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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전라북도 북서부에 있는 시. 전주시의 위성도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군내에 4개의국가산업단지가 있으며, 2016년 상반기 2개 단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금마면의 미륵사지와 왕궁면의 왕궁리 유적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다. 지역 특산물로 쌀과 고구마 등이 생산된다. 면적 507.07㎢, 인구 301,202(2016).
대한민국 전라북도 북서부에 있는 시.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하여 익산시가 되었다. 금강과 만경강 사이의 비옥한 충적평야에 위치한다. 호남선·전라선·군산선이 통과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 호남지역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했다. 행정구역은 함열읍·오산면·황등면·함라면·웅포면·성당면·용안면·낭산면·망성면·여산면·금마면·왕궁면·춘포면·삼기면·용동면·중앙동·평화동·인화동·동산동·마동·남중동·모현동·송학동·신동·영등1동·영등2동·어양동·팔봉동·삼성동 등 1개읍 14개면 14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31개동). 시청소재지는 인북로이다. 면적 507.07㎢, 인구 301,202(2016).
지금의 익산시는 옛 익산군, 여산도호부, 용안현, 함열현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익산군 지역은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의 세력을 피해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 되어 금마저로 불렸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668년(문무왕 8)에 이곳에 보덕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종실인 안승을 왕으로 봉했다가, 683년(신문왕 3)에 보덕국을 폐지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금마군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인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익주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익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익산의 별호는 마주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 전라북도 익산군이 되었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용안군·함열군·여산군이 익산에 합병되어 면적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익산군 북일면은 그대로, 나머지 지역은 익산면·오산면·춘포면·삼기면·팔봉면·금마면·왕궁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이때 용안군과 함열군, 여산군의 일원이 익산군에 이속되었다.
1931년에 익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곧 이리읍으로 개칭되었고, 1947년에 이리부가 되었다. 이리부는 1949년 이리시로 개칭되었다. 1963년에 황화면이 충청남도 논산군으로 이관되어 연무읍이 되고, 1974년에는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에 함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팔봉면은 1983년에 이리시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에 용안면 용동출장소가 용동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실시된 전국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익산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1996년 춘포면 대장촌리가 춘포리로 개칭되었다(→ 여산도호부, 용안현, 이리시, 함열현).
1995년 통합전 이리시 지역의 인구는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1973년 이후에 이리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해, 1980~90년 사이에 약 40%의 인구가 증가했다. 반면 통합 전 익산군의 인구는 같은 기간에 1990년 10만 6,003명으로 1980년의 15만 6,131명에 비해 32.1% 감소했다. 그러나 통합시를 이룬 1995년 인구는 32만 3,596명으로 증가했고, 2000년에는 33만 6,651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로 2005년 32만 780명, 2010년 31만 773명, 2015년 30만 2,061명을 기록하며 다시 감소추세로 돌아섰다. 2016년 기준 인구는 30만 1,202명이며, 가구수는 12만 3,158가구, 가구당 인구는 2.45명이다.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모현동(4만 365명)·삼성동(3만 3,414명) 순이며, 면 단위에서는 오산면(8,724명)·황등면(8,091명)에 인구분포가 높다. 웅포면(1,781명)에는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지금의 익산시는 옛 익산군, 여산도호부, 용안현, 함열현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곳이다. 옛 익산군 지역은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의 세력을 피해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 되어 금마저로 불렸다. 신라가 삼국통일 후 668년(문무왕 8)에 이곳에 보덕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종실인 안승을 왕으로 봉했다가, 683년(신문왕 3)에 보덕국을 폐지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금마군으로 개칭하고 옥야현(옛 이리시 일대)·우주현·야산현(낭산면 일대)을 영현으로 관할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전주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익주로 승격되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익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익산의 별호는 마주였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전주부 익산군, 1896년에 전라북도 익산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전주의 비입지인 동일면·북일면·남일면·남이면·서일면과 두입지인 우북면이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의 군면 폐합으로 용안군·함열군·여산군이 익산에 합병되어 익산군은 면적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때 면의 폐합도 이루어져 익산군 북일면은 그대로, 남일면·동일면이 익산면으로, 서일면·남이면이 오산면으로, 두촌면·춘포면이 춘포면으로, 율촌면·기제면·구문천면이 삼기면으로, 두천면·지석면이 팔봉면으로, 미륵면·군내면이 금마면으로, 우북면·제석면이 왕궁면으로 통합되었다.
