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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탐정, 신통한 만남, 그 졸렬한 서막
신발장 지음
1. 만남
나는 영업부장 신통한
소수의 고객만을 책임진다
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
명함을 받아든 이상한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한이 제일 싫어하는 녀석들이 바로 영업을 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이상한의 눈에 영업을 하는 인간들은 모두 사기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순진한 사람들을 그럴 듯한 말발로 현혹시켜 일단 자신의 고객이 되면 마치 VIP처럼 모실 듯하지만,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기는커녕 마치 지나가는 개처럼 대하기도 하는 녀석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엔 순진하기만 했었다. 그가 친절한 영업사원에게 몇 번 사기를 당하면서부터는 그의 생각은 차츰 달라져갔고, 그는 그 영업사원들 때문에 경찰이란 직업까지 택했고 경찰 역시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체질에 안 맞아서 1년 만에 경찰 생활도 접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이상한 탐정 사무실'이란 허가도 되지 않은 '탐정'이란 이름을 붙여 신장개업을 한 것이다. 그 탐정 사무실이라는 것이 '사업자 등록'을 한 사무실이 아니라 이상한 스스로가 막노동하고 공장 일을 하면서 모은 재산으로 만든 개인사무실이다. 이름만 '탐정 사무실'이었지 아무도 의뢰를 하지 않는 철저하게 은둔하고 있는 이상한의 거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무실에 뜬금없이 신사복 차림의 정장을 한 '신통한'이라는 자가 나타나 그의 맘을 심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보십시오. 신통한씨, 차를 파실 생각이라면 다른 곳을 알아보십시오. 이따위 고급차를 살만큼의 여유가 제게는 없습니다.”
신통한은 움찔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살펴보았다. 어디를 보아도 차를 판다는 내용은 없었다.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신통한은 일부러 단 세 줄의 홍보용 문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자. 미처, 말도 하기도 전에 고급차를 파는 영업사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 버렸다니. 또한, 이따위 고급차라니? 사무실은 겉보기에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신통한은 자신이 사무실로 들어올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탐정 사무실? 특이하군. 한국에서도 사립탐정이 활동하고 있었다니.' 신통한은 이 정도의 탐정 사무실을 차릴 정도라면 적어도 고급차 한대 정도는 구입해야 할 듯싶었다. 안전도가 최우선인 고급차 말이다.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고급차를 경멸하며, 또한 그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통한씨, 이제 그만 나가주시겠습니까?”
영업경력 20년의 신통한이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여서 될 문제는 아닐 성 싶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고급차를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군요. 신통한씨. 우선 당신의 옷차림을 보십시오. 당신은 고급 정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보십시오. 소수에게만 드리는 기쁨! 이라고 써 있군요. 과연, 이 좁은 한국에서 그렇게 고급정장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더구나 영업사원이?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당신이 왜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았는지가 더 궁금하군요. 돈 많은 사장님들을 접대하기도 바쁘실 텐데요. 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정장은 부유한 사장님들이 있는 것보다는 약간 낮은 패션이군요. 사장님들이 당신보다는 높은 사람인 것을 인식해야 될 테니까요. 그래서 고급이라는 것은 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것은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함부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군요. 그리고 그것은 알고 보면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스스로 풀어보도록 하십시오.”
신통한은 이상한의 강렬한 눈빛에 빨려들었다. 그에게는 분명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그만 나가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신통한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상한의 말대로 신통한은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스스로 높으시다는 양반들만을 상대하는 고급인력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이상한 곳까지 끌려 들어오다니.
신통한은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이상한을 바라보았고 이상한도 신통한을 그냥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신통한의 머리에는 온갖 생각들이 춤을 추었다. 이대로 나갈 건가, 좀 더 있을 건가, 저 탐정이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데,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냥 뚫어지게 보고만 있을까.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상한은 신통한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통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허리춤을 바라본다. 아니, 언제 이렇게. 그의 허리춤에는 몇 종류의 차키가 매달려 있었고 차량에 대한 설명이 가득한 서류가 그가 들고 온 가방 위로 삐죽이 드러났다.
"영업사원 맞습니까? 그렇게 서툴러서야 무슨 영업을 한다고…”
그것은 신통한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었다. 아니, 겨우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서툴게 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건가. 신통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상한을 바라보았다. 이상한은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신통한의 얼굴을 보더니,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놀란 표정이군요. 무엇 때문에 그리 놀라십니까? 나가지도 않고, 딴 사람처럼 멍하니. 매력 있네요.”
