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독서단>의 비밀
독서 프로그램의 변화
한국 TV의 책 소개 프로그램을 살펴보기 전에 다소 추상적인 질문을 하나 하려한다. 책과 TV는 무슨 관계인가?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굿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양자는 길항관계다. 책은 인쇄매체고, TV는 전자매체다. 인쇄매체는 문자문화를 떠받치며, 수용자의 시각(과 정신)에 호소한다. 전자매체는 구술문화를 지탱하며, 수용자의 촉각(과 육체, 감각)에 다가간다. 양자는 서로 다른 인간형을 함축한다. 포스트먼은 TV가 만드는 얄팍한 인간형을 우려하였다.
닐 포스트먼이 이렇게 TV를 비판한 반면, 월터 옹이나 마샬 맥루한 등 토론토 학파 계열에서는 상대적으로 긍정하였다. 토론토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책을 포함한 문자매체가 ㄱ5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만든다면, 구술매체는 중세적 의미의 공동체를 강화한다. 하지만 TV를 포함한 전자매체(새로운 구술성의 매체)는 인쇄매체의 영향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TV는 어느 정도 책과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둔다면, 책 소개 콘텐츠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책과 TV를 길항하는 매체로 보는지 혹은 상보하는 매체로 보는지에 따라 입장이 갈린다. 당연히 책 소개 방송에 대해 이들은 각자의 매체이론에 따라 서로 다르게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이론보다도 그 이론이 도입되는 맥락이다. 이는 책 소개를 콘텐츠로 삼는 TV 프로그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한국 TV의 책 소개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것은 KBS의 <TV, 책을 말하다>이다. 정보 전달에 치중하는 ‘정통’ 교양 프로그램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오래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이다(2001년 5월 3일에 시작하고, 2009년 1월 1일에 종영하였다). 가령 2008년 5월에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 지향』(민들레)을 소개할 때에는 일본통인 김지룡과 문화평론가 김갑수, 상담가 박상희, 가수 호란이 패널로 등장했다. 무게 중심이 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좀더 예능의 성격을 지니고 나타난 프로그램은 역시 MBC의 <느낌표>에서 매월 책 하나를 선정하여 소개한 ‘책책책!책을 읽읍시다’이다. 유재석과 김용만이 MC로 나와 진행한 이 방송은 2001년 11월에 시작되어 3년간 지속되었다. 선정도서의 수익금으로 여러 도서관을 지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희망의 이유』(궁리), 『곽재구의 포구기행』(열림원), 『야생초편지』(도솔), 『삼국유사』, 『백범일지』(돌베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봉순이 언니』(푸른숲),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 등 당시 소개된 책들을 보면 여전히 교양 프로그램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듯 예능으로 흐름이 바뀌는 전환기 속에서 교양 프로그램이 제대로 자리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KBS 독서 프로그램이 처한 2013년의 상황을 통해 잘 드러난다. <TV, 책을 말하다>를 뒤이어 2011년에 출범한 <즐거운 책 읽기>는 2013년 4월에 막을 내렸다. 기부와 토크쇼를 연결 지은 <달빛 프린스>는 그해 1월에 시작되어 단 8회 만에 종결되었다. 예능과 교양을 하나로 묶고, 공익적 차원을 더했음에도 시청률 부진의 난관을 극복하지 못했다. 더욱이 9월 방영 예정이었던 <어린이 독서왕>은 선정도서 논란으로 인해 정규편성이 중단되었다.
