에게 가지 못하고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전으로 인한 선속도 차이와 관성이 전향력 만들어
이 모습을 지구 위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가 북반구에 있기 때문에 북반구를 기준으로 설명을 하자면 적도 지방에서 고위도 지방으로 포탄을 쐈을 때, 적도지방에서 출발한 포탄은 자전에 의해 발생하는 동쪽방향 성분의 속도를 가진 채 고위도로 움직인다. 하지만 고위도는 그 속도에 비해 동쪽으로 향하는 속도가 작다. 즉, 포탄이 동쪽으로 움직이는 속도가 고위도지방이 자전에 의해 동쪽으로 움직이는 속도에 비해 큰 것이다. 이로 인해 포탄은 목표 지점보다 동쪽에 치우쳐져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꼭 고위도 방향인 북쪽으로 쏠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대인 남쪽으로 포탄을 쏜 경우는 속도가 느린 곳에서 빠른 곳으로 전달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포탄이 가진 가로방향 속도 성분은 느린데, 남쪽의 목표지점은 그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목표지점의 서쪽에 떨어지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두 경우 모두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경로가 휘어져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서 방향은 어떨까. 전향력이 자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위도로 발사한 포탄은 휘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또한 전향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 이유는 지구가 구면이기 때문이다. 대포를 같은 위도로 발사한다고 했을 때, 그 포탄이 위도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를 북극이 가운데 오게 한 채로 위에서 본 모습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포탄 또한 지구의 자전에 의해 생긴 관성의 영향을 받아 경로가 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예상 경로에 비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남반구에선 반대
이것이 전향력의 기본 원리다. 북반구를 중심으로 설명했지만 남반구도 마찬가지다. 다만 남반구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고위도가 되기 때문에 북반구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즉, 결과적으로 남반구에선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치우쳐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전향력으로 인해 소용돌이는 일정한 방향을 갖게 되며 해류와 대기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북반구와 남반구의 소용돌이의 방향이나 해류, 대류의 움직임이 반대로 나타나는 것도 그 이유다.
특히 태풍의 경우는 저기압 중심으로 공기가 들어오다가 전향력에 의해 휘어지며 북반구에선 반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태풍 회전력의 숨은 원리 '코리올리의 힘' [고두현의 문화살롱]
고두현 기자기자 구독
입력2021.09.17 16:03 수정2021.09.20 16:23 지면A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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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의 자전 효과
태풍, 북반구선 반시계방향 회전
오른쪽 지역이 더 큰 피해 입어
"편서풍 때 한국선 마스크를 쓰고
유럽 대륙에서는 우산을 쓴다"
적도에선 코리올리 효과 無
우주선 발사 장소로 가장 유리
고두현 논설위원
“정말 신기해! 우리 집은 정확하게 적도의 양쪽에 걸쳐 세워져 있다네. 부엌은 남반구에 있어서 개수대 물이 빠질 때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 반대로 욕실은 북반구에 있어서 세면대 물이 빠질 때 그 반대 방향으로 도는 거야.”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아프리카 가봉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으면서 들은 얘기다. 적도 지역에 있는 가봉은 남·북반구에 걸쳐 있다. 그래서 이런 신기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남미 에콰도르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다. 수도 키토에 있는 적도박물관에서 물이 반대 방향으로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발을 남·북반구에 하나씩 딛고 익살스런 표정을 짓곤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지구는 자전하기 때문에 지상에 있는 물체가 그 힘을 받게 된다. 이것을 ‘코리올리의 힘’ 또는 전향력(轉向力)이라고 한다. ‘코리올리 효과’라고도 한다. 프랑스 과학자 가스파르-귀스타브 코리올리가 1835년 제창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코리올리 효과 때문에 지표면에서 운동하는 물체가 북반구에서는 오른쪽, 남반구에서는 왼쪽으로 움직인다.
