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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Men 제24차 아시아지역대회 참가 기행문 주제 : 자연(自然) + 문화(文化) = 미래(未來)
Nature + Culture =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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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인원 : 655명(대한민국 51명, 링3명, 청소년3명) 대만외 10개국
◈ 여행사 : 강일여행사(민형기 대표 춘천감마클럽)
Y's Men 제24차 아시아지역대회(대만)참가 기행문
프롤로그
지난해부터 와이즈멘 중부지구에서 타의에 의해 진행되던 행사가 결정되어 그곳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2010년 8월경 통일로클럽 유재덕 FY05-06 중부지구총재께서 FY11-12년도제24차 아시아지역대회 중부지구 BF(Brotherhood Fund / 형제애기금)대표로 참가할 수 있도록 지구인사위원회에 정식 요청하였으니 결정이 나면 국제본부에서 본인에게 직접 메일로 등록하라는 말을 전달 받았다.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갈등의 시간은 계속되어가고 중부지구와 경기북지방, 회룡클럽과의 감정의 골이 지나 칠 정도로 깊어만 갔다. 그럴만한 이유는 FY09-10 경기북지방 사무국장직을 수행해 왔는데 중부지구에서 지방운영비 지급에 과오를 범하는 과정에서 클럽에서 심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급기야는 국제회비 납부에 제동이 걸리면서 심각할 정도로 한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1년 2월22일 클럽 월례회의에 고기남 지구총재가 공식방문 하시어 국제본부에서 BF대표로 확정되었다는 말씀을 듣고 반신반의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지난 3월22일 IP(국제총제)로부터 공문이 접수되어 실제로 참석의 의지를 갖게 되고 중부지구에 등록에 대한 안내에 대하여 문의를 하였지만 본인이 알아서 할 사항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몇차례 중부지구에 문의하자 한글 번역문을 보내왔다. 대략적 이지만 참고하여 접수된 서식에 따라 서류를 작성하여 5월15일 이전 등록시 NT$(新대만달러)8,000(한화 320,000원)이며 5월16일이후 등록은 NT$(新대만달러)9,000(한화 360,000원)이디. 휴일기간이 포함되어 있어 나는 5월17일 US$(미화)312.17(한화 372,570원)을 납부하였는데 아시아지역 총재가 등록비 납부기간을 5월30일까지 연장 되었다는 공문을 중부지구로부터 접수 받았다. BF로 선정되면 스위스貨로 700프랑을 지원받게 된다.
그러던중 아시아지역대회 준비위원회에서 등록비가 잘못 접수되었다고 하여 확인한 바 2인이 참석하기 때문에 등록비를 더 보내라는 메일을 접하고 추가로 송금하게 되었다. 또한 BF에 대한 일정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여행에 대한 것은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러던 중 새인천클럽의 박현구 멘이란 분이 전화가와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큰 보탬은 없었고 또한 박경복 인천미추홀클럽 와이즈의 전화가 있어 대화의 물꼬를 텃 지만 그 역시 만찬가지였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 도중 나는 춘천의 민형기 와이즈가 경영하는 강일여행사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고 하니 그곳은 경비가 비싸다는 의견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하겠다는 말로 대화를 끊었다. 그러던 중 며칠이 지나서 다시 박경복 와이즈가 강일에서 하기로 했다는 확인 전화를 받음으로서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이 종료되었다. 처음 참석하는 해외 나들이 등록이라니 자세한 안내가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러한 것을 지구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행정 처리를 해야 되지 않을까 곱씹어 본다.
지금까지가 이번 제24차 아시아지역대회 참가를 하게된 동기와 와이즈멘의 행정력 등 우여곡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동기이며 새로운 와이즈멘의 시작이라 할 것이다. 공식기간은 2011년 8월 5일~7일인데 일부 여행을 하자는 의견에 따라 하루 전인 8월 4일부터 관광일정을 계획하여 한국에서 참석하는 일행들은 모두 8월 4일 오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드디어 장도(壯途)에 오르는 날이 밝아왔다.
나의 짝(金愛娘)과 함께 8월4일 오전 6시30분 흥분과 기대와 행복을 가득안고 나의 애마(48가 3379)뉴베르나에 몸을 싣고 송추를 경유, 100번 고속도로을 이용, 인천국제공항의 톨게이트를 지나 주차를 부탁할 에어포트주차관리소(032-751-5115)에 전화하니 이내 왔다, 주차요금 1일 8,000원(장기주차)
아침 기온은 28℃를 나타내지만 우리가 도착한 인천공항은 후덮하고 실내는 좋은 기분을 갖게 한다. 처음 나들이 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여행을 떠날 때면 여느 때와 같은 심정이다. 이번 여행은 더욱 특별한 날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매번 여행은 공무상 혼자 또는 직원들과 함께 동행 하였는데 이번엔 특별한 사람과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 사람도 처음 비행기를 타는 그런 시간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오전 8시까지 C구역에 집결해 달라는 강일여행사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7시20분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오가는 인파속에 출국하는 사람과 마중 나온 사람들 정말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공항 청사가 북적 거린다.
7시40분경 강일여행사 민형기 와이즈와 직원 한사람이 표지판을 들고 C구역에서 첫 만남을 가지니 한두명씩 일행이 당도하였다. 나는 함께할 일행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전에 명단을 확보하였고 이른 아침에 나온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니 8시가 되어 아는 모습인 고기남 총재와 박경복 멘이 도착하여 여권과 비행티켓을 전달 받았다. 그러던 중 박현구 멘(새인천클럽)이 허겁지겁 와서는 민형기 멘에게 본인이 신청한 비행기 티켓의 영문자 이름이 잘못되어 보딩을 받지 못한다는 긴박한 말을 하니 모두가 어안이 없어하는 모습들이다. 그때가 9시가 다될 무렵인데 그는 9시30분 항공기라 한다. 마지못해 민형기 멘이 추가요금을 더 주어서라도 협의를 하라고 한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이내 달려갔다.
