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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능선 넘어 도봉의 만춘(晩春)과 풍광에 반하다 (3구간)
1. 일자: 2016. 5. 7 (토)
2. 봉우리: 도봉산()
3. 행로/시간
[솔고개(06:03) -> 충의길(0610) -> 상장봉/전망바위(534m, 06:56) -> 암봉(07:20~30) -> 562봉(07:46) -> (험로) -> 우이령/오봉전망대/소귀고개/초소(08:21~29) -> 우이암 갈림(09:02) -> (조식, 09:10~9:32) - 오봉 갈림(오봉 1.2km, 자운암 1.4km) -> 자운암/신선대(10:59~11:15) -> (Y계곡 우회) -> (간식 11:52~12:07) -> 포대능선 산불감시탑/721봉(12:23) -> 사패산(13:24) -> 안골갈림(13:38) -> (알바) -> 산너머길(13:58) -> 울대고개(14:43]
4. 동행: 산거북님, 유박사님, 청한님, 아카님, 명동
< 한북정맥 3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경험에 따르면 ‘시작이 반이다’는 시작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수많은 결심들이 시작에서 끝나고 만다. 금연이든, 공부든 작심삼일이 대부분이다. 2007년 새해 다짐으로 주말산행과 산행기를 남기겠다는 당찬 결심은 첫 산행으로 청계산을 다녀온 후, 두 번째 수리산행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잔머리를 굴리게 했다. 잠을 떨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다녀와 써야 할 산행기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지내고 보니 그때 온갖 유혹과 귀찮음을 이겨낸 건 정말 잘한 일이다.
한북정맥 3구간에 나서며 옛 일이 떠오르는 건, 그만큼 지난 두 번의 정맥 실행의 의의가 컸기 때문일 게다. 그 여세를 몰아 한북 최대 난코스에 도전한다. 정맥 내 유일한 비탐구간, 출입금지의 이유가 ‘남파 간첩 루트인 우이령 때문이든, 상장능선의 험함 때문이든’하여간 부담이 된다. 혼자가 아닌 단체로 이동하는 관계로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다. 일단 출발시간을 당긴다. 6시 전에 솔고개에서 집결하여 길을 나서야 단속 부담을 그나마 줄이고 우이령을 넘을 수 있으리라. 일단 상장능선과 우이령만 넘고 나면 국내 최고 수준의 전망을 자랑하는 도봉주능선과 포대능선을 타고 사패산까지 무리 없이 갈 수 있다.
가야 할 길을 세분해 본다. 솔고개~우이암 5km, 우이암~포대능 721봉 3km, 721봉~울대고개 5.5km. 세 구간 모두 2시간 30분이 소요될 것이다. 총 거리는 13.5km 내외, 식사를 포함하면 8시간의 산행이 예상된다. 초입 비탐구간만 무사히 지나면 황홀한 조망산행이 예상된다.
< 희망사항 >
이번 구간의 키워드는 상장능선, 우이령, 자운봉이다. 서브 키워드는 우이암, 오봉, 신선대, 포대능선, 사패산 등이다. 불안, 스릴, 안도감, 황홀한 조망, 기암괴석 등의 여러 단어가 머리를 스친다.
솔고개에서 우이암 갈림까지는 출입이 금지된 단속구간이다. 여러 기록을 살피며 상장능선과 우이령 길을 가늠해 본다. 지도와 남의 기록만 보고 머릿속을 정리하려 하니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트랭글 트랙을 다운로드 받고, 각기 다른 두 장의 지도를 챙겨 놓는다. 더 이상의 준비는 내게는 무리다. 일행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참을 통보해 온다. 산거북님이 길 찾기가 서투른 내 사정을 알아채고는 같이 가자고 한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만춘(晩春), 만추는 입에 붙는 말이지만 만춘은 낯설다. 엊그제 관악을 내려오다 먼 산 능선을 바라보며 봄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오래 전 읽었던 김훈의 소설‘내 젊은 날의 숲’에 나오는 늦봄의 정취 묘사한 글귀를 찾아보았다. “숲의 어린 날은 길지 않았다. 나무들은 바빠서 신록의 풋기를 빠르게 벗어났다. 잎이 우거지면 숲의 음영은 깊었다. 밝음과 어둠이 섞여서 푸른 그늘이 바람에 흔들렸고 나무들 사이로 맑은 시야가 열렸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 스며서 그림자가 오히려 빛을 드러냈고 어둑한 시야 안에서 먼 나무와 풀들의 모습이 가깝고 선명했다.”
