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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느끼는가는 타고난 천성이나 성장 배경에 좌우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대를 지배하는 정서적 문법의 영향을 받는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보면, 사회의 실체를 보다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욕구는 엄청난데 서로 인정해주는 너그러움은 부족, 저성장으로 인한 생존의 기반마저 흔들리면서 비롯되는 결핍과 공허를 채우려고 갖은 애를 쓰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취급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인에 대한 모멸이다. 누군가를 모욕하고 경멸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 모멸은 모멸감을 낳는다.
한국인의 마음속에 얽혀 있는 응어리의 실체를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지평에서 두루 탐구하고,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하려는 것.
프롤로그 : 감정의 사회적 문법
- 미술 : 파울 클레, 「두려움의 분출」, ‘생각이 엔진이라면, 감정은 가솔린이다.’
- 음악 : 1/ 감정의 찌꺼기
나도 모르는 나 : 감정은 언제나 블랙박스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가족이나 친구의 마음뿐만 아니라 감정은 나 자신에게도 매우 낯선 ‘타자’로 종종 다가온다. 나의 생각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감정에 당혹감을 느낀다.
『대화의 심리학』: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문제에 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우리가 편치 않게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위장한다. 즉 서로 모순되는 수많은 감정들이 한 감정의 가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감정이 스스로를 위장한다는 표현, 나 자신과 구별되는 또 다른 생물로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비유다. 의식의 수면에서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이 감정.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엔진이지만, 그 기본 설계도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그 자체가 독자적인 생명체인 듯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심술을 부린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감정을 바꾸는 것이 훨씬 어렵다.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뀔 때가 많다.
감정은 의식의 수면 아래서 나를 계속 움직인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나는 누구인가. 그 ‘타자’의 정체를 탐고함으로써 나다운 삶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 수 있다.
2.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모이시 『감정의 지정학』: 20세기가 이데올로기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정체성의 시대. 대륙에 따라 공유되는 감정의 색깔을 3등분하여 지정학적으로 분석, 두려움에 젖어 있는 서양, 굴욕감에 시달리는 이슬람, 희망에 부푼 아시아라고 지구촌의 정황을 도식화.
사회학자 뒤르켐 『자살론』: 자살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인 현상
장례식장에서 이별의 표현: 눈물이 일반적이나 뉴올리언스의 흑인, 진도의 장례식은 축제 치르듯
시대에 따른 다양한 양상 : 과거 범죄자 공개 처형이나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를 축제처럼 즐기는 군중. 필립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에서 근대사회에 접어들어 부모가 자녀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감정 규칙이 성립했다고 분석
이처럼 감정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띤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지고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삶의 바탕이다. 일시적인 파동이 아니라, 장기 지속의 관성이다.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는 까닭은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폭넓은 시선으로 조망하면서 상대화하기 위해서다. 당연시되는 감정이 일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서의 얼개를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행복을 도모하는 문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감정의 차원에서 새롭게 구상할 수 있다.
3. 한국인의 마음 풍경 : 나는 분노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 : 분통, 울분, 억울, 허탈, 짜증, 설움, 한숨...
간헐성 폭발성 장애 : 전두엽 기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내뿜는 증세
생활형 분노 : ‘욱’하는 감정에 휩싸여 충동적인 언행을 표출하는 것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분석한 책들의 제목 : 『피로사회』『불안증폭사회』『허기사회』『트라우마 한국사회』『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상승 이동에 대한 욕망과 비교의식이 강한데 자신의 처지는 점점 뒤처지는 듯하기에, 그 간격이 자괴감과 열패감으로 드러나 ‘르상티망ressentiment’(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되풀이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이 번식한다. 불합리한 갑을관계가 생존을 옥죄고 자존심을 위협하는 가운데 피해의식과 원함 감정이 깊어져 조금만 건드려도 상처받고, 앙갚음으로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억누른다. 사소한 차이들에 집착하면서 위세 경쟁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모멸을 주고받기 일쑤다. 인격이나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은 ‘구조’가 사람을 능멸한다.