아니, 이런. 남자한테 이런 고백을 듣다니. 같은 남자면서. 당황하는 신통한의 표정을 보더니 이상한이 다시 말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전 저의 사랑스런 부인이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 그 뜻이 그 뜻이 아니었구나.
"서툰 게 매력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업사원을 하시는군요. 잘 하시겠네요”
칭찬인지, 비꼬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자, 제 명함입니다. 나중에 제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저는 고급차를 살 여유는 없습니다.”
아까보다 한참 부드러운 말투로, 명함을 건네는 걸 보면, 이 사람, 잘 사귀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꼭, 차를 살 고객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나눌 친구로. 그런 사람 한 명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업사원이 된 뒤, 신통한에게서 멀어진 친한 친구도 있었다. 신통한은 그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친구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이상한이 그런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그런 친구가 되기 힘들긴 하지만, 신통한은 그런 고정관념이 깨지길 바랐다.
이상한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어려움이 없다면, 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한 탐정.
신통한은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이상한도 살짝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중에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을 한다. 이상한도 신통한도 그 무언의 약속이 그들 사이를 그렇게까지 만들지 몰랐다. 이상한과 신통한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첫 의뢰
이상한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손님 없으면, 내일은 또 공사장에 나가봐야겠군.' 후…… 한숨을 쉬는 그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법으로는 금지된 탐정사무소이지만, 그의 사무실에 들어와 불법이라며 사무실을 내리라는 경찰도, 그를 기소하는 검찰도 없었다. 이상한에게는 다소 도박일 수도 있는 사무소 개업이었는데, 나름 다행이다 싶긴 했지만, 이상한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리 열심히 생각을 해봐도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볼 수는 있었다. 그가 경찰 출신이기 때문에 눈을 감아줄 가능성도 있고, 앞으로 탐정이란 직업이 허가될 예정이기에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별로 신경 안 써도 될 만큼 이상한의 존재가 작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은데…… 내일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이상한이 한참 고뇌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어, 누구지…?'
이상한이 문을 열자, 조금은 엣 되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탐정 사무실이라고 해서요. 저, 고민 있어서 왔는데요?”
"고민?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저 고등학생이요. 여기 가면, 고민 들어줄 거라, 누가 그래서.”
"누가 그런 말을? 그런데, 무슨 고민입니까?”
"어떤 검은 정장을 입으신 분이요. 제가 놀이터에서 울고 있으니까, 이리로 한 번 가보라고 했어요.”
"검은 정장?”
이상한은 짐작 가는 바가 있으나, 그 학생에게는 그 신사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 고민이 뭡니까?”
"어, 아저씨는 제가 학생이라고 밝혔는데, 반말을 안 하시네요?”
"어색합니까? 어색하면, 반말로 할까요?”
"아니요. 저를 무시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다른 애들은 그렇게 깍듯하게 대하면, 왠지 부담스럽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그렇게 대하실 때 저는 제가 존중받는다고 느껴요. 길에서 만나는 아저씨들도, 아주머니들도, 그리고 선생님도 제게 반말을 하는데, 저는 그게 친근감의 표현으로 안 느껴져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바라본다. 그 학생도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본다. 한참 동안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상한은 학생에게 물어볼 말을 찾았다.
"고민이 뭡니까?”
"방금 말했어요.”
"그렇습니까?”
"네. 그것 때문에 많이 울어요. 아까도 그래서 울었어요. 아, 그런데, 아저씨, 상담료는 얼마에요? 저, 여기 자주 오고 싶은데.”
"주고 싶은 대로.”
"저, 돈 많이 드려도 돼요?”
"부자십니까?”
"네. 아버지는 JK 그룹 사장님이시구요. 어머니는 현장특별시 시장님이세요. 한번 올 때마다 50만원씩 드릴께요. 1주일에 한 번씩 올 거에요.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랑 같이 있어주세요. 매주 토요일마다 올 거에요. 해 주실 수 있죠?"
이상한은 한동안 그 학생을 쳐다보았고, 대답하는 대신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학생 이름이 뭡니까?”
"저, 이름 안 말하고 싶어요. 그냥, 샘물이라고 불러주시면 안돼요?”
"이름은 안 말하고 싶고. 샘물이라고 불리고 싶다. 그럽시다. 현금 결재입니까?”
지금까지 어둡기만 했던 학생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즉시 5만원권 10장을 꺼낸다.
"50만원이요! 아저씨 정말 좋아요. 아무것도 자세하게 묻지 않으시고, 화끈하시고. 그럼, 오늘부터 저, 아저씨랑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오늘 토요일인데!”
이상한은 오늘이 토요일이란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내일 공사판에 갔더라면 허탕치고 올 가능성이 많았겠군.' 그러면서, ‘이 학생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서, 아직은 날이 좋다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아저씨! 저랑 게임방 가요!”
