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위 중심으로 사고한다. 사물의 단위는 원자다. 사건의 단위는? 게임은 라운드가 있고, 행사는 이벤트가 있고, 사례는 케이스가 있다. 놀랍게도 영어에는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서구문명이 통째로 잘못된 사유의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게임은 사건이다. 게임이론은 사건이론이다. 사건을 영어로 옮길 수 없다. 사건 속에서 작동하는 관성력을 설명할 수 없다. 게임은 딜러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있다. 경기의 주도권이 있다. 게임을 지배한다는 개념이 있다. 사건을 통제하는 권력을 게임의 주도권에 비유할 수 있다.
사물 - 선택한다. 내게 결정권이 있다.
사건 - 가담한다. 한 배를 탄다. 휩쓸린다. 결정권이 없다.
우리가 사물을 보는 관점을 버리고 사건을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사물은 선택할 수 있지만 사건은 선택할 수 없다. 사간에 가담하면 곧 휩쓸린다. 한 배를 탄 운명이다. 사물의 선택은 결과 중심적 사고다. 게임이 끝나고 떡을 나눠준다. 좋은 떡을 고르면 된다. 플러스 사고다.
사건은 원인 중심적 사고다. 주도권이라는 이름의 핸들을 쥐고 능동적으로 운전해야 한다. 처음에 획득한 관성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마이너스 사고를 해야 한다. 말을 타면 내맘대로 할 수 없고 말과 호흡을 맞추어야 한다. 바둑을 두면 내맘대로 둘 수 없고 정석대로 두어야 한다.
사건 속에는 관성이 걸려 있다. 게임 속에는 권력이 걸려 있다. 게임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사건의 관성력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 보면 할 수 있는 선택이 거의 없다. 바둑판은 하드웨어지만 바둑 내용은 소프트웨어다. 우주는 소프트웨어다. 구조는 존재의 소프트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