아무나 도전하지 못하는 길 넘어, 도봉의 숲에서 가는 만춘의 정취를 흠뻑 느껴보고 싶다.
(여기까지는 산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다르리라.)
< 3구간 궤적 >
< 다시 솔고개 가는 길에 >
새벽녘 잠이 깨 뒤척이다 집을 나선다. 평소보다 이른 기상에 생활 밸런스가 깨져서 그런지 몸이 개운치 않다. 개의치 않는다. 산에 다녀오면 나을 증상이다. 배낭을 멘다. 차를 몰아 구리에서 아카님을 픽업한다. 어스름 새벽 빛이 완연한 아침 빛으로 변해간다. 날이 참 좋다. 유박사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벌써 솔고개에 도착해 있단다. 부지런도 하다. ㅋㅋ
5시 55분 솔향가든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이 새벽에도 주차된 차들이 많다. 차에서 사람들이 나오는데 깜짝이야 청한님의 모습이 보인다. 놀랍고도 반갑다. 선약도 있고 몸도 완전치 않은데…. “이번 구간 빠지면 혼자 보충하기 힘들 텐데’하는 말이 주효했는지 용케 나왔다. 역시 의리남이다. 역시 사람은 모여야 맛인가 보다. 5명이 길을 나서니 든든하다. 차 3대의 주차와 오후에 오겠다는 메모를 주인장에게 해 두고는 정맥을 향한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
< 솔고개에서 우이암 >
어제 저녁 무렵만 해도 여차하면 홀로 산행이 되겠다는 걱정에 상장봉까지의 길을 여럿 검색한 탓에 들머리 선택이 고민됐는데, 산거북님도 내가 최우선으로 점 찍어둔 코스를 택한다. 덕분에 오봉 탐방소에서 꺾어지는 대안보다 30여분 빠르게 상장봉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솔향가든 옆 도로를 따라 오른다. 5분여 만에 북한산 둘레길 ‘충의길’구간을 알리는 문과 만난다. 그 문으로 들어서 다시 5분여를 가니 커다란 출입금지 간판이 있고 통제소가 보인다. 산에서 출입금지 표지를 만나면 길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른 시간 길을 나서길 잘했다. 고도가 200미터를 조금 못 된다. 비탈을 치고 오른다. 초입 거칠던 등로는 차츰 선명해진다. 다행스럽다. 이슬 맺힌 숲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도토리거위벌레가 잘라 놓은 참나무 잎이 숲을 어지럽힌다. 곳곳에 거미줄이 나타난다. 다리는 묵직해 오지만 공기가 서늘하여 걷기엔 그만이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가 끼어 있다. 반대편 노고산 방향이 뿌옇다. 반면 가까운 경치는 선명하다.
길에 익숙해지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난 2 주간 밀린 이야기들로 분주하다. 저마다의 사연이 많을 텐데 산행에는 그 모든 걸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묘약이 숨어 있나 보다. 일행들의 얼굴이 밝다.
