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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꾼이 되자
2017년 1월 22일 / 직원세미나 / 마태복음 9:35-38
마태복음 9:35-38을 3개로 구분한다면 ➊ 예수님이 “그 지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다.”(35절)고 하였듯이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파하셨고 복음 전파를 위해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➋ 가시는 곳마다 모여든 군중을 보시며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큰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가엾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➌ 그리고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37-38절)
35-3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을 이런 저런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37-38절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즉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38)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너희들이 추수할 일꾼이 되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추수할 일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열두 제자들의 이름이 마태복음 10:2-4에 나옵니다. 4복음서 여러 곳에서도 가룟 유다를 열거할 때마다 거의 ‘예수를 배반하여 팔아넘긴 가룟 유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겼는지에 대한 원인을 알아야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 6:61-65 / 예수께서 제자들이(가룟 유다를 뺀 열 한 제자들은 포함이 되지 않음) 불평하며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의 욕심만 부리고, 비판하고, 거역하느냐?) 그러면 인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볼 때는 어떻게 하려느냐?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64-65) 그러나 너희 가운데 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구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요 6:66-69 /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가룟 유다는 아직 떠나가지 않음)이 예수를 떠나갔다. 67) 그러자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너희도 내 곁을 떠나려 하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69)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외치시며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말씀과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마 9:37-38 /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우리도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 찰스 피니라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어느 날 미국의 시카고 거리에 왔다가 거리의 교차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곁에 있는 분이 “목사님 왜 그러세요?” 그는 그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잖아. 복음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잖아.”
■ 요한 웨슬리가 한번은 그의 시대에 효과적인 세계복음화의 전략을 위해서 동료 지도자들과 모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방법들이 토의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웨슬리가 일어나더니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방법이요? 우리에게 방법이 있다면 단 한 가지의 방법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만약 ➊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➋ 죄만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100명만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금년이 지나가기 전에 이 세상을 뒤집어 놓겠습니다.”
▶ 세계 기독교 교회사를 기술한 학자 가운데 라토렛이라는 학자가 1세기의 초대교회를 기록하면서 ‘초대교회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힌바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스토리’라고 기록하였다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아무나 볼 수 있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초대 교회사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후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만 성령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프로그램도, 지식도, 조직도, 후원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나 육신적으로 부요해지고 건강해져서 성령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위에 위치하고 있는 짐바브웨 공화국에서 선교하는 분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을 했고, 캄보디아에서 선교하는 목사님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간증을 합니다.
< 묵은 닭의 비유 >
※ 물론 여기에는 분명히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신 28:1-2, 9, 13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한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여 주실 것입니다.)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다음과 같은 복들이 모두 여러분에게 이르러 여러분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분이 가리키는 길로만 따라가면 여호와께서 이미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대로 여러분을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그러므로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 만민 가운데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네가(여러분이)’라는 단어는 어느 누구를 꼭 집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닌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과거 그 어느 때만이 아닌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약속하신 복들이 모두 우리들에게 이르러 우리들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양을 치던 목자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시고, 애굽에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출 3:12 /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너희의 하나님인 나를 섬기리라 /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인데)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표징)니라
▶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석 달이 되었을 때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맞아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예배드리도록) 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 19:3-6 /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자손)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➊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➋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너희야말로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➌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예배드리도록) 제사장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 출애굽의 목적입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이러한 뜻을 받들어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이 머무는 곳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 2:9 / 너희는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
▶ 아브라함과 수가성 여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봅니다.
창 12:1-3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한데 어울려 사는 친척)과 아버지의 집(집안 사람들)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가르쳐)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수가성 밖에 있는 야곱의 우물로 물을 길러 여인을 예로 들어봅니다.
요 4:19-24 /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예루살렘이 유일한 예배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유대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 이는 구원이 유대 사람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이에 바울을 통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이해가 곧 될 것입니다.
롬 12:1-2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산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실 일을 생각할 때 이것이 무리한 요구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방법이 실제로 얼마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가를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영적 예배)를 드리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하고 순결한 겨레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널리 찬양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우리 고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고향(본향)만을 하루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살핌 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시다. 그리하여 언제나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착한 일을 하며 궁핍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제물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히 13:14-16).
그리하면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을 칭찬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마 25:21 / 주인은 그가 일을 썩 잘해 낸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이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더 큰일((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어서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그리고 묵묵히 봉사하며 충성한 일꾼들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 25:34-40 /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시스코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거지가 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 추위에 떨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시스코는 쾌히 그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모습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져나간 나병환자(한센병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거지 나환자는 너무 배가 고프니 저녁을 먹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고름이 줄줄 흐르고 썩은 냄새가 나는 흉측한 나환자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는 조금도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잠시 후 프란시스코가 막 잠들려 할 때, 나환자인 거지가 다가와서 추워 죽겠으니 침대에서 같이 잘 수 없겠느냐고 물었을 때 프란시스코는 그 나환자인 거지와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나환자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프란시스코는 오히려 그 거지 나환자를 자신의 두 팔로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거지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 되어 프란시스코는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옆자리에 누워 함께 잤던 거지가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행방이 묘연했는데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시 잠자리를 살펴보았는데 같이 잔 흔적조차 없었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해 보였고, 빛났으며 냄새마저 향기로웠습니다. 그 순간 프란시스코는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유명한 ‘평화의 기도’입니다.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22쪽
9. 교회 봉사자의 태도(態度)
1. 자원함으로 봉사해야 한다.
