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월미도로 1... (대전IC를 떠나며)
민족의 비극인 6.25... 북한 괴뢰군(傀儡軍)은 38선을 기준으로 남진(南進)을 계속하여 우리 아군(我軍)은 낙동강까지 밀렸다. 이에 유엔군은 傀儡軍의 허리를 절단하여 섬멸(殲滅)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 인천상륙작전이다. 1950년 9월 15일 UN군이 맥아더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6ㆍ25전쟁의 전세(戰勢)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 그 일단계가 월미도요, 2단계가 인천을 점령하고 김포비행장과 수원을 확보하였다. 마지막 제3단계가 9월 28일 한강을 건너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전쟁을 반전(反轉)시켰다
인천상륙작전의 진정한 의미는 유엔군이 傀儡軍의 병참선을 일거에 차단하였다. 이로 인하여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의 계기를 조성해 주었다. 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천의 항만시설과 서울에 이르는 제반 병참시설을 북진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수도 서울의 탈환은 심리적으로 아군의 사기를 진작(振作)시켰고 이에 반하여 괴뢰군은 위축을 받았다. 이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인 맥아더 원수... 최근 그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불순분자가 있었으니 공산주의자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조석(潮汐)간만의 차가 매우 심한 인천항... 조석(朝夕)으로 두 차례 각각 3시간 이내의 제한된 시간에 행동을 완료하여야 하니 일정을 잡기에 부적절한 자연적 조건이었다. 이를 이용하였다는 것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鳴梁大捷)과 같은 지략(智略)이 필요한 것이다. 즉 인천에 상륙해 모루(Anvil)를 만들고, 낙동강에서부터 망치(Hammer)를 휘둘러 그 안에 있는 적을 섬멸하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이 작전은 맥아더 원수의 대담한 착상, 결단력, 필승의 신념으로 이루어낸 20세기의 칸나에(Cannae) 전투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모루는 대장간에서 뜨거운 금속을 올려놓고 두드릴 때 쓰는 쇠로 된 대(臺)다.
또한 Cannae 전투란 기원전 216년 이탈리아의 Cannae에서 카르타고군(軍)이 완벽한 포위 작전으로 로마군을 전멸시켜 전사(戰史)상 포위섬멸전을 말한다. 7월 4일 한화투어산악회를 따라 떠난 여행길... 대전IC를 지나면서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침 제공에 참가비 15,000원... 다른 산악회에서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이다. 그것도 매일 운행하니 내가 쉬는 날이나 계(契)모임도 이 산악회를 이용하여도 부담이 없다. 죽암휴게소에서 아침을... 찰밥에 김치, 고사리, 김 등 간단한 반찬이지만 입맛에 족하다.
인천 월미도로 2... (자유공원에서)
김치 하나만 있으면 밥 한 끼 뚝딱할 수 있는 우리 세대의 식생활... 김치는 마치 화투 600에서 국진이 빠지면 대포나 빠이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식단의 중요한 반찬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는데 30여 년 전에 담임을 하였던 제자를 만나니 평수상봉(萍水相逢)이 아닌가? 개구리밥이 바람 부는 대로 물에 떠내러 가다가 서로 만나듯이 여행 중 우연히 만난다는 萍水相逢... 우리 인생도 부평초(浮萍草)갑은 인생길이다. 이제 서로 다른 인생길... 제자(弟子)가 반드시 선생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고, 선생이 반드시 제자보다 어질다고 할 수 없는 법...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한편 여자는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자기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생각에 내가 이름을 일부러 불렀다.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조용하다. 기사가 노래방을 틀어준다. ‘사랑이 무엇이길래’가 흘러나온다. ‘사랑이 뭐길래 사랑이 뭐길래 소리없이 나를 애태우나/ 바라만 보아도 스며들 듯한 그 모습이 나는 좋아/ 이 사람이 마지막 남자겠지 믿고 싶은 여자 여자 마음/ 사랑이 뭐길래 사랑이 뭐길래 희노애락 남기고 가나’로 이어진 이 노래는 사랑은 정답이 없어 죽는 그 날까지 풀고 갈 수 없는 일이다.