출발 45분만에 상장봉 밑 갈림에 당도했다. 지도 상으로는 바로 위가 상장봉이다. 상당히 이른 행보다. 길을 우회하자 한다. 내 기억은 상장봉은 그리 위험하지 않은 듯 하여 먼저 올라가 보겠다 한다. 내가 다운받은 이의 트랭글에는 상장봉을 거쳐 왔다. 빠른 걸음으로 등로의 위험성을 가늠하며 치고 오른다. 예상대로 길은 선명하다. 트랭글이 부저를 울린다. 상장봉이다. 북한산 인수봉이 선명하게 보이는 전망바위 앞에서 일단 서서 일행들을 올라오라 부른다. 좌측으로 난 길을 가니 꽤 너른 공터가 있다. 이곳이 상장봉 정상인가 보다. 진행 방향으로 높다란 암봉들이 줄지어 있다. 맞다. 이곳이 상장봉이다. 산거북님이 올라온다. 진행 방향으로 길을 살피러 먼저 가고 난 일행을 기다린다. 곧 집결한다. 모두들 숨막히듯 다가선 삼각산 정상 모습에 놀라워한다. 우리 일행만 보기 아까운 풍경이다. 인수봉을 배경으로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일단 상장봉은 무사히 지난다. ㅎㅎ
본격적으로 상장능선에 들어섰다. 초입 등로는 선명하다. 상장봉을 1봉으로 가정하면 2봉을 지난다. 험해 보여 올라설 엄두는 나지 않는다. 옆을 지나가며 바라만 본다, 연이어 3봉이 나타난다. 무척 큰 바위 암괴들이 모여 있다. 뒤로 돌아든다. 평편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올라서 주변 풍광을 조망한다. 노고산과 장흥 주변 풍경이 선명하다. 하늘에는 구름이 바람에 실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가로운 아침이다. 일찍 길을 나서길 잘했다. 쉽게 오를 수 없는 곳을 오르고 있다는 비밀스런 성취감이 기분에 풍선을 달아준다.
< 들머리에서 / 상장봉 / 상장봉에서 본 삼각산 정상 풍경 >
후미도 모여 바위 난간에 서 저마다의 포즈를 취한다. 등 뒤로는 북한산이 떡 버티고 있다. 인수봉의 모습이 늘 보던 그것과는 다르다. 화장 끼 빠진 미인의 맨 얼굴을 보는 재미라 할까? 인수봉으로 거대하고 평평한 암괴에서 뾰족하고 험상궂은 암봉으로 변한 모습이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염초봉과 숨은벽 능선이 가늠된다. 모델들이 훌륭해 그런지 사진이 멋지다. 미세먼지만 없다면 작품사진이 나올 텐데, 뿌연 대기가 옥의 티다.
유박사님이 거사를 치르는 사이 그의 커피를 마시며 쉼을 취한다. 뭔 커피를 이리 많이 가져왔는지 가방의 무게가 장남이 아니다. 덕분에 잠시나마 커피를 음미하며 비탐구간의 부담에서 벗어나 본다.
이어지는 길, 바위 틈에 커다란 소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뻗으면 솟아 있는 모습을 본다. 늠름한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커지게 만든다. 솔에게 있어서 햇빛은 물보다 소중한 것이리라. 차별화는 생태계 어디에서나 필요한가 보다.^^
< 전망바위에서의 모습들 >
또 암봉을 지난다. 4봉이다. 그 밑으로 난 등로는 선명했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길을 찾아왔다. 곳곳에 전망 바위가 있다. 바라보는 풍경에는 오봉이 압권이다. 커다란 암괴 위에 공기돌 같은 바위가 앙증맞게 올라와 있는 모습은 어디서 보아도 시선을 끈다.
비교적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직감적으로 이곳이 562봉이다. 시간은 7시 46분, 쉬지 않고 왔다면 상장봉에서 40분 거리다. 지도상으로는 상장능선에서 가장 높은 곳이 이곳이다. (지나고 보니 지도상에 봉우리 표시가 있는 상장봉과 562봉은 정상이 평평한 곳이고, 중간에 있는 암봉들은 위험해서 그런지 봉우리 표식이 없다.) 오봉을 배경으로 단체사진 한 장을 찍고는 자리를 뜬다.
< 562봉 가는 길에 본 오봉 / 우이령 오봉 전망대에서 >
562봉을 내려서는 길은 험로다. 몹시 거친 비탈을 산거북님이 선두에 서서 길을 안내한다. 조심스레 내려선다. 오늘 최대의 난코스 임을 직감한다. 모두들 안전을 외치며 서로를 걱정하며 비탈을 내려온다. 그리고 이내 갈림을 만난다. 우측 길은 육모정 고개와 만나는 곳으로 중간쯤에서 우이령으로 꺾어지는 한북정맥이다. 등로도 비교적 선명할 게다. 다만 그리로 가면 혹 있을 수 있는 단속이 걱정된다. 일행들과 상의 끝에 좌측으로 길을 튼다. 지도상으로는 비법정탐방로 표시가 있다. 다만 등고선이 상대적으로 촘촘한 게 마음에 걸린다.
