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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
2015년 12월 3일 / 새벽기도회 / 사 42:1-9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내 종이 있다. 내가 그의 뒤에 있어서 항상 그를 붙들어 준다.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요 내 마음에 꼭 맞는 자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내려 주었으니 그가 세상의 만민에게 옳게 사는 방법을 전파해 줄 것이다.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그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선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내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을 것이다.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심지처럼 꺼져 가지도 않고 갈대처럼 부러지지도 않고 끝까지 내 사명을 완수하여 세계 만민에게 옳게 사는 방법을 전파할 것이다. 먼 섬들과 해변의 주민들까지 그가 전하는 소식을 고대하고 있다.”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고레스를 부르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셨다. 그분이 하늘을 천막처럼 팽팽히 쳐놓으셨다. 그분이 땅을 넓게 펼쳐 놓으시고 땅 위에서 온갖 식물과 동물이 생겨나게 하셨다. 그분이 세상의 인간들에게 호흡을 주시고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바로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시키려고 너를 불러 세웠다.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으며 너를 승리의 용사로 무장시켜 주겠다. 너는 내 백성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며 온 인류에게 생명의 빛이 될 것이다.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너는 감옥에 갇힌 자들을 그 캄캄한 감방에서 데리고 나오며 소경의 눈을 다시 열어 줄 것이다.”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여호와가 바로 내 이름이다. 역사를 지배하는 나는 영광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나의 이 명성을 우상들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너희가 포로로 잡혀 오기 전에 내가 미리 앗수르의 침략을 말하였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려 주겠다. 새 일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알려 준다. 너희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며 온 인류도 죄악에서 해방될 새로운 일을 내가 시작하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기뻐하시는 종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로서, 이상적인 통치자인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 계통의 왕에게 동일한 신이 임할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사 11:1-5; 마 3:16-17; 마 17: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인류를 구원할 구원의 주로 오실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에게 ‘나의 영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 영은 지혜와 총명의 영이며, 모략과 재능의 영이며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을 의미합니다(11:2). 또한 여호와의 종은 세상의 군왕들처럼 큰 소리로 외치거나 칼과 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역을 감당합니다(행 10:38 / 하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방을 두루 다니시면서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진리로 공의를 베푸시며, 쇠하거나 낙담치 않고 세상의 공의를 베풀어 섬나라(온 세상)가 그 교훈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5-9)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온 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계시며, 그의 특별한 구원의 목적을 위하여 당신의 종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종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호하심 속에서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시며(갈 2:8; 요 12:32), 소경과 갇힌 자와 흑암에 처한 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고 언약합니다(눅 4:18).
이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을 회복, 완성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는 말씀처럼, 이 새 언약은 혈통적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 곧 영적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의 여호와(출 3:14)로서 절대적인 주권자이심과 함께(창 21:33; 시 90:2; 139:7-12) 언약의 주체가 되십니다. 그래서 과거의 모든 예언들이 성취된 것을 말씀하시며, 이는 신약 성경에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성취될 영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적용: 나에게 있어 메시야는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정신사(精神史 - 역사적 사실의 개개의 인과 관계를 초월하여 그 배후에 흐르는 정신 내지 이념을 역사 형성의 참 힘으로 규정하는 역사) 고찰의 한 방법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두 도시가 있습니다. 아테네요 베들레헴입니다. 아테네는 희랍 문명의 발상지이며 인간 중심적 헬레니즘 사상의 고향이고 합리주의 현세주의와 육을 대표합니다. 베들레헴은 기독교 문명의 요람이고 하나님 중심의 헤브라이즘 사상의 원천지입니다. 전자는 에로스의 문명이며 대지에 뿌리를 밖은 세계관이요 후자는 아가페의 문명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세계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 본문에 나타나는 ‘나의 종’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종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그분이 종 된 것은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빌 2:6-7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요,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종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십니다. 본문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①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신다 ②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은 모두 다 사명을 갖는다 ③ 종으로 세움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일수록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들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귀한 종들이 되십시다.
‘종’이란 칭호는 ‘에베드’라는 말인데 ‘노예(slave) 또는 종(servant)’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 노예와는 완전히 다른 신분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원한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빚을 져서 종이 되었다면 안식년이나 희년에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① 하나님의 종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매이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에 매이지 않습니다. 돈에 매이지 않습니다. 명예에 매이지 않습니다. 죄에 매이지 않습니다. 사탄의 세력에 매이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완전 자유인입니다.
