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21-31
이사야는 당대의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해석될 때에는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는 당시 예루살렘의 변질과 타락을 고발한다. 신실하고, 정의롭고, 공의롭던 성읍이 창기와 살인자로 변했다. 은은 찌꺼기가 되고, 포두주에는 물이 섞였다. 한마디로 변질되고 타락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은을 제련할 때 온도가 너무 높거나 원료에 다른 금속인 구리나 주석이 함유되어 있으면 100% 깨끗한 은이 아니라 오염된 은이 생겼다. 이 때의 찌꺼기는 이런 사용할 수 없는 은이 되고 쓸모 없는 폐품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에서 사용된 아카드어 때문에 여기에서의 포도주를 맥주로 해석한다. 포도주이든 맥주이든 물이 섞인 술은 진정한 술맛을 내지 못한다. 극단적인 이미지가 전파된다. 창기, 살인자, 찌꺼기, 물 등은 도덕적인 타락과 순수함의 변질을 고발하는 말씀이다.
요즘 <<한국기독교흑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 역사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변질과 타락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모습도 변질되고 타락했다. 이사야의 말씀에서 순수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을 상실하고, 타락하고 변질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최소한 변질에 대한 감각마저 없다. 그렇게 속물이 되어간다. <<속물과 잉여>>라는 책이 있다. 속물이 안되려고 하니 이 사회에서 잉여인간이 된다. 잉여가 안되려고 몸부림치다보니 속물이 된다. 속물이 되었는데 감각마저 없다. 하나님 내 양심을 깨워주소서. 참된 사람으로서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1:24절에 하나님은 다시 <슬프다>고하신다. 1:4절에서도 슬프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아픈 마음, 슬픈 마음을 만나게 된다. 이사야 1장에서 만나고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만나고 안다면 그것은 가치가 있다. 영적 감각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마음을 도통 모르게 된다. 내 아픈 것만 생각하게 되지 하나님 마음 아픈 것도 남이 아픈것도 모르게 된다. 하나님의 아픈 마음. 그 마음을 안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슬퍼하시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이사야 1장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바로 회복이다. 특별히 지도자들이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 예언자들은 깨어 있어야 하고, 재판관들과 모사들이 회복되어야 한다. 죄의 지적 이후에 징계가 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는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지향하고 있다. 찌꺼기와 혼잡물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나오게 한다는 의미이다. 은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혼잡물이 제거되고 본래와 같이 회복된다. 그렇게 되면 의의 성읍이 되고 신실한 고을이 된다.
정의와 공의로 구속을 받는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멸망한다. 자신들이 좋아했던 우상들로 말미암아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한다. 말씀에서 상수리나무는 신성한 상수리나무를 의미한다. 이는 당시 대중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종의 사당과 같은 곳이었다. 특히 이것은 다산과 관련된 종교의식이었다. 자신들이 좋아 하고 선택했던 일들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한다. 예언자는 다산을 기원했던 의식과 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한다.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가 되고 물 없는 동산 같이 된다. 정반대의 이미지이다. 참으로 피폐한 삶이다. 강한 자도 가느다란 실오라기처럼 불타버린다. 불타게 되면 끌 사람이 없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언제나 <돌아오라>는 것이다. 1:18절에도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변론은 이것이다.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달리 번역될 수도 있다. <너희 죄가 주홍같다면(사실 그렇다)! 과연 너희가 (제사를 통해) 눈과 같이 희어질 수 있겠는가? 너희, 죄가 진홍같다면 과연 제사를 통해 양털같이 희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오히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제사가 아니라 회개와 순종이다. 돌아와서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예언자는 위기의 상황에 언제나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바꾸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회개가 필요하고, 우리 교회에도 회개가 필요하다. 다시금 순수함을 되찾고 의로운 교회과 성도가 되도록 돌아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