돌이켜 보면, 이는 예능과 교양 사이의 정체성을 잡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제목들에서부터 어느 정도 암시되었다. 비단 <달빛 프린스>라는 ‘중2병’ 넘치는 제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 읽기에 붙는 ‘즐거운’이라는 형용사나, 경쟁을 독려하는 ‘독서왕’이라는 명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제목은 TV의 책 소개 프로그램의 시계추가 교양에서 예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예능으로 거듭나다
요즘 TV 프로그램의 변화는 케이블 방송에서 시작된다. <슈퍼스타K>가 그러하고, <히든 싱어>가 그렇다. 책 소개 프로그램의 새로운 흐름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OtvN의 <비밀독서단>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 TV의 정체성이 예능으로 명확해지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2001년에 시작되어 9년을 지속한 <TV, 책을 말하다>의 본질이 교양 프로그램이라면, 2015년에 등장한 <비밀독서단>의 본질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비밀독서단>을 가리켜 책보다 재미있는 책 소개 프로그램이라고들 한다. 가령 건축가 오영욱은 “책 프로그램인데 웃겨서 좋다”고 지적한다. 맞다. 이는 명백히 책 소개 프로그램의 본격 예능화에 따른 것이다. 드디어 TV의 예능 모드에 온전히 적응한 것이다. 현재 TV 프로그램의 예능화 중심에는 이야기가 있다. 책에 대한 정보에서 이를 둘러싼 이야기로 초점이 옮긴 것이다. <비밀독서단>의 연출자 김도형 PD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자칫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독서프로그램이 ‘북 토크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책보다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김PD는 대중적인 진솔함을 <비밀독서단>의 장점으로 내세운다. 가령 책이 두껍다고 대놓고 핀잔을 주는 것도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데프콘과 정찬우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비밀독서단>, 그 중심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패널은 김범수, 예지원 등 대부분 연예인들이다). 특히 논의의 맥락을 따라잡지 못할 때에 보이는 데프콘의 반응은 웃음과 더불어 친근감을 준다.
하지만 예능으로서의 <비밀독서단>의 본질을 보여주는 이는 조승연 작가다. 신기주 기자와 더불어 <비밀독서단>의 대표 ‘뇌섹남’으로 꼽히는 그부터가 교양의 예능화에 앞장서는 것이다(실은 ‘뇌섹남’이라는 신조어이나 야말로 교양과 예능의 교차점에서 형성된 새로운 개념이다). 원래 조승연은 20대 초에 『공부 기술』 『생각 기술』 등의 저작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현재는 영어학습 콘텐츠를 취급하는 오리진보카 대표다.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훌륭하게 상업화한 셈이다. 그러니까 학문 연구자가 아니라 교육 사업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연예인 데프콘이 예능의 교양화를 이끈다면, 사업가 조승연은 교양의 예능화를 시도한다. 그가 미술사 연구를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유학파라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강조하려는 초점은 그가 사업가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상품화하는 데에 성공한 지식인 아이돌이라는 것에 있다(김정운 교수가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대학에서 근무하는 명민한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파마와 패션 등을 통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여 지식인 아이돌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교양의 상품화 속에 <비밀독서단>의 핵심이 있다.
교양, 대중, 예능
예능은 이미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예능의 시대 속에서 교양이 예능이 될 때, 그것은 동시에 상품이 된다. 이것은 교양의 대중화를 기하는 동시에 교양의 속류화를 이루기도 한다. TV의 책 소개도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나 이러한 지적은 <비밀독서단>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비밀독서단>은 책과 TV가 함께 가는 좋은 사례가 아닌다. 그러므로 예능으로서의 TV프로그램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주의 환기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TV는 감각과 육체에 말을 건네는 전자매체이며, 정념의 모드에서 결집되고 작동하는 대중에게 말을 건네는 대중매체다. 예능 프로그램이 주도하는 지금은 특히 그러하다. <비밀도서단>은 TV의 그러한 속성에 부합하는 형식의 책 소개 프로그램이며, 또한 예능의 시대에 적응한 훌륭한 사례로 인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비밀독서단>이 지금처럼 예능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 성격과 한계 안에서 작동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교양과 대중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매개로서 훌륭하게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원석 (작가. 문화연구가)
<비밀독서단>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지난해 가을, 정확하게 말하면 2015년 9월 15일 신생 케이블채널인 OtvN이 정체불명(?)의 책 프로그램 하나를 선보였다. 이름하여 <비밀독서단>. 정체불명이라고 한 이유는 그간 공중파에서 방영된 책 관련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이를테면 교양적 요소보다는 예능적 요소가 훨씬 더 많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다. 책과 예능은 사실 딱히 어울리는 조합이 아님에도 <비밀독서단>은 나름 승승장구했다. 출판계 일원들에게 자주 회자되었고, 더불어 프로그램에 소개된 몇몇 책들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2년 12월 출간된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는 출간 3년 만에, 요즘 말로 역주행을 거듭하며 한 온라인 서점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밀독서단>은 지난 1월 26일 방영된 19회를 기점으로 잠시 휴지기를 갖는다. 재정비를 거쳐 3월 중순 돌아올 예정인 <비밀독서단>의 남수희 작가와 유정숙 작가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 이어질 새로운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책의 엄숙함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장독석(장) : 주제가 ‘<비밀독서단>의 비밀’이다. 비밀이 진짜 있는가?