용안군은 5개면이 용안면으로, 함열군은 10개면이 함라면·황등면·웅포면·성당면·함열면으로, 여산군은 11개면이 여산면·낭산면·황화면·망성면으로 통합되어 익산군에 합속됨으로써 48개면으로 구성된 큰 군이 되었다. 1931년에 익산면이 익산읍이 되었다가 곧 이리읍으로 개칭되고, 1947년에 이리읍이 부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시로 개칭되었다. 1963년에 황화면이 충청남도 논산군으로 이관되어 연무읍이 되고, 1974년에는 북일면이 이리시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에 함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팔봉면은 1983년에 이리시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에 용안면 용동출장소가 용동면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익산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여산도호부, 용안현, 이리시, 함열현).
시의 동부와 중동부에 천호산(天壺山:500m)·용화산(龍華山:342m) 등이 솟아 있으나 시 전체는 대체로 낮고 평탄한 구릉지와 넓은 평야이다. 곳곳에 시대산(始大山:228m)·오금산(五金山:129m) 등의 구릉지가 솟아 있다.
금강이 서북쪽 경계를 곡류하며, 강경천·부곡천·함열천 등이 금강에 유입한다. 탑천이 시의 중서부를 남서류해 시의 남부를 흐르는 만경강 하구에 흘러든다. 만경강은 전형적인 자유곡류 하천으로 익산시와 김제시의 경계를 따라 서류하다 서해로 유입한다.
일대의 충적지는 후빙기의 해면상승으로 침식기준면이 높아지면서 빙하기에 깊이 패인 골짜기에 하천퇴적물이 매립되면서 발달한 것이다. 또한 만경강은 조석의 영향을 받는 감조하천으로 조수의 영향을 받았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발달했다. 구릉지의 토양은 화강편마암이 오랫동안 심층풍화를 받아 형성된 적황색토이고, 충적평야의 토양은 점토질의 회색토 및 충적토이다.
한국의 전체 기후구를 나눌 때 이 지역은 남부서안형 기후에 속한다. 통합전 익산군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2.7℃ 내외, 1월평균기온 -1.2℃ 내외, 8월평균기온 26.1℃ 내외이고, 연평균강수량은 1,377.6㎜ 정도로 지형성 강우의 영향으로 해안지방보다 비가 많다. 한편 통합전 이리시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2.2℃ 내외, 1월평균기온 -1.7℃ 내외, 8월평균기온 25.6℃ 내외, 연평균강수량은 1,280㎜ 내외이다. 식생은 낙엽활엽수림대에 속하며, 참나무·느티나무·노간주나무 등 온대성 식물들이 분포한다.
1995년 통합전 이리시 지역의 인구는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1973년 이후에 이리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해, 1975년 11만 7,111명, 1980년 14만 5,358명, 1985년 19만 2,275명, 1990년 20만 3,401명으로 1980~90년에 약 40%의 인구가 증가했다.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2만 9,582가구에서 5만 1,896가구로 약 75%가 늘었다. 반면 통합전 익산군의 1990년 인구는 10만 6,003명으로 1980년의 15만 6,131명에 비해 3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수도 같은 기간에 3만 542가구에서 2만 7,736가구로 9.2%가 감소했다. 그러나 1995년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시를 이루면서 시의 인구는 32만 3,596명으로 증가했고, 1996년에는 32만 7,927명으로 증가했다. 2006년 현재 인구는 32만 780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행정동별로 볼 때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약 23%가 분포하고 동지역에 약 77%가 분포하고 있다. 영등1·2동(4만 7,989명)·삼성동(3만 4,717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한다. 1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은 황등면·동산동·남중동·마동·모현동·어양동·신동 등이다.
