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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융합해 나갈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글이 길어질 듯합니다. 먼저 양해를 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 불쏘시개, 솔이, 키위(운영자), 그리고 조나단이 채팅방과 게시글, 댓글을 통해 서로 얽히고설킨 논쟁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누군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리고 이 논쟁이 격화되어 카페가 들썩이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잘된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서로의 생각, 신념, 그리고 표현방식 등이 다를 것이고, 자연히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사소한 분란이지만, 이후에는 좀 더 큰 분란도 오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생각이 교류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긍정적인, 때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카페도 성장하고 개인도 성장해 나가겠지요. 중요한 점은 분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카페 성장의 발판으로, 또한 각 개인의 성장 발판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얘기들이 얽히고설켜 있어서, 따로 따로 댓글을 달기보다는 이렇듯 한꺼번에 제 생각을 꺼내보고자 합니다. 한 달 반 남짓한 짧은 경험이지만, 카페지기라는 자리가 조심스러운 자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칫 말 한마디가 회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일단은 카페지기로서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촛불의 개인적 의견이라고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중요한 이야기(카페의 방향성과 관련된 지침과 같은 이야기)들은 연차대회와 같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토론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식이 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그를 위한 초안 제시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 본 카페의 인적 구성
본 카페의 회원구성은 매우 다양합니다. 원칙적으로 누구나 대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카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당사자, 가족, 전문가, 학생, 일반인이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지닌 카페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혜택 또한 모두에게 똑 같이 돌아가는 카페를 꿈꾸고 있습니다. 예로써 회원승급 조건, 게시판 개설권 등에서 출신성분에 따른 특별대우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모두가 같은 조건으로 회원승급이 될 것이며, 같은 조건으로 게시판 개설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카페지기와 운영자도, 당분간 카페가 일정한 방향과 원칙이 확립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겠지만, 이후 카페가 안정되어 갈수록 점차 특권적 권한을 내려놓는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예로써 현재 카페지기의 특권처럼 되어 있는 몇몇 게시판(예로써 촛불저서)도 이후에 합류하는 분들이 늘어나면 게시판 명칭부터 바꿀 생각입니다.
오늘 현재(2014. 8. 24) 회원 수는 113명입니다. 가입 때에 아무런 개인신상 정보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회원들의 정확한 배경은 파악할 길이 없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제가 잘 알고 지내던 10여명의 당사자와, 제 제자들 10여명, 제 지인들 10여명, 그리고 “파란마음 하얀마음”에서 넘어온 당사자 분들과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로부터 넘어온 가족 분들의 수가 좀 많은 것 같고, 그 외에 “우기모임”, “아름다운 동행”, 그리고 기타의 카페들에서 소수의 가족 또는 당사자가 넘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아직은 카페 핵심멤버(카페 충성도가 높은 회원)는 10여명 수준이라는 게 제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들 10여명 간에도 카페의 방향성에 대한 정확한 합의가 채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2. 카페 유입 배경에 따른 “문화차”의 존재 가능성
제가 알고 있기로는 이번에 논쟁을 벌인 사람들 중 키위(운영자), 솔이, 그리고 조나단은 “파란마음 하얀마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당사자들입니다. 그리고 불쏘시개는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에서 최근에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한 가족입니다. 저는 이번 논쟁이 개인의 성격과 신념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이전에 활동하던 “카페문화”의 차이도 상당 부분 작용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본 카페 주변의 카페들 간에는 핵심멤버들의 배경도 확연히 다르고, 카페의 목적과 운영방식에 따른 카페문화의 차이도 뚜렷이 존재합니다. 예로써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의 핵심멤버는 당사자 중심이고, 주로 40대 이상이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많고, 가족들의 실제적인 지원 없이 혼자, 또는 당사자들 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핵심멤버들은 자신이 병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대체로 현재의 생활이 다소 불만족스럽기는 하지만, 더 이상의 거창한 또는 무리한 목표 없이 현재의 생활을 잘 유지해나가는데 만족하고 있는 듯합니다.