② 하나님의 종은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셔서 선택하신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왜 선택하셨는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명령에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 명령에 움직입니다. 사람의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의 모든 위계질서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게 여기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갈 1:10 /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달콤하고 교묘한 말로 여러분의 환심을 살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뿐입니다. 만일 내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서 환심이나 사려고 든다면 어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고전 7:23 /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산 몸이므로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 세상 사람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종은?
1.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뻐하는 사람
마 3:17 /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사람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 17:5 /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우리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이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토록 기뻐하는 자가 되었을까요?
요 8:29 / 나를 보내신 이는 나를 혼자 버려두시지 않고 늘 나와 함께 계신다. 내가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시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이 내 마음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마음 깨끗케 씻어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진정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후 1:20 /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약속일지라도 모두 다 실천하고 완성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신실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의 사람 사울 왕을 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행 13:22 / 그리고 그를 물러나게 하신 뒤에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왜 다윗을 세우셨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삼상 3:1-9 / [사무엘을 세 번 부르심] 어린 사무엘은 엘리를 도와가며 제사장의 일을 정성껏 수행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에게 직접 말씀을 하시거나 꿈에 나타나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2) 더구나 엘리는 늙은 데다가 눈까지 어두워져서 거의 앞을 보지 못하고 지냈다. 어느 날 밤에도 엘리는 늘하던 대로 자기의 침실에서 자고 있었고, 3) 사무엘은 성소에 있는 법궤 옆에다 자리를 정하고 누워 잤다. 그런데 성소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4) 이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어린 사무엘은 `예!' 하고 대답하면서 5) 즉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엘리는 ‘아니다!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다시 돌아가서 자거라!’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그때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아!’ 하고 다시 부르셨다. 사무엘이 또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엘리는 이번에도 ‘아니다!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가서 자거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7) 사무엘은 그것이 주님의 음성인 줄을 미처 몰랐다. 그는 주님의 음성을 이제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8) 여호와께서 세 번째로 사무엘을 부르셨다. 사무엘은 이번에도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엘리는 그제야 사무엘을 부르는 분이 여호와이신 줄을 깨닫고 9) 사무엘에게 이와 같이 일러주었다. “너는 다시 가서 누워 있거라! 그러다가 또 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소서! 주님의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여라.” 그래서 사무엘은 자리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10) [사무엘에게 하신 첫 말씀] 사무엘이 다시 누워 자는데, 여호와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오셔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깜짝 놀랄 일을 할 작정이다. 그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너희는 그 소식을 듣기만 해도 두 귀가 먹먹해질 것이다.’
2.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택정함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롬 1:1 / 로마에 사시는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께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이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전도자가 되었고, 복음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보내진 사람입니다.
갈 1:15 / 그런데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나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런 소명이 있었습니다.
렘 1:4-5 / [예레미야의 소명] 여호와께서 내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5) ‘내가 모태에서 너를 만들기 이전에 이미 나는 너와 할 일을 계획해 놓았었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너를 구별해 세계 만민을 위한 예언자로 선정해 놓았다.’
누가 확신을 가지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신실한 종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이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택함(하나님께로부터 확증을 받은 사람)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이 있을 때 담대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이것저것 다 해보았으나 되는 것이 없으니 주의 일이나 해보자’라는 사람은 주의 일을 해도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보다 자원하여 하나님의 포로가 되거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코너로 몰아넣으셔서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은 분명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는 종이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준 사람
여기에서도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 3:16-17 / 예수께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7)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이 사람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공적 사역을 시작 하려는 우리 주님께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눅 4:1 / [예수께서 시험받으시다; 마4:1-11, 막1:12-13] 예수께서는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을 떠나 성령의 인도로 유대 광야로 가셨다.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갈릴리로 돌아오실 때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하셨습니다.
눅 4:14 /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시다; 마 4:12-17, 막 1:14-15]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여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은 곧 그 지방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다.
요 3:33 / 그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은 성령의 기름부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행 2:17 /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너희에게 나의 비를 부어 준 다음에, 너희 모두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들은 예언을 할 것이다. 너희의 늙은이들은 여러 가지 꿈을 꿀 것이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온갖 환상을 볼 것이다(70인역 욜3:1-5).
성령 충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사명은?
1. 이방에 공의를 베푸는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방에 공의를 베푸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1절),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3절),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4절)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이방에 공의(옳게 사는 방법)를 세워라! 세상에 공의를 세워라!’ 여기에서 ‘異邦’이란 불신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불신자들 속에서 공의를 세우라는 말씀으로 교회에 나온다고 하지만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포함합니다.
‘공의를 세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입니까? 7절 말씀에 부연 설명합니다.
사 42:7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세 가지 공의가 나타납니다.
①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한 공의입니다.
