孔子蚤晨作,負手曳杖,逍遙於門而歌曰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 既歌而入,當戶而坐。子貢聞之,曰泰山其頹,則吾將安仰 梁木其壞,則吾將安杖 哲人其萎,吾將安放 夫子殆將病也。遂趨而入。
공자가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면서 문에서 배회하면서 노래하였다. “泰山이 무너지려나? 대들보가 내려앉으려나? 哲人이 시들어 버리려나?” 공자가 노래를 마치고 들어가서, 집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공이 (이 노래를) 듣고 말하였다. “태산이 무너진다면, 저는 장차 무엇을 우러러보아야 합니까? 대들보가 내려앉는다면, 저는 장차 어디에 기대어야 합니까? 철인이 시들어 버린다면, 저는 장차 누구를 본받는단 말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병이 나신 것 같습니다.” 마침내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는데,
▶蚤벼룩 조, 손톱(≒爪), 일찍(早). 晨새벽 신. 作일어날 작, 일으키다. 負질 부. 曳끌 예. 杖지팡이 장, 依支하다. 逍거닐 소. 遙멀 요, 거닐다. 頹무너질 퇴. 梁들보 량. 壞무너질 괴. 哲밝을 철. 萎마를 위, 시들다. 安어찌 안, 語助辭. 仰우러를 앙. 放놓을 방, 본받다, 본뜨다. 殆위태할 태, 거의. 趨달릴 추
▶負手: 뒷짐을 지는 것을 뜻한다. 禮記集說大全 檀弓 上의 주석에서 負手를, 反手却後(손을 뒤집어 뒤로 하는 것) 이라고 풀이하였다. 却물리칠 각, 뒤집다, 反對로 / 틈 극, 사이가 벌어지다. ※反手: 일이 아주 쉬움.
▶哲人其萎 吾將安放: 哲人已死 我何所倚放(철인이 죽은 뒤에는 내가 누구에게 기대겠느냐?) 倚기댈 의, 依支하다, 믿다. ※이 문장에서 其는 ‘아마도’라는 뜻의 語助辭로 쓰였으며, 其가 語助辭로 쓰일 때의 의미는 萬若, 萬一, 아마도, 或은(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어째서, 將次, 바야흐로 등으로 쓰인다.
夫子歎而言曰賜 汝來何遲。予疇昔夢坐奠於兩楹之閒,夏后氏殯於東階之上,則猶在阼 殷人殯於兩楹之閒,則與賓主夾之 周人殯於西階之上,則猶賓之。而丘也即殷人,夫明王不興,則天下其孰能宗余 余殆將死。遂寢病,七日而終。時年七十二矣。
부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賜야! 너는 어찌 이렇게 늦게 왔느냐? 내가 어제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祭需를 받는 꿈을 꾸었다. 夏后氏는 동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렸으니 오히려 阼階에 두어 (주인으로 대우한 것이고), 은나라 사람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으니, 바로 賓客과 주인의 중간으로 대우한 것이고, 주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리니, 오히려 빈객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은나라 사람이다. 훌륭한 임금이 나오지 않으니, 천하 사람 중 누가 나의 道를 높일 수 있겠느냐. 내가 죽을 때가 되었다.” 마침내 병석에 누웠는데 7일 만에 죽으니, 이때 나이가 72세였다.