08:40분 짐을 부친 일행은 08:55분 입국 심사를 받으니 지난해보다 더욱 강화된 검색 절차를 마치고 09:10분경 면세점에 들어왔다. 비행티켓은 대한항공 KE691편으로 탑승시간은 10:20분 탑승케이트 24번구역이며 좌석은 51D와 E번으로 출발시간은 10:40분이다.
이번에 함께하는 와이즈멘은 나와 같이한 그룹이 24명이고 또 다른 그룹이 26명인데 이들은 아시아나항공이다. 또 다른 일행 5명이며 이중 링3명, YOUTH 3명이다.
우리는 목적한 바를 수행하기 위해 면세점 쇼핑을 마치고 시간이 되어 탑승하니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공항이 혼잡하여 약30분 지연된다는 부기장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이러다 많이 지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모처럼 함께하는 여행이 부담스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내에서 대기하며 모니터와 기내의 안내 책과 시간을 보내니 비행이 시작된다.
약30분 정도 지연된 항공기는 동채를 활주로에 의지한 채 서서히 이동하기를 얼마 되는지 금방 몹씨 동채가 흔들리더니 공중으로 치닫던 비행기는 창밖의 시원함을 드러내며 이내 안정을 찾았다.
11:50분경 인천공항을 출발한 항공기는 약 2시간이면 타이페이 타오면공항에 도착하며 현지 날씨는 흐리고 기온은 34℃~35℃가 되고 서울보다 1시간이 늦다는 부기장의 목소리와 함께 기내식이 제공된다. 아침 메뉴는 돼지고기 덮밥에 맥주한잔으로 대신하니, 이내 SKY Shopping이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13:48분(현지시간 12:48분) 항공기는 착륙을 준비하고 13:51분경(현지시간 12:51분)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비행 중에는 기체가 많이 흔들리며 다소나마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다.
14::15분경(현지시간 13:15분) 입국심사를 마치고 현지 가이드와 만남을 같고(귀빈여행사)점심을 위해 호텔 뷔페식당으로 이동했다. 또한 휴대전화는 자동로밍이 되고 시간도 한 시간 늦게 표기된다. 혹시나 해서 가이드가 확인한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반식당 식사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하는데 비행기 연착으로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부탁 했다고 한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은 편의점만 한다.
버스는 2층형으로 운전자는 1층이고 탑승자는 2층이다. 아늑한 분위기의 대형버스는 도심을 지나 식당으로 향하는 도로는 한창 공사 중이며 고가로 형성되어 있다. 도로는 깨끗한 분위기로 개천이라는 곳은 풀들이 무성해 보인다. 대만 지형은 고구마형태(形態)로 반으로 나뉘어 상층부는 한대기로 하단부는 열대기로 부른다. 또한 지진으로 1년에 3㎝정도 솟아나며 또한 3㎝ 살아진다고 한다. 도로 양쪽의 주택은 아파형이 많아 보이고, 알기론 대만이란 나라는 경제 대국이라 생각했는데 모습들은 우리나라의 90년대 정도의 모습들인 것 같다. 그 이유는 겉치레 보다는 내실있게 사는 생활 모습들이라는 가이드의 말이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곳은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매년 칠을 한다는 말과 우기가 심해 지붕위에 물탱크를 설치하여 빗물을 받아 재활용한다는 것도 덧 붙였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활 방식이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첫 번째 관광지로 향하였다. 들려오는 말에 아시아나항공으로 오는 일행은 인천공항에서 약3시간 남짓 지연 되었다고 한다.
대만의 일반현황
◈ 인구 : 2천3백만명(추정), ◈ 수도 : 티이페이(臺北市), ◈ 화폐 : NT$(위엔) (한화 1:40) ◈ 언어 : 만다린어 / 타이완어 / 객가어 / 원주민 방언, ◈ 종교 : 불교, 도교, 기독교, 천주교, ◈ 총통 : 馬英九(마잉지오) ◈ 년도 : 중화민국100년 사용(2012년 기준)
타이완의 총 면적은 3만6천 평방킬로미터. 섬의 모양은 양쪽 끝이 좁아지는 담배잎(또는 고구마형)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대륙의 남동부에 위치, 타이완 해협과 중국본토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태평양 서안에 있는 독립적인 섬들 중 하나로 타이완 북쪽으로는 일본과 오키나와섬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필리핀이 위치해 있다. 타이완이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은 이유중의 하나는 많은 국제선의 취항과 지리적 편리함 때문이다.
태평양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는 타이완은 먼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지각운동으로 인해서 웅대한 산봉우리와 언덕, 평평한 분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선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들이 만들어졌다. 타이완에서는 여러 유형의 자연기후를 볼 수 있다. 즉 열대성, 난대성, 온대성 기후가 공존하고 있으므로 여행객들은 여러 계절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함께 만나 볼 수 있다.
섬에는 약 만8천 4백 여 개의 야생종이 번식하고 있으며 이중 약 20% 이상의 품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대표적으로 사쿠라 연어와 타이완 산양, 타이완 원숭이, 타이완 흑 곰, 파랑까치, 로얄 꿩, 풀 도마뱀 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완 정부는 6개의 국립공원과 11개의 국립 경관 지역을 지정하고 타이완의 자연생태 환경과 문화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객가문화와 타이완섬 및 중국본토의 문화적 요소들이 많은 결합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다양한 색깔의 사회문화적 현상들이 만들어 졌으며 종교, 건축, 언어, 생활 습관 음식 문화 할 것 없이 하나의 큰 테두리에 안에 공존하며 살아 가고 있다. 특히 타이완 음식 문화는 이러한 문화적 결합과 공존을 대표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 본토의 여러 지방 음식문화(후난, 광동, 상하이, 베이징, 쓰촨 등)를 비롯해서, 타이완 각 지방 특성을 살린 톡특한 타이완 음식문화를 느낄 수 있다. |
첫 째날(8월 4일 맑음) 지금부터 시간은 현지시간을 사용함.
이번 대만에서 개최되는 제24차 국제와이즈멘 아시아지역대회는 일정을 변경하여 강일여행사(민형기 멘)가 주관하는 여행일정으로 진행하게 된다.
