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로 왕은 김해김씨 시조이며, 탄생 과 치적에 관하여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다.
아직 나라가 없던 때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다. 42년 3월 하늘의 명을 받아 가락국의 9간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고 노래했다(구지가). 그랬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 둥근 황금색의 알이 6개 잇엇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한 것이 수로 왕이 었다.
주민들이 가락국의 왕으로 받들엇고 나머지 아이들도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수로왕은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했다. 그리고 천신의 명으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인도 아유타국(阿劉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았다.
또 다른 설화
신라의 학자 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따르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지(夷毗訶之)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 명은 뇌질주일(惱室朱日)이었고, 다른 한 명은 뇌질청예(惱窒靑裔)였다.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청예(김수로왕)는 여신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희고 갸름했으며 대가야의 시조가 된 뇌질주일(이진아시왕)은 이비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이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맏형이었다고 한 ≪가락국기≫에 전하는 금관가야 중심의 형제설화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1331년 고려 충혜왕때 입조하여 벼슬이 정일품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고 금녕군에 봉해졌다.
충혜왕때 조적의 난을 평정하고, 그 정난(靖難)의 공으로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이때 왕이 혼미하여 국사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니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과 함께 누차 간언하였으나 왕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벼슬을 내어놓고 속리산으로 은퇴하여 미록(靡鹿)과 벗하여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