우리가 일상의 여러 장면에서 겪게 되는 모멸감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모욕을 주고받는가. 어떤 사람들이 타인을 쉽게 모욕하는가. 한국의 사회와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크고 작은 모욕이 이어지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가. 모욕에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과 담담하게 견디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있는가. 못난 사람들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어떻게 열릴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논의를 풀어가고자 한다.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 미술 : 모버트 카파, 「전쟁과 여인」, 단죄와 비난의 눈초리가 사납다. 타인의 허물을 폭로하고 손가락질하는 마음에는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
음악 : 2/ 모욕의 응어리, 3/ 감정의 위장
수치심의 두 얼굴 : 인간다움의 징표이자 존재를 부정하는 파괴적인 감정
- 수치심이란
신화연 『부끄러움의 코드』: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동시에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인식할 때 일어나는 감정.
스튜어트 월턴 『인간다움의 조건』: 자신의 처신이나 상황에서 불명예스럽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불미스러운 것을 의식할 때, 혹은 자신의 품위나 체통을 훼손하는 상황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
∴ 수치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즉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 인간에게는 사회적 유대가 생존을 좌우하는 열쇠, 다른 어떤 동물보다 집단의 질서가 중요한데 적절하게 유지하려면 법과 같은 강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른 차원의 통제가 작동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이다.
도덕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물리적인 징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찡그린 표정, 차가운 눈빛, 손가락질, 핀잔 등 심리적인 압박이 우선적으로 가해지는데 이런 징계가 효과를 거두려면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사과하거나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 그 매개 고리가 수치심이고 사회가 원만하게 유지되기 위해서 구성원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감정이다.
잠깐 겸연쩍은 심정으로 자신의 태도나 행위에 대해 반성하도록 이끄는 순기능적이고 건설적인 수치심이 있는 반면, 체면을 와전히 구기고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자존감을 뭉개버리는 역기증적이고 파괴적인 수치심도 있다. 후자의 수치심이 자주 경험될수록 비인간화된 사회.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 인간이 경험하는 의식레벨을 20~1000까지 등급화, 수치심을 가장 낮은 에너지 수준인 20에 배치,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을 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이다.
대니얼 골먼 『EQ 감성지능』: 수치심에는 죄책감, 당황, 유감, 양심의 가책, 굴욕, 후회, 치욕, 회한 등의 감정이 포함. + 저자 : 열등감(콤플렉스), 자기혐오, 분노, 억울함 + 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은?
- 수치심에 빠지는 경로 ① 자신의 욕심으로 불명예스러운 일 자초 ② 다른 사람이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거나 없는 사실을 지어내 창피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
- 인간에게는 타인을 창피하게 만들면서 그가 쩔쩔 매는 것을 즐기는 심보가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친구를 골탕 먹이고 놀리는 모습에서 그 뿌리를 확인할 수 있다. 유희와 희롱, 노는 것과 놀리는 것 사이의 간격은 의외로 좁다.
- 과오에 비해 지나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우 외면적인 규제 효과는 몰라도 내면적인 변화 어렵고 영혼을 침해하고 파괴한다.
2. 모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 모욕이란? 국어사전 ‘타인을 업신여겨 욕되게 하는 것’으로 풀이, 영어에서 ‘모욕’에 상응하는 단어는 humiliation, ‘낮은 위치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우리말에서도 공간적 위치를 비유해서 모욕적인 상황을 표현 : 얕잡다, 깔아뭉개다, 하대下待, 비하(卑下), 무릎 꿇다, 굴복하다, 납작 엎드리다, 살살 기다....
- 수치심이 본인의 잘못이나 결함에 대한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이라면 모욕감은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화가 나는 감정이다. 대개는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수치심에 모욕감을 포함한다.
- 모욕 + 경멸 = 모멸
모욕 | 경멸 또는 멸시 | 모멸 |
적나라한 공격적인 언행 적대적인 의도가 강함 생각 없이 모욕하기 어려운 일 |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 적대적인 의도가 분명하지 않음 무심코 경멸하는 것 흔한 일 | 모욕 + 경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
- 모욕감을 느낄 경우 그 감정을 유발한 사람을 분명하게 지목할 수 있는 반면 모멸감은 누군가가 나를 직접 모욕하지 않았다 해도 느낄 수 있고 어떤 상황 자체가 모멸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며 준전히 나의 낮은 자존감 때문에 모멸감을 느끼기도 함.
-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또 다른 모멸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원동력.
3.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
- 권정생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2)」: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 이가 갈린다.
- 영화 「파수꾼」: “너만 없었으면 돼”자살은 자신에 대한 폭력, 바탕에는 복수심.
- 고려 무신의 난 : 이소응 대장군이 젊은 문신 한뢰에게 뺨을 맞고 모욕당한 일이 직접적 계기.