15:05분 점심을 먹은 일행은 첫 번째 여행지인 충열사로 향했다. 도심을 지나는 도로상에는 갓길에 오토바이 주차장인 주차선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고 찻길과 함께 오토바이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으며 이용수단은 오토바이가 약90%을 차지한다는 가이드의 말과 모든 사람이 안전모를 착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무더위에 안전모는 안전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더울까하는 안타까움도 엿보인다.
이곳 충열사는 내전과 항일운동시 전사한 군인과 열사의 영령을 모신 곳이다. 잘 정비된 입구의 모습이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기온이 약35℃ 된다고 하는데 초병의 교체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5명의 초병이 영정을 모신 곳의 2명과 정문에 있는 초병 2명과 교체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처럼의 의식을 갖춘 초병에게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서있는 초병의 목덜미에 솟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찍어낸다. 사당에 모신 열사는 중앙에 72명, 양옆엔 중국 육사생 2,000여명의 열사를 모시고 있다. 참배하는 관광객들은 정숙함을 보이고 모자는 벗도록 한다.
대만은 35만명의 군인이 있으며, 의무기간이 1년6개월 인데 점진적으로 직업군인으로 전환 하려한다.
점말 찜통더위다. 한국에서의 무더위는 비 할 바 아닌 듯싶다. 간단히 둘러본 충열사를 뒤로한 채 두 번째 여행지인 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고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또한 5,000년 역사에 버금가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국보물과 미술품으로 꽉 차있다. 62만점에 달하는 박물관의 대부분의 전시품은 천년 이상 지난 초기 송나라의 황실에 속했던 것이다. 중국황실 콜렉션중 최의 것들은 모두 이곳 타이완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전시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 인기 있는 것들은 항상 전시가 되고 있지만 옥, 도자기, 회화, 청동의 보물들은 참관 할 때마다 색다르도록 정기적으로 바꾸어 전시한다. 박물관은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 반까지 열며, 매일 여러 나라 언어로 가이드 투어를 실시한다. 또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반부터 8시 반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박물관내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카메라를 맡기는 곳이 있다. |
15:35분 두 번째 여행지 고궁박물관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약10여분간을 가니 대만 최고이며 세계3대 박물관으로 일컫은 이곳은 실내에서는 모자, 사진촬영, 껌, 큰 가방은 입장이 안된다는 가이드의 멘트가 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많은 관람객으로 아수라장이다. 일행들은 로비에서 휴식을 취한 뒤 각자 이어폰으로 설명을 등는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기 때문에 혼잡스러워 이어폰을 착용한다.
이곳 화장실 청소도 남자 화장실에 여자청소부가 들어와 청소하는 모습을 본다. 화장실 입구에 음수대가 있고 건물은 3층으로 커다란 모습이며, 입장 시 검색대에 2명의 안내원이 배치되어 있다. 먼저 3층청동기시대 부터 관람한다. 박물관들이 모두 그렇듯이 전문가가 아니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그리 흔치않다. 열심히 설명하는 가이드와 많은 관람객과 썩여 이어폰이 혼선이 되는 등 복잡하다. 특이한 것은 청동기에 글자를 새겨 사용했다는 것이 오랜 역사의 산 증인인 듯하다. 나무는 소실되기 때문에 무기 등에는 그림(문향)과 글씨로 역사를 이어 갔다고 한다. 청동기의 일대기를 벽면에 연대별로 高時代, 西周時代, 春秋時代, 戰國時代, 溱漢時代순으로 잘 정리해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동기 말기에는 대량생산으로 인하여 서민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어서 철기시대로 넘어간다. 이때의 중국은 839명의 황제이 존재하였는데 그중에 진시황이 가장 유명하다. 진시황은 전국을 통한 천재였다고 한다. 그는 오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좋다는 것은 모두 섭취하였고, 꿈에 자기를 죽이는 꿈을 꾸어서 신하에게 벽을 쌓으라하여 만든 것이 만리장성이다. 욕심이 과한 진시황은 말련이 좋지 않았다 한다. 진나라 때에는 최초의 도량(저울)이 원형으로 만들어져, 서민들에게 공평저울로 사용 하였다.
옆방으로 이동하니 300년된 돼지고기로 된 자연석이 전시되어 있고 이것은 백옥과 흑옥으로 된 모습도 있고, 여치, 메뚜기가 알을 낳으면 99개를 낳는다는 다인(多人)을 형상한 모습도 있다. 또한 궐융시대에는 황제에게 궁녀 3천명을 바쳤다는 이야기도 함께 덧붙였다.
옥(玉)으로 진열된 모습은 중국이 옥이 풍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옥이 있고 각양각색의 영롱한 빛을 발살 하는 모습과, 액(厄)을 막아준다는 피사의 모습도 있다. 머리는 용(龍), 날개는 봉황(鳳凰), 몸은 말(馬), 다리는 기린(麒麟) 인데 이는 용 10마리가 나타나 먹이를 물어다 주는데 이것이 항문이 없어 땀구멍으로 배설한다고 한다.
황제의 70세 생일 축하로 만든 큰 기념 옥세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지닌 황제는 80세까지 살았다 한다. 옥(玉)의 역사적 전개를 나타내는 8폭 병풍은 서태후가 사용하였으며 사계절을 볼 수 있도록 향나무와 옥으로 표현하였고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전환으로 만든 사실은 곧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분이 나쁜 날은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일본에 넘어갔다가 해방이 되면서 장개석의 반환 요구로 돌아왔는데 일본에서 원본을 주지 않고 4각의 마디를 일본식으로 변경하여 완벽치 못하다는 말도 함께 했다.
