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서열동물이다. 인간들이 서열에 민감하다. 다른 말로는 계급이다. 현대사회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계급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차별은 영원하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형식적인 차별을 폐지하면 다른 형태의 은밀하고 집요한 차별로 바뀐다.
PC, 페미, 성찰, 진정성, 품성, 유기농 따위로 완곡하게 말해지지만 본질은 차별이다. 주홍글씨를 새기고 딱지를 붙인다. 그런 사회는 망해 있다. 인간은 외전 아니면 내전이다. 집단의 밖에서 구하지 않고 안을 쥐어짠다면 그게 망해 있다는 증거다. 잘해봤자 제로섬 게임이 된다. 생산력이 없는 양반이 상놈의 것을 빼앗으려면 성찰, 진정성, 정치적 올바름이 잘 먹히는 흉기다. 그 칼로 찌른다.
성범죄 피해는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리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목숨을 끊게 할 수도 있다. 창녀를 범한 것과 여대생을 범한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김기덕 감독이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목이 잘렸다. 진작부터 인간사냥을 하려고 타이밍을 재던 위선자들이 잘 걸렸다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다.
이런 말은 조심해서 해야 한다. 성찰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렇다. 김어준 같은 평범한 무개념이 조진웅의 범죄를 함부로 쉴드치다가는 목이 달아난다는 협박이다. 그들은 사람을 조지는 기술만 평생 연마해온 자들이다. 그게 엘리트의 권력이다. 그러나 구조론은 성역이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구애됨이 없다.
까놓고 진실을 이야기하자. 윤가은 감독의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구조론의 답은 정해져 있다. 수동이 아니라 능동이다. 성범죄란 것은 본질에서 계급을 흔드는 것이다. 인간이 타격받는 이유는 계급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빵셔틀 피해 학생은 자살을 하면 했지 엄마한테 털어놓지 않는다. 엄마가 아는게 무서운가? 그렇다. 왜? 쪽팔려서? 창피해서? 아니다. 그런게 아니다. 대본이 찢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본대로 움직이는 동물이다. 대본은 사회적 포지셔닝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임무를 주고 역할을 준다. 한국인들은 더 하다. 체면을 중시한다. 선배니, 형님이니, 선임이니 하며 별걸 다 따진다. 대본을 주는 것이다.
학벌도 재산도 본질은 서열놀이다. 강남에 입성하면 바라문계급이다. 성범죄 피해자가 타격받는 이유는 계급이 떨어졌다고 자신을 가스라이팅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라문계급에서 불가촉천민으로 수직낙하 한다. 반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 쪽은? 성욕 때문에? 천만에. 그게 동물의 서열확인 본능이다.
범죄자는 구애됨이 없다. 재벌 2세는 구애됨이 없다. 제왕은 무치라 했다. 무슨 짓을 해도 창피당하지 않는다. 벌거숭이 임금이라 해도 누가 비웃지 못한다. 성범죄 뿐 아니라 모든 범죄가 같다. 범죄를 저지르는 진짜 이유는 그게 일체의 규칙에 구애되지 않는 제왕의 기분을 느껴보려는 수작이다.
열등의식 때문이다. 윤석열도, 윤서인도, 김건희도 남을 짓밟는 방법으로 '나는 열등하지 않아. 내가 서열이 더 높아.' 하고 자신을 가스라이팅 하려는 것이다. 원숭이 특유의 마운팅 행동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일베충이 저지르는 일탈의 기분을 느껴보려는 것이다.
루쉰의 아큐정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아Q가 지나가는 비구니의 볼을 꼬집는다. 그것이 정확하게 범죄자의 심리다. 반사회적 행동의 본질은 열등의식에 찌든 자가 사회의 위에 군림하는 제왕의 느낌을 구걸하려는 심리적 보상행동이다. 이찍들이 자신들을 열등한 자로 규정하여 무의식을 연출하고 호르몬을 분비했다면 약이 없다.
무엇인가? 사회적 계급은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내가 왕이라고 하면 왕이고 내가 거지라고 하면 거지다. 그래서 신과의 일대일이다. 신과 내가 같은 계급이라고 암시를 거는게 구조론의 즐거움이다. 말년 병장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지만 구조론을 배운 사람은 신과 맞담배를 피워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목적이다. 왜 사는가? 인간의 진짜 목적은 상승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윤가은 감독이 용감한 결론을 내렸기를 기대한다.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야 한다. 갑이 되면 바라문계급이고 을이 되면 불가촉천민이다. 문제는 그게 무의식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한번 쫄리면 끝까지 기게 된다.
사회에서 군대 선임병을 만나면 뭣도 아닌 자인데 왠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는 격이다. 이런 인간의 약점을 공략하여 초면에 반말하고 윽박지르는 자가 있다. 그게 윤석열의 전매특허다. 인간의 심리적 취약점을 잘 알고 마음껏 유린하는 것이다. 가오잡고 위세부리면 주눅든 한덕수처럼 빌빌댄다.