예수님은 공의를 세우는 바른 삶이 무엇인지 산상 수훈을 비롯한 많은 교훈에서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한 공의는 바로 예수님의 삶입니다. 말구유에 나시고,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신 그 모든 일들이 다 공의로운 일들입니다.
②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내신 공의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내신 공의가 뭡니까? 바로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죄를 지으면 심판 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죄를 지어도 심판 받지 않는 것이 세상의 불의입니다. 죄를 죄대로 재판하지 않고 굽은 재판을 하는 것이 세상의 불의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얼굴 쳐들고 활보하는 것이 세상 불의입니다. 돈 떼어먹은 놈이 돈 빌려준 분보다 큰 소리 치는 것이 세상 불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는 터럭만큼도 오류가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하신 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하나님의 법대로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받으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악법도 지켜집니다. 하물며 엄위하신 하나님의 법이 지켜지지 않을 것 같습니까? 죄인은 죽습니다.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정녕 죽으리라’ (창 2:)
그러나 예수님이 죄가 있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롬 3:23-24 /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상과는 먼 거리에 있을지라도 24)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 없다고 선고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총으로 값없이 우리 죄를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③ 부활을 통해서 주신 구원의 공의입니다.
망하는 사람을 구경만 하고 내버려 두는 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을 보고 구해주는 것이 공의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렇습니다. 병들어 죽는 사람을 아무리 힘드시고 분주하실지라도 내 쫓지 않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죽음의 심판, 지옥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열어주셨습니다.
요 14:1-3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준비하러 간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항상 같이 있도록 하겠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그 영생의 선물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주신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세우신 세 번째 공의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공의를 세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① 그러기 위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
무엇이 바른 인생인지 말과 행위를 통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살면 됩니다. 그것이 첫 번째로 세워야 될 공의입니다.
② 죄는 심판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죄를 짓고도 벌 받지 않는 것을 삶의 요령으로 가르칩니다. 법대를 나와서 판검사를 한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뭡니까?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어떻게 하면 죄를 짓고도 벌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벌 받지 않고도 법을 어길 수 있을까?’를 연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하나님의 법은 어기면 틀림없이 처벌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죄가 어떻게 처벌받는지 명백하지 않습니까?
③ 죄인이 죽지 않고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신 구주십니다. 죄인을 무덤의 죽음에서 구원하실 유일한 분입니다. 죄인이 죽지 않고 사는 공의를 전하세요. 그것이 성도가 할 일입니다.
언행을 통해서 불신 세상 속에서 바른 삶의 공의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가 어떻게 심판 받는지, 심판의 공의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죄로 죽어야 될 사람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 구원의 공의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2. 공의를 세우는 종들의 자세
공의를 세운다고 해서 안하무인으로 공의를 부르짖고 외치라는 말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자세가 하나님의 법에 비춰볼 때에 바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른 일 한다고 큰 소리 치지 마십시오. 남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의 방법이 있습니다.
① 공의는 겸손하게 세워야 합니다.
2절 / 그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소동을 일으키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선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참된 정의를 세우는 자들은 목소리가 높지 않습니다. 요즘은 목청이 높은 시대입니다. 저마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큰 소리 칩니다. 그러나 그 목청들은 대부분이 다 왜곡되어 있습니다.
지난 11월 14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수만 명이 정권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광화문 방향으로 진출을 시도하면서 세종로 일대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었습니다. 일부 과격한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는가 하면 차벽으로 설치된 경찰버스를 밧줄로 끄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고, 경찰도 이에 맞서 물대포에 캡사이신 용액을 강한 농도로 타 뿌리며 대응했었습니다. 민주노총 등 53개 노동·농민·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이날 서울광장에서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모든 목소리들이 다 그렇습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목청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정말 우리 자신들이 공의를 세우고 싶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간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② 공의는 자비로써 세워야 합니다.
공의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것입니까? 오직 법대로 하는 것이 공의일까요? 한편으로 그렇습니다. 정의는 머리터럭 만큼의 불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에는 자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처벌하는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너는 죄인이니 죽어라!’ 그것이 아닙니다. ‘너는 죄인으로 죽어야 될 형편이니 내가 대신 죽겠다. 내가 죽을 테니 너는 살도록 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모습입니다.
‘그는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내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을 것이다.’(3절) 갈대는 무성하게 자라는 풀입니다. 잘 자라면 키가 2m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 갈대의 치명적인 약점은 부러지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무성한 갈대도 꺾어지면 끝장입니다. 그냥 놔두면 말라버립니다. 꺼져 가는 등불도 그렇습니다.
