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사천역사문화연구회 답사지 관련 자료 2.
1.대경일보 2014.12.21 05:55 입력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세계유산 가치규명 학술대회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의 세종대왕자태실(사적 제444호)의 세계유산 가치규명을 위한 학술대회가 지난19일 오후 1시에 경북대학교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개최됐다.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원장 정병호) 주관으로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 등 100여명이 모인자리에서 관계 전문가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해 세계 유산적 가치를 규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는 성주군이 생명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세종대왕자 태실의 문화재적 가치제고와 세계문화유산 소재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등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지난 8월 영남문화연구원에 학술용역을 의뢰했다. 이날 1부 주제발표는 강원대 홍성익 교수의 한국 태실의 기초적 이해를 시작으로 울진군청 심현용 연구사의 성주 선석산 태실의 조성과 태실구조의 특징, 동방대 김태일 교수의 세종대왕자 태실과 풍수지리에 대해 발표했고 고려대 양윤미 교수가 조선 초기 안태용 도자기의 양식적 특징과 가치, 경북대 박충환 교수는 인류학의 비교 문화론적 관점에서 본 장태문화, 세계유산도시기구 허권씨는 세계유산 등재의 선행과제와 동향에 대해 발표를 했다.
그리고 토론에는 경북대 이영호 교수가 좌장으로 성림문화재연구원 류성재, 예천군청 이재완 연구사, 순천청암대 이진삼 교수, 영남대 이찬언 교수, 고려대 송영은 교수, 원광대 최완규 교수가 참석해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김항곤 성주 군수는 “석물을 갖추고 태실을 조성하는 문화유산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있으며 전국에 산재한 200여곳의 태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인 세종대왕자 태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한다” 며 이번 학술대회가 세계유산 등재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길 강조했다.
한편 성주군은 세종대왕자 태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각종 기초연구와 단행본 출간을 시작으로 문화재 보호구역 확대지정 및 보존·관리계획 수립, 추진위원회 구성을 통한 국제학술대회 개최, 잠정목록 등재신청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성주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복사한 자료
• 世宗大王子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 지정별 : 사적 444호
• 위치 :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
• 규모 : 19기(基)
• 재질 : 화강암
• 시대 : 조선시대
• 지정일 : 2003년 3월 6일
• 상세내용
•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禪石山, 742.4m) 아래의 태봉(胎峰)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 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嫡庶) 18왕자 중 큰 아들인 문종(文宗)을 제외한 17왕자의 태실과 원손(元孫)인 단종(端宗)의 태실 등 모두 19기가 있으며,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다.
전체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나머지 석물은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은 즉위한 이후 별도의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웠다. 1977년에 태실을 정비하던 중 분청인화문개(粉靑印花紋蓋) 2점(경북대학교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각 1점 소장), 분청인화문완(粉靑印花紋盌) 1점(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평저호(平底壺) 1점(국립대구박물관 소장), 지석(誌石) 3점(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石)[저경(底徑) 102㎝, 고(高) 42㎝], 구형(求形)의 중동석(中童石)[고(高) 26㎝, 하경(下徑) 80㎝, 상경(上徑) 75㎝], 방형(方形)의 연엽대석(蓮葉臺石)[변(邊) 125.5㎝ 고(高) 60㎝],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실비문에 '○○(대)군명태장 황명정통연월일입석(○○(大)君名胎藏皇明正統年月日立石)이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세조가봉비 비문은 멸실(『실록』에 비문 수록됨)되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사천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복사
단종 태실지
소재지 곤명면 은사리 438
위치 곤양IC에서 16km
문의처 055-831-2716
단종태실지는 세종대왕이 임금자리에 오른지 23년(1441)에 그의 애손(愛孫)인 단종이 태어나자 자신의 태실 앞산에 태실을 안치토록 어명을 내려 곧 그해에 조영하였다.
임진란 때 왜적이 몰려와 규모가 큰 세종대왕의 태실은 거의 파괴되었으나, 규모가 작은 단종 태실은 적의 눈길을 끌지 못하여 다행히도 화를 면했다. 영조 10년(1734) 세종대왕의 태실비를 세울 때 단종의 태실비도 이때 함께 세웠다.
단종은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서 12살의 어린 나이로 부왕인 문종의 뒤를 이어 1452년에 제6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보필하던 중신들이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참살되자 1455년 재위 3년만에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봉해져, 강원도 영월 땅에 유배되었다가 그의 숙부인 세조 3년(1457)에 죽음을 당한,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슬픈 운명의 임금이었다.
현재 태실지 산비탈에 석물들이 흩어져 있고 본래의 태실지에는 민묘가 있으며 1972년 2월 12일 세종대왕태실지와 함께 도지정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으며 역시 수리에 관한 내용은 세종대왕·단종대왕태실수개의궤에 기록되어 있고 2000년 사천문화원에서 번역본을 발간한 바 있다.
개요
• 지정번호 : 기념물 제31호
• 지정일자 : 1972년 2월 12일
• 규모 : 4,954㎡
• 시대 :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