초입은 군 벙커도 보이고 등로가 비교적 선명한데 가면 갈수록 거칠어진다. 봉우리와 험한 내리막이 반복된다. 편한 길로 갈 껄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늦었다. 일단 가자.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서서히 고도를 낮춘다. 멀리 우이령 도로가 어렴풋이 보인다. 파란색 지붕의 막사들도 보인다. 아마도 지킴터인가 보다. 일순간 긴장하다.
그렇게 30여분 왜 이곳이 비탐구간 인가를 실감케 하는 거친 등로를 내려온 끝에 순한 길이 나타난다. 우이령이 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일순 목소리를 낮춘다. 산거북님과 먼저 금줄을 넘는다. 8시 21분,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탐방 안내판이 서 있는 우이령 어딘가에 내려섰다. 후미도 도착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도 정식 허가를 받은 우이령 탐방객인냥 잘 닦인 비포장도로를 늠름하게 걷는다.
반대편에서 인기척이 있어 잠시 멈짓한다. 중년 부부가 우릴 보고 놀란다. 자기들은 5시에 집을 출발해 왔는데 벌써 다녀 가냐고 놀라워한다. 일단 단속요원이 아니라 안심인데, 우리도 그들이 이 이른 시간에 우이령 탐방소를 어찌 통과했는지 궁금했다. 머지 않아. 데크로 곱게 단장된 오봉 전망대에 선다. 포토죤이란 안내판도 있다. 사선을 넘어온 자들 특유의 안도감이 사진에 묻어난다. 이곳에서 올려다 보는 오봉 전망은 백만불 짜리다. 이곳은 모두가 처음이다. 풍경에 모두 즐거워한다.
정식 등로보다 길을 일찍 좌측으로 꺾는 바람에 5분여 우이령을 걷는 호사를 누린다. 뒤에서 앵글을 잡은 사진에서 정맥을 가는 산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일순간 도로가 확 넓어진다. 광장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출입금지 팻말이 보인다. 화장실이 있고 초소 두 채와 위장막이 씌워진 군 막사도 보인다. 일순간 긴장한다. 이곳이 정식 한북정맥 갈림이다. 다행히 인기척이 없다. 지도상으로는 조금 더 가야 하는데 일단 이곳에서 좌측으로 얼른 금줄을 넘는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얼굴에는 긴장감이 돈다. 얼른 비탈을 치고 오른다. 숲이 우거진 언덕에 올라서자 긴장이 가신다. 일단 위험구간은 넘었다. 3시간여를 힘겹게 걸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온다. 산을 걷다 힘에 겨우면 드는 생각, ‘무예 이 짓을 하나.’하는 생각이 인다. ㅎㅎ
< 우이령을 걸으며 / 우이암에 올라서며 >
우이령에서 우이암 가는 길은 고도 200미터 정도를 치고 오른다. 강렬한 아침 햇살이 우이봉 부근으로 쏟아진다. 배가 고파온다. 마지막 힘을 내 본다. 9시 어름 다시 금줄을 넘는다. 솔고개~우이암 비탐 구간을 예상대로 3시간 만에 무사히 넘는다. 오래 기억에 남을 일을 완수했다. 다음에 288들을 만나면 ‘세상에는 상장봉을 넘은 이들과 넘지 않은 자들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 우이암에서 포대능선 721봉 >
우이암이 선명하게 내려다 보이는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배가 고프다. 갖가지 음식들로 돌 식탁이 마련된다.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건 식구가 되었다는 의미다. 배도 채우고, 걸으며 못다 한 이야기도 한다. 사선을 함께 넘어온 동지애가 느껴진다.
이제부턴 익숙한 길이다. 9시 30분, 길을 나선다. 바라보는 눈에 도봉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베테랑 거북님과 여전사 아카님은 이 길이 처음이라 하지만 나머지에게는 익숙하다. 내 경험에 따르면 도상 거리보다 실제 거리가 훨씬 더 멀게 느껴지는 곳인데 풍경이 워낙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을 수 있는 명품 등로다.