- 2012년 한국여성의전화 자료 : 여성 살인사건 200건 중 120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무시당한 것이 원인.
- 제임스 길리건 ① 살인죄 수감자 인터뷰 중 범죄의 진짜 이유를 설명할 때 “그 놈이 나를 깔보았다”는 표현이 가장 빈번 ②살인을 통해 얻고 싶은 것 : 자부심, 존엄, 자존감
- 2011, 노르웨이, 브레이비크의 차량폭탄 테러, 노동당 청년캠프장 69명 사살 : 업신여기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자괴감과 여성들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수치심이 세기의 살인마로 만듦.
- 제임스 길리건 : 폭력이 생겨나는 조건 ①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은 마음 ②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비폭력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것 ③폭력적 충동을 제어해주는 정서적 역량(사랑, 죄책감, 두려움)의 결핍.
- 열패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무리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충동이 생기는데, 누군가를 깔아뭉개면서 자신이 높이 올라가는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세상에 대한 증오 또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유 없는 저주와 맹목적인 폭행이 많은 경우 그 씨앗은 모멸감으로 밝혀짐.
4.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자본주의
- 2012년 9월 직장인 대상 조사 가장 스트레스 받는 상황 : 일은 똑같이 하는데 동료가 더 많은 연봉을 받을 때가 1/3로 가장 높게 나옴
- 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과로와 스트레스, 굴욕감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바로 소비시장. 개처럼 벌었지만 정승처럼 쓰고 싶다. 돈 벌면서 받은 ‘천대’를 돈 쓰면서 받는 ‘환대’로 덮어씌우려는 것. 그러나 만만치 않다. 최소한의 신체적인 안락을 위한 소비라면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비교가 이루어지는 소비사회에서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자꾸만 늘어남. 최소한의 품위유지비가 너무 높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그 원동력은 부러움.
- 부끄럽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 자신보다 더 부유한 사람과 견주면 초라할 뿐이다. 대안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 구별 짓기.
-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긋기, 구별 짓기의 절대적인 기준은 돈, 경제의 수단으로 고안된 돈이 삶의 목적이 된다. 그 결과 삶 자체가 수단이 되어 버린다. 자신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삶은 타인을 수단으로만 대하는 관계와 맞물려 사회의 비인간화로 이어진다.
5. 미소뒤의 분노, 감정노동
- ‘감정노동’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일정한 표정과 말투와 몸짓을 계속 지어냄으로써 고객에게 유쾌한 감정을 선사해야 하는 노동. 러셀 혹실드가 처음 내놓은 개념.
- 감정 부조화 ; 감정과 표현을 억지로 분리한 것.
- 감정 부조화로 인하여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에서 소외된다.
- 온갖 몰상식한 요구들을 고스란히 떠안고 울분과 치욕을 꾹꾹 삼키면서 두려움을 상냥함으로 감춰야 하는 종사자들은 병든 사회의 말단이다.
2장. 한국사회와 모멸의 구조
미술 : 파울 클레 「서로 상대방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만나다」, 힘겨루기와 눈치보기로 점철되는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오만과 비굴함에 길들여진다.
음악 : 허풍당당 왈츠
언어에 반영된 한국인의 정서 지형
- 모든 언어는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서, 저마다 고유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공유해온 경험, 자주 겪는 상황과 거기에 결부되는 정서, 사물과 현상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나 가치관 등이 반영
- 한국어의 특징 ① 의태어나 의성어가 두드러짐 ② 사람의 마음도 정교하게 포착하여 언어화. 감정 용어 풍부 ③ 부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음.( p105 참조) ④ 상대방에게 화를 내거나 힘으로 짓누르거나 마음을 옥죄는 모습을 다채롭게 묘사(p108) ⑤ 권력관계에서 약자가 굴복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게 표현(p109), 강자 앞에서 비굴하게 몸을 숙여야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암시.
- ‘억울하다(애매하거나 불공정하여 마음이 분하고 답답하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힘에 휘둘려 손해를 입거나 불리한 처지에 놓였다고 여겨지는 일이 많은 것.
- 한국인의 삶은 부정적인 감정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거기에는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또는 그러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관행들이 맞물려 있다. 그 어두운 에너지가 해소되지 못한 채 증폭되고 사회적으로 악순환을 일으킨다.
