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31 주일설교
사욕에 눈 어두워지지 않게 하소서
사무엘하 1장 1~16절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의 신체 기관이 서로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
눈과 심장, 손과 발, 귀와 입.
귀와 입은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귀로 들으면 반드시 말을 하게 된다. 그것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듣고도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그것은 마치 땅에 밀을 심었는데 밀이 자라지 않고 썩어 버린 것과 같다. 여러분의 입은 열매 맺는 입이 되기 바란다. 여러분도 설교를 들었으면 가만히 있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라.
손과 발도 연결되었다. 사람이 발이 어디로 가면 손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나쁜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발이 실족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술집에 가서 마시지만 않으면 된다고? 마치 불 속에 들어가서 타지 않으면 된다는 말처럼 위험하다. 여러분은 가지 말아야 하는 곳으로 결코 가지 말라.
눈과 심장이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눈으로 보면 그것이 곧 그의 마음이 된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았기에 간음과 살인죄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눈이 밝다 혹은 어둡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시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말하는 것이다. 라헬과 레아 중에 레아는 안력(眼力)이 부족하다는 말은 시력이 나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셨다(마 6:22). 그래서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 말은 눈이 바른 것을 보면 온 몸도 복되지만 눈이 나쁜 것을 보면 그 인생을 망한다는 뜻이다. 또한 같은 것을 보더라도 보는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지 말고 복된 인생이 되기 바란다.
오늘 성경 본분에는 사욕에 가득차서 눈이 어두워져서 멸망한 불쌍한 청년 하나가 등장한다. 오늘 이 청년이 어떻게 어두워졌고 어떻게 망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이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신은 결코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이 문제를 위해서 늘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본문에 등장하는 불행한 주인공은 아말렉 청년이다. 그는 전쟁터에서 도망쳐서 다윗을 찾아 왔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인데 그 청년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싸우다가 나왔다(3절). 그는 아마 이스라엘의 용병이거나 혹은 이스라엘에 귀화한 집안 청년일 것이다.
다윗은 전쟁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에게 물었는데 그 청년은 다윗에 점수를 좀 따 보려고 거짓말을 했다. 아말렉 청년은 자기가 사울 왕을 죽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네 가지 면에서 거짓말이다.
1. 사울이 창에 기대어 있었다.... 사울은 활을 맞은 후에 스스로 칼에 엎어져서 죽었다(삼상 31:4).
2. 병거와 기병이 사울을 뒤 따랐다.... 산지에 병거가 추격했다는 말은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다. 병거와 기병은 평지에서 활약했고 산지에는 활 쏘는 자가 활약했다(삼상 31:3).
3. 아말렉 청년에게 죽여 달라고 했다... 사울은 할례 받지 못한 자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명예롭게 죽고 싶어 했다(삼상 31:4). 그래서 병기 든 자에게 죽여 달라고 하다가 여의치 않자 스스로 칼에 엎드려졌다. 그런 사울이 할례 받지 않은 아말렉 청년에게 죽여 달라고 했을 리가 없다.
4. 그가 사울을 죽였다... 사울은 분명히 자결했다. 그런데 아말렉 청년은 자기가 죽였다고 한다. 아마도 다윗의 원수 사울을 자기가 마지막에 죽였으니 칭찬과 상을 받을 줄로 착각했다.
그러면 아말렉 청년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가 음흉한 사욕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어떻게 될까?
1.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모르게 된다.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것은 바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결코 죽이지 않았다. 아말렉 청년은 여호와가 기름부으신 자를 감히 죽였으니 그 죄는 사형감이다. 그 말은 거짓말이지만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16절).
여러분의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게 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 하게 된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계속한다면 그 끝은 멸망 밖에 없다.
2.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아말렉 청년은 다윗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다윗은 자기 원수 사울이 죽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와 요나단이 죽은 길보아산까지도 저주할 정도로 슬퍼했다. 그게 다윗이다. 그런데 다윗은 왜 사울의 죽음을 슬퍼했을까? 요나단은 몰라도 사울의 죽음까지 그렇게 슬퍼했을까? 다윗은 사울이 망하게 되기를 희망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욕심에 가득차면 다른 사람을 배려할 마음도 없어지고 남이 싫어할 행동을 하게 된다. 조이선교회의 이름 JOY 는 Jesus first, Other second, Yourself third 의 줄임말로서 그렇게 우선순위를 정하면 진정한 기쁨(JOY)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남을 나보다 앞세울 수가 없고 참 기쁨은 생길 수가 없다. 당신은 사욕을 버림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진정한 성도의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
3. 결국 거짓말로 망하게 된다.
아말렉 청년은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한 몫 잡으려다가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고 결국 그 자신의 거짓 증언을 근거로 처형당했다. 사람이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성공하거나 출세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이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못 쓴다.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을 것이며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좋은 모범도 우리에게 더 좋은 교사가 되지만 어리석어 멸망한 사람도 우리의 교사가 된다. 아말렉 청년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문제는 딱 한 가지, 사욕이다. 이렇게 하면 죽는다고 보여주는데 똑같이 따라하면 레밍이 된다. 옛날 한 때 컴퓨터에서 레밍이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우리는 레밍처럼 망하지 말자.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지 말자.
우리가 오늘도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복 주심을 믿는 사람은 사욕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희망사항이지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한 마디씩 돌아가며 기도하자.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