남수희(남) : 비밀 아닌 비밀이라면, 밖에서 보는 것보다 어렵다.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책들이 화제가 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책 판매와 시청률은 별개의 문제다. 책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많이 모았지만 생각보다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것만큼은 작가로서 인정한다. 하지만 공중파의 그것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고, 신생 채널에서, 거기다가 예능적 요소를 가미한 책 관련 프로그램이 5개월 동안 선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들이 모여서 시즌 2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겠는가.
유정숙(유) : <비밀독서단>의 최초 콘셉트는 ‘교양 없는 사람들의 교양 없는 책 이야기’였는데, 19회까지 이것만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간 공중파에 근엄한 냄새를 풍기는 책 관련 프로그램이 있었고 여전히 그런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비밀독서단> 같은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책도, TV 프로그램도 소통을 위한 것인데, 어떤 것이 소통을 잘했느냐 물을 수 있다. 대답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다만 우리는 책의 엄숙함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장 : 그래서 소개한 책의 범주가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보는가.
남 : 만화부터 잡지, 그림책, 인문학 서적까지 두루두루 소개하려고 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다룬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지만, 기존 방침은 그랬다.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별로 쓸데없는 책까지 조명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 : 하긴 그렇다. 누군가는 자기계발서 무용론을 펼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화제를 바꿔보자. 예능적 요소를 가미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출연진의 구성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출연진들의 반응은 어떤가.
남 : 이것도 오해라면 오해인데,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책을 다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출연자가 책을 정말 열심히 읽어왔다. 화면에 잡힌 책을 본 적이 있을 텐데, 모든 출연자들의 책이 너덜너덜까지는 아니어도 많이 읽힌 후 모습 아니던가. 연필로 줄도 긋고, 접기도 하고 아무튼 열심이었다.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는데 ‘책 안 읽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읽어온 관점’이 오히려 신선했다. 그게 젊은 시청자들을 독자로 유입하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단번에 출연 결정을 해준 출연자들에게 감사한다. 어렵고도 낯선 이야기를 대중의 언어로 소통해주었다는 점에서 모든 출연자들이 <비밀독서단> 흥행요인이다.
장 : 젊은 시청자들을 독자로 유입했다? 어떤 면에서?