교회의 직분은 스스로 맡은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임명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왕상 17:8-9 / 그릿 시냇가에서 더 이상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주께서는 엘리야에게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내가 그 마을의 한 과부에게 부탁해 놓았다. 일러주었다)
엘리야는 선지자였기에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당시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아 온 땅에 기근이 계속되던 때에 도움이 필요한 이스라엘인 과부가 많이 있었으나 엘리야가 보냄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사르밧에 있는 이방인 과부였습니다. 이 여인은 선지자는 아니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인도 하나님의 음성이나 꿈으로 또는 기도하는 중 환상으로 이미 엘리야가 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요단 강 동쪽 그릿 시냇가에서 160여km의 먼 길을 걸어 사르밧에 이르렀다. 그곳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11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해변의 마을이었다. 그가 성문에 이르자, 어떤 여인이 나무를 줍고 있었는데 바로 엘리야가 찾던 과부였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물을 좀 갖다 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11) 그 과부가 물을 가지러 성문 안으로 들어갈 때에 엘리야는 그 등 뒤에 대고 `떡도 좀 갖다 주시오!' 하고 큰소리로 간청하였다. 12) 그러자 과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지만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집에 남은 것이라고는 항아리 밑바닥에 깔린 밀가루 한 움큼과 병에 묻은 기름 몇 방울뿐입니다. 나는 지금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그 남은 것으로 마지막 떡을 구워 아들과 나누어 먹고 함께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셨기에 엘리야는 시돈 땅에 있는 사르밧에게 가서 여인에게 물과 떡을 가져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여인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것으로 떡을 구워 먹고 아들과 함께 죽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정 이야기를 들은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행동을 보십시오.
왕상 17:13) 그러나 엘리야는 과부에게 그 마지막 남은 것까지도 아끼지 않는 희생을 요구하였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우선 그 손에 든 나뭇가지를 돌고 집으로 가서 내가 먹을 떡부터 구워 가지고 오시오. 그런 다음에 다시 들어가서 식구들이 먹을 떡을 구우시오. 이제부터 식량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오.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다시 비를 내려 줄 때까지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기름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 할지라도 아들과 더불어 먹고 굶어 죽을 생각을 하는 여인에게 그 마지막 남은 것까지도 아끼지 않는 희생을 요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옆에 있었으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하면서 엘리야의 옆구리를 쿡 찔렀을 것입니다. 왜 엘리야 선지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을까요? 엘리야의 말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가 다시 비를 내려 줄 때까지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기름도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종복 목사님께서 여러분들의 형편과 사정을 알면서도 왜 그리 당당하게 직분을 맡기시는 것일까요? 목사님께서 여러분들과 먼저 상의를 하면서 ‘형편에 따라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고, 충성도 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인정이 많으신 목사님께서 여러분들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알면서 직분에 맞게 봉사충성을 하라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왕상 17:15-16 / 사르밧 과부는 이때부터 엘리야의 말대로 따랐다. 그러자 세 사람이 매일 충분히 먹고 살게 되었다. 주께서 엘리야에게 약속해 주셨던 것처럼 그 밀가루도 바닥이 나지 않고 그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
인정사정에 얽매어 “그 손에 든 나뭇가지를 돌고 집으로 가서 떡을 구워 먼저 식구들이 먹고 그런 다음에 나에게 가져 오시오.”라고 했다면 엘리야는 하나님의 종도 아니고 과부에게 가는 복을 가로 막은 가짜 선지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이 엘리야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의 식구들이 무서운 흉년을 살았겠습니까?
▶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있습니다. 사르밧 여인이 3년 6개월 동안 엘리야 선지자에게 밥을 해 주고 빨래를 빨아주는 것으로 봉사를 다 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사르밧 여인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는 사람이었기에 엘리야와 같은 심정으로 이스라엘의 회복 즉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엘리야와 같이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곳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 한 해 맡겨진 직분에 대하여 자원함으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봉사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는다 하실지라도 충성ㆍ봉사하십시오. 우리가 맡은 직분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봉사ㆍ충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 즐거움으로 해야 한다.