약물복용은 제 생각에는 대개가 고용량이지만, 그 용량에 적응되어 있고, 약물감량에 대해서는 재발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현재의 안정된 상태가 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기에, 대체로는 무리한 감량을 시도할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주치의와의 관계 또한 대체로 오래된 관계이며, 주치의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 정신보건상황에 대해 대체로 개탄하지만, 달리 어떤 조직적인 운동을 시도할 의사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카페의 목적은 “친목” 중심이고, 채팅방이 24시간 끊이지 않고 돌아갑니다. 다른 카페들에 비해 채팅방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지요. 카페의 문화는 매우 자유롭고 허용적인데, 때로는 방임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시글이나 댓글은 긴 글이나 진지한 글은 대체로 인기가 없는 듯하고, 짧고 재미있는 글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또한 수필과 시 등 당사자들의 문학작품도 많이 올려지고 있습니다. 채팅방도 진지한 대화보다는 안부와 위로, 농담 등이 위주인 듯하고, 때로는 욕설과 음담패설 등이 횡행할 때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사랑방” 또는 “놀이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기능은 당사자들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따라서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가 지금까지 나름의 역할을 잘 해왔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본 카페를 처음 만들고 약 한 달 정도, 제 개인적으로는 조나단을 통제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조나단은 저와 무척 친합니다. 하지만 이 카페를 만들고 나서 조나단은 채팅방에서, 그리고 게시글로 몇 차례나 돌출행동(예의에 심하게 어긋나는 점잖지 못한 표현,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당황스러운 발언)을 하였습니다. 사실 조나단을 “강퇴”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돌출행동에는 조나단 개인의 성향과 신념도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문화에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저와 무척 친하고 저를 많이 따르지만, 카페의 취지와 운영방식에 관한한, 조나단은 제 생각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더 옳다고 느끼는 듯합니다. 저로서는 저도 제 나름의 뜻을 펴보려고 카페를 만들었는데, 조나단은 저를 도와주려고 하기보다는, 저를 가르치려 하고, 제 생각을 뜯어고쳐서 이 카페를 자신이 원하는 성격의 카페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예로써 “교수님이 다 옳지는 않아. 특히 카페에 관한한 나는 경험이 많고 아는 게 많지만, 교수님은 초짜잖아. 그리고 당사자에 관해서도 교수님이 안다고 하지만, 내가 더 많이 알아. 나는 직접 겪고 경험했지만, 교수님은 지켜본 거 밖에 없잖아. 교수님도 친한 당사자들이 있지만, 내가 훨씬 많은 당사자들을 알고 있어. 그러니, 당사자에 관한 일이라면 교수님도 나한테 배워야 해. 내 코치를 따라야 해. 특히 카페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솔직히 저는 조나단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직도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의 심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가능한 조나단을 끌어안고 갈 생각입니다. 이렇게 벗대는 것도,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것도,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고, 성장의 한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화제를 돌려서,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 카페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누구나 알듯이 “정확한 진단, 최선의 약물선택, 최소의 유지용량, 신속한 사회복귀”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선진국의 표준적인 치료법입니다.
이 점에 관한한 국내의 대다수 정신과의사들은 맹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의 경우, 엉터리 진단이 횡행합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자 하는 열의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엉터리 약물선택(대표적으로 몇 가지 약을 동시에 처방하는 것, 정확한 근거 없이 대충 약 써보고 안되면 그 때가서 다른 약으로 바꿔보는 것, 당사자에게 비만이나 신체적 합병증이 오든 말들 무관심하게 약을 쓰는 것), 말도 안 되는 고용량 처방(당사자가 하루 종일 졸려서 공부도 일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잠만 자는데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제 생각에는 국내 평균 약물처방용량은 미국의 3~4배 정도 되는 듯합니다.), 신속한 사회복귀의 외면(장기간 병원에 입원시켜 두는 것), 환자의 재활/재기에 대한 극도의 무관심. 그 결과 상당수 당사자들이 결국 오랜 백수생활 끝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합니다. 이러한 국내의 치료현실은 명백히 전문가들의 직무유기입니다.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카페지기 “싸이프리(권영탁 원장)”에 대한 찬반양론이 비등하지만, 방금 언급한 점에 관한한, 권영탁 원장이 백 번 옳습니다. 