이 노래를 부른 보은 출신의 최영철은 발라드풍의 독특한 가창력으로 중년층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지금 달리는 고속도로... 잠깐 졸려 눈을 붙였는데 재2 서해안 고속도로란다. 2013년에 개통된 이 고속도로는 최소 운영수입보장(MRG)이 없는 최초의 민자 고속도로란다. 그러면서도 통행료는 공영 고속도로와 비슷한 1.1배 수준으로 정해졌단다. 송산포도 휴게소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달리니 오른편에 잡초지가 나오는데 바다를 메운 매립지다. 서창분기점에서 인천시내로 진입하여 월미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유람선을 승차하러 갔지만 택시를 타고 맥아더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으로... 구한말 개항의 물결 속에 당시 제물포항은 외국 열강의 자본과 사람이 조선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다. 이곳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각국의 공원이 1888년에 세워졌는데 이는 서울의 탑골공원보다 9년이 빨랐다. 또한 일제 강점기 신사(神祀)가 들어선 동(東)공원에 반(反)하여 서(西)공원이라 불렀다. 그 후 맥아더 장군의 승전(勝戰)을 염두(念頭)에 두고 자유공원이라 고쳐 불렀으니 ‘진정한 자유를 기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천 월미도로 3... (차이나타운에서)
인천을 대표하는 자유공원... 울창한 숲과 산책로... 인천항과 월미도가 눈앞으로 펼쳐지는 수려(秀麗)한 경관... 우리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지만 옛 건물들이 복원되어 대표적인 한국근대사의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 또 인천 시민의 휴식장소가 되었다. 이름도 모를 동양의 조그마나한 나라... 피를 흘린 16개국의 유엔군...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으로... 청나라와 일본 양식의 건물 사이에 석등이 배치되었다. 가파른 계단 맨 위에는 중국 청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세워져 있다.
이어서 간 곳이 짜장면 박물관이다. 가는 길이 차이나타운 거리다. 중국 전통의 치파오 옷을 입은 화교 상인들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복원된 중국식 근대건축물과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간판, 홍등(紅燈)이 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 차이나타운의 시작이다. 이때 군역(軍役) 상인 40여명이 함께 왔는데 이들이 화교 1세대다. 이곳을 청국화상조계지로 설정되어 치외법권(治外法權)과 무역 활동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청일전쟁과 한일 병탄(倂呑)으로 경제는 쇠퇴하였고 문화만 존속되었다.
오늘 찾은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인가? 자장면인가? 표준어는 원래 자장면이지만 발음이 짜장면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였단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부흥하였지만 중국 경제는 어려움으로 많은 화교들이 부두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이때 부족한 시간을 극복하고 값이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작장면(炸醬麵)이다. 산동지방에서 즐겨먹던 炸醬麵은 중국 된장인 미엔장(甛麵醬)에서 유래하였단다. 炸醬麵은 물기기 적어 비벼 먹기가 어려워 춘장을 넣으니 한국식 짜장의 원조란다.
현재 하루에 700만 그릇을 판매한다는 짜장... 그 시작은 1907년 산동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이 ‘산동회관’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조(淸朝)의 전제정치가 막을 내리면서 이주민이 늘어나자 이들에게 숙식(宿食)을 제공하는 객잔(客棧) 성격의 업소였단다. 중화민국이 탄생하자 1912년 그는 간판을 ‘공화국의 봄아 왔다’라는 의미로 공화춘(共和春)으로 바꾸었다. 1970년대까지 성업하였던 共和春... 1980년대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중화요리업에 진출하면서 1983년 영업을 중단하고 박물관으로 변신하였단다. 이 건물 또한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내부를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다.
인천 월미도로 4... (한중문화관에서)
짜장면의 탄생, 공화춘 접객실, 짜장면의 전성기, 철가방이야기, 춘장과 밀가루, 짜장라면의 역사, 인스탄트식품, 공화춘 주방의 모습 등 이곳 전시물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본 젓가락의 기원은? 중국은 전국시대에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들어 저(箸)라 하였다. 우리나라는 공주 무열왕 때 출토한 것이 최초란다.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거리가 짧은 운반도구인 젓가락은 중국, 한국, 베트남, 일본, 싱가포르, 몽골 등에서 15억 명이 쓰고 있다. 젓가락을 쓸 때는 적어도 손바닥, 손목, 팔굽 등 30여개의 관절과 50여개 근육이 움직인다. 한편 나무젓가락을 사용할 때 생각해 보면 빨가벗고 가랑이 벌리고 일하는 놈이다.