자원하여 봉사함으로 즐겁게 맡겨진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맡겨진 직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여도 하나님의 일에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가 있게 마련입니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려고 합니다. 이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옆사람과 부딪치는 일도 있어 짜증이 나서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게 됩니다. 이럴 때는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기도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즐거운 마음으로 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하면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봉사할 수 있는 은혜도 주실 것입니다. 맡겨진 일은 하나님의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가나의 혼인집 하인들이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대로 하게’ 하고 일렀습니다. 이에 물이 너덧 말 들어가는 돌항아리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우라’ 하고 이르셨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대로 물을 다 채우자 예수께서 ‘이 물을 떠서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가져다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인들은 잔치를 준비하기에, 손님들을 대접하기에 너무 지쳐있는데 또 다시 희생하며 봉사하라고 하니 마음이 편했겠습니까? 그것도 그냥 맹물을 연회장에 가져다주라고 하셨을 때에는 짜증이나 신경질도 날만하고 거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하인들은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요 2:9-10 /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이 그 물을 맛보았을 때는 이미 물이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하인들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지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지 몰랐으므로 신랑을 불러 10) 말하였다. `이거 아주 훌륭합니다! 최고의 맛입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최고급 포도주를 내놓다가 손님들이 실컷 마시고 취한 뒤에는 값싼 것을 내놓는 법인데 당신은 마지막을 위해서 최고급품을 준비해 두었군요!'
하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함으로 기적을 누구보다 먼저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며, 메시아를 만났고, 초대교회에 중요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물론 연회장도 있었고, 신랑도 있었고, 손님도 있었지만 즐거음으로 순종함으로 가장 큰 덕을 본 사람들은 하인들이었습니다.
올 일 년 내내 즐거움으로 직분에 충성ㆍ봉사하심으로 많은 기적의 역사가 몸된 성전과 교우들에게 임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4.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매 어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 몸 밖에 드릴 것 없이 이 몸 바칩니다.’라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도록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이 빠지면 봉사하는 일이 지겨워지게 되고 시간이 갈수록 불평하는 마음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하던 일도 포기하게 됩니다. 왜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지를 되새겨 보면서 첫 사랑을 되찾도록 하십시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애굽보다는 노예생활을 하지 않는 광야가 좋습니다. 그러나 지긋지긋한 광야보다는 가나안이 좋다고 합니다. 가나안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늘 함께 하셨고, 필요한 물과 양식이 늘 공급되었으며, 주변 나라의 위협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많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이것은 사도 바울처럼 감사하면서 사명을 준행하라는 것이며, 은혜를 감사하며 보답하는 것입니다. 말로만의 감사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감사이며, 크리스천으로서는 당연한 감사의 행함입니다.
딤전 1:12-16 / [자비에 대한 감사]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다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나를 자기의 심부름꾼으로 선택하셨을 뿐 아니라 충실하게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13) 과거에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방하며 다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며 온갖 방법을 다 써서 그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주께서는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때는 내가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는 걸 아셨기 때문입니다. 14) 오, 우리 주님은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요. 주님은 내가 어떻게 주님을 신뢰해야 하며 또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참말입니다. 누구나 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도 큰 죄인이었습니다. 16) 그런 내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크나큰 관용으로 감싸주신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나 같은 것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게으르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 보면 또 내일로 미루게 된다. 결국 알고도 행치 않는 죄까지 짓게 된다(약 4:17).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는 말은 ‘전력을 다하라’,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책은‘최선’을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힘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대충 대충해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죽을 힘을 다 해야만 아기의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을 사는 것도,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해산하는 것처럼 힘을 다해야 합니다. 영국 격언 가운데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의 조건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성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시간은 초와 분과 시가 모여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부스러기를 모아 만든 작품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나 분이나 그 하나하나를 소홀히 취급하고 낭비하다보면 자기 인생 전체가 망가지고 목적 성취가 어렵게 됩니다. 성공하려면 잠자는 시간도 줄여야 됩니다. 잠을 많이 자면 기도 생활도 힘들고 규칙적인 신앙 성장도 어렵습니다.
잠언 6:6절에는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지혜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하지 않으면서 대가만 챙기려고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들은 책망은 ‘악하고 게으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아서 풍족하게 될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빼앗길 것이다. 쓸모없는 인간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골 1:29 /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속에서 강한 힘으로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이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에라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게으르다는 것은 … .
7.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교만은 패망을 원인이 된다. 열심히 봉사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거리는 마음이 나오게 되고, 바리새인의 기도(눅 18:11)처럼 다른 사람까지 업신여기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자세로 일관하십시다.
눅 17:5–10 / [믿음의 힘] 사도들이 주께 말하였다. “저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6)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크기의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로 옮겨지라 하여도 그대로 될 것이다. 7) [종의 의무] 종이 밭을 갈거나 양을 치고 돌아왔다고 해서 그대로 앉아서 먹을 수는 없다. 8) 자기가 먹기 전에 먼저 주인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시중을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9) 그렇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특별히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다. 10)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단순히 내 말에 복종할 것을 가지고 너희 자신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였기 때문이다.”