이 지역은 만경평야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총경지면적 268.4㎢ 가운데 논 209.5㎢, 밭 58.9㎢이며, 경지율은 52.9%에 이른다. 농업가구는 1만 3,757가구로 전체가구의 12.4%이다(2006).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의 대간선수로사업(1910~30) 등 오랜 관개수리사업의 전통을 지닌 지역으로 시내 미작지대는 수리관개시설이 완비된 수리안전답이다.
쌀은 오산면·망성면·춘포면·황등면에서, 감자와 고구마는 삼기면에서 많이 생산된다. 또한 무·배추 등의 채소류는 왕궁면·망성면·황등면에서, 양송이버섯은 망성면·춘포면에서, 인삼은 삼기면·왕궁면에서 재배되고 있다. 사과는 낭산면에서, 포도는 왕궁면에서 많이 생산된다. 송학동에 농작물의 품종개량, 병충해 방제, 토양 및 비료 연구 등을 하는 농촌진흥청 호남작물시험장이 있으며 돼지·닭의 사육도 활발하다. 임야는 전체면적의 23.4%를 차지하며, 밤·호두 등의 임산물이 생산된다.
통합 이전 이리시였던 동지역은 1960년대까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집산지 및 주변 농촌지역의 교육중심지로 산업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그러나 1971년 삼양식품 호남공장이 모현동에 세워지면서 공업이 발달하여 신흥동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1973년에 제2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1973년 10월부터 수출자유지역 조성사업이 본격화되어, 1974년 완공되었다. 1976년 1월 수출자유지역 일부가 해체되어 수출산업공단(1977년 이후 이리국가공업단지, 1995년 이후 익산국가공업단지)으로 전환·지정되었고, 1979년에는 공단 내에 단지 규모 1.43㎢에 이르는 귀금속단지가 국내 최초로 조성되었다. 이밖에 팔봉동·용제동에 제2공단 조성사업도 이루어졌다.
전주·군산과 함께 전라북도 내 산업발달의 축을 이루는 연합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2006년 현재 총제조업체수는 605개소, 총종업원수 1만 8,322명이며, 도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24.9%, 22.7%이다. 익산수출자유지역과 익산국가공업단지에는 섬유·봉제·식품·귀금속가공 등 경공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호남선·전라선·군산선이 교차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이다. 호남고속도로가 시의 동부 경계를 따라 지나며, 논산-전주와 논산-김제를 잇는 국도가 남북방향으로 나 있다. 또한 1908년에 이미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개통되어 '전군도로'라 불리던 군산-전주를 잇는 국도가 시의 남부를 동서방향으로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도로총길이 918.07km, 도로포장률 77.0%이다(2006).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의 초등교육기관인 북신서당을 비롯해 예산향교·용안향교·함열향교가 있었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7년 천주교계 사립교육기관으로 개교한 계명학교이다. 1913년에 이리공립보통학교(지금의 이리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뒤 1921년 사립계문학교, 1924년 이리공립여학교(지금의 이리여자중학교)가 설립되었으며, 특히 1922년에는 실업학교인 이리농림학교(지금의 이리농림고등학교)가 개교했다.
2006년 현재 유치원 85개소, 초등학교 63개교, 중학교 25개교, 고등학교 19개교, 익산대학, 원광보건대학, 한국폴리텍V 익산대학, 원광대학교 등이 있다.
향토 문화행사로는 5월 10일 시민의 날을 전후하여 열리는 마한민속예술제가 있다. 이 행사에서는 마한시대에 행해졌던 제천행사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익산문화원이 주관하는 마한민속제례가 매년 행해지며, 이밖에도 익산농요·익산기세배 등의 각종 민속놀이와 체육행사 및 농악경연대회·시조경창대회·궁도대회 등 시민위안잔치가 펼쳐진다.