또한 권영탁 원장이 주중에 병원에서 숙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환자진료에 대한 애정/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 6시에 환자들을 깨워서 강제적으로 2Km씩 구보하는 것도 환자들에 대한 애정/열정이 넘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신앙의 힘으로 해나가는 것도, 깊은 신앙심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권영탁 원장의 이러한 방식의 진료방식은 분명 통상적인 의사들의 진료방식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많은 의사들이 권영탁 원장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들의 무관심과 게으름이 권영탁 원장의 애정/열정, 부지런함과 대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점에 관한한 전문가들이 권영탁 원장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핵심멤버들은, 잘못된 치료관행 때문에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던 자식들을, 권영탁 원장의 극성스러움 덕에 되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권영탁 원장은 그야말로 구세주와 같은 분입니다. 주변에서 “맹신도”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전교 꼴찌까지 성적이 떨어졌던 자식이 다시 전교 1등을 되찾은 경우, 대화가 통하지 않고 마음이 통하지 않던 자식이 이전과 같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온 경우, 등) 부모의 입장에서는 “맹신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평생의 은인” 이지요. 그러니 비난할 일이 못됩니다. 또한 권영탁 원장 때문에 재발한 경우도 많다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당연한 위험-감수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재발율이 어느 정도인지 따로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고용량을 처방하는 경우에도 재발이 횡행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재발을 근거로 권영탁 원장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핵심멤버들은 “적절한 약물선택과 최소유지용량 복용”이라는데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식적인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입니다. 권영탁 원장의 글 자체도 워낙 길고 전문적이지만, 가족들이 올리는 글 또한 기본적으로 길고, 전문적입니다. 그들은 게시글만 전문적으로 다는 것이 아니라, 댓글도 조목조목 동의할 건 동의하고, 비판할 건 비판합니다. 또한 권영탁 원장에 대한 감사함이 워낙 크다보니, 권영탁 원장에 대한 신뢰심과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카페구성원은 대체로 가족들, 특히 고학력이고 부자인 가족들이 많습니다. 권영탁 원장의 성향도 그러하지만, 가족들의 성향 또한 “자식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한다.”는 주의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내 힘으로” 자식을 기필코 낫게 하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제 생각에, 권영탁 원장도, 가족들도 “지시적이고, 주도적이고, 자신만만한, 때로는 고집 세고, 권위적이고, 자칫 강압적이고, 독재적인”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이렇듯 “파란마음 하얀마음”과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 간에는 그 카페구성원의 특징과 카페문화가 확연히 다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는 권영탁 원장이 카페를 만들면서 “파란마음 하얀마음” 회원들 중 상당수를 빼갔다는 비난도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서로간의 성향이 많이 다른 분들이기에 같은 카페 내에서 활동하기가 불편했을 것이라는 게 제 짐작입니다.
물론 권영탁 원장의 방식에 제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권영탁 원장에게는 20대의 젊은 환자들이 많습니다. “신속한 치료, 신속한 사회복귀”를 모토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영탁 원장은 치료가 잘되면 재활/재기는 필요 없다는 주의입니다. 대다수 환자는 자신의 방식대로 치료하면 당연히 낫고, 불행히도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사회생활이 붕괴된 소수의 환자들만이 재활/재기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이상적으로 말하자면, 적어도 80~90%의 환자는 사회생활의 붕괴 없이 치료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재활/재기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10~20%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현실은 다릅니다. 권영탁 원장에게 치료받는 환자들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환자들의 70~80%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재활/재기를 필요로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 회원들은 이러한 현실 가운데에서도 상당한 정도로 재활/재기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재활/재기를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온 사람들도 주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이 점이 또 다른 차이를 가져옵니다. 권영탁 원장의 방식은 “전문가 주도적”, “가족 주도적” 방식인데 비해서, “파란마음 하얀마음” 쪽은 “당사자 주도적”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전문가 주도적인 “치료/재활”을 강조하는데 비해서, 당사자들은 당사자 주도적인 “재활/재기”, 특히 “재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입장은 그 중간인데, 중간에서 전문가 쪽으로 좀 더 치우친 입장을 보입니다.