유 : 방송 훔 몇몇 서점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비밀독서단>을 보고 책을 구매한 사람들 중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유입된 독자들이 많다고 한다. 젊은 세대가 대부분인데, 애초에 우리가 생각했던 지점이다. 원래부터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우리 프로그램에서 별반 얻을 게 없다. 하지만 책과 거리가 멀던 사람들이, 혹시라도 출연진들이 좋아서 <비밀독서단>을 본, 종이책에 향수가 없는 혹은 스마트폰 등 짧은 글에 익숙하고 책과 친하지 않은 젊은 세대가 책에 관심을 보이고, 구매로까지 이어졌다면 그것만큼 바람직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남 : 부연하자면 윈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금 발견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존 책 프로그램은 그것대로 역할을 하고, 우리는 새로운 층을 책 환경으로 유입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일부러 다양한 책, 다양한 내용을 방송에 넣어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책 선정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신중의 방향이나 기준이 달랐던 거지, 우리가 신중하지 앟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애초의 콘셉트에 맞게 우리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을 따르다 보니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책 선정 기준은 시청자의 취향
장 :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유 : 요즘 말로 우리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것이다. 일단 <비밀독서단>의 성향은 ‘방송, tvN, 예능’이라는 범주 안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청자는 딱딱하고 근엄한 내용을 원하지 않는다. 그걸 원한다면 공중파 책 프로그램을 보시면 된다. 우리는 우리 시청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책을 찾는 데 노력했다. 이를테면 고전이나 어려운 인문학 텍스트를 좀더 쉽게 설명한 책들이다. 이 같은 책 선택이 표면적으로 보면 책 선정에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들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장 : 사실 책을 선정하는 일은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일이 많은 지난한 과정이다. 본질적인 부분보다 비본질적인 부분이 더 크게 작용할 때도 많고.
남 : <비밀독서단>은 거의 하루 종일 녹화를 한다. 녹화에만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출연진부터 작가들까지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기쁘게 이 시간을 견뎠다. 10명의 작가들이 한 주에 100권이 넘는 책을 검토했다. 작가 개인으로 보자면 힘에 부치는 일이었고, 제작비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케팅이 활발한 출판사들은 책을 보내주셨다. 감사한 일이지만 이 대목에서 오해가 쌓일 수 있을 것 같아 공문을 보낸 것이다.
장 : 모 매체에세서 이를 비밀공문이라고 했던 기사가 있었는데.
남 : 비밀공문은 말도 안 된다. 다만 출판사로부터 책을 추천받는다는 의혹이 있는 것 같아 책의 임의 발송을 중단해 달라는 협조를 요청한 공문이었다. 초반에 출판사에서 추천 리스트를 보내주긴 했지만, 선정에 반영된 적은 없다. 그랬다면 일파만파 퍼졌을 것이고, 프로그램이 19회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더욱 시즌 2는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나름 열심을 내서 <비밀독서단>을 만든 이유는 교양이 아닌 예능을 가미한 책 프로그램이 지금 이렇게 엎어지면 향후 10년은 만들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과거 예능을 표방한 책 프로그램이 몇 회를 넘기지 못하고 종영한 일이 있지 않은가.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우리가 건강하게 출판계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출판계에 도움을 요청한다
장 : 출판계와 건강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 어떤 게 있을까?유 :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책을 선정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우선은 공신력 있는 출판계 기관 혹은 단체와 협력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남 : 순진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책 선정의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터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도움을 구할 창구가 없다는 것이 막막하고 답답하다. 협력할 건 협력하면서 <비밀독서단>이 출판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출판계도 이 부분을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
장 :이렇게 불러도 될까 모르겠지만 ‘시즌 2’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남 : 아직 윤곽을 잡지 못했다. 다만 우리가 생각했던 애초의 콘셉트 즉 ‘교양 없는 사람들의 교양 없는 책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사실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시즌 2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 것은 출판계는 물론 사회 전반의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시즌 2에서 실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과거에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독서 캠페인성으로 진행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예능적 요소가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는 출판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고간 이야기가 많다. 지면에 못 옮길 만큼 적나라한 이야기도 있었고, 때론 스치듯 지나가는 이야기에 많은 함의가 내포되기도 했다. 성공적으로(?) 첫 시즌을 마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비밀독서단> 시즌 2가 부디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취향을 다시금 저격해주기를 기대한다. 책의 발견성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지금, <비밀독서단>을 통해 새로운 독자들이 유입되었다는 것은 반갑기 그지없는 일 아닌가. <비밀독서단>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을지라도 출판계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월 중순이라고 했던가. 벌써부터 <비밀독사단>의 새로운 모습을 기다리게 된다.
