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삼계탕 유감
<2>
黃 輝
나는 보신탕을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 놈들과 함께 지내
왔고,
그들의
민첩함이나
용맹성,
주인에 대한 충성심 등으로
나에겐 반려동물 이상의 모습으로 깊이 각인되어 왔다.
동생이 없던 내게 그들은
더없이 좋은 아우요,
집 앞마당에서 함께 뛰놀며
정을 나누던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결혼 후,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이웃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이놈들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녀석이 바로 ‘황 폴’이다.
짙은 커피색
‘푸들’종의 수놈으로 생후 6개월부터 13년4개월을 가족으로 함께 지내다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던 우리 부부에게
그 놈은 아들 버금 가는 자식이었다. 떠난지 오래 되었어도 그와 함께 했던 즐거움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대소변을 가리는 건 물론이고 영리한데다 다정하기까지 했다.
거실에서
TV를 보면 조용히 다가와 내 무릎을 베고 함께
TV를 보았다.
딸 녀석의 시샘을 받아
자리다툼에서 밀려나면 잔뜩 화난 얼굴로 소파에서 내려와 내 발등 베고 엎드려 눈도 뜨지 않았다.
집사람과 가끔 말다툼을
하면 둘 사이에 끼어들어 얼굴을 바닥에 깔고,
그 큰 눈을 흰자위
눈망울로 가득 채우고 숨을 몰아쉬며 싫은 내색을 했다. 출장을 가거나
가족의 귀가가 늦을 때면 저녁밥도 먹지않고 현관 앞에서 밤새 기다려 주었다.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거나 야외 나들이를 나설 때면, 목이 말라도 배가
고파도 우리 가족이 건네주는 물이나 음식 이외에는 절대 먹지 않았다.
우성혈통과 족보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단골 동물병원을 찾을
때마다 원장은 “‘폴’이 점점 아버님을 닮아
갑니다.
특히 큰 귀와 이마가
그렇습니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녀석이 숨지던
날,
수소문 끝에 황급히 관을
짠 후 평소 놈이 좋아하던 옷을 입혀 집 앞산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생전 모습이 한동안 눈에
밟혀,
우리 내외는 며칠 동안
식음을 거르기도 했다.
기를 때는 한없이 귀여워도
떠나 보낼 때 정 때기가 힘들어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 했으나,
딸아이가 끈질기게 졸라
다시 순백색 ‘몰티즈’종의 수놈 ‘한빛마루’를 지금도 11년째 기르고 있다.
삼복이 돌아오면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여름 보양식을 찾게 되는데,
그간 주변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유혹과 회유를 받으면서도 나는 오직 삼계탕만을 고집해 왔다.
요즈음 무더위와 장마로
인해 며칠을 자발적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던 중,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용인즉,
닭의 자연수명이
30-35년,
양계장에서 출하하는
닭고기는 5주-45일이 지나면 우리 식탁에 오른다는
거였다.
견공의 자연수명보다 배
이상 더 길며,
출하 시점으로 계산하면
닭의 수명은 300분의 1
밖에는 안
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이름 난
삼계탕 집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이어 지고,
한낮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던 그 많은 군상 중에 나도 한 사람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알량한 자존심마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간이 토끼가 아닌 이상 풀만 먹고 살 수는
없다. 다가오는 말복에는 적어도
삼계탕만은 피해야 될성 싶다.
내년부터는 아예 보양식을
바꿔 볼 생각이다.
아버지가 복날 즐겨 드시던
맑은 민어 국(탕)이나,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장어구이로 말이다.
(2015.08.03.)
<‘사죄
합니다.
복날 집단 학살의 주범 중
일원으로 깊이 반성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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