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밖을 본다. 밖은 둘이다. 밖에는 입구와 출구가 있다. 둘은 대칭된다. 선과 악, 진보와 보수, 밝음과 어둠, 머리와 꼬리가 대칭된다. 밖은 둘이고 둘은 상대성이며 상대성은 이원론이다. 둘은 교착되어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원의 교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상대성이 때로는 방어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이기지 못하면 최소한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방어하려고 하면 게임은 진행되지 않는다. 어느 팀도 득점하지 못하면 승부는 나지 않는다. 인류가 실패하는 원인이다. 맞서려고 할 뿐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안을 봐야 한다. 처음 내부를 본 사람은 갈릴레이다. 안은 관성이다. 관성은 나란함이다. 달리는 버스가 멈추면 관성을 느낀다. 나란함이 깨져서 어긋남을 보고 내부에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인류는 관성을 발견했지만 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란함을 깨닫지 못했다.
관성은 나란함이다. 나란함은 대칭된 둘의 밸런스가 축을 공유하는 것이다. 밖의 둘은 안의 하나를 공유한다. 선과 악은 사회성을, 진보와 보수는 문명성을, 밝음과 어둠은 빛을, 머리와 꼬리는 몸통을 공유한다. 일원의 절대성이 상대성의 교착을 타개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 내부가 없다. 그것은 밖을 보는 관점이다. 원자의 반대는 구조다. 구조는 얽힘이다. 얽힘은 공유다. 모든 것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 서로 공유하는 구조가 있다. 관성은 둘의 나란함에 의한 공유가 깨졌을 때 내부의 나란함을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다.
밖을 보면 입구와 출구가 보이고, 쪼개지지 않는 원자가 보이고, 상대성이 보이고, 이원성이 보이고, 둘은 교착되므로 순환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원인을 낳아서 제 자리를 맴돌게 된다. 방어는 하는데 공격을 못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안을 보면 둘의 나란함이 보이고, 대칭과 축이 보이고, 관성이 보이고, 공유가 보이고, 구조가 보이고, 절대성이 보이고, 일원성이 보인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 계속 가면서 원본을 복제한다. 복제본은 공유되고 공유하면 효율적이고 효율성은 힘이 있다. 그 힘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