▶遲늦을지. 予니 여. 疇밭두둑 주, 以前, 접때, 경계. 昔옛 석. 奠제사 지낼 전. 楹기둥 영. 閒사이 간 / 한가할 한. 殯염할 빈. 階섬돌 계, 층계. 阼동편 층계 조. 夾낄 협. 孰누구 숙. 寢잠잘 침
哀公誄曰 昊天不弔,不憖遺一老,俾屏余一人以在位。煢煢余在疚,於乎 哀哉 尼父無自律。子貢曰公其不沒於魯乎 夫子有言曰 禮失則昏,名失則愆。失志為昏,失所為愆。 生不能用,死而誄之,非禮也 稱一人,非名。君兩失之也。
哀公이 공자를 위해 誄文을 지었다. “하늘이 불쌍히 여기지 않으셔서, 이 한 늙은이(孔子)를 남겨두시지 않으셨구나. 그리하여 나와 같은 못난 사람으로 하여금 자리에 있게 하면서, 보호해 주지 않으신 채 외로운 걱정만을 내게 남겨주셨으니, 아, 애통하도다. 尼父여! 내가 법으로 삼을 것이 없게 되었구나.” 그러자 이에 대해 자공이 말하였다. “哀公은 아마 魯나라에서 죽지 못할 것이다. 선생께서 말하기를, ‘禮를 잃으면 이치에 어둡고, 名分을 잃으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라고 하셨으니, 뜻을 잃으면 이치에 어둡게 되고, 마땅한 바를 잃으면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살아계실 때는 능히 그러한 분을 들어 쓰지 못하고, 죽어서야 誄文을 지은 것은 禮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나와 같은 못난 사람이라고 자신 한 사람만을 스스로 칭하였으니, 이것도 그 이름에 맞지 않습니다. 임금께서는 두 가지가 예에 어긋나신 것입니다.”
▶誄뇌사(誄詞: 죽은 사람의 살았을 때 功德을 稱頌(칭송)하며 問喪하는 말) 뢰, 弔文. 昊하늘 호. 弔조상할 조, 問安하다, 慰問하다, 불쌍히 여기다, 마음을 아파하다. 憖억지로 은. 俾더할 비, 좇다. 屏병풍 병, 가리다. 煢외로울 경. 疚오랜 병 구. 尼중 니, 女僧. 沒빠질 몰, 숨다, 없어지다. 昏어두울 혼. 愆허물 건, 죄, 과실.
▶尼父無自律: 父 丈夫之顯稱. 律法 言無以自爲法(父는 丈夫의 공개적인 칭호이다. 律은 法이니, 스스로 법을 삼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哀公 27년에, 哀公이 三桓의 威勢가 커짐을 걱정하여 越나라를 이용해 魯나라를 쳐서 三桓을 제거하려 하여, 公孫 有陘氏의 집으로 갔는데 기회가 여의치 않아, 邾나라로 갔다가 드디어 越나라로 도망간 일이 있었는데, 杜預의 注에 “애공은 魯나라에서 죽지 못할 것이라고 한 자공의 말과 같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既卒,門人疑所以服夫子者。子貢曰昔夫子喪顏回也,若喪其子而而無服。喪子路亦然。今請喪夫子若喪父而無服。於是弟子皆弔服而加麻。出有所之,則由絰。子夏曰入宜絰可也,出則不絰。子游曰吾聞諸夫子,喪朋友,居則絰,出則否 喪所尊,雖絰而出,可也。
공자가 이미 죽자, 문인들은 선생님을 위하여 어떤 服을 입을지 논란이 벌어졌다. 자공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 선생님께서 顏回를 잃으시고, 마치 아들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였으나, 服을 입지 않으셨다. 또한 子路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하셨다. 지금 우리도 선생님을 위해서 애통한 마음은 부모를 잃은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지만 복은 입지 않는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두 弔服을 입고서 거기에 絰을 두르며, 밖으로 나갈 때는, 이를 허리에 매기로 하였다. 子夏는 이렇게 말하였다. “집에 있을 때는 絰을 매는 것이 마땅한 것이지만, 밖에 나갈 때는 풀어야 한다.” 자유가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께 듣기로, 친구의 초상에는 집에 있을 때는 絰을 매지만, 밖을 나설 때는 매지 않는 것이며, 높은 자의 초상일 때는, 비록 출타 시에도 絰을 매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麻삼 마, 삼베옷. 絰질(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首絰과 허리에 감는 腰絰) 질. 宜마땅 의. 掌손바닥 장, 맡다, 主管하다. 葬장사지낼 장
孔子之喪,公西赤掌殯葬焉。唅以踈米三貝,襲衣十有一稱,加朝服一,冠章甫之冠,珮象環,徑五寸而綨組綬,桐棺四寸,柏棺五寸,飭棺牆,置翣設披,周也 設崇,殷也 綢練設旐,夏也。兼用三王禮,所以尊師,且備古也。
공자의 상을 치를 때, 公西赤이 염과 매장을 맡았다. 唅에는 거친 쌀과 동전 3개로 하였으며, 襲衣는 옷을 11가지를 썼는데, 그 위에 朝服을 1벌 더 입혀 드렸으며, 章甫冠을 씌웠고, 象環을 달아드렸는데, 그 직경은 5치이며 연두색 인장 끈을 매었다. 오동나무로 만든 관은 두께가 4치였고, 잣나무로 만든 관 두께가 5치였다. 임시 건물을 장식하였으며 靈柩(영구)에는 부채 모양의 翣(삽)을 두고 披(피)를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周나라 장례법이었다. 그리고 崇으로 꾸몄으니, 이것은 殷나라 장례법이었으며, 흰색의 비단실로 旐를 꾸몄으니, 이것은 夏나라의 장례법이었다. 그리고 三王의 예를 겸하였으니, 이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옛날의 예법을 具備하기 위해서이다.