중국 사람들을 화교(華僑)라 하는데 華僑란? 중화(中華)의 화(華)와 해외에서 더부살이로 생활하는 교(僑)가 합쳐진 약칭이다. 또한 신속배달의 대명사로 알려진 철가방은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무겁고 넘치는 음식물로 위생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뒤 플라스틱도 사용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알루미늄, 또는 함석판을 이용하였단다. 또한 짜장면을 먹는다는 블랙 데이는 매달 14일이다. 이는 밸런타인데이, 화인 데이와 반대로 아직 연인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검은 색 옷을 입거나 블랙커피나 짜장면을 먹는 날이다.
옆에 50년 전통이 있는 풍미(772-2680)식당에서 짜장면과 고량주로 점심을 먹고 다음 여정인 한중문화관으로... 한국 속의 작은 중국인 이곳 문화관은 양국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앞에 있는 인화문(仁華門)... 화교끼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중국식 패루(牌樓)다. 그 안에는 중국에서 서성(書聖)으로 알려진 왕희지(王羲之) 동상(銅像)이 있다. 그의 서풍(書風)은 전아(典雅)하고 힘차며, 귀족적인 기품이 높다. 물류를 소송하였던 일본우선(郵船) 주식회사를 지난다. 1885년에 조선에서의 연안 항업을 장악하고자 설립한 이 회사는 항운업(航運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회사로 지금도 도쿄에 본사가 있다.
이 건물의 뒤에는 공터가 있는데 대불호텔 터라는 입간판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문화재가 있단다. 이 호텔은 서울의 손탁호텔보다 14년이나 앞선 1888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이었다. 일본인에 의하여 세워진 이 호텔은 중국인이 매수하여 ‘중화루’를 운영하였고 1978년 철거되었다. 이 건물에 아펜셀러가 묵었다고 전한다. 최근 이 터를 소유주가 인천시 중구청에 기증하여 보존방안을 연구 중이다. 다음 여행길은 구 일본 제1은행인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인천 월미도로 5... (소래포구에서)
조선의 금괴와 사금 매입업무 대행 및 일본 영사관의 금고 역할을 하였던 일본 제1은행....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이 인천개항박물관은 개항기(開港期) 인천을 통해 소개된 근대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개항이후 근대 인천의 면모를 학습할 수 있다. 그 옆에 있는 인천개항장 근대 건축 전시관... 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지(植民地)화 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이었다. 면직물 증개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일본 상인들이 늘어나자 1890년에 나가사키에 세웠다.
이곳 인천의 중구청은 일본 영사관 건물로 일본 조계지(租界地)내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하였다. 택시를 타고 월미도에 있는 한국이민사 박물관으로 갔다. 2003년 미국 이민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이 해외에서의 개척 정신으로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 박물관이다.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 700만 동포들의 삶과 애환(哀歡)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한국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2시에 나와 집합시간이 30분이 남았지만 택시가 없다.
시간은 자꾸 흐른다. 인천 콜택시를 불렀더니 여기는 인천 공항으로 다른 곳으로 연락을 하란다. 인천 콜택시는 인천 전역을 커버하지 않는 모양이다. 관광버스에서 이탈할 때는 운전기사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나와야 하는데 콜택시를 믿은 것이 잘못이다. 마침 오늘 만난 제자의 전화가 있었기에 운전기사와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제자의 도움으로 버스가 내가 있는 위치까지 왔으니 고마운 일이다. 제자의 전화도 요긴하게 이용하였으니 제자 또한 고맙다. 오늘 경험... 숱한 실수를 저질러야 천천히 가르쳐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스에서 승차한 후 소래(蘇萊)포구로... 소정방이 도착하였다는 蘇萊... 일제 강점기 때 염전이 있었던 소래포구... 그 소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수인선의 협궤열차가 지나던 곳이다. 1995년 협궤열차는 사라졌지만 소래포구의 철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제 소래포구의 시장은 새우와 젓갈, 꽃게로 유명하며 노천횟집 100여 곳이 성업(盛業) 중이다. 횟감을 떠서 포구로 다시 나가 선착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을 수도 있다. 썰물 때는 갯벌 위에 올라 있는 어선들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니 진풍경이다. 이곳에서 광어 한 마리로 술 한 잔을... 다시 대전으로 오면서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맥아더동상
공자 상
짜장면 박불관
한중 문화관
패루
왕희지 상
개항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