8. 봉사자는 자신의 영적 관리는 자신이 해야 한다.
마르다처럼 봉사하는 일에만 몰두하다보면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이 등한시되고 아울러 경건의 훈련마저 게을리하다보면 나중에는 영적 기갈이 되어 자신의 영혼이 죽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자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8. 교회가 예수님을 대접하려면 마리아처럼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또한 마르다처럼 성의로 몸과 물질을 드리되, 그 염려와 고민 때문에 생명의 말씀을 소홀히 함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가르침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몸과 물질을 드리다보면 육신의 봉사에 머물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의 실례를 들어본다면, 교회에서 예배 후 바로 헤어지지 않고 준비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습니다. 그럴 때 식사를 위하여 당번을 맡은 교인들이 예배시간을 잘 지키지 않고 설교듣기에도 소홀한 채 식사준비로 분주히 설치는데, 그것은 경계되어야할 일입니다. 먹을 것 준비도 교우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지만, 생명의 말씀을 듣는 데 손해를 가져올 만큼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또한 교역자가 교인가정에 심방을 갔을 때, 음식을 준비하는 일 때문에 분주한 것도 좋지 않은 예로써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처음 교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먼저 믿는 사람으로부터 교역자 대접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고 배우는데, 그 대접이 중요하더라도 생명의 교훈을 받는 일보다 더 귀중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심령으로 외면하면서 몸과 물질을 드려 교회봉사를 한다는 이유로 자기의 신앙생활을 만족히 생각하는 교인의 부류가 있는데, 이는 대단히 걱정스런 대상입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교회생활에 대한 열심히 식어질 수 있습니다. 속에 생명이 없는 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가장 쓸쓸하게 만드는 원인은 말씀을 받아먹지 못하는 교인들을 보는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열심히 맡겨진 직분에 봉사ㆍ충성을 다 하되 힘을 기울입시다. 단, 예배를 귀히 여기고 말씀 듣고 따르기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게 하면서 힘써 봉사하여 주님의 칭찬을 받도록 합시다.
9. 허황된 꿈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를 갖자.
제자들은 죄악된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이 부끄럽게 성찬식 자리에서도 누가 크냐는 것으로 다투기까지 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자.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을 하며 청을 드렸습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 부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서거든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마 20:20-24)
이어서 예수님은 누가 크냐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마 20:26-28)
마지막 성찬식을 하면서도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제일 윗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요,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옳지 않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베푼 것같이 너희도 남에게 베풀도록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 13:14-15).
10. 비판보다는 하나님 관점에서 바라보라.
교회 일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남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판단을 넘어 비판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을 정죄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매우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비판은 자기도 죽거니와 다른 사람도 죽게 하는 나쁜 바이러스입니다.
마 7:1-5 / 남을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왜 너희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탓하느냐? 네 눈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 속의 티를 빼주마’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줄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예수께서 감람산으로 가셨다가가 다음날 이른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군중이 또 다시 모여들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앉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유대인 지도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군중 앞에 세워 놓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를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아 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되어 있는데 선생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예수께 올무를 놓아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이런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계속 대답을 재촉하자 예수께서 일어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다시 앉아서 땅에 무엇인가 더 쓰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한 사람씩 슬그머니 빠져 나가 버리고 그 여자 앞에는 오직 예수만 남았다.”(요 8:9)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고 보내셨다.”(요 3:16-17)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를 향하여 비난이나 비판보다는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하시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가장 먼저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5:39-48 /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 네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 44) …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분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비추어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않은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 그러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11.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으로 봉사해야 한다.