또 다른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당사자끼리의 결혼”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권영탁 원장은 “결혼”은 적극 권장하지만 “당사자끼리의 결혼”은 결사반대입니다. 권영탁 원장이 “결혼”을 적극 권장한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왜냐하면 국내의 상당수 의사들이 당사자의 “결혼”을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 회원들은 상당수가 “당사자끼리 결혼”해서 잘 살고 있거나, 또는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사자끼리의 결혼”을 반대하는 권영탁 원장의 입장은,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열등한/고장난 인간 또는 불량품으로 취급하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사소한 듯하지만, 권영탁 원장에게 반감을 갖는 당사자들이 느끼는 또 다른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등하게 존중받지 못하고, 차별받는 느낌인 듯합니다. 예로써 당사자들이 장황하게 또는 지리멸렬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권영탁 원장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중단시키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치료적 이유가 있겠지만, 당사자들은 그때 무안함, 서운함, 심한 경우에는 모욕감까지 느끼는 듯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 함께 회식을 하러 간 경우가 있었지만, 이전에는 약물교육을 마치고, 회식하러 갈 때 권영탁 원장이 전문가와 가족들만 데려가고 환자들을 배제시킨 경우가 많았습니다. 권영탁 원장으로서는 그런 뜻이 아니었겠지만, 당사자들로서는 서운하기도 하고, 차별받는 느낌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사자들은 단지 치료자와 환자 관계가 아니라, 자신을 친구로, 동생으로, 또는 선후배로 대해주는 전문가를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
제 생각에 키위(운영자)가 권영탁 원장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본인은 당사자끼리 결혼하여 알콩달콩 잘 살고 있고, 더욱이 아내가 자신의 치료/재활/재기에 큰 힘이 된다고 느끼고 있으며,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영탁 원장은 그 점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명백히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였습니다. 또한 교육시간에 당사자들의 발언을 끝까지 듣지 않고 제지하거나, 화제를 바꿔버리는 진행방식에서 당사자를 대등하게 대하지 않고, 권위적, 지시적, 차별적으로 대한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본 카페에는 권영탁 원장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회원들과 싫어하고 때로는 비난하는 회원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또한 약물감량에 대해서도, 전문가-주도적인 또는 가족-주도적인 치료/재활 방식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회원들과 거부감을 느끼는 회원들이 혼재해 있습니다. 심지어 꼭 사회복귀/사회적응을 시도해야 하는가?,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회원들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3. 신념과 신념이 부딪힐 때
많은 사람들이 신념과 감정은 별개일 것이라고, 또 별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신념은 감정과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며, 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느끼고, 나아가서 분노까지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치얘기, 종교얘기는 섣불리 꺼내지 마라.”고 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싸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내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면 할수록, 상대방도 더욱 강하게 버팁니다. 제 생각에는 신념은 논리적인 설득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은 “강력한 감정(좋거나 싫음)”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신념을 바꾸려고 한다면, 논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 먼저 나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나에 대한 존경심이 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나와 180도 다른 정반대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름대로 그러한 신념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본인의 입장에서는 그 신념이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신념은 한 순간에는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해준다고 해도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로 간에 자신의 주장을 펼 때에는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게 바람직합니다. 가장 좋은 순서부터 점차 나쁜 순서로 나열하자면, 정보제공-조언-충고-설득-강요-비난-제재 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는 설득도 해보고 강요도 해보았지요. 화도 내보았고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인간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가급적 “정보제공”에 그치려고 합니다.
이번에 솔이님이 쓴 글을 보니 “뭐가 그리 잘 나셨나요? 남의 삶을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고 훈계하고...”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충고 받는 사람의 심정을 잘 대변한 솔직한 표현입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충고는 자칫 반발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충고는 이면에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거든요. “내가 너보다 똑똑하다. 내가 너보다 잘 낫다. 너는 나보다 못하다. 내 판단을 믿어라. 네 판단은 잘못됐다.” 또한 충고는 급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좀 더 긴 세월을 기다리면서 서서히 바뀌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 당장 바꾸려고 하는 거지요. 그것도 “내가”.
제 생각에는 “내가 너를 바꿔주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는 생각은 위험해 보입니다. “공(功)은 상대방에게 돌리고, 허물은 내가 뒤집어쓰라.”는 말이 있지요. 좋은 리더들은 그렇게 한다더군요.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해냈다고 느끼게 해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속상해서 씩씩거립니다. 나는 애써 저를 도와주려 했는데, “고맙다.”고는 못할망정 나한테 화를 낸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억울해 하지요. 하긴 저도 젊은 시절에는 그랬네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충고하고, 설득하고, 강요하고, 속상해하곤 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가급적 “정보제공”만 하려 합니다. “내가 어디서보니까 이런 말도 있더라.”는 정도? 뭐... 그 정도에서 머물면 좋겠죠. 그것도 한 템포씩 죽여가면서... 상대방이 자기표현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귀기울여주고 기다려주면서 대화를 천천히 진행하면 더욱 좋겠지요.
