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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스는 처음 카페에 올린 코스는 삼거리봉에서 국토종주 MTB자전거 도로(구 임도)를 이용하여, 솥고개로 진입하여 도초산(道草山)으로 산행하는 코스를 안내하였는데, 개비리길이 개통되어 많은 산행인들이 산행을 하면서 지금 소개하는 코스로, 산소에 다니고 나무하러 다니며 산약초 캐러 다니던 옛길을 찾아 다니게 됨으로서 지금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밟지 않고 소나무 숲속으로 도초산으로 오르는 지름길이 만들어 졌다는 소문을 듣고 실제 현장을 답사하여 기존의 제3코스를 완전히 수정하여 새로 올림을 밝힙니다.
제3코스는 창나리(창나루)주차장 - 개비리길-영아지주차장 3.0km-마분산 삼거리봉 1.0km 계 4.0km의 코스를 거치거나, 아니면 창나리주차장-마분산길-마분산 삼거리봉(약 1.5km)을 거쳐서 도초산 정상-용암산(또는 솥고개-금장골)-창나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총연장 거리로, 창나리-마분산-도초산-창나리는 5.5km 내외, 창나리-개비리길-마분산 삼거리봉-도초산-창나리는 약 8.0km 정도의 코스다. 시간 일정에 따라 어느 곳을 경유 할 것인가는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편의상 마분산 3거리봉에서 출발하여 도초산(道草山)을 거쳐 처음 출발한 창나리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안내 합니다. 그리고 개비리길로 코스를 잡아서 삼거리봉에 도착하였으면, 마분산 정상이 여기서 200m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정상을 다녀와서 도초산으로 출발한 단체가 많이 있음을 첨언 합니다.
해발170m 마분산 삼거리봉에서 동편을 향하여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솔밭 길이, 한 사람이 지나 갈 정도의 좁은 내리막 길이 소나무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제쯤 지나갔는지 나무에 매단 리본이 많이 퇴색되어 있습니다. 이런 리본은 곳곳에 수 없이 매달려 있습니다.
숲길 좌측으로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이 길은 처음 임야를 관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임도 (林道)였는데, 4대강 사업과 함께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만들어 지면서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 구간으로 변경되어 자전거 라이너들이 애용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과 산림관리원들의 차량도 간혹 다니는 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도로는 경사가 심하고 산 모퉁이를 휘돌아 도는 구간이 많아 전방 확보가 불량하여 보행자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길입니다. 자전거 라이너들에 따르면 경사가 워낙 심하고 전방 확보가 어려워 초보자들은 끌고 고개를 오르거나 내려가야하는 "마의 구간"이라고 합니다. 처음 계획은 남지 개비리길을 국토종주 자전거길로 계획하였는데 많은 환경단체를 비롯한 여론에 따라 개비리길은 보존하게되고 기존 임도를 자전거 길로 지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삼거리봉에서 100m 정도 내려오면 처음 만나는 묘소가 있습니다. 묘소(墓所)에 도착하기 5-6m 전방 거리에 3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먼저 윗길로 안내하면 묘소를 지나서 곧바로 200여m 가면 자전거도로(임도)로 내려서게 됩니다(위 지도의 흰 점선). 여기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계속하여 내려가다가 솥고개로 올라가서 도초산으로 가는 방법과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점선을 따라 자전거도로로 100여m 내려오다 다시 우측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위 삼거리길에서 아랫길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묘소 앞 삼거리길에서 윗길로 가지 말고 아랫길로 450-500여m 계속 진행하면 알개실산(용산산) 앞의 전망대 쉼터에 도착하게됩니다.
