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다(히 5:13-14).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시기, 분쟁, 자기 자랑, 교만, 형제를 판단, 이런 저런 가르침에
잘 동요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보다는 육신의 소욕을 더 따르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고 육신의 소욕보다는 성령의 소욕을 더 따르는 사람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갈 5:16-18 참조).
신령한 은혜를 많이 체험하고, 은사 체험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금방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체험은 신앙 성숙의 정도와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시거나
사모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구분해야 한다.
-신령한 사람 (프뉴마티코스. a spiritual man) (고전 3:1)
신령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통상적으로 예언의 영이 있어서 사람의 과거나 미래를 잘 알아 맞추는 사람을
신령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바로 고린도 교인들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을 아주 귀한 것으로 여겨서 방언하는 사람은 천국의 모든 것을 누리므로
자기들이 할 일은 이제 천국 가기만 기다리는 되는 사람으로 착각하여 교만하게 여기면서
말썽을 부렸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장 및 14장에 걸쳐서 방언 보다는
예언이 공동체를 위해 유익하며, 아무리 좋은 은사를 가졌더라도 사랑의 동기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르쳤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기적행하는 은사가 뛰어나면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신령한 사람’이란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아무리 뛰어난 은사나 학식을 가졌더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의 동기로
사용하지 않으면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신령한 사람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이다.
이들은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고전 3:2; 히 5:13-14), 성숙한 신앙인,
그리스도가 실제 삶의 주인이 된 사람이다. 성경에서 ‘신령한’(spiritual) 또는 ‘영적’이란
말은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 영의 사람이란 말은 육신의 생각이나 욕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은 아무리 구원을 받았어도 사람 자체가 신령하거나
영적일 수는 없다.
육신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의 특징 비교
‘육신에 속한 즉 영적 어린 아이’와 ‘영적으로 성숙한 신령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걸 제대로 하려면 성경 전체를 다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고 중요한 것 20가지만
뽑아보았다.
각자가 신앙성숙도를 체크할 수 있도록 채점표도 만들어 보았다.
☞<신앙 성숙도 채점표> 첨부파일 : 자료-신앙 성숙도 채점표.pdf
각 항목에서 우수(5점), 양호(4점), 보통(3점), 미흡(2점), 부족(1점)으로 하여
자신의 영적 성숙도를 채점해 보라. 그리고 ‘부족’이나 ‘미흡’을 받은 부분은
한꺼번에가 아니라 한두 개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회개하고 반대되는 좋은 것으로
채워라. 중간에 흔들리지 않고 한두 달만 집중적으로 하면 급속한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1.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오히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
이런 사람은 조금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조금만 은사를 가지면 마치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알고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교만과 열등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떤 사람은 열등감을 은폐하기 위해 교만할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여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다(빌 3:7-9). 은사 자랑하는 사람, 학식 자랑하는 사람, 전통 자랑하는 사람, 소유
자랑하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3-5).
2. 육신에 속한 사람은 파벌과 당을 잘 짓는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사람이나
조직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긴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신자들 중에서도 나는 어느 유명한 목사의 교회 다닌다, 어느 유명한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은근히 자기를 내세우는 것을 자주 본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고
사람을 내세우는 사람이 바로 육신에 속한 사람이다(고전 3:2-9).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소속한 교파에 지나치게 치중하여 자기 교파에
대한 충성이 예수에 대한 충성이고, 자기 교파의 확장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편 가르기는 나 밖에 모르는 우상숭배와 유교 문화의 잔재이다.
나의 연장이 가족, 지연, 학연이고 이것이 집단이기주의로 빠진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내 것 못지 않게 남의 것, 남의 것 보다는 하나님의 것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3.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강하다(고전 3:3).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남을 높이고 수용한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이조 5백 년의 역사는 시기와 모함으로 점철된 당파 싸움의 역사이다. 시기와 질투는,
탐욕과 정욕 못지 않게 인간에 내재한 죄성이지만, 한국 사람에게 심하며 교회의 중직은
물론 사역자들 사이에서 더 심하다.
성경은 시기와 질투는 분노 보다 더 악독한 것이라고 기록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 14:30).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 27:4).
“이는 그(빌라도)가 그들(제사장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마 27:18).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행 5:17).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행전 7:9).