또한 장신여선공(匠人與仙工)관은 장인의 마음과 신선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코뿔소 뿔로 만든 약잔은 황제의 자녀가 약을 먹을 때 쓰는 잔이라 한다. 상아시대 작품들로 정교하게 만든 아주 작은 작품과 원형공 17개를 얇고 정교하게 제작하여 공 안에 공을 다양한 그림으로 그린 모습, 이것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연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 2층 박물관은 중국 자금성에 있는 물건들을 이곳 고궁박물관에 비치한 것들이다. 주로 그림들인데 황제가 본 그림들이라 한다. 수많은 그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림 중앙에 황제의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가 본 그림은 대대로 보관하며, 자녀들로 하여금 보도록 하고, 그림 소유자는 아래쪽 또는 양옆에 본인의 도장을 찍는다. 또한 황제가 본 그림에 시(詩)를 써 넣으면 그림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천하일색 양귀비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알기에는 무척이나 곱고 아름답게 생각할 것이다. 이곳에 전시된 양귀비의 조각상이 증명해준다. 당시의 당나라시대 양귀비는 몸무게가 약 60~70㎏으로 뚱뚱하며 발도 크고 얼굴과 머리는 일색이기 보다는 그져 돼지라고 불러도 될 만한 형상이다. 이는 뚱뚱한 것이 당시의 부(富)의 상징으로 당당하다고 할 수 있으며, 서민층은 일을 하기 때문에 가냘프고 말랐다는 이야기로 이해하면 된다.
황제의 옷은 왜 큰 걸까?
과거에는 황제의 옷을 지을때 10년씩 걸린다 한다. 황제의 생명이 짧기 때문에 싸이즈를 몰라서 프리 싸이즈로 만들어졌다는데 이제는 그것이 예술적 가치를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1층으로 이동하니 그곳은 불상들로 가득하다. 큰 석가상의 머리는 어찌 곱술머리 처럼 되어 있을까?
머리까락은 도를 닦을 때 고행을 다하기 때문에 소라와 달팽이 모양으로 역었다 한다.
16:44분경 세 번째 여행지인 용산사와 네 번째인 華西野市場으로 향한다. 이 버스는 30여명이 타는 2층 대형버스인데, 이것은 관광객용이며, 일반 시내버스는 우리와 같은 1층 버스이다.
가로수는 향나무이며 주변은 공원으로 가꾸어져 녹지를 조성하였다.
타이베이에는 초소규모에서부터 거대한 사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원이 흩어져 있다. 용산사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하며 가장 전형적인 타이완의 사원이다. 멋진 건축양식 자체만으로도 둘러볼 가치가 있다. 돌기둥에는 조화를 이루어 꼬여 조각된 용 뒤쪽에 역사적 인물들의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지붕에는 더 많은 모습들과 용들이 장식되어 있다.
중국인들의 종교는 관대해서 많은 사찰들이 도교, 불교, 그리고 다른 많은 신을 하나의 사원에서 같이 모시고 그 신의 숫자는 점차적으로 늘어난다. 용산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관음(觀音), 마조(?祖), 관공(關羽) 등 그외 각종 신의 참배자들로 인해 항상 북적댄다. 원래 이 사원은 1740년에 건립한 것으로 그때부터 자연재해 혹은 인공재해 등으로 몇번 파괴 되었다. 최근의 것은 1957년에 지어진 것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열리며 유명한 뱀골목(화서거리의 야시장)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다. |
17:15분경 용산사에 도착하니 사찰의 모습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붕위에 자기로 만든 용상으로 부착하였고 왼쪽에는 삼국지의 장비, 유비의 모습과 오른쪽에는 서유기의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모습이고, 기둥은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곳은 습도가 많아 모두 돌로 만들었다 한다. 이곳은 다신(多神)을 모시는 곳으로 마당부터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향불을 밝히며 절하며 비는 모습들과 또다른쪽에서는 불경을 읽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신(神)을 모시는 방들은 이름이 붙어 있다. 예를 블어 직업을얻게 해달라는 신당은 관성제군(關聖帝君) , 여인을 만나게 해달라는 신당은 월노신군(月老神君) 등 으로 이곳에 있는 신들의 방은 수개가 되는데 모두 그곳에서 기원을 드린다. 또한 문 입구에는 신(神)이 타는 가마가 있는데 이는 신의 생일날 神이 이가마를 타고 자기 동네를 돈다고 하며 신의 총수는 720개라 한다. 그래서 1일 2명이 사용한다고 한다.
바로 옆길을 건너니 화서 야시장(華西野市場)이다. 표현 못할 만한 향로 냄새와 후덥한 날씨 약10여분을 돌아보고 일찍 돌아보고 버스로 향했다.
19:20분경 하루의 계획된 관광을 마치고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는 내일 일정에 대한 의견 중 내일은 공식 일정이 쫙 짜여 있어 관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또한 비가 올 확률이 80%라는 것에 내일 일정중에 있는 101층 빌딩 관람을 오늘 야경으로 관람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이내 관광할 것으로 하여 모두 다섯 번째 여행지인 101층 빌딩으로 향했다. 약 30분가량 이동하여 도착한 것이 101층 전망대 앞 틀에는 의장대가 사열 중이다.
일행이 101층 건물로 들어서자 5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전망대를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101층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 철시를 한다.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타이페이 101빌딩(타이페이국제금융센터)로 부른다. 대만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이쭈웬(李祖原)이 설계하였고, 건축은 독일 사람이 건설하였는데 지진이 많은 나라임을 감안할 때 시공에 부정적인 말이 많았다 그러던 중 커다란 지진을 만나 시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큰 무리 없이 준공을 보게 되었다 한다. 이 건물은 만개의 꽃이 첩첩이 포개어진 형성 같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죽순 모습은 입주 업체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8층씩 묶어 8개층으로 올렸는데 이는 숫자 “8”의 중국 문화의 성장과 번영 등을 의미하는 한자 “發”과 발음이 같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통칭 ‘타이베이101빌딩’으로 불리고 있는 타이베이국제금융센터는 20125년 현재 지상101층, 지하5층, 총508m로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 101층은 100보다 더 높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대만의 건축 우수성을 자랑한다.
지하1층은 세계 각국의 신선한 요리를 한 곳에서 맛볼 수 있는 Grand Market 푸드코트로, 지상1층에서 5층까지는 고품격 쇼핑메카를 선보인다. 전세계 유행 트랜드를 그대로 재현한 1층 Avenue 101, 타이완 유명 백화점 SOGO가 입점한 2층은 직장 여성들을 겨냥한 대규모 Beauty Plaza를 선보이며, 3층 명품관은 세계 유명 명품 브랜드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쇼핑만족도를101% 충족시킨다. 대형 서점, 노천카페, 일류 레스토랑이 입점해있는 4층 City Square는 40m 높이의 채광창 아래 ‘도시 속의 숲’을 연상시킨다.