이 전망대는 전방이 훤희 틔여서 알개실 마을과 골짜기 그리고 창나리 출발지가 보이며 그 앞의 낙동강과 낙동강을 끼고 길게 뻗어 있는 아흔아홉봉의 용화산( 龍華山)을 정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용화산 아흔아홉 봉우리에는 9마리의 용이 살아 승천하였다는 전설과 함께 「간송 조임도(澗松 趙任道. 본관 함안)」선생이 지어서 수학하던『 합강정( 合江亭)』과 『두암 조방(斗巖 趙邦)」선생의 『반구정(伴鷗亭)」이 있습니다. 간송 선생은 생육신(生六臣)의 한분이신 「어계 조여(漁溪 趙旅」선생의 6세손(世孫)으로 함안조씨 간송파 파조(咸安趙氏 澗松派 派祖)입니다. 간송선생은 여현 장현광(旅軒 張顯光)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퇴계학(退溪學)을 공부하였으며, 성장하여 남명학파(南冥學派)로 혼례를 하여 평생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영남학파(嶺南學派)의 두 계보인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화합을 위하여 노력하신 당대의 영남학파 최고의 학자로, 선생이 거주하시던 생가가 현재 남지읍 용산리에 있으며 후손이 관리하고 있습니다.또한 두암선생은 간송선생의 친숙부(親叔父)이시며 함안조씨 두암공파 파조입니다. 두암선생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여하고 전란이 끝나자 남지 대교 아래 말바위(斗巖)에 반구정을 지어 갈매기를 벗삼으며 강 건너 망우당 곽재우 의병장의 망우정을 쪽배로 왕래하며 서회(叙懷)하며 만년을 보내신 분입니다. 말바위의 반구정은 오랜 세월 풍상에 훼철되어, 후손들이 용화산의 고려시대 청송사 옛터에 반구정을 지어 조방 선생의 묘사제실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개실마을은 동쪽의 용암산(龍巖山)과 서쪽의 마분산(馬墳山) 사이의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로, 조선 말까지만하여도 마을 안쪽까지 강물이 드나들어 개실(憩室)을 이루어 커다란 늪이 있어서 오리와 거위들이 많이 살았으며, 또한 용암산 남쪽 끝에는 독산(獨山 홀로 떨어져 있는 산)이 있는데 이를 용(龍)알(卵)산(山) 또는 용의 여의주로 불러지기도 하며, 마치 똥(糞) 무더기처럼 생겼다하여 똥뫼 또는 독뫼(獨山)라고도 불러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용의 알 또는 거위나 오리의 알이 있는 개실이라는 뜻에서 『알개실』이라 불리어지고 있는데, 알(卵 알) 개(浦 강이나 내에 물이 드나드는 곳) 실(谷 골짜기. 홈통. 室 방. 거처)로 옛 문헌에 알포동(謁浦洞=알개실)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자로 아곡(鵝谷 거위아. 계곡곡)으로 쓰고 있어서 거위가 사는 계곡의 뜻이 있으며, 조선조 말에 아곡동(鵝谷洞)으로 관가에서 사용하였으나 근래에는 아(鵝)자가 복잡하므로 간편하게 아곡(阿谷)으로 쓰고 있습니다.
용암산(龍巖山)은 용산리 서북쪽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 높이가 90m로 도초산의 서쪽 줄기로 알개실 마을의 동쪽 앞산이 됩니다. 산줄기가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굽어들어 낙동강을 앞에 두고 멈추었으며, 여기에 용의 여의주라하는 똥뫼(獨山 독뫼)가 있습니다. 용이 강물에 사는 형상이라 마을이 흥한다고 하며 간송 조임도 선생의 생가와 고(故) 신영주 국회의원의 생가가 있습니다.