▶唅머금을 함. 踈트일(막혀 있던 것이 치워지고 통하게 되다) 소, 소통(疏通)하다, 드물다, 성기다(물건의 사이가 뜨다). 同字 疎, 䟽, 疏의 俗字. 襲엄습할 습, 掩襲(엄습, 掩 가릴 엄, 뜻하지 아니하는 사이에 襲擊함. 感情, 생각, 感覺 따위가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거나 덮침). 襲衣: 葬禮 때에 屍體(시체)에 입히는 옷. 옷을 끼어 있음. 덧입음. 章甫冠: 殷나라 때부터 쓰던 冠의 하나, 孔子가 이 관을 썼으므로 後世에 儒生들이 많이 썼음. 珮찰 패, 달다, 지니다, 携帶(휴대)하다, 佩玉(허리띠에 차는 옥). 環고리 환. 徑지름길 경. 綨연둣빛 비단 기, 同字 綦. 組짤 조, 꿰매다. 綬끈 수, 줄, 인끈(印-: 인꼭지에 꿴 끈). 桐오동나무 동. 棺널 관. 柏측백나무 백. 飭신칙할 칙, 경계하다. 牆담 장, 경계. 翣운삽(雲翣: 發靷(발인) 때에, 靈柩(영구)의 앞뒤에 세우고 가는 널판) 삽, 黻翣(불삽: 發靷 때에, 상여의 앞뒤에 세우고 가는 諸具, 亞자 形象을 그린 널조각에 긴 자루가 달려 있다), 부채, 부채질하다. 黻수(繡: 고대의 예복에 놓는 수) 불. 柩널(시체를 넣는 관이나 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구. 銘旌(명정: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 靷가슴걸이 인. 發靷: 葬禮를 지내러 가기 위하여 喪輿(상여) 따위가 집에서 떠남. 또는 그런 節次. 輿수레 여. 披헤칠 피, 펴다, (끈을)풀다, 열다. 綢얽힐 주, 싸다. 練익힐 련, 누이다. 旐기 조
▶象環: 象牙環(코끼리 어금니 고리). 禮記·玉藻에서, 孔子佩象環 五寸而綦組綬, 佩象環者 孔穎達疏 佩象環者, 象牙有文理, 言己有文章也 而爲環者, 示己文敎所循環無窮也(공자가 상환을 둘렀는데, 直徑이 다섯 치이고, 연두색 인장 끈을 매었다. 佩象環에 대해 孔穎達이 설명하였다, 佩象環이란, 象牙는 文理가 있기에 자신에게 文章이 있음을 알리는 고리이다. 문의 가르침이 끝이 없는 순환임을 자신에게 보여준다)
葬於魯城北泗水上,藏入地不及泉。而封為偃斧之形,高四尺,樹松柏為志焉。弟子皆家于墓,行心喪之禮。既葬,有自燕來觀者,舍於子夏氏。
이는 노나라의 성 북쪽 泗水 위에 묻었는데, 묻은 땅의 깊이는, 샘물이 솟아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리고 봉분은 도끼 형상을 하였는데, 4자 높이다. 그리고 주위에는 잣나무를 심어서 表志로 삼았다. 제자들은 무덤 곁에 집을 짓고, 心喪의 예를 행사하였다. 이윽고 장례가 끝나자, 燕나라로부터 이를 관람하러 온 자들이, 子夏씨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泗물 이름 사. 偃쓰러질 언. 斧도끼 부. 舍집 사, 관청