이상한은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보군, 하면서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 하는 그 학생의 뒤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3. 미행
신통한은 학생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유 없이 울고 있던 한 학생. 이유 모를 만남. 학생을 이상한에게 안내하는 자신의 마음이 뭔가에 홀렸음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통한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신통한은 그 학생이 이상한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로 들어가네?' 어느 낯선 남자의 소개. 그 이상한 소개가 그 학생을 이상한에게로 이끌었다. 그 이상한 힘을 신통한은 알 수 없었다.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학생, 왜 울고 있어?”
"아니, 아저씨? 아저씨는 울고 있는 학생에게 일일이 신경 써요? 참 특이한 아저씨네?”
"일일이 신경 안 써. 오늘만 신경 쓰는 거야.”
"왜요?”
"이상한 탐정을 만났거든.”
"이상한 탐정?”
"이름이 이상한.”
"음……그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이라는 거예요?”
"이상한이 이름. 이름처럼 이상해.”
"어, 왠지 관심 간다. 어딨어요, 그 아저씨?”
울음을 뚝 그친 학생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뭐지, 이 상황은?'
"저기 저 건물 2층에.”
"어떻게 찾아요?”
"앞에 써 있어.”
"고마워요.”
이 대화가 끝이었다. 학생은 더 이상 신통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신통한은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다시 피게 되면 두 번 다시 못 끊을 것 같아 피우지 않았다. 끊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은 담배만이 아니었다. 이상한 탐정. 그가 건넨 명함에 새겨진 문구 "어려움이 없다면, 이상한 친구. 어려움이 있다면, 이상한 탐정.” 기가 막힌 문구였고, 기가 막힌 친구였다. 그 문구에 의지해서 한 학생을 발견했다. 학생은 울고 있었다. 그것도 소리 내어 펑펑. 마치 누군가 자기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신통한은 자신이 지금 일하러 나왔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어차피, 먹고 살 만큼 돈은 많이 벌었다. 이제, 외근은 그만해도 될 만한 위치다. 그럼에도 신통한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좋아 외근을 계속해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저 멀리 그 학생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것은, 학생의 표정이 너무 밝아졌다는 것이다. 너무 신나게 팔짝팔짝 뛰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 뒤에는 이상한 탑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심각한 표정이 학생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학생이 이상한에게 빨리빨리 가자고 조르는 듯 했다. 이상한은 가끔 그 학생을 향해 살짝 미소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미소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 신통한은 이상한이 그 학생에게서 뭔가를 눈치 챘는데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는 무엇을 하는 학생일까. 그러고 보면, 신통한은 그 학생에게 정말로 학생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냥, 울고 있길래 무작정 이상한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신통한은 결정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기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판매보다 더 큰 건이 걸려있을 거란 본능적 느낌이 그를 휘감기 시작했다.
문득, 방문판매가 불법인 법안이 될 거라는 뉴스를 접한 것이 기억났다. 이제 시대는 바뀌고 있다. 더 이상 고객을 불쾌하게 하는 방문판매는 하지 못할 것이며, 이제 본격적인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 시대를 읽어내지 못하면, 신통한의 영업도 끝이 난다. 신통한은 지금 이상한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신이 일구어왔던 지금까지의 경험, 그리고 자신의 인생이 무의미해질 것 같은 절박감이 몰려왔다. 이상한이 신통한을 봤는지 안 봤는지 신통한은 알지 못했다. 다만, 멀찌감치 서서 그들을 지켜보다, 그 학생과 이상한이 4차선 도로가 있는 길가가 있는 곳으로 가자 부리나케 따라잡았다. 거기엔 상점들이 일렬로 나열해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중 하나의 건물로 그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 건물은 5층짜리 건물로, 4, 5층은 대중목욕탕, 찜질방이 있었으면, 3층은 PC방, 2층은 당구장, 1층은 식당이 대형 평수로 있는 큼직한 건물이었다. 신통한은 그 중 어느 곳으로 그들이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이 무슨 생각에 그 건물로 따라 들어간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학생과 이상한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지, 더더욱 의문이 남았다. 신통한이 그 건물에 도착했을 때는 그들이 이미 보이지 않았기에, 신통한의 궁금증은 더더욱 커져 갔다. 조금 고민하던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신통한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이상한에게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가 지금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부여잡을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신통한은 이상한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신통한은 거기에 새로운 안내문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상한 탐정 사무소 - 지금은 아무도 없으나 그대가 원한다면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나 그 "곧”이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으니, 기다리지는 말아 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운명이니까요! 급한 용무가 있으신 분에 한하여 연락 주십시오. 연락처는! 꺼턱* 아이디 : 께림칙해.”
