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은 보통 돌이나 나무로 만드는 데 이제는 신 소제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며 부드러우며 거룩한 느낌이 일어나는 소제로 말이다.
우리가 절하는 대상인 불상, 부처님과 보살님은 우리에게 가르침과 가피를 주시는 분을 형상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리 되어야 할 미래 우리 자신 모습이다.
절을 세번 하는데.. 각각의 의미는
나무불 Namo Buddha..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나무법 Namo Dharma..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나무승 Namo Sangha..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
부처님 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표이고,
가르침은 석가세존의 가르침이요,
승가는 부처님 법대로 공부하는 이들이 모여 공동 생활하는 단체로 승원이란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거룩한 스님이라 하고 있다
보리사 눈으로 나무 승을 보면..
성철큰스님과 원영 큰스님이 승보가 된다.
3보인 불법승에 귀의한다고 하는 의미 속에는..
귀의할만한 소중한 보물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요새 종종 듣는 말 가운데 나마스테 Namaste 🙏 가 있다
그 뜻은 '당신을(Aste) 존경합니다(nam)' 이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라 할 때
나오는 나무 namo가 같은 뜻이니 존경이지만..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스승에 대한 존경이 다르듯.. 부처님에 대한 존경은 무한에 가깝다.
그러니 부처님을 존경합니다 하는 '나무 불'하면 존경 이상의 존경이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 했다.
부처님께 귀의는 이웃종교에서 보듯 신에게 의지하고 신을 믿는다는 뜻과 같지 않은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신 God 중심인 종교에서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신 종교인 기독교나 힌두교를 보면..
인간은 신이 만든 피조물로 불완전한 존재로 완전한 존재인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중심 종교인 불교에서 목표는 우리 자신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를 인간은 신이라고 지칭하는 건데.. 부처님이 인간이라면 결국 신 아래인 게 아닌지?
결론부터 말하면
부처란 인간의 스승일 뿐 아니라 신의 스승이다 [천인사(天人師)]
부처를 달리 말하면 인간이지만 인간을 너머서 있다. 그러기에 Buddha를 한문으로 '사람이지만, 사람(人)이 아니다(不)' 라는 의미를 살려 '불(佛)'이라 했다는 것이다.
말로만?
신 God을 너머서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그것이 이해가 된다는 것은.. 석가모니 수행자가 6년 고행을 멈추고.. 니란자라 강을 건너가 보리수 아래에 앉은 이유를 깨달은 것과 같다.
성현으로 존경받는 분이라도 신을 너머설 수가 없듯이.. 석가 수행자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람을 벗어났기에 붇다가 된 것이다.
내가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자들이 불자들이다
감히 신을 너머 서려하다니!.
그렇다.
불자이므로 부처님이 되려 하려는 이가 있다면..
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기개를 품고 잊으면 아니 된다.
인간은 물론 신의 스승이 되는 파워를 갖춘 부처님[천인사]이 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무 법에서.. 법 Dharma 이란 보통 진리 truth란 뜻인데..
나무 법에서 법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방법이 기록된 경을 말한다. <잡아함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이 그것이다.
부처님이 되는 길인 진리보다 더 진리인 게 있을 수 있는가?.
높고 험한 산을 오르면서 목표를 바르게 보여주는 지도가 없다면 목표에 이를 수 있을까..
그러기에 불자라 하면 틈을 내어 경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무 승 sangha의 승은 부처님이 되려고 모여서 그룹을 이루어 공동생활을 하면서 바른 수행과 실천을 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경은 깨달음에 이르는 이해문이고, 승은 이해한 바를 깨치는 실천문이다.
그런데 모든 게 무상하듯.. 승가의 뜻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니.. 오늘 눈으로 보면..
보리사에 모여 부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고 수행하면 그와 같은 보리사는 우리가 보호하고 따르며 공경해야 하는 보물(승보)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나무 승을 거룩한 스님이라고 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우리 역사에서 조선조는 불교를 무지막스럽게 배척하며 탄압하여 불교를 한반도에서 없애려는 말살 정책을 펼쳤다.
그런 조건에서 불교 수행자들이 모여 바르게 수행한다는 것은 가능한가.. 임파시블.
따라서 귀의받고 보호받을 승가가 형성될 수 없었으니.. 나무 승의 뜻은 고승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스님으로 뜻이 바뀌었으니..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참 많지만..
우리는 나무 승에서 승가의 의미가 오리지널 의미로 되살아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언젠가는
(승보인) 거룩한 보리사에 귀의합니다 🙏 하며..
우리 각각이 보리사이니.. 서로를 공경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며, 만나면 반갑게 합장하며
부처님을 향해 서로를 이끄는 날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