장동석 기획회의 편집주간
예능에서 한 수 빌려올 수 없을까
2003년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이후 이렇게 화제가 된 책 관련 프로그램이 있었던가. 신생케이블 채널 OtvN에서 지난해 9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비밀독서단>은 평일 오후 4시 방송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언급된 책들이 잇따라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면서 ‘염까지 했던’ 책들에ㅔ게 응급소생술을 시키고 있다. <비밀독서단>이 출판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없을까.
수준을 강요하지 않는 책 소개
‘교양+오락’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공익 목적의 독서’를 주장하는 교조적인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케이블 예능이니 <TV, 책을 보다> 같은 ‘음전한’ 콘텐츠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학평론가와 교수, 작가를 걷어낸 자리에 예능인과 배우 등 ‘허술해 뵈는’ 비밀단원들이 꿰차고 앉아 독자 눈높이에서 좋았던 구절을 가볍게 이야기하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비밀독서단>의 포맷은 다음과 같다.
매주 ‘갑질에 고달픈 사람들’ ‘사랑이 어려운 사라들’ ‘부모님께 죄송한 사람들’ ‘시간 없어 여행 못 가는 사람들’ ‘입만 열면 손해 보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 ‘책’을 정한다. 그다음에는 이문열 작가, 박재동 만화가, 어수웅 문학기자, 공병호 경영전문가 등 명예 자문위원단이 추천한 책에 제작진과 시청자들이 추천한 것을 합쳐 약 100여 권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이 가운데 비밀독서단이 읽고 싶은 책을 1차 후보책으로 골라 4~5권씩 방송에서 소개하고, 책에 대한 토론을 한 뒤 최종 해결책 1권을 선정해 ‘북 크로싱Book Crossing'을 통해 전달한다.
북 크로싱이란, 책을 읽은 후 책 속에 메시지를 적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게하는 것, 2회 방송에서 소개한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는 출간된지 3년 동안 잠잠하다가 방송 후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현재 15쇄를 찍었다. 시집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은 10년 만의 일. 판매 부수는 기존 1500부에서 두 달 만에 4500부로 뛰어올랐다. <비밀독서단>은 최근 몇 년 동안이나 출판사들이 해내지 못한 완판과 증쇄를 거듭하며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과 짧은 스토리텔링
11월 2주 베스트셀레에는 배우 유아인이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심보선 시인의 2008년작『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가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후 9위에 새롭게 진입했다. <비밀독서단>에 소개된 황정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민음사)는 방송 이후 일주일간 9000부 이상 판매되면서 14위로 순위권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고, 만화라는 이유로 데프콘이 ‘애정했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라이팅하우스)는 각종 서점 차트에서 만화주간베스트 1위에 올랐다. 예스24 1월 2주에는 <비밀독서단>이 새해에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한 『파이브』(앵글북스)가 새롭게 5위에 올랐다. 이 책은 5년 후 나의 미래를 그려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월 첫 주 ‘2016 새해에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문학동네)도 순위권에 올랐다. 