60대 되신 분들의 어린 시절에는 호롱불을 켜고 살았습니다. 등잔에 기름을 붓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환하게 타오릅니다. 그러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심지가 타면서 가물가물 해 집니다. 꺼져 가는 등불이란 바로 이렇게 기름이 다 떨어진 등불을 말합니다. 그냥 놔두면 꺼집니다.
상한 갈대, 꺼져 가는 등불! 그것은 바로 연약한 인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람마다 무수한 상처들이 있습니다. 배신의 상처, 미움의 상처 아니 남을 미워한 상처, 낙심의 상처, 실패의 상처, 질병과 죽음의 상처, 가난의 상처 …. 지금도 우리는 계속 상처를 주고받고 하는 중입니다. 우리 인생의 등불들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갈대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입니다. 꺼져 가는 등불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의 기름입니다. 인생은 기왕에 죄로 죽어 가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지옥에 갑니다. 그런 인생들을 정죄하고 책망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너는 왜 수영을 배우지 않았니?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으로 헤엄쳐 나오거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한 처지에 있는지 아십니다. 우리 인생의 연약성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정죄하는 대신 우리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우리 영혼에 성령의 기름을 주셨습니다. 영생을 주셨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살리시고, 상한 갈대를 치료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워야 될 공의는 정죄나 심판이 아닙니다. 오직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뿐입니다.
③ 공의는 인내로써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심지처럼 꺼져 가지도 않고 갈대처럼 부러지지도 않고 끝까지 내 사명을 완수하여”(4절)
공의를 세우다가 낙심하지 마세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죄를 짓다가 낙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중에 사기꾼이 낙심하는 것 보셨습니까? 한두 번 사기 치는 일에 실패했다고 잠 못 자는 일은 없습니다. 도적들을 보세요. 한두 번 감옥에 갔다고 낙심치 않습니다. 감옥에서 신기술을 배워 가지고 나와서 또 도적질을 합니다. 강도가 낙심합니까? 거짓말쟁이가 낙심합니까? 제비족들이 낙심합니까? 죄 짓는 사람들은 낙심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낙심을 잘 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옳은 일을 하면 누구나 찬성하고 협조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대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입으로는 정의를 외쳐도 마음에서는 싫어합니다. 그것이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를 세우다가 낙담하지 마십시오.
바르게 사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그저 인간된 도리일 뿐입니다. 누가 알아주면 바르게 살고, 알아주지 않으면 죄 짓고 사는 것이 공의가 아닙니다. 본래 옳은 일이란 동지들이 없어도 하는 법입니다. 남들이 다 도와줘서 하는 일이라면 뭐가 어렵겠습니까? 반대해도 하려니까 힘든 것이지. 주님 따라 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반대와 비난에 부딪칩니다. 그래도 낙심치 마세요. 공의는 인내로써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치신 말씀을 보십시오.
마 5:13-16 / 너희는 세상을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다. 그런데 만일 너희가 그 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느냐? 너희는 아무데도 쓸모없게 되어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될 뿐이다. 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즉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밤에 불을 밝혀 둔 언덕 위의 마을과 같다. 15) 등잔에 불을 밝히고 됫박으로 그 등잔을 덮어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방안을 환하게 밝히려면 누구나 그 등불을 등잔대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16) 너희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라.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
마 5:39-48 /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40)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거든 겉옷까지 벗어주라. 41) 비록 가고 싶지 않더라도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 4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46) 만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무슨 미덕이 되겠느냐? 세리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47) 만일 너희가 너희 이웃들과만 가까이 지낸다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느냐? 이방인들도 그렇게는 하고 있다. 48)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이렇게 살고자 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창조주 하나님, 온 땅을 그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섭리의 하나님, 호흡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생명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 42:6-8 / 나 여호와가 이것을 시키려고 너를 불러 세웠다.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으며 너를 승리의 용사로 무장시켜 주겠다. 너는 내 백성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며 온 인류에게 생명의 빛이 될 것이다. 7) 너는 감옥에 갇힌 자들을 그 캄캄한 감방에서 데리고 나오며 소경의 눈을 다시 열어 줄 것이다.” 8)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이다! 여호와가 바로 내 이름이다. 역사를 지배하는 나는 영광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나의 이 명성을 우상들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
사랑하시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을 잘 감당한다면 누가 영광을 받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나의 이 명성을 우상들에게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고 다짐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종들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나의 종을 보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종들이 되시지 않으시렵니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십시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우리 주님도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종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여!”라는 칭찬받는 종들이 되기를 위하여 힘쓰십시다. 하나님께만 존귀와 영광을 돌려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