또한 1970년부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약칭 예총) 익산지부 주최로 익산예술제가 거행되어, 각종 음악회·공연·전시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또한 1978년에 1,036석 규모의 대극장 시설을 갖춘 시민문화회관과, 1991년에 전시실과 소극장 시설을 갖춘 국민생활관이 건립됨으로써 지방문화발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삼기면 오룡리는 농요(農謠)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지게의 목발을 작대기로 치면서 부르는 〈목발노래〉가 있다. 그밖에 〈산타령〉·〈등짐노래〉·〈둥당기타령〉·〈상사소리〉와 같은 민요가 전한다. 금마면의 기세배놀이는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민간의 '솟대놀이', 곧 섣달 무렵 새해의 풍년을 비는 뜻에서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높은 간짓대에 매달아 넓은 마당에 세워두고, 정월 보름날에 그 앞에 모여 풍물을 치면서 벌이던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06년 현재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2개소, 병원 5개소, 의원 156개소, 요양병원 2개소, 치과의원 75개소, 한의원 68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40개소가 있다. 사회복지시설은 아동복지시설 3개소, 노인복지시설 10개소, 장애인복지시설 5개소, 여성복지시설 3개소, 정신질환자 요양시설 1개소, 부랑인시설 1개소가 있다.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3, 보물 5, 사적 7, 천연기념물 2, 중요무형문화재 2),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6, 기념물 14, 무형문화재 2, 민속자료 1), 문화재자료 14점이 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나, 마한·백제 문화권의 중심지로서 문화·고적의 발굴·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금마면 기양리에 국내 최대의 백제시대 석탑인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국보 제11호)과 미륵사지당간지주(보물 제236호)가 있다.
그밖에 왕궁면 왕궁리에 익산왕궁리5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보물 제44호), 삼기면 연동리에 익산연동리석불좌상(益山蓮洞里石佛坐像:보물 제45호), 금마면 동고도리에 익산고도리석불입상(보물 제46호), 웅포면 송천리에 숭림사보광전(崇林寺普光殿:보물 제825호), 이리여자고등학교 내에 삼기리5층석탑(三奇里五層石塔), 금강동에 관음사(觀音寺) 등이 있다. 또한 석왕동에 백제시대 말기의 석실묘인 익산쌍릉(益山雙陵:사적 제87호), 금마면 서고도리의 익산토성(益山土城:사적 제92호), 삼기면 기산리의 익산연안이씨종중문적(益山延安李氏宗中文籍:보물 제651호) 등이 중요한 문화재이다.
그밖에 문화재로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文香爐: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 왕궁면 광암리의 망모당(望慕堂: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0호) 등이 있다. 용안면의 삼세오충렬유적(三世五忠烈遺蹟:전라북도 기념물 제61호)은 임진왜란·정유재란·병자호란 때에 외적의 침입을 막다가 죽은 오씨 집안의 다섯 사람(三世五忠, 즉 오응정·오욱·오동량·오직·오방언)을 모신 사당이다. 동산동에 단군의 영정을 모신 단군성묘(檀君聖廟), 모현동에 김근배(金根培)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매곡사(梅谷祠), 은기동에 최영(崔瑩)의 위패를 모신 두천사(豆川祠)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이보(李寶)·이귀(李貴)·소행진(蘇行震)의 위패를 모신 은천사(隱泉祠), 석암동에 묘청의 난 때 공을 세운 김시흥(金時興)·김향(金珦)·김관(金觀)·김문기(金文起)·김준(金遵)의 위패를 모신 오강원(五岡院) 등이 있다.
또한 중요무형문화재로 이리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과 이리향제줄풍류(裡里鄕制─風流:중요무형문화재 제83-나호)가 지정·보존되고 있다. 한편 여산면 호산리 천호산 북서쪽 기슭에 있는 천호동굴(천연기념물 제177호)은 총길이 약 600m, 주굴의 길이는 250m인 석회동굴로 여름에는 굴 밖으로 서늘한 바람이 흘러나온다고 하여 바람귀신이 살고 있는 '바람굴'이라고도 한다. 망성면 신작리 수월마을에는 곰솔[黑松:천연기념물 제188호]이 있다.
금마면 신룡리 용화산 서쪽 기슭에 있는 황각동계곡은 기암괴석과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왕궁면 동룡리 왕궁저수지에 있는 함벽정은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시가지내에는 시민들의 휴식처인 배산공원이 있다.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는 만경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공원 내에는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