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지수(明鏡止水):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이르는 말
춘추 시대, 노나라에 왕태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와 맞먹을 만큼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는 불만스럽다는 듯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올자(형벌에 의해 발뒤꿈치가 잘린 불구자)는 어째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울 대신 비쳐볼 수 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 아니라 가만히 정지해 있는 물이니라.” - 장자(莊子) 덕충부편(德充符篇) –
톨스토이는 “덕이 있는 사람이란 자기 인생의 의의(意義)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인생의 의의를 알고 있는 덕 있는 사람이 곧 명경지수가 아니겠는지요? 자기 인생의 의의를 아는 사람은 결코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자기 인생의 의의’를 알게 되는 것을 일컬어 소명(Vocation)이라고 합니다. 소명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 가지고 계신 계획을 의미합니다. ‘내적 부르심’이라는 말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고, ‘인생의 목표’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사도 바울의 소명은 ‘이방선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무단히 노력을 합니다. 선교를 다니면서 박해를 받아 죽을 고비를 한 두 번 넘긴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생계를 위해서 천막 짓는 일도 합니다. 물론 동역자들을 만나 생계를 해결하기도 하지요.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직업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이러 저러한 것들이 동원될 뿐입니다. 소명을 받았던 사도 바울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한 곳만 바라보았습니다. 마음이 집중되니, 마음이 잔잔하니, 세상 풍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을 통해서 명경지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여기에 등장하는 ‘부르심을 받은’이 바로 소명입니다. 하나님께 소명 받은 사람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영어로 ‘fix your thoughts on Jesus’인데,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릴 때 ‘소명’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나의 인생의 의의를 도대체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소명이 흐려질 때 우리의 마음은 소명이 흐려진 만큼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명이 분명할 때 우리의 마음은 소명이 분명한 만큼 고요해질 것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답게 자기 인생의 의의를 분명히 깨닫고 사는 ‘명경지수’의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