빌딩 주변일대는 세계무역센터의 전시홀들과 국제컨벤션센터(國際會議中心), CETRA빌딩이 자리잡고 있는 타이베이 경제중심지로, 매년 수 많은 교역전시회와 각종 박람회가 개최되고 있다. |
90층에서 전망대를 보아야 하는데 바람이 믾이 불어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89층에서 에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내려오게 되었다. 89층에는 건물의 중심을 이루는 지구본 모양의 원형 중심체가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이 건물은 대지는 국가 소유이며, 건물은 대만 13개 은행이 지분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1월31일에는 3,000초(약50분간) 폭죽을 쏘아 타이완을 홍보한다고 한다. 이것으로 빡센 첫째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인 五朝大酒店(Sunworld Dynasty Hotel)으로 왔다. 숙소는 701호이며, 전등은 일괄 소등이 가능하며 전기는 100V와 220V가 각각 설치되어 있으며 책상에는 신약성서와 불경 책이 놓여져 있다.
깊어가는 밤에 우리는 가지고간 소주와 김치로 간단히 입을 적시고 대만에서의 첫 밤을 잠재웠다.
둘 째날(8월 5일 맑음, 한때 소나기)
06:30분경 모닝콜이 울리며 짐을 싸느라 바삐 움직인다.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호텔식으로 간단히 하고 09:57분경 호텔을 떠나 사린관저 공원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장개석이 10년간 거쳐한 곳으로 잘 조성된 공원이다. 약 12.8㎞긴 터널을 지나 10:10분경 사린관저공원에 도착하여 정문입구에서 갑작스런 소나기을 만나 결국 들어가지도 못하고 버스로 향했다. 이곳에 곧게 뻗은 대왕야자수가 많다. 열매도 열린단다.
중국의 3대 강인이 있다. ①태천무 이는 풍류시인이라 한다. ②서태후 또는 양귀비 ③송미령 이라 한다. 서태후는 서쪽에 사는 태후라고 한다. 태후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 모든 여자는 예쁘다 게으른 여자가 있을 뿐”이라 했단다. 서(西)태후는 후처로 들어가서 양자를 들여 수렴청정하며 백성을 다스렸다. 원래 본처를 동(東)태후라 한다. 황제가 서태후에게 반해 후처로 들여왔다고 하는데, 그만큼 서태후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왔다고 한다. 서태후는 동태후를 괴롭히기 위해 감옥을 만들어 죽지 않토록 단지 안에다 음식을 주었고, 그 후 팔, 다리를 자르고 그곳에서 죽도록 했다. 서태후가 죽을 때는 입에다 야광구술을 물었으며, 신발은 진주로 장식하여 어둠에서도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는데 도굴범들이 파해첬을 때 그때는 이미 아무 것도 없었다 한다.
양귀비는 자신의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양변기의 냄새도 탈취제를 사용하였다. 송미령은 장개석의 두 번째 부인이다. 장개석과는 24살 차이로 중국을 건설하는데 한 획을 그은 여인이다. 그 당시 송미령은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였고 미 의회의 첫 번째 여자로 연설을 하였으며 장개석과 함께 대만 경제에도 일조를 하였다. 학식과 미모가 뛰어났으며 특히 영어를 잘해 세계 강대국 수상들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한다. 그는 106세에 세상과 인연을 달리 했다.
12:10분경 중식을 마친 일행은 제24차 아시아지역 대회장인 의란시(宜蘭市)로 향했다. 13시경 행사장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장소는 晶英酒店(Silks Place) 의란시에서 최고의 호텔로 꼽는다. 나는 등록 데스크에서 명찰과 가방을 전달 받고 행사장내로 입실했다. 시작 전이라 모두가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밖엔 양현국 지구증경총재가 수품을 내놓으며 정신없는 모습에 내가 일손을 좀 도왔다.
13:50분경 개막식을 알리는 4인조 앙상블(바이올린 3명, 첼로 1명)의 연주가 시작된다. 약 650여명이 참석한 행사는 정확히 14시 개막선언에 이어 성경책 입장과 와이즈멘旗, 대만 와이즈멘旗에 이어 문상봉 한국지역총재가 촛불에 불을 점화하고, 각 지역의 깃발을 앞세워 입장한다. 아시아지역총재 취임식은 간단하며 의식에 관계없이 간결한 모습이 군살이 없어 보이며, 정말 내실을 기한 행사 인 것 같다. 약 1시간되어 끝이 났으며 야외에서의 공연 도중 갑작스런 소나기로 인해 일단락된다.
15:30분경 2부 순서가 진행된다. 이번 주제는 自然과 文化는 곧 未來라는 슬러건으로 강연은 대만의 환경학 박사인 黃正忠 박사의 미래 환경에 대한 강연이 약 1시간정도 진행되었다. 간간히 대만의 전통민속 공연이 이어지고, 각 대표들의 축하와 격려인사가 있었으며 이어지는 만찬은 원탁에 10명씩 앉으며 각 나라별로 혼합하여 앉도록 하였는데 나는 7번 테이블에 일본인4명 태국인, 대만인으로 함께했다. 연세드신 노부부들과 연세든 분들의 참여가 눈에 많이 뜨인다. 특히 일본인이 많이 보인다.
20시경 각국 BF대표 소개가 있다. BF위원장의 호명에 나와 메넷은 함께한 미추홀클럽 박경복 멘, 새인천클럽 박현구 멘과 함께 단상에 오르니 플로워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많은 와이즈들이 참석한 것을 또다시 느꼈다. 인사는 내가 대표로 영어와 한국어로 하고 정기성 지구증경총재가 통역하였다. 이렇게하여 제24차 국제와이즈멘 아시아지역대회의 밤은 깊어간다.