성도의 봉사는 인간적인 생각이나 힘, 그러한 생활방식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벧전 4:10-11 /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은사 / 롬 12:3-21 참고)을 주셨으니(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11)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빠짐없이) 전하는 사람이 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열성을 모두 쏟아서 남을 도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 영광과 능력이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는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는 주인을 위한 최상의 봉사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됐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 말을 잘 해서 교우들을 돕고, 은혜스러운 말을 함으로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할 말 안 할 만 가려서 해야 합니다. 덕스러운 말을 통해 교회를 세우는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사님 한 분이 낚시에 빠져서 추운 겨울날마저 교회 안 나오고 새벽에 낚시터로 갔습니다. 목사님이 그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기를 그렇게 기다렸는데, 안 나오고 낚시 간 것을 알고 화가 은근히 나서, ‘감기나 걸려 버려라’고 무심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한 권사님이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권사님이었다면 어떻게 말을 전하겠습니까? 그 권사님은 낚시 간 집사에게 목사님의 말을 전했습니다. “집사님! 목사님이 집사님이 이렇게 추운 주일날까지 낚시 간 것을 알고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십디다.” 그 집사님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주일날 더 이상 낚시터 가지 않고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잠언 25장 11절에 ‘ 은쟁반에 담겨 있는 금사과가 보기에도 아름답듯이 경우에 따라서 적절히 하는 말은 얼마나 듣기가 좋은가?’고 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그대로만 전해 주어도 괜찮은데 거기다 ‘플러스 알파’까지 해서 전해 주는 교인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감기 걸리래 + 물에 빠져버렸으면 좋겠데.” ‘물에 빠져버렸으면 좋겠데’는 목사가 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목사가 한 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 한 도시 사람이 회사를 은퇴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도 짓고 젖소도 한 마리 키우게 되었습니다. 젖이 잘 나오는 소를 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젖소의 젖이 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집 농부에게 왜 그런지를 묻고 놀랐습니다. 이 도시인은 그날 필요한 만큼의 젖만을 짰다는 것입니다. 우유 한 병이 필요하면 한 병만 짜 마셨고 별로 우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짜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만 짜는 것이 젖을 마르게 하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젖소는 젖을 짤 수 있는 만큼 최대한도로 짜내야 계속 더 많은 신선한 젖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은사 활용과 봉사가 그런 것입니다. 하면 할수록 내가 좋은 것입니다. 은사를 활용하고 봉사를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더 잘하도록 축복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고 하시면서 “무릇 내게 있어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잘라 내시고 열매 맺는 가지는 손질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요 15:1-2)고 했습니다.
▶ 봉사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공급하는 힘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범사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의 봉사는 결과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봉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의 결론이 되어야 하며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지도 않으면서 주인 노릇하는 사람도 싫어하시지만 열심히 봉사해 놓고 스스로 영광을 받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봉사는 공로의식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절대로 자신이 영광을 거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묵묵히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마 6:2-4 /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의 자선행위를 드러내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분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그러니 네가 어떤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라. 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4) 모든 비밀을 아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12. 충분한 준비를 하라
대표기도 및 설교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순서 하나를 감당하기 위하여 몇 배의 기도와 더불어 경건한 생활로 준비해야 합니다. 대표기도 및 설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대표기도 및 설교에 그대로 묻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 스펄죤은 기도를 준비한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를 주고 있습니다. 머리에 의한 준비가 아니었고 마음에 의한 준비였습니다. 그것은 머리부터 기도의 중요성에 관하여 엄숙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청중들의 요구하는 것에 대한 묵상이며, 붙잡고 기원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새겨진 소원을 갖고 주 앞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준비가 없는 설교도 문제이지만 준비가 없는 대표기도도 문제입니다. 준비가 없는 찬양도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철저히 설교도 준비하고, 대표기도도 준비하고, 성가대도 준비해야 합니다. 골방의 기도가 없는 봉사는 껍데기뿐임을 잊지 마십시다.
13. 영적 침체를 이렇게 극복하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불의의 아합왕과 사악한 그의 아내 이사벨,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운 불굴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타락과 불의에 대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듣는 이가 벌벌 떨 정도로 책망했습니다. 엘리야는 타락한 아합왕의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뭄을 선포함으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했고, 다시 기도해서 비가 내리게 한 권능을 받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영적전쟁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보여줌으로 중간에 서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 사람입니다.
이런 권능의 사람 엘리야가 실의에 빠졌습니다. 엘리야답지 않게 이세벨 왕후가 자기를 죽이겠다는 위협 속에 도망하여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심한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진 엘리야는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 선지자의 뒷면을 보는 듯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이처럼 무서운 영적 침체에 빠지리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이라는 것 아무리 강한 것 같을지라도 하루아침에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신앙 생활하는 즐거움을 잃게 되고, 믿음의 확신도 흔들리게 되고, 적극적인 열심과 헌신도 식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식어지고, 소망이 식어져 낙심케 되고, 사랑마저 식어져 짜증과 더불어 골방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엘리야처럼,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며 부정적이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모습에서 영적 침체의 원인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적 침체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엘리야로 하여금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한 요인은 보는데서입니다. 그럼 엘리야로 영적 침체가운데 빠지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➊ 엘리야는 영육간의 피로함으로 지쳐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피로에 지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며 숯불로 달군 돌에 구운 빵과 물을 마시게 하심으로 힘을 내도록 하셨습니다.
영적 침체는 때로는 피로에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 지치고 너무 피곤하면 육체가 우리를 지배하여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육체의 피로는 자기집착을 일으키게 하여 신앙을 쇠잔케 합니다. 육체적 피로는 자신에 대한 이기적 집중을 강화시켜 자학과 비탄을 낳게 합니다. 과도한 피로는 마치 치통을 앓는 사람이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듯 자신이 겪는 괴로움에만 관심을 집중케 하는 부정적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하여 자기 외에는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여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피로에 지치면 무력감으로 몰아가고 그 무력감이 가중됨으로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감당치도 못하면서 오늘의 걱정과 염려를 벗어나 내일의 염려와 걱정까지 끌어안고 살려고 합니까? 무엇이 우리를 바쁘게 하고 지치고 피곤하게 합니까? 균형 있고 조화 있는 시간 관리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휴식으로의 안식은 영적 충만의 삶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안식의 삶을 확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바쁘게 살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우리의 영혼이 피곤하고 지친 생활에 있으면 기도가 잠들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처럼 등안시 하게 됩니다. 성령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교제하는 생활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무나 바빠 지쳐있는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고 하셨습니다.