태풍에 작용하는 ‘코리올리의 힘’. 회전력의 오른쪽이 더 강하고 피해 규모도 크다.태풍의 소용돌이에도 코리올리의 힘이 작용한다. 태풍은 북반구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이동한다. 태풍 중심의 강력한 저기압으로 주변 공기가 빨려 들어갈 때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공기 흐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진행 중인 태풍의 오른쪽 회전력은 더 강해지고 왼쪽은 약해진다. 태풍 회전속도가 시속 100㎞이고 진행속도가 시속 30㎞일 경우 태풍의 오른쪽 바람은 시속 130㎞로 강력해지고 왼쪽은 시속 70㎞로 약해진다. 그만큼 태풍 오른쪽 지역의 피해가 크다. 17일 제주도와 남해안을 강타한 제14호 태풍 ‘찬투’도 진행 방향의 오른쪽에 더 큰 피해를 입혔다.
편서풍 역시 코리올리 효과로 발생한다. 편서풍은 북위·남위 30~60도인 중위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을 말한다. 북반구에서는 남서쪽에서, 남반구에서는 북서쪽에서 동으로 분다. 적도에 가까운 북·남위 0~30도의 저위도에서 동쪽으로 부는 것은 무역풍이라고 한다.
한반도는 북반구 중위도에 속하므로 편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고기압이나 저기압 등의 기압계가 이 바람을 타고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다. 중국의 미세먼지와 황사가 한국으로 오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물질이 태평양 쪽으로 가는 게 이 때문이다. 중국으로 향하던 태풍이 한국이나 일본으로 휘어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와 달리 북대서양 난류가 지나는 유럽대륙 서안에서는 편서풍이 많은 비를 뿌리며 음습한 날씨를 몰고 온다. 그래서 ‘편서풍이 불 때 동아시아 사람들은 황사마스크를 쓰지만, 유럽인들은 우산을 쓴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적도선(赤道線)이 지나가는 적도 한가운데에서는 어떨까? 코리올리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 중력의 영향도 극지방보다 작아서 대부분의 우주 로켓 발사대를 적도 가까운 곳에 세운다. 적도 지역은 지구 자전에 따른 원운동 속도도 크다. 이를 이용해 로켓의 가속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우주발사장도 국토 최남단에 가까운 전남 고흥 외나로도에 있다.
여기서 퀴즈 하나. 적도의 가봉이나 에콰도르에서 개수대와 세면대 물이 반대 방향으로 빠진다는 건 정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게 작은 규모’에선 코리올리의 힘을 눈으로 관찰하기 어렵다. 훨씬 더 큰 규모에서 매우 정교한 과학 실험을 거쳐야 확인할 수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친구가 사는 가봉의 가정집이나 에콰도르의 적도박물관 내부는 ‘작은 규모’다. 이곳에서 물의 방향을 결정하는 요인은 코리올리의 힘보다 용기 표면의 미세한 불균형이나 디자인의 경사도 차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관광객들은 마냥 신기해한다. 이래저래 거대한 자연의 원리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구 자전 증명한 첫 실험 '푸코의 진자'
움베르토 에코 소설에도 차용‘푸코의 진자’는 프랑스 과학자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가 지구의 자전을 증명하기 위해 고안해낸 실험 장치다. 그는 1851년 파리의 팡테옹 돔 천장에 길이 67m의 실을 내려뜨려 28㎏짜리 진자(추)를 매달고 흔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팡테옹에 전시된 ‘푸코의 진자’ 복제품.이때 작용하는 힘은 중력과 실의 장력뿐이어서 추는 일정한 방향으로 흔들린다. 하지만 지구 자전에 의해 지표면이 움직이므로, 바닥에 서 있는 사람의 눈에는 추가 마치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파리의 위도에서 지구의 자전 주기가 얼마나 되는지 추론했고, 이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증명해 보인 인류 최초의 실험이었다. 그는 이 업적으로 당시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코플리상을 받았다. 그때 실험에 쓰인 진자는 1855년에 파리 국립과학연구원으로 옮겨졌다가 줄이 끊어져 파손됐다. 지금 팡테옹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1988년)에서는 진자가 두 개의 상반된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다. 진자의 한 면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의 사고를 보여준다. 다른 한 면은 인간의 탐구 대상인 지구의 움직임이 과학으로는 다 풀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비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