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소련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보수주의가 정당화 되었다. 냉전해체 이후 보수는 약자 때려주기 취미생활로 변질되었다. 인간들이 진지하지 않다. 보수가 망하는걸 보고도 히죽거린다. 남는 것은 맥락이다. 옳든 그르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대구가 여전히 박근혜를 추종하는 것도 맥락 때문이다. 박근혜 본인도 그렇고.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사건의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들 속에서 어색한 빈 구멍들을 메우려는 행동이 맥락이다. 고양이도 실수했을 때는 눈치를 보며 딴전을 피우는데 쪽팔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냥펀치로 동료 고양이를 때리려다가 들키면 지나가는 파리를 잡는 척 연극한다. 무대에서 관객을 의식하고 동료와 합을 맞추는 행동을 한다.
목격자 고양이는 알면서도 추궁하지 않는게 암묵적인 룰이다. 자연스럽게 수습된다. 역지사지로 보면 자신에게도 쪽팔리는 상황이 올수 있다. 쪽팔림 물타기 품앗이다. 보수가 결집하고 있다.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다.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들켰다는 말이다. 들켰을 때의 물타기 행동은 지나가는 파리를 잡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대구사람은 이미 꼬인 스탭이지만 수습을 시도한다. 박근혜는 똥이지만 보석이라고 치고 맞게 연극한다. 낡은 대본을 버리지 못한다. 본인이 망가져도 무대를 보호하려는 동물의 본능 때문이다. 개그맨의 자학개그와 같다. 개망신을 당해도 일단 웃겨야 된다. 대구가 희생해서 빌런을 자청해도 한국이 잘되면 또한 의미있지 않겠는가?
이왕 악역을 맡았으니 끝을 봐야 한다. 똥싸다가 중간에 자를 수 없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대본에 따르면 대구는 특별히 선택받은 선민이다. 아기공주 박근혜가 벽에 똥칠을 해도 하녀들이 이뻐하며 닦아주듯이 대구만 유별난 짓을 하는 대본으로 밀어야 한다. 대본을 바꾸는게 옳지만 갑자기 대본을 바꾸면 동료와 합을 맞추기 어렵다.
지랄도 해본 지랄을 한다고 하녀가 평생 노비로 살다가 혁명에 주인이 짤리고 자신이 해방되어 자유민이 되면 좋아하겠는가? 천만에. 주인이 있으면 충직한 하녀 소리를 듣지만 주인이 짤리면 아무 것도 아닌 병맛한테 털린 상병맛 소리를 듣는다. 이미 하녀 생활은 수십년을 해버렸고 무를 수가 없다. 하인은 주인이 공주이기를 원한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교주가 사이비로 밝혀졌을 때는 정성들여 지어놓은 성전에 침을 뱉고 돌아설게 아니라 새로 모집한 다른 신도에게 성전을 넘기고 본전을 회수해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다. 지금 대구사람들의 심리가 그렇다. 애초에 박근혜가 평민인 것을 알아보고 무시해야 했는데 수십년 섬기는 실수를 해버렸다.
이제 와서 공주가 아니라고 하면 평민한테 속아 수십년간 봉사한 셈이니 이 얼마나 쪽팔리는가? 이 경우 보통 인간은 하던 짓을 계속한다. 지금까지 하녀로 살았으니 계속 하녀로 살면서 충직한 하녀로 인정받는게 더 낫다. 이제 와서 자유민이 된다한들 뭘 어쩌라고? 자유민도 해봐야 하는 건데 양반전에 나오지만 양반노릇 쉽지 않다.
상놈이 뒤늦게 양반되어 더운 여름에 도포 입고 팔자걸음 하자니 못해먹을 노릇이다. 인간이 집단적 연극을 벗어나기 어렵다. 새로 받은 대본은 합이 안 맞는다. 박근혜 욕하고 김부겸 앞에 얼쩡거려 봤는데 느낌이 안오잖아.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4월과 같ㅊ다. 복수의 대물림을 그만두기로 전원이 합의했는데 할배가 파토낸다.
다시 복수의 악순환으로 가버려. 할배 하나 때문에 산통 깨지는데 집단적 연극을 막을 방법이 없다. 주변에서 부추기면 원수진 부족에게 복수하러 갈 용의는 있다. 내 목숨을 내놓을 용의는 있는데 할배 입을 틀어막을 배짱은 없다. 그게 인간의 비극이다. 악역으로 아카데미 상 받은 배우는 많다. 조커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 있잖아.
선역이면 명연기가 안 나온다.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맡은 한니발 렉터도 그렇고 쟁쟁한 배우들이 악역으로 상을 쓸어담았다. 대구는 이왕 이렇게 된거 빌런으로 아카데미상을 노리는게 맞다. 원래 세상이 이렇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홍정희 기자다. 뒤늦게 반성하고 방향 바꾸기 어렵다. 조중동의 개과천선은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