한덕수는 왜 쿠데타를 선언하는 윤석열의 귀싸대기를 갈기지 못했나? 농담이 아니고 진짜 게엄이라고? 미쳤구만. 미쳤다면 사람이 아닌 물체로 봐야지. 물린 좀비가 사람이냐? 나라면 야구방맹이로 윤석열의 대갈통을 날렸을 거다. 내란상황인데 그 정도 해야지. 50년 공직생활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판에.
긴급상황에는 비상대응을 해야 한다. 그 순간은 계급이 사라진다. 내 아들이 자동차에 치여 죽을 판인데 신호등 색깔 살피겠나? 인간들이 그런 용기있는 결정을 못한다. 세월호의 승객처럼 의사결정을 못한다. 보통은 기가 죽어서 연극을 한다. 대본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윤석열이 장관들을 불구덩이로 끌고 가는데도 한 넘도 결단을 하지 못한다. 한동훈도 당게에 욕설이나 갈겨대지 윤석열 면전에서는 90도 절이 자동이다.
창녀의 정조나 여대생의 정조나 같다. 다른 것은 계급이다. 한국에서 이런 말 하면 죽는다. 그게 건드리면 반드시 죽는 역린이다. 홍루몽의 금릉 12채를 영화로 옮긴 장이머우 감독 진링의 13소녀도 같다. 사회주의 중국도 별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계급에 살고 서열에 죽는 불쌍한 존재다.
섹스가 문제가 아니라 계급이 문제다. 선비가 모욕받으면 바로 칼을 꺼내 드는 이유다. 모욕당하면 계급이 떨어진다. 조폭도 하극상을 당하면 그 바닥에서 매장된다. 건달이 쪽 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 영화 친구의 대사다. 건달세계에서 피해자에 대한 동정은 없다. 쪼이는 닭은 죽는다. 약자가 밟히는 것이 그 바닥의 규칙이다.
많은 문화권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자살을 강요당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남편은 일단 아내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맹렬한 복수를 선언한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 비겁한 사무라이 다케히로가 산적 타죠마루한테 하는 행동이다. 문제는 이런 비겁한 짓이 보통 한국인들이 하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점이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다. 성범죄 피해자는 고통스러워하다가 자살시도를 한다. 혹은 자살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죄 없는 여성이 자살시도를 하게 만든 나쁜 성범죄자를 때려죽이자며 공분을 일으킨다. 가해자가 화간이라며 범죄를 정당화 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화간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출해야 하며 그 방법은 자살이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피해자를 압박하여 자살하게 만든다. 그래야 복수를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받을 대본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이게 집단의 무의식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대본이다. 보통 대본대로 한다. 영화 세계의 주인에서는 익명의 쪽지가 주인공 주인에게 몇 차례 전달된다. 이건 관객의 시점이다. 왜 피해자답지 않는가? 왜 불쌍하게 행동하지 않는가? 이런 의문을 던진다. 또 하나는 이왕 피해를 입은 김에 아무 남자나 만나고 막나가자는 거냐? 인생 포기했냐? 이런 거다. 어느 쪽이든 계급의 추락을 '숨은 전제'로 삼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는 불가촉천민이 되었으므로 아무 남자나 만나거나 아니면 불가촉천민이 된 것이 괴로워서 하루종일 울고 있어야 한다는 대본을 준다. 중요한건 이게 사회가 강요하는 대본이라는거다. 다만 주인공은 애드립을 할 권력이 있다는게 감독의 생각이다.
윤가은 감독의 의도는 사회가 던지는 대본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대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게 진짜 무서운 거다. 만인이 만인에게 어색한 연기를 강요한다. 넌 피해자니까 피해자 행동을 해. 울거나 막나가거나 하나를 선택해. 부족한 부분은 내가 맞춰줄게. 라쇼몽의 비겁한 사무라이다.
라쇼몽에서 가장 역겨운 캐릭터는 비겁한 사무라이 다케히로다. 산적은 산적답게 사회의 빈틈을 공략하는 악행을 저질렀고 여성도 자기 살길을 찾았다. 근데 이 사무라이는 아랍의 명예살인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한다. 넌 피해자가 왜 자살을 안 해? 자살해서 명예를 회복해야지? 그렇게 노무현, 박원순, 노회찬을 죽였다. 이선균은 벌써 죽었는데 조진웅 너는 왜 아직 안 죽었어?
문제는 무의식이다. 내게 좋은 대본을 주면 나도 발연기지만 할 수는 있어. 이게 보통 한국인의 모습이다. 집단 무의식 속에서 연극을 하려는 행동이다. 범죄는 중요하지 않고 피해도 중요하지 않다. 무서운 것은 연기를 강요하는 군중의 무의식이다.
라쇼몽은 인간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다룬다. 승려와 나무꾼은 인간이 무섭다고 말한다. 도둑질이나 이기주의가 무서운게 아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집단의 연극이다. 사무라이는 강직한 무사를 연기하고, 도적은 용감한 산적을 연기하고, 여성은 정조를 지키는 숙녀를 연기하는게 진짜 무서운 거다.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집단의 무의식이 내 마음을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던져주는 나쁜 대본을 버리고 합리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악순환의 수렁에서 탈출해야 한다. 내 대본은 내가 쓴다. 남들이 하기를 바라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마라. 쫄지도 말고 휘둘리지도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