➋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물결이 높이 이는 것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는 순간 물에 빠지고 말았듯이 엘리야도 우상 숭배자들을 처단하였으니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가 완전히 제거되고 하나님 신앙이 회복될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이세벨이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에 아합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피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심한 좌절과 허탈감 속에 죽기를 구하는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 이세벨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는데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영적 침체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단의 유혹과 협박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에서 이세벨을 바라보는 삶으로 돌아가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을 보기보다는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죽음과 절망을 보기보다 생명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가난과 고난을 보지 말고 그 가난과 고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3:5)고 했습니다.
➌ 환경 때문에 오는 낙심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로 그런 형편에서 낙심하였습니다. 아무리 봐도 자기 혼자인 것 같습니다. 심한 고독감에 빠집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아니한다. 나는 버림받았다.”라는 생각이 자기를 지배합니다. 모든 활동을 혼자 하려고 합니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없습니다. 항상 냉담하고 단조로운 기분과 감정상태를 보입니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대적자 같이 느낍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했어도 알아주지 아니합니다. 그때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낙심이 찾아옵니다. 낙심하면 모든 게 하기 싫어집니다. 현실을 도피하게 됩니다. 나중에 낙심의 정도가 심해지면 죽고 싶어집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낙심된 사람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은 충성하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낙심 되었을 때 이를 극복하고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낙심된 상태에서 새 힘을 얻게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낙심에 빠진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가장 깊은 사랑임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어려움이 전혀 없게 해준다고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데 어려움이 오면 “세상에. 하나님은 나를 버렸나봐” 그럽니다. 물론 평안하게 해주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어느 날 유명한 스펄전 목사님이 농촌을 방문하게 되었답니다. 농장 건물 꼭대기에 세워 놓은 바람개비가 있어서 보았더니 뱅뱅 돌아가는 바람개비 꼬리에다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을 써 붙여놓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럽다는 말이요? 어찌 저기에다가 그런 글을 붙여 놓았습니까?” 물었더니 농부는 기겁을 하면서 “아닙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던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나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그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바울이 말하는 대로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말합니다. 환난이나 곤고, 핍박이나 기근, 적신이나 위험, 칼이라도 사랑을 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끊을 수 없는 사랑, 막을 수 없는 사랑관계 입니다. 사람은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립니다. 어느 부모는 자식을 버립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낙심된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어루만지십니다.
엘리야가 낙심한 것은 자기 혼자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헌신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세상에 좋은 사람 없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친구에게 속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엘리야 혼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믿음의 지조를 지킨 사람이 칠천 명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찬성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동지로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기도할 사람, 함께 신앙적인 대화를 할 사람, 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언제나 가지고 있으십시오. 아니 내 자신이 다른 사람의 동역자가 되어 주십시다. 다른 사람의 지팡이가 되어 주십시오.
가. 죄를 멀리 하라. 죄악이 우리와 하나님과 갈라놓았다. 가라지는 계속 알곡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것이다.
사 59:1-2 /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팔이 짧아서 너희를 구원하지 못하시며 귀가 어두워서 도와 달라고 부르짖는 너희의 호소를 듣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느냐? 2) 오히려 너희의 죄악이 너희를 하나님과 갈라 놓았다.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에 장벽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너희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다. 너희의 온갖 악행이 쌓여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워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보실 수가 없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약 1년여를 머물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광야 여행과 가나안 정복은 그저 불안하고 요원(遙遠)하게만 보였으며 또한 주변의 척박한 환경은 그들로 하여금 불안과 초조에 떨게 하였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거처를 마련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거스리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았습니다. 특별히 민수기 11장을 보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는 당연히 요구되는 광야 여행의 고생과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그들에게 특별히 불평될 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할 만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이처럼 불평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때 생겨나는 인간의 본성적인 악입니다(출 16:2-8).
그런데 문제의 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중다한 잡족들이 함께 하였는데(출 12:38), 이들이 광야에서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불평함으로 이스라엘 민족들도 오염이 되어 시험에 들었습니다.