게(crab)는 뚜껑이 없는 큰 통에 넣어두어도 도망가지 못한다고 한다. 한 놈이 도망가려면
다른 놈이 그 놈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시기와 질투가 강하면 나보다 낫거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끌어내리고 깎아내린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여호수아를 내세운 갈렙, 바울을 내세운 바나바처럼 겸손하게 처신한다.
4. 육신에 속한 사람은 걱정과 근심, 염려와 두려움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심령 천국을 누린다.
염려와 불안도 죄다. 하나님 보다는 문제를 더 크게 여기고, 주님에 대한 믿음 보다는
내가 모든 것을 주관하려다 보니 생기는 죄악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필자는 염려와 불안도 (믿음 부족의) 죄로 여기고 몇 개월 동안 염려와 불안의 뿌리를
뽑는 회개 기도를 한 결과 염려와 불안의 늪에서 헤어난 것을 지금도 감사한다.
사도 바울은 환경을 초월하여 감옥에서도 오히려 기뻐했고 밖에 있는 사람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빌 3:1; 4:10).
5.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신앙의 기복이
별로 없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비록 예수를 믿지만 내재하는 죄성과 내주하시는 성령 사이에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신앙의 기복이 심하다. 죄를 따르는 겉사람과 하나님을 따르는
속사람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으면 속사람이 강해진 것 같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겉사람이 추악하고 사악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힘들게 하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내주하는 죄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때문에 신앙의 기복이
드물다.
6.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조정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사람을
섬기고 위해서 기도한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 있는 자의 갑(甲)질이 수시로 매스컴을 장식한다. 이조 시대의 사농공상
계급제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기록한다.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이나 미국인은 좀 가졌다고
우쭐대고 행세하는 것이 예외적인 반면 한국에는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은 이방인 지도자는 군림하고 통제하는 자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섬기는 자라고 하셨다
(눅 22:25-26). 육신에 속한 사람은 군림하고 통제할 때 쾌감을 누리지만 신령한 사람은
섬길 때 기쁨을 누린다.
7. 육신에 속한 사람은 혈기를 잘 부리고 고집이 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유순하고 온유하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 3:8).
혈기와 고집 때문에 사업 망하고, 교회 망하고, 가정 망하고, 관계 망한 사람들이 많다. 혈기는 마귀의 전형적인 기질이고 고집은 죄인의 전형적인 기질이다. 특히 혈기는 우상숭배가 심하고, 강대국의 압제와 가진 자의 수탈에 짓눌린 한국인 다수에게 고질적인 성격이고 고집은 우상숭배가 심한 가정 출신에서 심하다. 한국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조그만 잘못도 소송으로 몰고 간다. 한, 울분, 응어리가 치유되지 못하고 승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혈기의 반대는 인내이고 고집의 반대는 온유-잘 길들여진 것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잠 12:16). 8. 육신에 속한 사람은 판단 정죄와 참소를 잘 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이해가 깊고 남의 잘못을 통해 자신을 살핀다. 우상숭배가 심한 다수의 한국 사람에게 많은 고질적 기질이다. 한국인은 뒤에서 수군거리고 비방하기를 잘하며, 사소한 일로 판단정죄를 잘하고, 조그만 불이익만 당해도 참소하고 고소한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소송율이 3~4배로 높다고 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9. 육신에 속한 사람은 거짓, 사기, 불법을 잘 저지른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코람 데오’(神前 의식) 신앙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다.
최근 일본의 경제전문지인 비즈니스저널은 “한국인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일삼는다”면서 한국의 위증죄, 무고죄 및 사기죄 입건 수준은 일본 전체의 66배, 인구 대비 165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기 피해액은 43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한국이 세계 제일의 사기 대국이자 부패 대국이라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선진국 문턱에 도달한 한국의 매스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기 사건, 표절 사건, 부정부패 사건이 머리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성경은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고 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왜 한국이 거짓 공화국인가?