21:20분경 1차 폐회가 이어지고 일행은 호텔로 출발한다. 이곳은 3분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편의점이라 한다. 전국에 7천여개가 된다. ①쎄븐일레븐 ②훼밀리마트 ③OK마트 ④하이라인 이라한다. 이곳에서 공과금 납부와 편의를 대행하는 것으로 마케팅에 귀제라는 가이드의 말이 재미있다.
오늘 숙소는 온천으로 유명세를 타는 지역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長榮鳳凰酒店(Evergeen Resort Hotel) 701호실이다. 어제 투숙한 호텔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잘 단정되어 있다. 냉장고의 모든 물건은 무료다. 함께한 일행들이 901호에 모여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와이즈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두 번째의 밤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셋 째날(8월 6일 맑음)
09:00경 호텔을 출발하여 한국 sbs 드라마 온에어 촬영지로 유명한 지우펀(九人分/九扮)으로 이동한다. 지나는 시가지는 평온하며 깨끗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심의 건물들은 다소 허름해 보이는 곳도 많다. 가는 길에 왕가이드의 대만 지도에 대한 대만 스토리가 이어진다. 대만 지도를 상하로 나뉘어 설명하는 모습은 버스에 지친 몸에 피로 회복을 일으키는데 약간의 힘이 된다. 대만 하단부섬(錄島)에는 정치범 교도소가 있는데 그중 한곳은 관광지로 개발하여 활용 한다. 또한 3,925m의 옥산국가공원이 가장 높은 山인데 新高山이라 부른다. 이는 일본 후지산보다 높다고 하여 일본인 들이 붙힌 이름이라 한다. 대만인들은 우리와 달리 일본을 좋은 국가로 상대한다. 그들이 들어와 경제 발전을 도왔기 때문이란다. 우린 그들의 36년의 억압에 그들과는 천적관계를 같고 있는 것이 다르다.
약1시간가량 이동하여 지우펀에 도착했다. 이곳은 과거 왜정때 9戶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물품 구입은 매주 1명씩 선정하여 1주일 먹을 음식을 구입해 왔단다. 10:10분경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은 셔틀버스로 교체 이동하여 옛 골목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초입에 들어서니 쾌쾌한 냄새는 부페두부를 부치는 냄새인데 그것을 사먹는 사람과 중국의 어느 재래상과 똑같은 모습의 좁은 골목길을 걸어 약15분쯤 가면 허름한 정상이 나온다. 그 거리는 먹거리, 악세서리, 직접 만드는 음식, 잡화상 등 역시 사고 싶다는 마음보단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편이 났다고 하겠다. 정상에서 돌아와 11:40분경 버스에서 야류(野로柳)로 이동한다.
타이페이에서 버스로 한시간 거리에 있는 지우펀(九玢은 따이완의 옛정취를 흠벅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920~30년대에 아시아 최대의 광석 도시라고 불렸던 이 곳은 채광 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오히려 주변의 자연 환경을 이용 관광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언덕에 위치한 이곳은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기자기하고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을 따라 찻집이 즐비하고, 지우펀의 유명한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골목도 있다. 이 근처에서 가볼만한 곳으로는 지우펀 민속예술관, 지우펀 광석박물관, 금과석(金瓜石), 성명궁(聖明宮) 등이 있다. 또한 영화로 유명해진, <비정성시>라는 카페는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거띵(隔頂)이라 불리는 언덕이며 이곳에선 아름다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두 번째 여행지는 야류(野柳)해양국립공원이다.
야류(野柳)의 자연적인 바위형성은 자연의 힘과 침식에 의해 생성된 예술적 모양의 놀랄만한 배열이다. 거대한 계란 모양의 바위가 마음대로 흩어져 있고 슬리퍼 모양의 바위는 어부들에게 승 강대로 사용되며 그곳에 있는 여왕바위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집트의 여왕 네페르티티의 옆얼굴을 닮았다고 한다. 넓게 그리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해안에 뿌려져 있는 이상한 모양의 용암과 사암 그리고 교량모양의 돌은 과거 주수로 인해 생겼던 웅덩이로부터 멋진 해안선이 보이는 좁은 돌기까지 연결해 준다. 유명한 바위로 걷는 도중에 관광객들은 식당과 훈련된 돌고래와 바다표범이 있는 해양세계공원, 스낵가게, 기념품점 등을 지나게 된다. 야류는 타이완 북쪽해안 지롱(基隆)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타이페이로부터 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에 있다. |
이곳으로 향하는 산들의 높이는 강원도 길을 달리는 기분이다. 산들이 모두 높고 다리와 고가로 이어지는 도로는 각양각색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넓는 운동장을 갖고 있는 학교의 모습. 공장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야산에 아름다운 집으로 만들어 지은 것은 공동묘지라 하는데 여기서 이야기를 들어 본다.
대만의 장례문화는 7일장, 14일장, 21일장으로 치른다 한다. 왕가이드가 직접 참석한 장례는 21일장이란다. 이곳은 살아서 못한 것을 죽어서라도 편하게 잘 모셔야 한다는 장례문화가 팽배하다. 장례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부모들은 생전에 장례비를 따로 모은다고 한다. 요즘은 장례가 길어 곡(哭)을 대신해주는 대행업도 성행한다. 신체가 심한 事故死일 경우는 모습 그대로 복원해주는 상업도 있다. 지나는 도로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데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다. 윤달이 있는 달에 개인들이 길에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한적한 버스정류장도 보인다.
13:45분경 야류해양국립공원(野柳海洋立國公園)에 도착했다. 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기암 조각들이 화산으로 인해 자연경관이 관광명소가 되었다. 1일 1백만명 이상이 찾는다는 이곳은 약1시간 정도면 투어가 이루어진다. 바위에 빨간색으로 그어진 곳은 넘지 말라는 표시로 그곳을 이탈하여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이 안 된다고 한다. 여러명의 관리원들이 따가운 햇살 속에서 관광객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도 보인다. 왕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풍화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조각모양의 바위들은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뉘어져 있으며 멀리 보이는 여자의 뒷머리 모양을 한 바위는 앞으로 2년 뒤면 사라진다고 하여 그곳에서 사진 촬영하는 장소로 만들어서 많은 관광객들로 하여금 기념을 약속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비경들은 풍화작용에 의해 모양이 변한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이 많아 파도가 심하게 친다.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가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에 모두가 탄성을 자아낸다. 기온은 35℃정도라고 하는데 정말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입구에 나와 망고 셰이크를 1잔에 대만$100원(한화 4,000원)으로 좀 비싼 편이다.