민 11:4-6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따라온 이방인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투덜대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자꾸 불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 고기 좀 먹어 봤으면. 5) 애굽에 있을 때는 생선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는데! 어디 그뿐이었나?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까지 마음대로 먹지 않았던가? 6) 그런데 이제는 고작 만나뿐이로구나!'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고기를 먹기 전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을 구하지도 않았고, 욕심을 돌이킨 것이 아니라 그냥 먹기에만 바빴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민 11:31-33 / 여호와께서 바다가 있는 서쪽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메추라기를 몰아다 주셨다. 땅 위에 무려 1미터 정도나 높게 쌓일 만큼 엄청나게 많은 메추라기 떼가 진을 친 곳 사방에 마구 떨어졌다. 백성들은 하룻길 되는 곳까지 떨어져 쌓이는 메추라기를 주워 모았다. 32) 그들은 몰려 나와 하루 밤낮과 그 다음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잡았다. 어찌나 많이 잡았던지 아무리 적게 잡은 사람도 10가마니 이상씩 잡아서는 진지 이곳저곳에 널어놓았다. 33) 그들은 이렇게 잡아들인 고기를 실컷 먹었다. 그렇게 실컷 먹은 메추라기 고기가 아직 이빨 사이에 끼여 있는데 여호와께서 전염병을 퍼뜨리셨다. 여호와께서 노하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숨어있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지만 숨어있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꾸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침체에 빠지게 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십시다.
■ 어느 목사님이 종종 수술실에 들어가 기도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도 외과 의사를 따라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손을 잘 씻고 가운을 입고 고무 장갑을 끼고 수술대로 가려고 할 때 그 목사님이 물어볼 말이 있어서 손가락 하나로 의사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목사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더니 ‘손을 다시 씻어야겠군’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의사는 손을 살균 비누로 다시 씻고 다른 가운을 입고 다른 장갑을 끼고 나서 수술을 시작하더랍니다. 왜 그랬을까요? 손가락 하나로 가운을 조금 만졌을 뿐이지만 혹시나 균이 묻어서 환자에게 옮겨져 환자의 생명을 해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보다 절대적으로 귀중한 일, 조심스러운 일인 봉사를 할 때에 세상의 죄악된 것에 섞여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치겠습니까? 그러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려 가신다고 하셨을 때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절히 말하였다. “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만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너희가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생명의 가치를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마 16:22-26)
나. 지난 날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묵상하며 감사를 드리라. 그리하면 감사와 더불어 찬양과 기도가 나오게 된다.
▶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 감사에 대한 글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님이 벌주시거나 고난을 주신다고 해도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모든 일이 일어나게 하신다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갖기를 원한다면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또한 은혜가 여러분을 떠나더라도 참고 기다리십시오. 은혜가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시고 그것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고 겸손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우리의 삶속에 유지 되려면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서 떠난 것 같은 고난이 닥쳐올 때가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것 같은 상황 속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은혜가 다시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강도는 감사의 분량과 비례합니다. 믿음이 자라고 강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증거가 무엇일까요.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입술에 감사가 배어 있고 고난이 닥쳐도 감사할 수 있는 인생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자라면 감사도 자랍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에 감사하면 큰 것을 주시고, 부족할 때 감사하면 넘치게 주시고, 고통 중에 감사하면 문제가 풀리게 하고, 평안 중에 감사하면 평안을 누리게 하십니다. 감사는 결코 우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인격적인 결단입니다. 의지적 결단이 있어야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부터 감사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때에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때로 고난 속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으면 감사하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실현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내릴 때 감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는 인생을 살 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 눈물과 더불어 사명을 달라고 기도하라. 가나의 혼인집의 하인처럼 기쁨으로 할 수 있는 마음을 구하라.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모여든 군중을 보시며 목자없는 양처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나도 큰데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에 가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가엾은 백성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구나. 그러니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우리도 봉사ㆍ충성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눈물과 사명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다 보면 때때로 손해를 보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손해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손해를 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39-42,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10리를 동행하고, 구하는 자에게 주라” 손해 보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사명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시다가 하나님이 손해보고 살라고 말씀하시면 손해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손해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익이냐? 손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이냐? 하나님 뜻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생명을 낳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영혼을 깨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했을 때에 높이 쓰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실 줄로 믿습니다.
열왕기상 3장을 보십시오. 솔로몬은 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으니 정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 형제들이 자기 맘대로 즉위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이런 권력 다툼이 있을 때에 왕이 되었으니 왕권이 바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군사력을 주십시오. 경제력을 주십시오. 장수와 건강과 번영을 주십시오.’고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나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나에게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보십시오.
왕상 3:10-14 / 솔로몬이 이렇게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자,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합당하게 여기고 기뻐하셨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주님의 백성을 위해서만 간구하였기 때문이다. 11) 주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오래 살게 해달라거나 큰 부자가 되게 해달라거나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 간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리기 위하여 내게 지혜를 간구하였다. 12) 그러므로 내가 네 간구대로 과거에나 앞으로나 어떤 사람도 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지혜와 총명을 네게 주겠다. 13) 뿐만 아니라 네가 간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도 네게 주어 네 평생에 어떤 왕도 너와 비교할 수 없도록 하겠다. 14) 또 네가 네 아버지 다윗처럼 진실하게 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면 네게 장수의 복도 주어 네 날수를 길게 연장시켜 주겠다.”