우상숭배가 심하고, 이조 500년의 유교로 인한 체면과 외식 문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결핍과 졸부의 양산으로 인한 일확천금과 성공지상주의, 끊임없는 외우내환(外憂內患)으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속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성향은 신자에게도 만연하다. 수많은 목회자나 박사의 저서나 논문 표절 사건, 기독 실업인의 사기와 불법 사건은 불신자나 다를 바 없다. 하나님 나라 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하나님에게는 동기나 과정이 선하지 않으면 결과는 의미가 없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3). 10. 육신에 속한 사람은 체면과 외식이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솔직하고 투명하다.
“악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이해하는 데는 ‘이미지’, ‘외형상’,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말이 퍽 중요하다. 그들은 선해지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선해 보이려는 욕망은 불처럼 강하다. 그들의 ‘선함’이란 모든 가식과 위선의 수준에서 선함일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거짓이다.”
“악한 사람들의 주된 동기는 위장인 까닭에 악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발견되는 장소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교회다. 우리 문화에서 교회의 집사나 눈에 띄는 다른 높은 직분자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악을 잘 숨길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까지 자신의 악을 숨길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인도 같은 나라에서도 악한 사람들은 똑같은 성향을 나타내 '괜찮은' 힌두교도, '괜찮은' 회교도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종교인들 거개가 그런 악한 사람들이라든가 사람들의 종교적인 동기가 그렇게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한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보장하는 위장과 은폐를 찾아 그 경건 속으로 숨어 들어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에 있다.”
(출처 : 스캇 펙, 『거짓의 사람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7).
인간은 죄인이므로 누구에게나 위선적인 요소가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특히 체면과 형식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로 인해 신앙 생활에서 위선적인 요소가 많다.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드러나지 않는가? 외부의 도전이나 자극을 받으면 위선적 행위가 너무나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교회 생활 보다는 신앙 생활잘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신령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솔직하게 인정할 뿐만 아니라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성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고쳐나가는 사람이다.
11.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영혼이 연약하여 위기와 어려움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위기나 어려움을 잘 견딘다.
위기와 곤경에 처했을 때, 사람 마다 나라 마다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은 위기에 처해도 공개적으로 감정 표시를 잘 하지 않고 절제를 잘하고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러나 한국인은 공개적으로 펑펑 울면서 슬픔과 분노와 한을 쏟아놓는다. 아마 일본 같은 지진이 한국에도 자주 일어난다면 나라가 무정부 상태가 되고 정권 물러가라고 연일 데모를 할 지도 모른다. 육신에 속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2. 육신에 속한 사람은 본능적 욕구를 잘 통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본능적 욕구를 잘 통제한다.
요즈음 한국은 가진 자의 수난 시대이다. 유명 인사들이 성 추행, 불법 뇌물 수수 등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을 장식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상습 성 추행, 학위 논문 표절 및 공금 유용 등은 이제 스캔들 필수 과목에 들어갈 정도이다. 이제는 신학자들이 각종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신학자의 수난 시대이다. 성장과 성공에 매진하면서 본능적 욕구를 통제하는 훈련을 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신학교의 어떤 커리큘럼을 보더라도 이런 훈련을 제공하는 학과나 프로그램이 없다.
성경 공부 많이 하고 신학 공부 많이 하고 은사 많이 받는다고 해서 이런 욕구가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xxx급 포르노, 도박이나 각종 폭력적, 엽기적 행동을 어린 아이는 물론 성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접하면서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목사가 여성들을 몰카를 찍다가 체포되고, 사회적 명사가 우연한 기회에 젊은 여성을 성 추행하는 것은 그 사람이 특별히 성적 성향이 비정상적이라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향에 벌거벗게 노출되는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13. 육신에 속한 사람은 조급하고 잘 덤벙거린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신중하고 속이 깊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잠 29:20).
14. 육신의 속한 사람은 자기 열심을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자기 의 보다는 하나님의 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15.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자기 기분이나 감정에 쉽게 좌우된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꾸준하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의 신앙은 ‘냄비 신앙’이라고 한다. 은혜 받을 때는 확 달아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식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떤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것같이 말하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다 잊어버린다.
요즈음 ‘성인 아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몸은 성인이 되었는데 정서, 사고력, 판단력은 아이의 수준에 멈춘 사람을 말한다. 교회에도 이런 성인 아기가 많아서 자신도 괴롭고 남도 힘들게 만든다.