< 우이암을 조망하며 / 도봉 주능선에서 1 >
좌측으론 오봉, 진행방향으로 자운봉으로 대표하는 도봉 정상, 우측으로는 희뿌연 서울 시가지를 조망하며 걷는다. 계절은 늦봄을 지나 여름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바위 능선을 넘는다. 때마침 지나는 이에게 사진을 부탁하여 오늘 산행 처음으로 5명이 단체사진을 찍는다. 활짝 웃는 표정에서 모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물개 한 마리를 머리에 인 바위가 보인다. 도봉 능선의 바위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늘 다니던 방향을 역으로 걸으니 나 역시 풍경이 새롭다. 자운봉까지의 거리는 좀처럼 짧아지지 않는다.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긴 계단을 치고 오르자 허벅지가 묵직하다. 신선대 꼭대기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자운봉이 멀지 않았다. 산에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면 생각보다 멀지 않은 시간에 닿을 수 있다. 발 놀림이 빨라진다.
< 도봉 주능선에서 2 >
11시 무렵 자운봉 밑에 도착했다. 유박사님과 청한님은 남고 산거북님과 아카님과 함께 신선봉에 오른다. 자운봉 기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먼 풍경을 조망한다. 미세먼지가 가린 서울 시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완벽하게 조망된. 지나온 상장능선이 아득하다. 오늘도 60cm 남짓의 내 작은 보폭이 산들을 저 만치로 밀어냈다. 신기하고도 대견하다.
< 신선대에서 >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우이암에서 자운봉까지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급할 것 없는 토요일 오후, 한껏 여유를 부리며 걸어도 돼 좋다. 자운봉을 지나며 인파에 섞인다. Y계곡 갈림에서 우회로를 택한다. 어차피 주말에는 일방통행 길이다. 응달진 우회로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산허리를 걷다 다시 능선에 올라 붙는다. 포대능선과 그 넘어 사패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암릉의 향연이다.
뒤돌아 보니 선인봉도 눈에 들어온다. 부근 소나무 군락의 잎이 갈색이라 의아해 했는데 얼마 전 산불이 있었다 한다. 등로 좌우 숲이 검게 그을러 있다. 안타까웠지만 그나마 큰 불로 번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다.
< 포대능선에서 본 풍경 >
12시 무렵 그늘에 쉬어가기로 한다. 청한님이 힘들여 메고 온 막걸리가 풀리고 남은 음식들이 배낭에서 꺼내진다. 날이 더워지네 쉬이 지친다.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살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천적이 드문 도심의 산 고양이는 생태계의 꽤 위선에 있나 보다. 도도한 눈매며 비대해진 몸매가 이를 대변한다.
포대능선에 중심에 들어선다. 크고 작은 오르내림이 다이나믹하다. 청한님은 성치 않은 발에 힘겨워한다. 다른 탈출로나 종주나 별반 거리 차이가 없기에 안타까워하는데 정작 본인은 내색하지 않고 걷는다. 망월사 갈림에서 포대능선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서 있다. 1.4km 거리의 능선 중간에 대공포진지인 포대가 들어서 있어서 명명되었다는 것과 능선 좌우로 유명 계곡이 산재해 있다는 자랑이다. 바야흐로 포대능선에 중심부를 걷고 있다. 입간판에서 5분여 거리에 포대능선의 중심 721봉, 산불감시초소에 당도했다. 사위가 확 트이고 산패산이 좀 더 가까워졌다. 시간은 12시 20분을 막 지난다. 시간이 갈수록 걷는 속도가 더뎌진다.
< 포대능선 721봉에서 울대고개 >
우이암에서 721봉까지의 거리는 3km 남짓인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볼 게 많은 것도 이유지만 오르내림도 만만치 않게 많다는 반증이다. 이제부턴 길이 순해지리라. 사패능선에 들어선다. 사패산, 선조의 딸 정휘공주가 시집갈 때 하사한 산이라 한다. 무능한 왕이 딸에게는 너그러웠나 보다.
길 갈림에 살찐 흰 고양이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초코릿을 주어도 반응이 없다. 아까 본 검은고양이와 색깔이 대비된다. 이 놈 역시 피둥피둥하다.