15:40분경 야류를 출발하여 관광의 순서인 잡화점을 들렀다. 특이한 것은 터널 앞에 유턴 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든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잘못 진행하는 것에 대한 배려라 할까? 조금은 위험하겠지만 좋은 방식이라 생각 된다. 이곳 잡화점에는 먼저 차(茶)다려 시식하는 코너에서 그들이 소개하는 차를 마시고 점포를 구경했다.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상행위가 심하다. 갖가지 진열된 것은 조잡스럽기도 하고 어찌보면 허접스러운 모습들이다. 명품코너에 있는 구찌, 버버리 등도 그곳에 있으니 짝퉁 같은 생각이 든다.
일행들은 사는 둥 마는 둥 일찍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여러 사람이 박스와 종이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도 여럿 보인다.
16:00분경 시내 잡화점에 들러 관광을 하고 18:10분경 아시아지역대회장소인 宜蘭호텔 도착했다. 18:30분경 공식 만찬이 시작되는데 나의 자리는 테이블 03번인데 고기남 총재가 07번인 메인석과 자리를 바꾸었다고 한다. 테이블에는 참석자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고 필리핀 여자와 일본인 5명, 태국인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 메뉴는 전날과 같이 중국식 10가지의 음식이 준비되고 대만 맥주와 버드와이져가 놓여져 있다. 마지막 행사는 여흥시간으로 대만 전통무용과 가무악 등과 청소년회원들의 노래와 춤, 그리고 참석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각 나라별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우리나라는 아리랑과 사랑해를 모두 함께 불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약10년간 이 노래만 불렀다 한다.
모두가 하나 되어 어깨동무와 기차놀이 등 플로어에서 음악과 함께 흥겨운 춤을 추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 모습은 또 다른 하나의 와이즈멘의 모습들이다. 함께한 노르웨이 출신의 국제총재와 지역총제 등과 함께 사진촬영 등 좋은 날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서로가 마음을 열어주는 시간을 같이 만들어 갔다. 이렇듯이 모든 행사는 내실있고 검소하게 이루어졌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특히 한국인의 자부심이 한국지역으로 분리하게 된 동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에 참석한 면들을 보면 대만 자국을 빼면 일본이 최대의 참석이다. 국제총재, 지역총재, 각 위원에 참석한 VIP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끝으로 공식일정은 22:30분경에 모두 마치고, 이때 아시아지역과 한국지역의 MOU체결은 국제총재 입회하에 양 지역총재의 서명하는 식이 있었다.
본 협약식은 ACM에서 의견 제시로 차기총재 교육 등 양 지역 교체 개최와 국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완하기위한 협약식이다.
제70차 국제대회는 2012년 8월2일부터 5일까지 노르웨이에서 개최된다. 또한 아시아지역대회는 국제대회와 격년제로 개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넷 째날(8월 7일 맑음)
숙소는 첫날 투숙한 방과 같은 곳이다. 다만 어제 투숙한 방과는 너무나 달랐다. 고급이라 하지만 좋은 곳에서 있다 짐을 이동하니 더욱 그러하다. 숙소는 五朝大酒店(Sunworld Dynasty Hotel) 632호실이다. 엊그제 갖던 날이 마지막 날이다. 무더위 속에서 여행과 행사에 참석한 일행들의 모습은 한결 같이 즐겁고 행복한 표정들이다. 06:30분경 모닝콜에 의해 짐을 꾸리고 우린 컵라면에 김치로 아침을 간단히 하고 호텔 식당에서 커피한잔과 케잌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일요일 아침 약간의 이슬비는 내렸지만 이내 햇살을 내비치며 마지막 여행지는 중정기념관이다.
타이베이의 민주기념관은 영웅 장개석을 위한 타이완 의 가장 인상적인 기념물이다. 그림같이 조경이 잘된 광대한 정원위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관이 서있고 우아한 정자, 연못 등이 배치되었다. 25톤짜리 장개석 총통 동상이 본 건물로부터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며 1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총통생애의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아한 명나라식의 아치가 정문이며 양측에 두 개의 고전적 건물이 있는데 각각 국립극장과 콘서트홀이다. 두 건물 사이의 관장은 특별한 축제일에 모임의 장소로 활용 된다 |
이곳은 본래 장개석 기념관이라 불렀는데 장개석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장개석 이름을 붙이는 것에 항의를 해서 현재 대만민주박물관으로 변경하였고 다만 舊 中正紀念館으로 함께 부른다고 한다.
장개석은 소금장수의 집안에서 태어나 19세에 결혼하여 아들1명과 딸3명을 두었고 그중 아들이 대만의 2인자인 장경국이다. 그는 자녀들은 미국에서 약10년간 유학을 시켰으며 본처와 이혼을 했다.
그의 일화를 들어보면 장개석은 후처인 송미령과 24년의 나이 차이에 재혼을 하였고 후처에게선 자녀가 없다. 장개석이 송미령과 결혼을 하고자 할 때 장모께서 주변의 여자들을 정리하라는 말도 전해진다. 송미령의 친정은 마약장수 집안이다. 장경국과 송미령의 불화가 계속 이어지자 모친인 송미령에 의해 장경국은 12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 후 장경국은 정신을 차려 대만의 제2인자가 되었다.
송미령은 외모가 출중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10년간 수학하여 장개석의 통역원과 대만 외교관으로 활동하여 맥아더장군과도 막역한 사이 이었다고 한다. 또한 송미령은 대만 공군 설립의 주역이었고 수많은 일들을 많이 한 인물로 소개된다. 전시장 내에는 장개석과의 오랜 사이인 김구선생과 손문선생, 장개석과 함께 찍은 대형사진이 걸려 있고 박정희 대통령과 장개석과의 모습도 걸려 있다.