신앙 생활 하다 보면, 누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한 말을 하면 잘 참지 못하고 온 교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신앙 생활 같이 하다가도 누가 자기에 대해 한 두 마디 책망하거나, 자기를 좀 알아주지 않거나, 자기 보다 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 상처 받고 토라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속사람으로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겉사람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겉사람으로 일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지 않거나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면 금방 시험이 들어 토라진다.
16. 육신에 속한 사람은 욕망과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절제와 비움 훈련을 통해 욕망과 집착을 잘 내려놓는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사람들 중에 의지와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 많다. 의지와 욕망이 강한 사람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하며 어지간한 시험이나 굴욕도 잘 참는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나라 일도 이런 식으로 한다.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평신도는 사업 성공, 목회자는 목회 성공이 곧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성장과 성공을 통해 자신의 에고와 허영심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라고 말했다.
17. 육신에 속한 사람은 원망과 불평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16-18).
18. 육신에 속한 사람은 의심과 불신이 많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3).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특히 신학자나 목회자 중에서 자유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의심하면서 잘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불교에 심취했거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혼미, 허무, 공허, 무기력, 좌절, 낙심 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무너뜨린다. 신령한 사람은
이런 성향들과도 싸워서 승리하는 사람이다.
19.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의를 위해서는 강한 자에게도 사자같이 담대하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약육강식의 원칙에 의해 강한 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아부하거나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갑질하고 조정, 군림, 통제하는 성향이 강하다. 세례 요한, 예수님 및
사도들이 힘 없고 연약한 자의 친구가 되면서 동시에 권력이 있는 기득권자들과
성령 사역을 대적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당당하게 대적한 것과는 차이가 많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겁쟁이였지만 성령 체험 후에는 사자같이 담대해졌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 28:1).
20. 육신에 속한 사람은 입술이 거칠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언어가 순화된
사람이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최근 필자는 어떤 은사 사역자의 유튜브(Youtube) 강의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말끝마다 ‘새x’란 단어가 입에 달린 것은 보통이고, 교인들이 몰려가는 것을
‘x떼 같이 몰려간다’는 식으로 말을 하여 강의를 듣는 내내 거북했다. 사역 좀 성공하고
능력 좀 나오면 그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은가?
이름이 알려진 한 대형 교회 목회자는 공개 집회에서 어떤 사람을 세워놓고 무안을 주는
것이 특기(?)다. 그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내용은 좋은데 목사가 강의 중에 욕을
너무 많이 해서 가기 싫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은 불의를 잘 참지 못하고 영력을
과시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한 마디로 공적 매너와 교양과 에티켓의
부족이다.
입이 거친 OOO 목사를 ‘빤스 목사’로 인터넷에 올려서 명예훼손죄로 약식 기소로
벌금형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정식 재판을 청구하여 지난 5월27일 승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청 형사4부는, O 목사가 입을 가볍게 놀려서 명예 훼손의
위험을 자초한 면이 있다면서 명예 훼손으로 고발당한 기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일부 교회 부목회자는 ‘언어 폭력에 운다’고 한다(국민일보. 2016. 6.16. 26면).
일부 부목회자는 담임 목사와 교회 중직자, 평신도로부터 무시, 인격모독, 비난 등의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한다. 담임 목사와 성도 중 상당수는 부목회자를 그들의 감정을
해소하는 약소한 존재로 여긴다고 한다.
내가 은사 좀 가지고, 큰 교회나 큰 사역 좀 가졌고,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공적 집회나
사석에서 반 말, 저속한 언어나 쌍말을 하고 사람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은 모두
자기를 내세우는 겉사람의 언행들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미천한 종을 대하더라도
공손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빌 2:1-4).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거룩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이다(벧전 2:9).
그외에도 육신에 속한 사람의 여러 가지 특징이 있겠지만, 요약하면 육신에 속한 사람은,
속사람과 겉사람과의 전쟁에서 겉사람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주일 성수나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는
외형적인 것에는 금방 익숙해지지만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겉사람은 좀처럼
잘 극복이 되지 않는다.
비록 서서히 개선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쁜 성향이나 고질적인 기질들은 특정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평생
따라다니고 결정적인 순간에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어 평생 쌓아올린 공적을
하루 아침에 무너뜨리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하면 신령한 사람으로 성숙해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