또한, 용알산에 대해서는 『세종실록』 ‘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기록과 기음강용단(歧音江龍壇) 사전(祀典)에는 용알산의 가야진명소(伽倻津溟所)의 용단(龍壇)에 봄과 가을에 나라에서 칙사와 향촉을 보내어 영산 현감이 강신(江神.龍神)에게 강의 범람을 막고, 날이 가물면 기우제를 비롯한 수운(水運)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지의 『낙동강 용왕제』의 기원이 가야진명소(伽倻津溟所)의 용단(龍壇)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산행을 시작합니다. 전망대 동편으로 가드레일이 끝나는 위치에서 우측 산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소나무 숲속으로 이어진 길로 300여m 전진하면, 두번재 3거리 갈림길이 나타 납니다. 먼저 윗길로 200여m 가면 동래정씨 묘소를 지나서 자전거 도로에 닿게 됩니다.(아래 그림 참조).낙동강종주 자전거도로를 따라(그림의 흰 점선) 370-400여m를 내려오면 자전거 도로 표시판(그림 참조)을 지나 우측으로 솥고개로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50m 정도 거리의 고개 마루가 솥고개 입니다. (이 길은 둘러서 가는 길로 자전거도로 이므로 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낙동강 자전거길 이정표를 지나면 우측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길 아래에는 큰 배수관이 뭍혀있다.(그림의 붉은 원) 이 길로 50여m 올라가면 솥고개에 도착한다.
다음은 아랫길에 대하여 설명드립니다. 전망대에서 300여m 전진하여 만나는 3거리길에서 울창한 소나무 숲 오솔길을 따라 갑니다.
얼마를 왔을까요? 이 길에 들어서고 처음 만나는 묘소가 넓게 묘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00여m를 전진하면 솥고개에 도착합니다. 묘역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서 묘소를 보호하기 위하여 우회 길을 새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덤 옆으로 지나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10여m 나아가면 좌측 동편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도초산 정상과 산불 감시 초소가 보입니다.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여 도초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동쪽으로 향하는 오솔길 구간에는 많은 리본이 매달려 있고 북측(좌측)으로 낙동강종주 자전거도로가 시야에 들어 옵니다. 윗길로 간 사람들이 자전거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입니다. 북측(좌측)으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2m도 넘는 큰 키로 하늘을 떠 받들고 있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는 밤나무 과수원 울타리이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없는 곳에는 흑염소가 도망가지 못하게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염소를 키우던 막사가 풍상에 허물어진 형태도 보입니다. 동쪽 하늘 소나무 숲 사이로 도초산 정상에 있는 산불 감시 초소가 보입니다. 울창한 소나무 숲속 오솔길이 구불구불 정감있게 길게 이어져 솥고개에 도착합니다.
『솥골(정곡 鼎谷)은 신전마을 남쪽에서 알개실로 가는 고갯길이 있는 골짜기로, 이 골짜기 모양이 솥(鼎 솥정) 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이 골짜기의 고갯길을 솥 고개라 한다.』고 창녕군 지명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토리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흙길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솥고개는 성사리. 신전리 주민들이 알개실로 왕래하는 중요한 고개로 지금은 신전(임도) 알개실(아곡) 도초산. 방추산, 마분산. 개비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4거리 고개입니다.
옛 사람들이 솥고개에서 창나리로 다니던 길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솥고개에서 알개실로 가기 위하여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100여m 내려가면 더 이상 길이 없어 앞으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지도의 점선부분). “국가유공자 묘역”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묘역 앞으로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 묵혀둔 농지를 따라 금장골(솥고개에서 500m)을 지나 창나리로 갈 수가 있습니다. 솥고개에서 창나루 입구까지 약 1.7km 정도됩니다.
아래 그림을 참고 바랍니다.
솥고개에서 도초산-정상 코스에 대해 설명드립니다.
솥고개에서 도초산으로 오르는 길은 50여m는 1차선 차도 큼이나 넓게 만들어져 탱자나무 울타리를 끼고 뻗어 있습니다. 정상까지 500여m 내외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두곳의 갈림길이 있어서 3거리길을 이루고 있습니다. 300여m를 올라가면 첫번째 갈림길입니다. 여기서 직진하면 좌측으로 도초산 정상으로 가는 60-70m의 급경사길로 잘 통행하지 않는 길입니다. 따라서 우측길로 진입하여 30여m 전진하면 도초산에서 내려오는 길과 용암산으로 가는 3거리 갈림 길입니다. 도초산 정상을 조망하지 않고 용암산을 거쳐 창나리로 갈려면 우측길을 따라 가면 됩니다. 좌측길을 따라 30여m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긴 능선이 소나무 숲에 쌓여 있고 소나무 삼림 너머로 도초산 정상이 보입니다.
