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속일 수 없다. 지정학적 구조는 명확하다. 역사의 흥망은 정해져 있다. 석유 터지면 흥하고 항구 없으면 망한다. 심리적 지정학도 있다. 사람 사이에서 누가 항구 역할을 해야 한다. 엘리트가 한다. 엘리트 우월주의다. 집단 내부에 구조를 만든다. 엘리트 중심으로 뭉치는게 독일철학이다. 자신이 뭉칠 수 없으므로 상대방을 흩어놓자는게 프랑스의 탈근대 사상이다.
구조는 연결과 단절, 통합과 해체, 긍정과 부정, 능동과 수동, 자극과 반응의 양면이 있다. 연결과 통합과 긍정만 주장하면 독일철학이고 단절과 부정과 해체만 주장하면 프랑스 철학이다. 둘 다 내 논에 물 대기 아전인수 계산을 깔고 있다. 귀족 우월주의를 교묘하게 감춘 독일과 일본의 정신주의에 속아서 안 되듯이 프랑스의 해체지향적 사고에 속아서도 안 된다. 둘 다 장단점은 있다.
엘리트는 촌놈의 단결력을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좌절한다. 프랑스 엘리트는 쪽수로 무장한 독일을 이길 수 없다. 좌절한다. 그런데 왜 우리가 패전국 프랑스의 좌절본능을 배워야 할까? 정의당이 민주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홍세화가 배워왔다. 정의당 엘리트가 민주당 촌놈을 못 이긴다. 내가 이기지 못하므로 상대를 찢어놓는다. 촌놈들이 김어준 방송에 몰리지 못하게 막아라.
지식인이 정치의 협잡에 끼어들면 안 된다. 진실을 말하자. 빛과 어둠, 긍정과 부정, 통합과 해체, 연결과 단절은 동전의 양면이다. 엑셀레이터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모두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고수는 원페달 드라이빙을 한다. 페달 한 개로 가속과 감속을 동시에 한다. 열기와 냉기는 같다. 몸에 들어오면 열기가 되고 빠져나가면 냉기가 된다. 모든 대칭된 둘은 하나다. 깨달아야 한다.
긍정하면 부정은 자연히 따른다. 전기 스위치 하나로 온도를 올리고 내린다. 연결하면 단절은 저절로 된다. 빛을 통제하면 어둠의 조절은 자연히 해결된다. 양쪽으로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동전은 양면인데 그 중에 한쪽만 보겠다는 자는 저의를 숨기고 있다. 그렇다고 양쪽 다 해결하려니 정신이 없다. 답은 구조다. 구조의 밸런스를 움직여 통합과 해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근대 독일철학 - 엘리트는 정신력이 있다. 엘리트 중심으로 뭉쳐라.
탈근대 프랑스철학 - 엘리트는 답을 안다. 엘리트를 믿고 흩어져라.
둘 다 엘리트 우월주의다. 이들은 현장에 가지 않는다. 답은 현장에 있고 현장에는 도구가 있다. 지정학은 도구다. 사람의 도구는 교육과 미디어다. 로마는 10분의 1형이 도구, 영국은 곤장 1200대가 도구, 독일은 될까지 처음부터 다시하라는 규칙이 도구, 일본은 할복자살이 도구, 한국은 뒷담화 까기가 도구다. 진정한 도구는 산업의 혁신에 있다. 혁신의 흐름에 올라타면 저절로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