2. 귀천에 대한 강박 : 역사로 살펴본 한국인의 복 사상
- 최정호 논문 「복의 구조 : 한국인의 행복관」①조선시대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여겨진 것 가운데 공통된 4가지는 수(壽), 부(富), 귀(貴), 다남자(多男子).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 | 귀(貴) |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 숫자로 가늠할 수 있어서 주관적인 잣대를 내세우며 억지를 부릴 수 없다. 사적인 차원에서 추구되는 복, 가족의 범위를 넘기 어렵다. | 양의 구속을 받지 않고 질로 평가됨 갈고 닦음으로써 스스로 성취가능 내용이나 영역이 다양함. 공적인 차원에서 끝없는 확장성을 가진다. |
② 조선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개방되어야할 ‘귀’마저도 벼슬이라는 것으로 축소되고 획일화 됨
③ 제한된 관직을 두고 제로섬 게임에서 이겨야만 귀한 인생, 자기만의 고유한 정신세계나 생활양식을 통해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길이 비좁아 진다. ④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서 귀한 신분에 있는 사람들조차 높은 벼슬을 해서 ‘귀’를 누려야 비로소 ‘천’함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 한국적인 ‘귀’의 추구의 특수성, 혹은 강박성이 有.
3. 신분제의 붕괴, 신분의식의 지속
한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격변은 전통적인 신분제를 빠르게 무너뜨렸다. 그러나 자각적인 청산이 아니었다. 식민지배와 전쟁, 산업화의 물결이라는 외부의 힘에 의해 낡은 질서가 깨져나갔다. 따라서 권력의 시스템이나 사회 구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거나 논쟁하지 못했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비전을 창조하면서 현실과 맞붙어 싸운 경험이 박약했다.
그 결과, 겉으로 보이는 신분제도는 사라졌으나 신분의식은 온존하게 되었다.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지만, 귀족적 차별의식은 오히려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전통적인 신분 관렴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근대적 신분질서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으로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 한다.
4. 위계 서열과 힘의 우열
- EBS 다큐멘터리 「두 얼굴의 인간」실험 :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멈춰있을 얼마만에 경적을 울리는가. 마티즈 평균 3초, 에쿠스 평균 10초
- 타자와의 관계를 힘의 우열이라는 프리즘으로 가늠하는 마음의 습관은 여러 장면에서 확인된다.
5. 공동체의 붕괴, 집단주의의 지속
- 타인을 모욕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풍토에서 모멸감은 만연한다. 그런데 모멸감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타인들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과민함이다.
- 삶의 형태와 의식 사이의 부정합 : 한국에서 나 홀로 가구의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 가족 및 친척과의 접촉 빈도는 세계 평균 절반 수준, 이웃관계는 점점 소원, OECD 34개국 중 공동체 지수(공동체 생활로 위안을 얻고 정체성에 도움을 받는 지수)가 33위, 개인주의가 깊이 뿌리내린 서구 선진국들보다도 공동체가 훨씬 허약. 삶은 급속하게 개별화되는데,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개인주의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음.
- 개인주의는 여러 속성을 지니지만 자신의 조재 가치를 스스로 매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 한국은 타인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 참견하고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기에 대한 평가와 반응에 너무 예민하다.
- 사회적 결속이 느슨해지고 사적인 영역에서도 친밀한 관계가 어려워지는 상황, 그렇다고 개인주의적인 세계관이 형성된 것도 아니어서 타인의 시선에 늘 전전긍긍하는 삶은 모멸감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립된 개인들이 자기 정체성이 박약한 가운데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행복과 불행, 오만과 콤플렉스 사이의 왕복을 거듭, 귀천이나 우열의 가파른 위계 서열에서 상위 몇 %를 차지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찾으려 한다.
- 남의 이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자라나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도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 사회적 징후 : ‘굴욕’이라는 표현 남용. 연예인들의 ‘굴욕 패선’ 등
-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6. 인종주의와 콤플렉스
- 한국인의 노골적인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 : 단일민족의 신화, 순혈주의의 집착, 인종차별주의가 맞물림
-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부대 내의 인종차별주의 학습.
- 혼혈인들의 존재는 곧 힘없고 가난했던 냉전체제 하의 남한 사회를 떠오르게 하는 ‘수치’와 ‘열등’의 상징
- 혐오감으로 맺어진 유대는 단단하기 마련이고, 그 힘으로 퍼뜨리는 담론은 외국인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 우리 내면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콤플렉스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비굴함과 허세를 돌아보아야 한다.