신통한은 그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이상한의 꺼턱으로 이상한의 아이디를 입력했다. "찾을 수 없습니다.” 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검색을 해 보았다. 역시 되지 않는다. 신통한은 할 수 없이, 그를 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의자가 없을까. 신통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기하다. 마치 그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쪽 편으로 조그만 의자가 하나가 놓여 있다. 낡고 낡아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신통한은 그 의자가 분명 이상한의 사무실에서 보았던 의자였음이 기억났다. 이상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신통한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록되었던 자신의 영업실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의자의 삐그덕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으니, 그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도 허름한 사무실이이서, 오직 이상한 탐정 사무소만이 유일하게 간판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무실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다. 신통한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도 있긴 했지만, 그보다는 이상한과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냥 더디지만은 않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면서도 신통한은 기꺼이 그의 반응을 즐길 마음의 준비를 했다. 오래도록 이상한과 만났던 첫 만남을 다시 되새겨보면서 말이다.
*꺼턱 : 카카오톡과 비슷한 어플. (기능은 카카오톡과 같으나 조금 다른 버전으로 실존하지 않습니다)
4. 조용한 만남
뻐끔뻐끔 담배를 피는 조용한의 눈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딘가 어색하면서도 유심히 누군가를 관찰하는 모습이 마치, 그를 납치라도 하려는 듯한 기세였다. 조금 후에 보니, 그는 저 멀리 사라져갔다. 그의 앞에 있던 누군가도 어느 덧 조용한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조용한은 피던 담배를 끄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래도 담배 탓인 듯 했다. 그의 시야를 가린 뿌연 담배연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을 놓친 것 같다. 조용한은 공원을 가로질러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마치 뭔가를 쫓고 있는 듯 했다.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뭔가 영 어색했다. 뒷모습에서 그의 불안이 느껴졌다. 조용한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가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조용한은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벤치에 앉았다. 조용한이 주시하던 그가 조금 허름한 건물로 들어갔다. 조용한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은 그가 들어간 건물로 들어가 1층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1층은 조그마한 헌책방이 있었다. 사람이 없을 거란 예상과 달리, 그 책방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열 댓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사람이 열 명이 넘게 있어, 사람들이 아주 많은 듯한 착각이 든 것이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 조용한이 찾던 그는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은 좁은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조용한은 의자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불안해 보였다. 조용한은 한동안 그를 관찰하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한참,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조용한을 보더니,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조용한은 그의 목소리가 꽤나 밝고 중후하다는 데에 놀랐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이 조용한에게 느껴졌다.
"실례지만,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예, 누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뭐가 문제가 있으십니까?”
"아니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조용한이 말을 이어가기 전에 그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와 대화가 가능하신 분입니까?”
조용한은 뭔가에 찔린 듯, 뜨끔했다. ‘역시, 쉬운 상대가 아니었어.'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쫓던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할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제가 쫓던 사람이라뇨? 그런 사람 없습니다.”
조용한은 이상한 탐정 사무소라는 푯말을 뚜렷이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상한 탐정 - 그 사람에 대해서 조사 중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보다 당신 신분증 있습니까?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조용한은 조용히 검찰배지를 그에게 내밀고, 그의 신분증마저 내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고, 뭔가 거대한 파도가 그를 휩싸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조용한 검사님. 신통한이라고 합니다. 저는 외판원입니다. 저는 단지, 차를 팔기 위해서 잠깐 들렀을 뿐입니다.”
조용한 검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을 찾고 그에게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신통한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체포하거나, 이상한씨를 체포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과 얘기하셨던 그 학생, 그 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학생,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통한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통한은 조용한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고, 조용한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그러면서 조용한은 한편으로 자신이 너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에게 접근하기 위해 조용한은 너무 심한 거짓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 샘물투어
이상한과 학생이 간 곳은 조금 오래된 건물이었다. 샘물이라 불리고 싶어 하는 그 학생은 애초에 PC방이던 행선지를 들어서면서부터 바꾸었다.
“아저씨, 우리 이 건물 투어해요!”
“투어라니요?”
“투어 모르세요? 이 건물에 음 보자… 1층에 식당이 있네… 우선 밥부터 먹어요!”
“그러고 싶으십니까?”
“네! 오늘 저한테 쓰기로 하셨잖아요!”
“네, 그렇게 합시다.”
“아 좋다! 식당에서 밥 먹고, 당구장에서 한 시간 당구치고, pc방에서 2시간 게임하고, 찜질방에서 남은 시간 보내면 되겠어요! 아저씨, 당구 칠 줄 아시죠?”