4. 타 카페나 병원의 홍보에 대하여
제 생각에는 현재의 정신장애인 카페문화가 울타리들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카페에서 타 카페를 홍보하는 게 잘못된 일인 듯 금기시되는 카페문화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서로가 서로를 홍보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쪽 카페에 없는 좋은 점을 저쪽 카페가 갖고 있고, 또한 저쪽에 없는 걸 이쪽이 갖고 있으니까요. 누구도 훔쳐갈 수도 없고, 뺏어갈 수도 없는 좋은 점이 내게 있다면 다른 쪽 카페를 홍보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카페회원들의 판단력을 믿는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렇게 해야 조금씩 서로 간에 협조와 연대가 이루어질 거고요. 저는 우리 카페가 먼저 그 시범을 보여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카페에 먼저 손을 내밀어 준건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 카페죠. 회원들 중에는 그 카페를 좋게 생각하는 회원도 있고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회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카페에서 우리 카페 홍보를 먼저 권유해주고 허용해준 건 그 자체가 사실이니까, 사실대로 언급해야겠지요.
그리고 병원 홍보에 대해서도 저는 어느 병원이든 다 허용해주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병원에 대한 홍보 글이 올라오면 많은 회원들이 찬반양론의 댓글들을 달겠죠. 그게 때로는 우리 회원들의 판단에도 도움이 될 거고, 홍보 글을 올린 병원 쪽에서도 찬반양론을 보고 뭔가 고칠 점은 하나라도 고치려고 할 거니까, 궁극적으로는 이래저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떤 홍보 글이 올라오든 우리 회원들이 잘 판단하고 대응할 거라고 믿습니다. 물론 홍보도 성의 있는 홍보도 있고, 성의 없는 홍보도 있겠죠. 성의가 없는 홍보는 질적으로 낮은 홍보자료니까 우리 카페 글에 올려둘 이유가 없을 거고, 성의가 있는, 즉 정보가치가 있는 홍보는 권장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카페 나름의 병원평가 척도를 가져야 하겠지요. 회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병원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도록 자세한 항목을 제시해줘야겠죠. 또한 홍보 글이 올라온 병원에 대해서도 평가척도를 들이대서 회원들이 따져볼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저는 병원과 상담기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원이나 식당 같은 곳들도 이 곳에서 홍보를 허용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기관 또는 가게들이 홍보 글을 올리려면, 우리 회원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한두 줄이라도 적어주는 성의는 보여야겠지요. 이 점은 제가 며칠 전에 “보물지도(카페/기관 홍보) 게시판”을 만들면서, 거기에 올린 글에서 이미 언급해 뒀습니다. 제 생각에는, 예로써 할인을 해주겠다든지 뭐... 그런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겠지요.
5. 결론
제 생각에는 카페 회원들이 서로간의 신념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 글을 올릴 때, 대화를 할 때 그 점을 전제하고 해야할 것입니다. 주장을 펼 때에는 가급적 “정보제공”하는 선에서 그치고, 설득하거나 강요하려고 하지 않는 게 좋겠죠. 반대로 다른 사람의 주장에 대해서는 “나는 달리 생각하지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여주면 싶네요. 그리고 제가 카페취지문에서 밝혔듯이 “상호존중, 비방금지”의 카페문화를 늘 염두에 두고 다 같이 합심해서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지난 며칠간의 논쟁이 카페발전과 각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적으로 본 글을 그대로 파일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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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신분열병(조현병)을 이겨낸 사람들” 카페에서 <마중물>가족모임을 주관하고있는 청계입니다.
촛불님의 "<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융합해 나갈 것인가?>"라는 명제를 두고 쓰신 고심의 글을 잘 보았습니다.
저두 싸이프리님 신념적 진료행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맹신도가 되는 것은 스스로 경계하고 있답니다.
촛불님께서 작년에 모욕감을 느끼지 않으실까 걱정을 많이했습니다
신념이란게 영원 불변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게 자신의 신념이 강할 수록 타인의 신념을 부정하든가, 타인을 배려치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겸손치 못한 신념은 타인을 배려치 못하는 오만과 자만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도하죠
"<사라의 열쇠> 카페에 회원이 되신분은 나와 무언가 다르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해도,
모욕적인 언사나, 비방성 글이 아닌한 정보공유차원에서 포용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걱정/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작년에도 댓글 다실 때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는데, 그때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카페가 포용력이 아주 큰 카페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려면 몰라도, 큰 일을 하려면 포용력이 있어야겠지요. 카페 회원들끼리 우리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다 보면, 회원분들 각자의 포용력 또한 점차적으로 저절로 넓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저도 그래 봤기 때문에(타인을 부정하는, 겸손치 못한), 그런 분들까지도 포용해 보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카페를 위해 이렇듯 덕담을 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대한의 자유속에서 규제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