3장. 모멸의 스펙트럼
미술 : 변웅필, 「한 사람으로서의 초상화」, 얼굴은 정체성의 그릇이요. 감정이 표현되는 통로.
음악 : 5/ 울지못한 자들을 위한 노래, 6/연민의 메아리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그런 처지에 몰리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끼면서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수 있다.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황은 매우 다채롭다. 모멸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꼬투리 삼아 업신여기는가, 모멸이 이루어지는 맥락은 어떠한가. 이런 다양한 변수들이 맞물려 모멸의 특성을 구성한다.
인간 이하로 취급 - 비하
- 1781년 노예선 : 보험금을 타기 위해 죽은 자와 병든 자를 바다에 던짐.
- 유럽의 박람회 :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원주민을 전시
- 아우슈비츠 배설물 고문 : 수감자들의 정신 황폐, 사람의 존엄성 말살, 군인들이 수감자들을 짐승으로 보도록 만드는 장치.
- 2014.1.23. 경향신문 :「“실적 낮으니 점심 먹지 마.”...원청 뜻대로‘말하는 기계’ 취급」
2. 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기 – 차별
- 개천에서 용 난다. : 개천은 시궁창을 연상시킴. 경제적인 궁핍이 단순한 결핍이나 불편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저열함으로 등식화되는 것
- 특정한 부류로 낙인찍어 기피하는 대상 : 여성, 나병, 성병, 에이즈, 몇 가지 정신 질환 등
- 모파상, 『비곗덩어리』
-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이분법은 다양하다. 선하고 악하다, 옳고 그르다. 유능하고 무능하다 등등 단편적인 잣대로 사람의 격을 나누고 자의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속에서 모멸감을 주고받는다.
3. 비웃고 깔보고 – 조롱
- 영화 「헤어 드레서」: 살이 쪘다는 이유로 고용을 거절당함.
- 모욕 스터디 : 대화나 토론에서 드러나는 상대방의 실수나 약점을 짚으면서 모욕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취업을 대비한 훈련의 일환
- 영화 「디스커넥트」: 못마땅하게 여기던 학우를 골탕 먹이려 친 장난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옴
- 노래방에서 어울려 놀던 친구가 자신의 가발을 벗겨 망신을 주었다며 살해
4. 대놓고 또는 은근히 밀어내기 – 무시
- 고골의 단편소설 『외투』: 내 눈에는 하찮은 것이라 해도 그 누군가에게는 목숨처럼 소중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려을 가진 자들은 오만에 사로잡혀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자기 방식대로 간단하게 상황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심경을 외면한다.
- 소통에는 정성이 중요하다. 정성이란 몸과 마음이 함게 있는 것이다.
5. 시선의 폭력에서 섣부른 참견까지 – 침해
- 모르는 사람에 대한 침해 : 노골적인 시선, 인터넷의 악플 등 ↔‘예의 바른 무관심’: 공공장소에서 신경을 끄는 것이 곧 배려인 경우가 많다.
- 아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침해 : 간섭
- 상대방이 놓여있는 처지, 어쩔 수 없는 상황, 거기에서 겪는 일들과 그에 대한 느낌 등에 대해 무심한 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식대로 도움말을 주는 것은 모멸감을 자아내기 쉽다.
6. 불쌍한 대상으로 못 박기 – 동정
- 다른 사람의 외형적인 처지나 상황을 근거로 판에 박힌 관념을 덮어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가리켜 전형화stereotyping라고 한다. 인종, 출신 지역 소속 집단, 신체적 특징 등을 기준으로 각각의 사회적 범주에 일정한 상(象)을 결부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정관념의 본질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차별이 생겨난다.
- 동정은 인간적인 감정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거기에 깔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 도와주는 자와 도움받는 자...... 그러한 이분법에 갇혀 있는 시선이나 그로부터 비롯되는 행동은 자기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 있다.
- 시혜에서 지켜야 할 도리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7. 문화의 코드 차이 – 오해
-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소통은 늘 어렵다. 코드가 다르기 때문이다.
- 상징들이 보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히는 것이 신체언어다.
