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카운트는 써클 내에서 유로니무스를 이어 제2인자가 되었다.
그가 얘기를 시작하면 청중들은 경청했다. 그가 오딘에 대한 얘기를 하면
모두들 가슴벅찬 감동을 느꼈다. 멤버들은 그가 외국인들을 증오하면서도
히틀러나 스탈린을 숭배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행동파였다. 유로니무스는 말만 하지만 카운터는 실제로 악을
실천했다.
'92년 6월 6일밤, 베르겐 근교의 한교회가 처음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
곧이어 BURZUM의 미니앨범 "ASKE"가 발매되었는데 표지에는 불타고 있는
교회의 사진이 실렷고 레코드 회사는 경품으로 라이터를 끼워 팔았다.
얼마후 두번째 교화가 불탔고 또다른 교화가. 그리고 또다른 교화가 불타 사라
졌다. '92년 한해 동안에만 모두 8건의 교회 방화가 있었고. 당연히 경찰에 소환
되었지만 거기서 그는 범행을 부인했고 증거가 없었으므로 석방될수 밖에 없었고
화재 진압시 소방관 한명이 숨졌다. 카운트는 자신의 행위를 자랑스러워했으며
어느 기자에게 자신의 행동을 떠벌였다. 당연히 경찰에 소환되었지만 거기서
그는 범행을 부인했고 증거가 없었으므로 석방될수 밖에 없었다. 유로니무스는
그의 석방을 축하하며 "누구라도 카운트에 대해 증언을 한다면 사타닉
써클의 복수가 기달릴 것이다"라고 경고 했다.'
카운트는 유로니무스가 말만 거창한 위선자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갔고
점차 그의 라이벌이 되어갔다. 카운트는 권력을 원했고 이를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두사람들 갈라서게 만든 다른 두원인을 간과할수 없다.
유로니무스는 카운트의 애인이던 16세의 스웨덴 소녀 ILSA를 빼앗았으며.
카운트가 자기 어머니에게서 빌려서 BURZUM의 앨범 발매를 위해
맡긴 40.00 크라운을 꿀꺽했다.
'93년. 8월의 어느날. 카운트는 어머니의 폴크스바겐 골프를 빌려 타고 다른
두명을 더 태웠다 하나는 ANDREAS NAGELSETT였고 다른 한명은 SNOR라는 사람
이었다. ANDREAS는 자기 집에 내려 서는 밤새 크게 음악을 틀로 떠들어댔다.
즉 알리바이를 만든것이다. 카운트와 SNOR는 오슬로로 가서 유로니무스를 찾아
갔는데 먼저 SNOR가 벨을 눌러 문을 열었다. 유로니무스는 속옷만 입은채 문
앞에 서 있엇고 카운트를 보고는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카운드가 몇장의 서류를 꺼내 그의 코앞에서 흔들었고 레코드 계약에 대해
얘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싸우기 시작했는데 유로니무스가 부엌쪽으로
도망치자 카운트는 칼을 빼들었고 그의 등에 꽂았다. 유로니무스는
바닥에 쓰려졌으나 몸을 굴려 도망치면서 카운트에게 나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카운트는 다시 칼을 그의 목에 꽂았다. 유로니무스는 기다시피 밖으로
달아나서는 계단을 내려왔고. 카운트는 천천히 뒤따르면서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다음날 아침. 이웃들이 유로니무스의 시체를 발견했을 땐 무도 23군데의 찔린
흔적이 남아있었는데 그중 16개는 등에 나머지는 목과 머리에 있엇다.
물론 카운트와 SNOR는 그곳에 없었다. 카운트는 집으로 돌아와 영국의
CANDLELIGHT레이블에 전화해서 "나는 카운트 그리쉬나크다. 유로니무스는 죽었고
참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유로니무스의 여자친구인 ILSA를 찾아갔는데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누가 유로니무스를 죽였는지 안다 하지만 말을 할수는 없다.
목숨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SNOR를 연행했는데 그도 역시 카운트를 두려워 하긴 했지만 결국 그날
카운트와 함께 오슬로에 간 사실을 시인했다.
8월 20일, 경찰이 카운트의 집을 수색했을 때 150킬로그램의 다이나마이트가
발견 되었는데 이 폭약은 노르웨이의 국보로 11세기 이전에 지어진
NIDAROSDOMEN 성당을 폭파하려고 준비해둔 것이었다.
14세에서 22세까지의 젊은이 13명이 체포되었고 카운트도 거기 끼어있었다.
이들의 혐의는 묘지 훼손, 강도, 강간, 방화 들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94년 여름까지 13군대의 교회가 더 불에 탔다.
경찰이 밝힌 바에 의하면 써클 내에는 일종의 계급 제도가 있어서 범죄를
많이 저지른 순서대로 계급이 매겨졌다고 한다.
카운트는 오슬로에서 9개월간 수감되었는데 의사가 혈액을 채취하려하자 그는
바늘로 찌르는 것은 남자답지 않다며 칼로 베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수많은 신문과 잡지에서 그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 했고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재판에서 그는 묵비권을 행사했는데 그의 변호사인 TOR ERLING STAFF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로 자신의 의뢰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햇다. 그래서 두명의 심리학자가 카운트를 검사했는데 결과는?
지극히 정상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그 공산주의 돼지를 죽인 것이 자랑스럽다" 창밖을 바라보며 카운트가
얘기한다 "그 겁장이는 싸워볼 생각도 않고 도망쳐 다니기만 했다."
이제 카운트는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는 잠시 흥분하긴 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독방이나 바깥 세상과의
단절이 그를 괴롭힐 순 없다. 사실.. 그 무엇도 그를 괴롭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총 21년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이것이 노르웨이 법에 명시된 최고
형량이다..
선고공판이 있은 그날밤.. 두군데의 교회가 불에 타 없어 졌다..
몇주후에는 또다른 교회가 불탔다.. 오딘은 결코 포기 하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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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워드를 쳐서 인지 손목이 다 아프군요..
재미 있엇다면 좋겟네요.. 살벌하지만요..^^
아 그저 미친놈이라는 얘기 뿐이 할수 없네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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