또한 기념관내에는 두 대의 고급 리무진 방탄 차량이 있는데 1대는 장개석이 대통령이된 기념으로 싱가포르 화교가 선물한 것이고 또 한 대는 공무용 차량이 설치되어 있다. 장개석이 죽기 한 달 전 쓴 휘호에는 살아서 통일을 못 보고 가니 죽어서라도 통일을 염원하는 글과 소품이 진열되어 있고, 한 쪽방은 장개석의 집무실로 그가 89세에 일생을 마친 시간을 알려주는 11:50분의 원형 벽시계가 걸려 있음을 볼 수 있다.
25톤의 청동상은 링컨도서관의 모습과 흡사하다. 1978년에 만들어진 동상의 높이는 5층이요, 철문은 35톤으로 동상은 서쪽 즉,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과 외몽고도 중국 땅으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굳은 모습이다. 철문이 두터운 것은 중국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만들었으며 동상주변은 백색 대리석으로 청결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3박4일의 대만의 여행일정은 모두 끝나고 13:30분경으로 예약된 비행기를 타기위해 일행은 공항으로 향했다. 올 때와 같이 일부는 아시아나항공으로 우리는 대한항공으로 떠나게 된다. 버스 내에서 늦었지만 각자가 소감을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11:30분경 공항에 도착하니 자그마한 공항이 많이 혼잡스럽다. 이곳도 과거에는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항이었다는데 이젠 무척이나 작게 보인다. 보딩을 마친 일행은 짐을 부치고 이내 출국심사를 받기 위해 2층으로 이동하고 출국심사를 마치니 그곳이 면세점이다 우리가 타고 갈 대한항공은 KE692편으로 4번 게이트로 좌석은 52E와 F석으로 창가 쪽이다. 모처럼 창가에 앉은 사랑이는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이다.
비행시간에 맞추어 함께한 일행들과 면세점 쇼핑을 한다. 우리도 담배와 배용준이 먹어 유명해진 빵과 목걸이(Swarovski)를 샀다. 탑승시간은 13:45분, 13:50분 항공기가 이륙하기를 시작한다. 5분간을 이동하더니 육중한 몸체를 이끌고 공중으로 치닫는 항공기는 인천공항까지 약 2시간 소요된다. 기내식은 소고기 덮밥과 맥주 한잔으로 하니 이내 스카이쇼핑이 시작된다. 기내의 모니터가 불능상태라고 부기장의 죄송하다고 전한다. 이 항공기는 정원 280명을 가득 채운 채 16:55분경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맺는 말
길고도 짧은 대만 여행은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국제와이즈멘 한국 중부지구와 우리 회룡클럽의 배려로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개최되는 와이즈멘 국제행사에 공식적인 BF한국대표로 선정되어 참여하게 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단순히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와이즈멘 활동을 하면서 알고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을 했다. 그저 많이 참석해야 알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질 않는다. 제도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어찌 그리 쉽게 말을 할 수 있는 건가, 16년차의 와이즈멘으로 그동안 2005년 8월26일~29일 개최된 제21차 아시아지역대회(서울 코엑스*교육문화회관) 2006년 8월3일~8월6일까지 제67차 세계대회*부산 벡스코)에 참석은 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못 느꼈었다. 다만 이런 행사가 있구나 하였는데 이번 대회에 참가해서는 와이즈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행사의 모든 면들이 검소하고 참석자들을 위한 배려인듯하다. 즉, 내빈 소개는 축사는 와이즈멘 몇몇만 하고 대만 총통외는 팜플릿에 게재된 것으로 소개 하므로서 공식행사의 시간을 줄이는 듯하여 행사의 군더덕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600여명이 빼곡한 행사장엔 자리를 이석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는 한국사람들 이었다. 국내외서든 행사 참여가 어수선한 것이 보는 사람들에겐 불쾌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대회를 다녀오면서 이렇게 생각하며 다짐도 해 본다.
첫째 중부지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항이 클럽에 전달이 잘되지 않고 있으며 전년도 답습식 행정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와이즈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 BF한국대표로 참석을 하였지만 아무런 안내도 해야 할 사항도 아는바 없이 자의로 터득하여 참석하게 되는 우스꽝스런 행동이었다. 또한 한국의 BF는 어떻게 선정이 되는지 조차 몰랐으며 다른 지구에서는 단 한명도 BF대표가 없었다는 것에 와이즈멘으로써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비단 중부지구 뿐만이 아니라 한국와이즈멘에 대한 문제점이 아닌가 싶다. 그곳에 가니 한국 사람들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조직적이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의 행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인 각 나라별 합창을 할 때도 우리는 즉석에서 하는 모습을 보이자 우리 일행은 어리둥절히는 모습들이다. 아시아지역과 한국지역이 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준비된 것 없이 무작정 자존심에 의해 지역을 분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는 참여 국가들이 경제력이 부족한 국민이 참여하고 일본만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한국지역으로 분리돼야만 국제본부오 아시아지역에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심에서가 아니가 싶다.
이번에 참석한 한국은 나를 포함한 BF한국대표 2명외에 공식행사 인원 5명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참석한 20여명을 제외하면 30명은 문상봉 한국지역총재가 속해있는 남해지구 전남 여수에서 30여명이 단체로 왔는데 이는 한국지역대회 개최를 위한 품앗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달에 한번은 똑같은 마음으로 와이즈멘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논하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다. 좀 더 발전을 위한다면 위로부터의 개선이 필요하고 아래로는 단결력과 함께하는 친선의 단합을 이어가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앞으로 있을 한국지역대회(2012년 9월23일~24일)에 얼마나 많은 와이즈가 참석할 것인지 또한 아시아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석해 중 것인지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우리 회룡클럽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함께 고민하고, 회원들의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 일 것이다. 끝으로 아시아지역대회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게 지면으로나마 감사를 드리며, 행동과 실천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는 와이즈가 되기를 기대하며 나도 노후의 건강과 와이즈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번 대회를 진심으로 잘 다녀왔음을 이곳에 남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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