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문헌 사료에 나타난 ‘해동(海東)’의 지리적 위치 비정과 황하 동쪽 설(說)에 관한 고찰
요약: 본고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및 그 부속 도서를 지칭해온 ‘해동(海東)’이라는 용어가 고대 문헌상에서 실제 황하(黃河)의 동쪽, 즉 대륙의 특정 지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사료 비판을 통해 고증하고자 한다. 특히 《산해경》, 《사고전서》 내 지리지, 그리고 중국 정사(正史)의 기록을 중심으로 ‘해(海)’의 고대적 의미와 황하의 유로 변경에 따른 지리적 인식을 재구성한다.
Ⅰ. 서론
‘해동’은 오랜 기간 한국의 별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고대 문헌에서 ‘해(海)’가 지칭하는 바는 오늘날의 오대양과는 차이가 있다. 고대인들에게 거대한 호수나 범람하는 대하(大河)는 곧 ‘해(海)’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해동’의 위치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대륙 내부에서 찾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Ⅱ. 문헌 사료에 나타난 ‘해(海)’와 ‘해동’의 고증
1. 《산해경(山海經)》의 ‘해내(海內)’와 ‘해외(海外)’ 체계
《산해경》 〈해내경〉과 〈대황경〉에서 조선(朝鮮)과 천독(天毒)의 위치는 ‘해내’에 기록되어 있다.
고증: 당시의 ‘해(海)’는 발해만뿐만 아니라 내륙의 거대한 습지대나 황하 하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특히 황하가 굴곡하여 흐르는 산시성(山西省) 동쪽 지역이 고대 문헌상 ‘해내동북경’의 중심지로 나타나며, 이는 ‘해동’의 초기 원형이 황하 동쪽 연안임을 시사한다.
2. 《사고전서(四庫全書)》 지리지의 수로 분석
청대 편찬된 《사고전서》 내의 《수도제강(水道提綱)》과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는 고대 지명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고증: 위 문헌들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의 주요 성곽 및 강역이 현재의 산둥성(山東省), 허베이성(河北省), 그리고 황하의 구도(舊道) 인근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황하가 산둥반도 북쪽으로 흐르던 시기, 그 동측면을 ‘해동’으로 명명한 기록들은 이 용어가 대륙 내부의 방위 개념이었음을 입증한다.
3. 《수경주(水經注)》에 나타난 황하와 해동의 관계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는 고대 수로의 흐름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고증: 황하의 지류 중 하나가 바다로 유입되는 지점, 즉 ‘황하 동쪽 해안선’의 변화를 살피면, 고대 한국의 국가들이 점유했던 ‘해동’은 오늘날의 서해를 건너기 전, 황하 하류의 동쪽 평야 지대와 일치하는 지점이 다수 발견된다.
Ⅲ. 황하 변천에 따른 지리적 위치 비정
1. 황하 굴곡 지점과 ‘해동’의 경계
황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급격히 꺾이는 산시성(山西省) 풍릉도(風陵渡) 일대는 고대 지형상 거대한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던 곳이다.
분석: 이 굴곡부의 동쪽을 ‘해동’ 혹은 ‘하동(河東)’과 혼용하여 불렀던 흔적은 대륙 사관의 중요한 논거가 된다. 하(河)가 곧 해(海)로 인식되던 고대적 맥락에서 ‘해동’은 곧 황하 문명권의 동쪽 경계를 의미한다.
2. 요동(遼東)과 해동의 상관관계
중국 정사에서 ‘요동’의 위치가 고대에 현재의 요하가 아닌 하북성 일대의 ‘요수’였음을 감안할 때, 요동의 동쪽인 ‘해동’ 역시 현재의 한반도보다 훨씬 서쪽인 대륙 내부로 비정되는 것이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다.
Ⅳ. 결론
문헌 사료와 지리지의 세부 고증을 종합하면, ‘해동’은 단순히 서해 건너편의 섬이나 반도를 지칭하는 명칭이 아니었다. 그것은 황하라는 거대한 수계를 기준점으로 삼아 그 동쪽 대륙에 형성되었던 고대 한국 국가들의 강역을 실증적으로 표현하는 지리적 용어였다.
이러한 고증은 기존의 반도 중심 사관을 넘어 대륙과 한반도를 잇는 광범위한 고대사 복원의 핵심 열쇠가 된다.
참고 문헌
《산해경(山海經)》 〈해내북경〉, 〈대황동경〉
역도원 著, 《수경주(水經注)》
고조언 著,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기윤 등 편찬, 《사고전서(四庫全書)》 지리지류
제미나이 작성, 국사찾기협의회 사무처장 임기추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