“30 칩니다”
“푸하하하하하… 진짜요?”
“딱 한번 쳐봤습니다.”
의외의 반전이라는 듯, 샘물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한은 살짝 겸연쩍은 미소만 띄운 채 그 학생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저씨, 뭐 먹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제가 골라야 됩니까?”
“네,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네 맘대로 골라, 내가 사 줄게! 이런 거요.”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식당 한번 둘러보면서 결정하겠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샘물은 1층의 식당을 쭈욱 둘러보다, 별을 봐 레스토랑이란 곳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십니까?”
별무늬가 아록다록 새겨진 정장을 입은 희한한 복장의 남자 웨이터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랑 이상한 아저씨, 두 명이요.”
“이상한 분이신가요?”
“아, 음… 네! 이상한 분이에요.”
그러면서 샘물은 또 까르르 웃었다.
“예, 이리로 오세요!”
이상한과 샘물은 역시 별무늬로 장식되어 있는 벽장식이 있는 곳을 지나, 별모양이 새겨진 나무탁자로 소개되었다.
“으와, 별천지다! 정말, 오늘 좋아요. 너무너무 행복해요.”
샘물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이상한은 샘물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말했다.
“행복하시다니, 저도 기쁩니다. 샘물님은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십니다.”
샘물의 눈에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고, 입가엔 미소 같은 것이 아로새겨졌다. 그 미소는 정말로 행복할 때만 나올 수 있는 미소였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오래가게 될지, 이상한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 행복을 붙들고 있기를 이상한은 간절히 소망했다. 이 학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오늘만은 이 학생의 소원을 마음껏 풀어주기로 했다. 어떤 사건이 이상한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한의 날카로운 눈은 샘물군의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한이 알 수 있는 건, 샘물군을 좇고 있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을 거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이상한은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이상한은 메뉴판을 보았다. 별봐 돈가스. 별봐 함박 스테이크. 별봐 무제한. 별 봐 무제한 메뉴엔 5만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돈가스와 스테이크메뉴 가격의 무려 다섯 배 차이였다. 그 밑에 조그만 글씨로 별 봐 미니우동이란 글씨가 조그맣게 쓰여 있고 3000원이란 표시가 있었다. 이상한은 알 수 없었다. 5만원이나 내고 미니우동을 먹으려면 3000원을 또 내란 말인가? 그때, 샘물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거 다 주세요!”
“손님, 무제한 메뉴는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까지 포함한 가격입니다. 그걸로 드릴까요? 1인당 5만원입니다.”
“아니요, 무제한 메뉴 1인분 주시고, 돈가스 스테이크 미니우동 1인분씩이요. 아저씨, 장사하지 마시고요!”
“아, 손님 죄송합니다. 혼자 계신 줄 잠깐 착각했습니다. 앞에 있는 분이 잠시 잠깐 제 눈에는 안 보였습니다. 그렇게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샘물은 잠깐 앞의 이상한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외계인이거나 초능력을 가진 인간 같은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눈에도 잠깐 안 보였던 것 같은데요?”
“착각하신 걸 겁니다.”
“그렇겠죠?”
울음을 그친 샘물은 이제 조금 멍한 눈으로 이상한을 쳐다보았다. 별무늬로 새겨진 형형색색의 그림들이 샘물의 눈으로 들어왔고, 이상한은 샘물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예, 뭘요?”
“여기에 저를 데리고 온 이유 말입니다. 샘물님은 애초부터 이 식당으로 저를 끌고 올 계획이 아니었습니까?”
“아… 그, 그게…”
당황하던 샘물의 눈에 놀라워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이상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샘물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이상한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빛을 교환하고, 샘물의 입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한은 샘물의 얘기를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경청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방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상한은 120킬로는 됨직한 거구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샘물은 그 여인을 바라보며 이상한에게 소개시켜 주었다.“아저씨, 저희 이모님이세요. 이 식당의 주인이기도 하구요.”
6. 이상한
조용한과 신통한은 이상한과 이상한이 데리고 있는 학생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상한은 샘물이 말한 이모님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이모님. 정말 이모님이신가요?”
“글쎄요!”
“그렇다면, 여기서 협상을 종료하시겠습니까?”
“글쎄요!”
“그렇습니까? 샘물님, 그럼 이만…”
이상한은 조용한을 바라보았고, 신통한을 바라보았다. 샘물과 샘물이 말한 그 이모님이란 분은 이상한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조용한은 이상한이 지나가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고, 신통한은 이상한을 바라보는 조용한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