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형이다.
나. 육신(육)으로 번역한 ‘사르크스’는 겉 사람의 ‘사르크스’와 속사람의 ‘사르크스’가 있다.
2. 본론
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형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번역이 잘못되었다.
(바른 번역은 말씀(호 로고스)이 육신(사르크스)과 하나 되어 우리(1인칭, 내 안에) 안에 거하시매 그리고 그의 그 영광을 우리(1인칭)가 보니(하나 되어 봄) 아버지(관사 없음)의 단독자의 거룩이요 은혜와 진리가 넘치더라.)
한글 번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독립된 개체로서 계신 것으로 오역하였으나 원문 내용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바로 나의 육신(속사람의 사르크스) 속에서 나와 하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니’에서 ‘우리’가 1인칭, 복수다. 우리나라 언어에서는 1인칭 복수의 개념이 없다. 바로 내 안에 와서 계신 그리스도 예수를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립된 개체로 보고 섬기는 것을 종교적인 행위로서 적그리스도라 한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코이네 헬라어 자체는 시제가 있지만, 그 내용은 구약 성경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시제가 없는 1인칭 현재 단수가 기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이천 년 전 독생자 한 사람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온전히 알았다면 독립된 개체가 아니므로 그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야 한다.
나. 육신(육)으로 번역한 ‘사르크스’는 겉 사람의 ‘사르크스’와 속사람의 ‘사르크스’가 있다.
내 안에서 육체의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야 하는 사건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몸 밖의 역사적 사건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니’에서 ‘보니’로 번역한 ‘데아오마이’의 과거 동사인 ‘에데아사메다’는 ‘근본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봄’이다.
육 또는 육신으로 번역한 ‘사르크스’는 겉 사람의 ‘사르크스’와 속사람의 ‘사르크스’가 있다. 속사람의 사르크스는 겉 사람(眼耳鼻舌身意)을 통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깨달음(호라오)을 통해서만 보고 만질 수 있다. 이 문장에 나오는 ‘사르크스’는 속사람의 ‘사르크스’다.
‘호 로고스(그리스도)’가 속사람의 사르크스와 하나 되어 우리(1인칭) 안(속)에 하나로 거하시는 나(1인칭)의 살과 뼈가 되시는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