▶偃斧(仰斧): 指堆土爲墳, 墳頂窄狹如仰斧形狀(흙을 쌓아 무덤을 만든 것을 가리키며, 무덤의 윗부분이 좁아진 것이 누워 있는 도끼 모양과 같다), 비슷한 뜻으로 偃腹(仰腹而卧: 반듯이 누워 자다.), 偃寝(仰卧)가 있음. 窄좁을 착. 狹좁을 협. 狹窄: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몹시 좁음
▶泗水는 山東省 曲阜縣을 지나는 강 이름으로, 공자의 고향이다. 공자가 泗水와, 泗水의 支流인 洙水 사이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학문을 강론하였기 때문에 후에 두 강을 합하여 儒家를 일컫게 되었다. 禮記 檀弓 上에 “내가 그대들과 洙水와 泗水 사이에서 선생님을 섬겼다.”라고 한 曾子의 말이 보인다. 洙강 이름 수, 물가
▶心喪: 喪服은 입지 않되 喪制(상제)와 같은 마음으로 謹身(근신)하는 일. 喪制: 父母나 祖父母가 世上을 떠나서 居喪 중에 있는 사람.
子貢謂之曰吾亦人之葬聖人,非聖人之葬人。子奚觀焉 昔夫子言曰 吾見封若夏屋者,見若斧矣。從若斧者也。 馬鬣封之謂也。今徒一日三斬板而以封,尚行夫子之志而已。何觀乎哉
그러자 자공이 그들을 보고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들은 성인의 장례를 지낸 것이요, 성인이 아닌 사람의 장례 지낸 것도 아닌데, 그들은(子) 무엇을 구경하려고 왔는가? 옛날에 우리 선생님이 말하기를, ‘내가 보았는데, 묘의 모양이 혹은 커다란 집 모양 같은 것도 있고, 마치 도끼 모양과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도끼 모양과 같은 것을 쫓으련다.’라고 하셨다. 말갈기와 같은 봉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하루에 세 번씩 斬板의 공사를 하여, 봉분을 만든 것은, 선생님의 평소 뜻에 맞추어 드리기 위한 것일 뿐인데, 무슨 구경거리가 되겠는가?”
▶奚어찌 해. 語助辭. 鬣말 갈기 렵. 徒다만 도. 斬벨 참. 板널빤지 판. 夏屋: 넓고 큰 집
▶斬板: 亦作斬版 謂斬斷約束筑土板的繩索. 亦指筑土之板(斬版이라고도 하며, 흙을 쌓기 위해 묶어 놓은 판자의 묶는 밧줄을 끊는 것을 말하며, 흙을 쌓는 판자를 가리킨다)
子三年喪畢,或留或去。惟子貢廬於墓六年。自後群弟子及魯人處墓如家者,百有餘家。因名其居曰孔里焉。
제자들은 삼 년 상을 마치자, 혹은 머물러 있는 자도 있었고 떠난 자도 있었으나, 오직 子貢만은 산소 곁에 廬幕을 짓고 6년간 侍墓살이 하였다. 이로부터 많은 제자들과 노나라 사람들이 그 무덤가에 살면서, 마치 그들의 일 인양 시묘를 한 자가 백여 가구나 되었으며, 마을을 이루게 되니, 孔里라고 하였다.
▶畢마칠 필. 留머무를 류. 廬오두막집 려. 廬幕: 几筵(궤연) 옆이나 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喪制가 居處하는 草幕. 几筵: 죽은 사람의 靈几와 그에 딸린 모든 것을 차려 놓는 곳. 靈位를 모시어 놓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