라. 첫사랑을 회복하라. 처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라. 그래서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찾아 깊이 뉘우치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 그전처럼 힘써 노력하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는 주님께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릴 것이다.
▶ 신앙생활에도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영적인 슬럼프 현상입니다.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느꼈던 기쁨과 감격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배 때마다 말씀을 들으면서 흘리던 눈물이 멈춰 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찬양을 드린 지 너무나도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한 지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되었습니다. 아무리 눈물을 짜내려고 해도, 한번 마른 눈물샘에서 결코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집사야, 네가 나에 대한 첫 사랑을 잃었구나. 처음 네가 나를 믿을 때 품었던, 그 마음이 사라졌구나. ○○○권사야, 네가 처음 직분을 받았을 때, 품었던 그 마음을 어디다 두웠니?”
■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로버트 하디 선교사(Robert Hardi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버트 하디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사람입니다. 토론토 대학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연합교회의 전신인 캐나다감리교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하디는 1900년 경 함경도 원산에서 선교와 의료 활동을 했는데 의료 활동도 신통치 않았고 선교 활동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번째 요구는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영적인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을 미개하고 무지한 백성들로만 생각했을 뿐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서양 선교사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 사람들은 그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기 전 하디 선교사는 환자들이 기피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하고 쌀쌀맞은 의사였습니다. 하디는 1903년 8월 30일 원산감리교회 주일 예배 시간에 자신이 그동안 교만했던 것과 조선 사람들을 멸시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서양 선교사가 조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교만함을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이 원산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하디를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디에 의해 시작된 회개가 널리 퍼져서 1907년 있었던 평양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바. 사람 앞에 나타내려고 한 것은 없는지. 외식을 예수님이 철저히 배격한 것이다.
마태복음 6:1에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마태복음 23:3에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과 28절에 나오는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 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외식(外飾 - 바깥쪽을 장식함. 또는 그 장식.)’입니다.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으로 마음과 행동이 다릅니다. 외식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의식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외식에 대하여 반대되는 참 믿음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4, 6, 18에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라고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참된 신앙의 자세는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기독교를 개혁한 위대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중세기독교는 수많은 외식들로 가득 차 있었던 기독교의 암흑기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적 주창은 ‘coram Deo’ 였습니다. ‘코람 데오’는 라틴어로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입니다. ‘사람 앞에서’의 외식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코람 데오’의 삶을 5가지로 내세웠습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사람이 보는 것을 의식하다보면 형식적인 기도와 구제, 차가운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늘 이렇게 하십시오.
➊ 마 23:2-3 /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➋ 마 23:11-12 / 너희 중에 가장 낮아져서 남을 섬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
➌ 마 23:23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율법에 따라 바치면서 정의와 자비와 믿음과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무시하고 있다. 물론 십일조를 바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➍ 마 23:25-26 / 화가 있으라.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은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26) 눈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으라. 그래야 잔 안팎이 다 깨끗해질 것이다.
➎ 마 23:29-30 / 화가 있으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아,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너희 조상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인들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워 놓고는 30)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동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 바울처럼 십자가만을 자랑하라.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는 위치가 되기 전까지는 자랑거리가 있다 해도 자랑하지 말라. “은은 도가니로, 금은 풀무로, 사람은 칭찬으로, 사람을 연단하느니라(그 됨됨이를 알아볼 수 있다 / 잠 27:21).”
아. 엘리야처럼 일꾼이 나 밖에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거나 경배하지도 않고, 바알 신상에게 입 맞추지도 않은 사람 7천명을 남겨 두겠다.”고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우리도 일꾼이 되자.
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가지라. 모든 믿음의 선진들도 7전 8기를 겪으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차.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라. 이것 역시 하나님 앞에서 교만으로, 내가 하려는 교만에서 출발하여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도달하게 된다. 현대어성경에 있는 빌립보서 4:13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를 보시라.
카. 몸이 연약해지면서 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 영적 침체로 인하여 오는 염려라는 괴물 때문이다. 염려가 찾아오면서 두려움이 일어난다. 염려가 찾아오면서 믿음이 약해지고, 심장이 뛰게 된다.
타. 믿음이 식어져 미지근해지지 않았는지 점검하라. 겨자씨처럼 믿음은 자라야 한다.
하. 가장 무서운 시련은 사명감을 상실한 것이다. 직분자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어야 한다. 사명감을 상실하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거.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벧전 2:2 / 여러분은 주님의 은혜를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악의와 기만과 시기와 비방을 버리십시오. 마치 갓난아이가 젖을 찾듯이, 자신의 구원이 완성되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의 젖을 사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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