회룡탐방센터 갈림에 선다. 사패산까지는 1.2km 거리다. 작은 오르내림은 있지만 대체로 걷기에 무리 없는 등로다. 일행들과 번갈아 가며 대화를 한다.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부담 없이 말을 섞을 수 있을 만큼 편한 사이가 되어 간다. 산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의 좋은 기회다. 가족, 회사 등 늘 가까이 있어 비슷해져 가는 관계 사이에서 산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과의 만남은 관계의 다양성을 제공해 준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어도 인간관계는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음을 증명해 준다.
< 사패산 정상에서 >
1시 24분 드디어 사패산에 올랐다. 포대정상에서 1시간 남짓 걸렸다. 준수한 속도다. 국내 산 최고 수준의 너른 반석 위에 선다. 지나온 상장~도봉~사패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다 같이 모여 종주 완성을 자축했다. 쉽지 않을 길에 묵묵히 동행이 되어준 고마운 분들이다. 혼자였다면 엄두가 나지 않을 일이었다.
< 상장~도봉~사패능선 전경 / 사패산 하산 길 풍경 >
남은 간식을 다 꺼내 먹는다. 유박사님의 커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무거운 걸 메고 걸었다니, 고맙고 무엇보다 그 무한한 체력이 놀랍다.
안골 갈림에서 하산을 시작한다. 울대고개 거리는 2.5km 정도일 게다. 한결 편안한 기분으로 천천히 내려선다. 험로에 계단이 놓여 걷기에 좋다. 한참을 내려가다 금줄이 처져 있는 곳에서 길을 틀었는데 한참 후 정맥을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산길과 둘레 길과 군사용 길이 섞여 어지럽다. 산너미길이라는 둘레 길과 정맥이 만난다. 여전히 출입금지 표시가 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그 이유를 알았다. 도처에 군 훈련장이 있다. 군대의 이동이 잦은지 등로는 편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니 공동묘지와 마을이 조망된다. 그리고는 뚝 길이 도로로 떨어진다. 13.8km, 8시간 40분이 소요된 만만치 않은 길은 이렇게 종료된다. ‘함께’라는 말이 값지고 고맙게 다가온다.
< 에필로그 >
공사중인 울대교차로 인근의 어수선한 도로, 표지기가 무수히 붙어 있는 날머리를 지났는데도 길은 한참 동안 이어진다. 공사 중 배수로 옆으로 밧줄을 타고 내려와 울대고개에 도착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닌가 보다.
솔고개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카메라 사진을 빠르게 살핀다. 시간 역순으로 지나온 길과 풍경 그 길을 함께 걸은 동지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있다. 이 사진들은 훗날 값지고 고마운 추억이 될 것이다.
이번 구간 길의 감회를‘상장능선 넘어 도봉의 만춘(晩春)과 풍광에 반하다.’명명한다. 상장능선, 도봉능선, 사패능선을 걸으며 만춘의 정취를 충분히 만끽했다. 새 길에 대한 호기심이 채워졌고, 익숙한 길에서 새로움을 느꼈다. 특히 상장능선은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다시 찾고픈 곳이었다,
돌아온 솔고개 솔향가든, 주인장이 따스한 마음으로 우릴 반겨준다. 막걸리 한 사발에 청국장과 도루묵 조림으로 맛난 점심을 먹었다. 알맞게 익은 파김치가 특히 별미였다. 포만한 기분으로 귀경 길에 오른다.
집안에 여러 우환에도 불구하고 선뜻 함께 하자고 길을 나서준 고마운 형님 산거북님, 내 배낭 무게보다 더 무거운 커피를 직접 내려 메고 온 자선가이자, 산에서 늘 여유롭고 유쾌한 남자 유박사님, 군말이 필요 없는 의리파 친구 청한님, 유박사님 말대로 시꺼먼 남자들 틈에 핀 씩씩하고 어여쁜 꽃 아카님, 모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구간에서 또 반가운 얼굴로 뵙겠습니다. ^^
첫댓글 한북정맥 구간중 최고의 구간일 것 같습니다.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만사를 제치고 간 보람이 있네요.
산도 즐겁고 사람도 즐거운 하루 였습니다. ^♡^
암튼 대단해요 그런데 산거북님은 형님이고 난 그냥 님? 다음부터는 형님이라 부르거라 ㅎㅎ
예, 형님~~~
@산처럼 ㅎㅎ
막 옆구리를 찌르니 아프겠구만.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