- 지구촌 시대에 문화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많아진다. 매너, 상징체계, 습관, 세계관 등이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거나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차이가 중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보편적인 가치이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이 전현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의 존재가 무시당할 때 모멸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성향이지만, 그 감정이 유발되는 상황에는 편차가 있다. 따라서 문화의 코드를 익히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4장. 인간적인 사회를 향하여
미술 : 오퀴스트 로댕, 「대성당, 내세울 것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서로의 손을 내밀어 마음을 모으면, 우리의 존재는 더 높은 세계로 고양된다. 관계 그 자체가 거룩한 성전이 된다.
음악 : 7/ 거머리 행진고, 8/ 사라방드 : 시를 좋아하시나요?
품위를 잃지 않도록
- 인간에게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품위decency를 훼손당했다고 생각할 때, 목숨을 걸고 보복하거나 그것을 회복하려고 몸부림친다. 아니면 삶의 의욕을 잃고 무기력 상태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났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회를 가리켜, 아비샤이 마갈릿은‘품위 있는 사회decent society’라고 말한다. 정확한 정의를 내리자면‘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이유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 또는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다.
- 정의에 어긋나는 상황은 객관화하기 쉽고 개선을 요구할 명분도 확실하다. 그에 비해 품위를 떨어뜨리는 조건이나 행위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대놓고 따지기 어렵고 공론화도 쉽지 않다.
- 감정은 팔지만 자존심은 팔지 않는 것,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인권과 정의의 문제다. 그것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향상되어야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를 매개하는 제도적인 장치, 시스템이 필요하다.
2. 문제는 감수성이다. : 역지감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단계까지
- 감정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이는 은근히 기분을 상하게 하는 고객들이다.
- ‘모욕 감수성’이라는 개념 제안 :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담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는 부족하고 역지감지易地感之,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타인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그 무의식과 타성을 성찰하면서, 관계를 비인간화시키는 문화에 의식적으로 제동을 거는 노력이 필요.
- 아비샤이 마갈릿, 『품위 있는 사회』: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은 습득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은 습득되었을 확률이 높다.
3. 물리적 쾌적함, 생리적 청결함
- 공간은 마음이 담기는 그릇이다. 몸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구성원들의 생각, 사회적 관계, 권력의 구조 등을 반영하거나 재생산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도시의 구조나 취락의 형태가 당대의 우주관을 함축하는 것, 주거지의 공유 공간이 이웃들 사이의 소통을 촉진하는 것, 조직 내의 지위에 따라 집무실의 크기가 다른 것 등이 그 증거다. 자존감도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의식하든 못하든, 생활환경은 인간의 정체성에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다. 품위 있는 삶이 가능하려면 적절한 물리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 프리모 레비의 증언 :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물 한 컵을 배급받았을 때 그것을 모두 마셔버리는 사람과 일부를 아껴 몸을 닦는 데 쓰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의 생존율이 더 높았다. 생리적인 위생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태세가 관련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4. 화폐의 논리를 넘어선 세계
- 평생 펑펑 쓰고도 남을 만큼의 거금을 가진 사람들이 금전에 대한 탐욕을 줄이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돈은 생활 수단이 아니라 자존심을 세우는 기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 모든 가치가 돈으로 수렴되는 세상에서 돈 없는 사람들이 겪는 모멸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 『한겨레 21』2011.05.16., 「빈곤, 자살을 부르는 ‘노환’」, ‘빈곤=자살’이라는 등식은 지나치게 투박하다. ‘빈곤=( )=자살’이라는 등식이 맞다는 지적이 많다. 빈곤이 ,무시당함,과 같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게 먼저라고 지적
- 모든 가치가 돈으로 매겨진다 해도, 사람은 그것을 벗어난 세계를 여전히 간직하고 싶어 한다. 다만 너무 자주 그 세계를 잊고 살 뿐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고 해도 내어줄 수 없는 것이 많다. 그 목록이 길수록 잘사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 우리의 삶을 가치 잇게 하는 것은 돈을 넘어선 그 무엇을 통해서다. 노동의 대가를 임금이나 상품의 가격으로만 따질 때 초라해지는 심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래서 무한한 가치가 있는 세계에 접속해야 한다.
- 돈이 너무 많은 일을 좌우하고 돈 때문에 모멸감을 맛보기 일쑤인 현실에서, 나의 자존을 세우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에 착목해야 한다. 돈의 위상을 목적에서 수단으로 바꿔놓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5. 소수자들의 연대와 결속
- 자기가 당면한 현실이나 일상의 경험에 눈을 닫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부조리한 구조와 억압은 더욱 공고해진다. 더 심각한 결과는 동일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외면한다는 것. 타인을 통해서 자기의 객관적인 모습니 확인되기 때문이다. 콤플렉스의 핵심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별화다.
