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편지-하동행
늦은 밤
구례구역 앞을 흐르는
섬진강변을 걸었습니다
착한 산마을들이
소울음빛 꿈을 꾸는 동안
지리산 능선을 걸어 내려온 별들이
하동으로 가는 물길 위에
제 몸을 눕혔습니다
오랫동안
세상은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압과 고통 또한 어두운 밤길 같아서
날이 새면 봉숭아꽃 피는 마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 아직 스물 살 첫 입맞춤의 추억
잊지 않았습니다
폭염 아래 맨발로 걷고 또 걸어
눈부신 바다에 이르렀을 때
무릎 꺾고 뜨겁게 껴안은
당신의 숨소리 잊지 않았습니다
많고 많은 섬진강 시 중에서 곽재구 시인님의 '밤편지-하동행'을 고른 이유는 2연에서 나오는 구례 구역이라는 단어가 친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곽재구 시인님은 저번 해에 구례고등학교에서 인문학 강좌를 진행주시면서 정말 좋은 말씀들을 많이 남겨주고 가셨기 때문에 이 시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을 때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여러 번 읽다보니 이 시는 화자가 늦은 밤 홀로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스물 살 첫 입맞춤의 대상이었던 사랑하는 여자를 떠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늦은 밤 별이 비춰진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바다에 이르러 그녀를 뜨겁게 껴안았을 때 당신의 숨소리를 잊지 않았다는 화자의 말에서 애틋한 감정이 잘 느껴진다.
첫댓글 참 잘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