서효인 시인의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다산책방)는 17일 방송 이후 1만 부 이상 팔렸고, 2화에 소개된 브렌다 쇼샤나의 2014년작 『남자는 나쁘다』(쌤앤파커스)의 경우, 전혀 판매되지 않다가 방송 후 재판을 찍었다. 3화에 소개된 사진집 『윤미네 집』(포토넷)은 현재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이외에도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황금가지),『장난아닌 장난감 피규어』(지문당), 『자본에 관한 불편한 진실』(아라크네), 『악당의 명언』(아르고나인미디어그룹), 『레토릭』(청어람미디어) 등 수준과 취향 상관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책이 대중들의 관심을 얻었다. 교보문고가 <비밀독서단>에 등장한 책의 구매 결과를 조사한 결과, 올해 구매 이력이 전혀 없던 고객 중 55%가 방송 후 책을 구매했으며, 전월 구매 이력이 없는 회원 중 60%가 방송 후 책을 구매했다.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을 염려해서인지, 얼마 전 제작진이 “책 선정에 일체의 외부 추천은 철저히 배제한다”는 내용으로 각 출판사에 ‘업무 협조 관련 고지’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채널 늘릴 수 없을까
신간이 1쇄(2000부)도 안 팔리는 지금, <비밀독서단>의 성공 공식을 출판계는 어떻게 빼먹을 수 있을까. 첫째, ‘내 생활과 가까운 해결책’을 주제로 정했다는 데 있다. 비밀독서단은 그간 ‘음모론’ ‘여행’ ‘영화 원작’ 등을 다양하게 다뤘는데, <응답하라 1988>이 화제가 되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끈 책’을 주제로 책을 선정하는 식이다. ‘갑질’ ‘불안감’ ‘늘 당하는 소심함’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 등 해결책의 주제가 되는 테마는 대중과 가깝게 느껴진다. 한 권을 통째로 지겹게 보여주는 대신, 에센스만 골라 소개하고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한 딱 한줄의 ‘생명줄’을 공개하면서 요약해준다. 특이점은 장점뿐 아니라 ‘별로였다’ ‘이해가 안된다’는 식으로 솔직하고 진솔한 감상평과 반론도 함께 공개된다는 점이다.
둘째, 책 소개가 마치 카드뉴스나 예고편을 CG와 콩트처럼 보여주는 지상파 영화 소개 프로그램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책으로 가득 찬 서재를 휘몰아치는 타이틀롤부터 화려하게 시작되는 컴퓨터 그래픽은 토크 종종 패널들의 머리 위에 종이 넘어가는 이모티콘, 적재적소에서 웃음 포인트를 폭발시키는 화면 캡션은 ‘마리텔’ 세대의 눈길을 잡아둔다.
셋째, 전문가는커녕 책과 거리가 멀 듯한 친밀한 인물들 테프콘, 예지원, 정찬우 등을 메인 MC로 선발해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 것을 들 수 있다. 기존 책 소개 프로그램은 패널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엄숙하게 줄거리와 시대 배경을 소개하고 웃음기가 싹 가신 상태에서 서로 토론을 벌이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비밀독서단>은 나와 같은 수준의 질눔능ㄹ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패널들 덕에 위하감을 느끼지 않고 TV를 시청하게 한다.
여기에 패널들의 톡톡 튀는 예능감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돋운다. 조승연과 신기주의 보일 듯 말 듯한 지식 경쟁 모드, 글자라고는 랩밖에 안 읽을 듯한 데프콘의 ‘순뇌’ 매력, 예지원의 엉뚱하게 치고 들어오는 매력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예지원과 데프콘, 김범수가 일반 사람들이 할 법한 우스개 인트로를 늘어놓으면 신기주가 저자의 생각과 내용에 대해 간략히 분석하고, 여기에 조승연이 시대적 배경과 독서 팁을 정리해준다.
마지막으로는 ‘지루함을 없앤 구성’을 들 수 있다. 한 시간 내내 한 권을 독파하는 대신, 4~5권의 책의 에센스만을 뽑아 전체 주제에 부합되는 내용을 골라 쓴다. 기존 책 소개 프로그램처럼 책의 처음부터 읽거나 전체 줄거리를 요약하는 대신, 페이지 커버와 목차 중 흥미로운 곳을 찾아 바로 OO페이지의 흥미로운 부분으로 이동,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이렇듯 ‘독서’라는 내밀한 취미를 ‘공익’ 대신 다채널 미디어를 활용한 ‘예능’으로 접근해 인기를 얻은 <비밀독서단>은 취향을 큐레이션하는 ‘인포테인먼트’로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켰다.