- 부당한 일을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들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생겨난다. 사회적인 유대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것 필요.
6. 환대의 시공간
- 사람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타자에게 의존적이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타인의 시선이 자신의 행복감을 좌우한다.
- 인간은 사사로운 삶의 공간에서 친밀감과 평온함을 누리지만, 그것을 넘어선 공공의 세계에서 자기의 조재 가능성을 확대한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관계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조는 사람들, 억지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내가 못난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수치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뒤담화를 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신뢰의 공동체가 절실하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결점에 너그러우면서 서로를 온전한 인격체로 승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사회적으로 창출되는 환대의 공간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해준다.
- 인간은 자기를 알아주는 공동체를 만나 공적인 자아를 실현하면서 진부한 삶에 생기와 역동을 불어넣을 수 있다.
5장. 생존에서 존엄으로
미술 : 렘브란트, 「자화상」,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음악 : 9/ 에고의 감옥, 10/ 마음의 발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 스스로 생각하는 사회적 ‘등급’과 나에 대한 타인의 태도 사이의 인지 부조화, 자신이 늘 받아오던 환대 내지 우대와 지금 여기에서 받고 있는 냉대 내지 천대 사이의 괴리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유명할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그런 일을 겪을 때 상처를 많이 받는다.
-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구차하게 자기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 로버트 플러, 『신분의 종말』: 우리가 내면의 노바디를 인정하는 순간, 다른 이들을 노바디로 비하하려는 충동이 사라진다. 우리가 내면의 섬바디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의 능력을 끌어내게 된다.
2. 누가 나를 모욕한다 해도
- 주홍글자의 헤스터 : 현실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 자기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 없이는 불가능한 일. 남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고 생애를 꾸려가는 힘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
- 회복 탄력성 resilience :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어떤 일에 좌절했거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빨리 극복할 수 있다.
- 스스로를 성찰하는 질문으로 ‘내가 스스로 부질없이 모욕감을 증폭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이 나를 무시하기 이전에 내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3. 감정의 주인이 되려면
-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거기에 매몰되지 말고, 감정 자체를 주시해보자. 내가 지금 이렇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의 감정과 거리두기가 가능해진다. 어떤 사건이나 상대방의 언행이 나의 반응(행동)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상황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 감정과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감정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안에서 독립적으로 자라나는 생명체 같은 존재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다.
- 타인을 아무렇지 않게 모욕하는 풍토는 사회적으로 형성된다. 모멸감에 취약한 심성에 대해 저마다 이정 부분씩 책임져야 한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여럿이 만드는 것이면서,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각자의 내면에 있다. 감정의 주인이 되려면 자기를 주의 깊게 보살펴야 한다. 마음을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양생해야 한다.
4. 행복감은 우월감이 아니다.
- 『채근담』, 자기의 장점으로써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고, 자기의 졸렬함으로 인해 남의 능함을 시기하지 말라
- 타인을 통해 자존감을 얻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의 비교 속에서 월감을 느끼거나 그들 앞에 과시하고 군림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열의 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을 나누고 함께 배우며 경험을 공유하는 것. 전자의 경우 온갖 관심은 외형적인 것들에 치중되면서, 나 자신은 공허한 중심으로 남는다. 후자의 경우에는 나를 돌보는 힘이 자라난다. 역설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인정하면서 이루어지는 유대를 통해 자존감이 더욱 단단해진다.
맺음말
어떻게 하면 모멸을 덜 느끼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① 구조적 차원의 접근 :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제도 수립. 괜찮은 일자리 창출, 분배의 틀 리모델링,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생활이 허덕이는 구조 개선.
② 문화적 차원의 접근 : 가치의 다원화. 인간과 삶을 바라보는 시야를 여러 차원으로 틔워야 한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바탕과 존엄함에 눈떠야 하고,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이 개발되고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나를 있는 그대로 승인해주면서 도전과 성취를 북돋아주는 관계와 공동체가 다양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③ 개인의 내면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아야 한다. 품격은 겉멋이 아니다. 예절은 단순한 고분고분함을 넘어선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높은 것에 사로잡혀 삶을 창조하기에 자기를 돌볼 줄 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기에 품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한 위엄과 기품이 사회적 풍토로 자리 잡을 때, 모멸감의 악순환도 줄어든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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