정상에는 산불 감시 초소가 있고 11월부터 4월 말까지는 산불 감시원이 주간에는 상근을 하고 있습니다.
도초산은 남지의 진산으로 창녕군 지명지. 남지읍지 등의 기록에는 높이 172m로 기록되어 있으나 고도계로 측정하면 180m가 넘습니다. 정면의 남지읍 전경과 푸른 낙동강과 함안군의 칠서공단 아흔아홉봉의 구진산 그리고 남서편으로 남강이 낙동강 품으로 합류되는 기음강(걸음강) 그리고 마분산의 각 봉우리와 삼거리봉 북서편에는 멀리 곽재우 의병장이 왜적과 아홉번 싸워서 아홉번을 승리했다는 구진산 그리고 성사리의 223m 우슬서봉과 그 앞의 우슬봉을 조망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편으로는 낙동강을 따라 곽재우 장군이 생애 마지막 16년을 두 아들과 거주한 망우정과 낙동대교 그리고 창녕함안보와 그 아래 옛 날에는 바닷물이 닿았다는 임해진(臨海津) 나루 아래까지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으며, 북쪽으로 옮겨가면서 도천면 영산면과 영취산 그리고 계성공단과 창녕읍 시가지와 화왕산을 한 눈에 조망 할 수가 있으며, 맑은 날씨에는 지리산과 가야산등에 이어진 높고 낮은 수많은 봉우리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망권이 좋기 때문에 이곳 산불감시 초소에서는 강 건너 함안군과 의령군 일대의 감시 사각지대의 산불을 감시 할 수 있어서 3개군이 상호 산불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도초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은 동쪽으로는 봉추산-남지 시가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덕동. 홍정마을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용암산(龍岩山)을 거쳐 개비리길 입구인 창나리 마을로 되돌아 갈 수 있으며, 서쪽으로는 마분산과 우슬봉 그리고 개비리길로 이어집니다. 봉추산 가는 길은 봉추산 편에서 설명 하기로 하고, 용암산을 거쳐서 창나리로 가는 길에 대하여 설명드립니다.
도초산 정상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 150-170m 내려와 첫번째 갈림길(급경사면으로 통행이 적은 길로 낙엽이 덮이면 구별이 어려울 수도 있음)에서 남쪽(좌측) 길로 조금 내려오면 다시 3거리 길에서 직진(우회전)하는 길로 남쪽으로 정중앙 능선을 타고 계속 직진하면 창나리에 도착 합니다. 도초산 정상에서 창나리 주차장까지는 총 1.7km 내외입니다.
도초산과 솥고개 사이에 만나는 두번째 갈림길입니다.
여기서부터 용암산 가는 길로 도초산에서 내려오며 용암산(龍岩山)으로 가는 길과 만나게 됩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길게 이어져 있는 곁으로 오솔길이 있습니다. 탱자나무 좌측은 용산리 본 마을이고, 우측은 알개실(아곡)마을 입니다.
이내 용암산 정상을 지나면 이 묘소와 만나게됩니다. 여기에서 좌측 방향 즉 용산 본마을 쪽은 동편으로 양지바른 곳으로 밭농사를 짓던 곳으로 지금은 경작하지 않고 방치된 토지와 묘소가 있을뿐이며 큰 나무는 없고 딸기나무 찔래. 땅까시나무. 쑥. 억새 등 숙근초와 작은 나무로 뒤엉켜 있어서 통행에 아주 어려움을 격게되었습니다.
반면에 묘소에서 우측의 리본을 따라 용암산 정중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로 숲속이 훤히 뚫려 보행하기에 좋았습니다. 이 곳은 아직 많은 사람이 통행하지 않아 리본이 듬성 듬성 있고 길 또한 낙엽에 덥혀 있어서 좀은 방황하였으나 창나리가 내려다 보여서 쉽게 내려 올 수가 있었습니다.
동편의 묘소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로 잡초에 묻혀 있어 통행에 불편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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