출판사와 책에 대한 팬덤을 형성시키는 것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낭독의 발견>이 폐지될 때 아쉬워하던 마니아 중 한 명으로, <비밀독서단>의 흥행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싶지는 않다. 수십 년을 버텨온 문예지가 폐간 혹은 휴간되는 것을 볼 때, 빛을 못 보던 양서가 ‘반짝 흥행’을 기록하는 것이 무에 나쁘겠는가. 물론 예능 한 번 출연으로, 몇 년간 잠잠하던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호들갑스러운 여론의 반응에 그간 출판계가 지닌 척박한 환경이 드러난 것 같아 뒷맛이 쓴 것도 있다. 여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국내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들(도서정가제 위반, 표절 시비, 한국문학의 폐쇄적 시스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대기업 마케팅),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행위가 저 위의 천상계 활동처럼 여겨져서는 지금의 열풍을 지속시킬 수 없다.
<비밀독서단>은 시청자들의 현실적 열망이 담긴 주제들로 매번 해결책의 테마를 정했다. ‘한국 문학 안 읽은 지 오래된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 ‘1998에 응답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 ‘읽은 듯 안 읽은 제목만 아는 분들을 위한 해결책’. 그리고 마치 원탁의 기사들처럼 지하계의 명예단원들이 책을 추천했고, 그것을 최종적으로는 북 크로싱을 통해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다. 통통 튀는 현실적 주제를 위한 ‘해결책’의 바탕 아래 여러 권의 책을 추천해 그중 구체적인 페이지를 펼쳐 패널들과 지극히 현실적인 토크를 나눴다. 책 선정 과정 역시 최근 발간된 베스트셀러는 적당히 피해가면서 ‘광고성’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킨 채 신선함을 유지하고, 책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독서토론이라는 행위 자체가 지닌 활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돌아가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안 읽고 안 들을 수가 없다. 그들의 다이내믹한 토론을 듣고 있으면 책을 한 권 다 읽은 듯한 느낌과 함께, 한번 사봐야겠다고 다짐하며 장바구니를 누르게 되는 것이다. 좋은 책을 꾸준히 내도 그 가치를 공유해주는 독자와의 소통이 없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지나치게 가볍다’ ‘지나치게 얕다’는 비판에서 ‘책 읽으세요’ 식의 진지한 캠페인이 아닌 재미를 통해 독자를 감동시켜 출판사와 책에 대한 팬덤을 형성시키는 것이 <비밀독서단>에서 배워올 수 있는 전략 아닐까.
박찬은 매경시티라이프 기자
책은 선택되고 있는가
2014년 11월에 나온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는 출간 두 달여 만에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이후 45주째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짛며 국내 최장기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만들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줄곧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셈이다. 좋은 책이 일정 기간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얻는 현상을 그 자체로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출판산업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출판기업에 자본을 집중시킴으로써 그 자본이 이후 해당 출판사의 다양한 양서 출간과 마케팅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게 한다. 또한 당대의 수많은 저술가들과 출판기업들에 출판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기도 한다. 이는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출판 생태계의 유지에 긍정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베스트셀러의 긍정적 영향은 출판산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미친다. 이른바 베스트셀러의 사회학이라는 차원에서 주목되고 분석되는 사회적 이슈는 콘텐츠 미디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거나 나아가 사회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 베스트셀러는 특정한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정량적으로 가시화시키는 특유의 효과가 있다. 출판산업이 전체적인 산업규모에 대비해 지대한 사회적 관심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정확한 시점까지 적시할 수는 없지만, 최근 몇 해 동안 극소수의 베스트셀러 도서에 판매가 집중되는 현상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그 편중성이 지나치다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5만 종에 가까운 신간도서들이 발행된다. 정확한 종별 판매 데이터까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2015년 신간 도서(2014년 11월 이후 출간도서 포함) 중에서 10만 권 이상이 판매된 베스트셀러는 8권 정도로 추산된다. 2015년도 예스 24의 종합베스트셀러 순위를 살펴보자.
첫댓글 기획회의 409호가 특집으로 <비밀독서단>을 다뤘습니다.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