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시대
제2회 독후감상
박민재
개타령에 나오는 사건마다 공감된다. 본의 아니게 어떤 상황으로 인해 없애거나 떠나보내야 했던 개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인간미가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 정을 준 복구까지 떠나보낼 때의 마음이 뭉클하다. 사람과의 인연도 쉽고 가볍지 않지만 동물에게도 그 못지않은 의미를 지닌다.
일곱 살 되던 해의 초여름 일게다. 허물없이 말해서 나는 그때 마당가에 퍼대고 앉아서 모종의 생리작용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는 일찌감치 눈치를 챈 우리 집 흰둥이와 앞집 누렁이가 부산물을 가운데 놓고서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이다가 누렁이란 놈이 엉겁결에 내 궁둥짝을 물어뜯고 말았다. 훈장의 ‘그것’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언이 있지만 그때는 내가 아직 훈장이 되기 훨씬 전이라 ‘그것’이 개들에게 인기 아닌 견기大氣가 있었던 모양이다.
범의犯意는 없었다고 치더라도 결과가 중대하였기 때문에 누렁이는 그 날로 여지없이 처형되고 말았다. 덕분에 마을에서는 생각하지 않은 보신들을 했을 터이지만, 나는 할아버지에게 업혀서 며칠 동안 산 넘어 의원 집에 다니면서 약 뿌리를 끓여서 그 물로 볼기를 지지던 생각이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 <본문> 중에서
초등학교 때다. 학교 끝나고 집 마당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식겁하였다. 감나무 옆 장독간을 둘러싼 벽돌 울타리에 시커멓게 그을린 무언가가 걸쳐져 있었다. 덜 그을린 꼬리가 아니었다면 메리인 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집에 오면 누런 털을 가진 메리가 먼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메리와 함께 늦은 밤 심부름 다녀오는 길은 제법 든든하다.
3년을 함께한 메리가 처참하게 화형을 당했다. 이유인즉 중풍 걸려 거동이 힘들고 기운이 쇠잔하여 음식을 못 드시는 할머니의 원기 보양 제물로 희생된 것이다. 못 볼 것을 본 죄로 한동안 메리를 처리한 할아버지도 걸쳐둔 장독대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지금 그랬다면 동물학대죄로 지탄받을 일이지만 그 시절은 약으로 쓰거나 살찌워서 보신용이 예사였다.
그 일이 있던 뒤 집에 불이 났다. 우리는 억울한 메리 혼이 불을 내었다고 소근거렸다. 메리가 묶였던 장독간 옆 아래채가 다 타서 우리 집 역사가 담긴, 가족과 어린 날의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다. 그 이후 5살 막내가 앞집 개에게 물렸다.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뇌막염이 되어 병원에서 수개월 고생하다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런 충격으로 개에 대한 불안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키울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아들이 장가를 가더니 족보 있다는 두어 달 된 치와와 두 마리를 사 왔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오지공, 견공 최대의 존칭에 걸맞게 아빠, 엄마 하면서 자식처럼 대하고, 고깃집에서 살코기만 챙겨와 먹이며 애지중지 받들어 모신다. 결혼 십 년이 되어도 아이가 없다. 난 여전히 강 쥐 할머니다.
길 나가면 개 세상이다. 중견이 입마개를 하지 않고 마주 오면 슬금슬금 먼저 피하고 본다. 바람 솔솔 산책길, 발에 밟히는 물컹거림의 수난을 당하기 일쑤다. 개를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온 집안에 털이 널려있거나, 자기영역을 만든다며 소파, 식탁 기둥마다 변을 내지르거나,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느껴지는 형용하기 어려운 내음이 싫어 키운다는 것은 엄두가 안 난다.
그러나 어쩌랴. 함께하면서 위로를 얻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때론 가족보다 귀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특히 인생 후반기에 이르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새삼 옛 기억을 끄집어 내다보니 개타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