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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 告解聖事
라틴어 : Confessio
영어 : Confession/Sacrament of Penance/Sacrament of Reconciliation
기독교의 7성사 가운데 하나로서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성사일 것이다. 고백성사라고 하며,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세례 다음에 오는 구원을 위한 뗏목.
예수가 그의 사도들에게 내린 사죄의 권한에 의한 것으로서 세례 받은 신자가 대죄를 지었다면 신자는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진정 참회하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 이로써 신자는 죄를 용서받는다. 하지만 그 죄로 인하여 받을 벌이 없어지진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 먹을 음식을 훔쳤다가 회개하여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해 보자. 죄는 용서받았지만 음식을 도둑맞은 사람이 한 끼 굶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훔쳐간 사람은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등 피해를 보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러고도 못다한 부분은 죽어서 연옥에서 몸으로 때운다는 것이다.
문학적으로도 많은 소재가 되는 것으로 이를 소재로 한 문학, 영화가 좀 된다. 한국에서도 죄와 벌이라는 동생의 누명에 관해 고민하는 사제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각종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이 큰 죄를 저지른 뒤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살인을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속으로는 고뇌한다'는 외강내유식 갭 모에가 목적인 것이 대부분.
기독교 종파 중 이 성사를 행하는 것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는 만인사제설과 성서에 쓰여 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루터교회에서 간혹 행하기는 한다. 개신교도 입장에서는 하느님이 아닌 사제한테 죄를 고백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이질감을 겪는다고 한다.
가톨릭의 고해성사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가 합당하게 진행되려면, 먼저 참회자의 죄에 대한 자세한 성찰과, 통회(절실한 회개)가 있어야 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심하고(정개) 마침내 사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뒤이어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을 받고 고해신부의 사죄경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고해성사가 집행되는 순서에 비추어 볼 때 참회자는 먼저 양심적으로 성찰을 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서 고해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한다. 그러면 고해신부는 사죄를 하고 보속을 정해 준다. 참회자는 받은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고해성사가 끝난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철저한 비밀을 기본으로 하는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통 고해실은 2실 또는 3실로 나뉘어 2실은 한편에 보라색 영대를 맨 사제가, 한편에는 고해할 신자가 들어가 서로 사이에 벽과 이야기 소통이 가능하나 사제가 고해하는 신자의 얼굴은 알 수 없도록 꽤 촘촘한 철망이 창으로 내어져 뚫려 있다. 얇은 천으로 가려놓는 경우도 있다. 3실의 경우에는 가운데에 사제가 들어서고 양 옆으로 고해할 신자가 들어서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고해하는 신자들이 다른 편에 있는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도록, 미닫이 구조로 창에 맞는 문이 설치되어 사제가 이를 교대로 여닫아 고해를 들어준다.
신자가 참회하며 죄를 고해하면 사제가 보속을 내려주는데 거의 대부분 가톨릭의 기도 중 몇 개를 고르거나 그 중 하나를 몇 번 암송하며 참회하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거의 대부분이 묵주기도 중 하나를 골라 몇 회 기도하라는 편이 많은 한편 봉사를 실천하라는 사제도 있다. 하지만 이 보속을 내리는 권한이 전적으로 사제에게 있기 때문에 아주 가끔 골 때리는 보속을 주는 사례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의 아내와 바람을 핀 유부남이 성사를 보는데, 그 뻔뻔한 태도에 열 받은 신부가 산 위에 가서 닭털을 다 뽑으라고 보속을 주었다. 닭 : 이보시오 신부 양반 내가 무슨 죄라고 얼마 후 또 바람을 피우고 온 유부남이 같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또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모양이다. 신부님이 열을 받은 나머지, 며칠 전 뽑았던 닭털을 다 주워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털이 그 때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또한 현재는 이처럼 비교적 가벼운(?) 보속을 내려주지만 과거에는 정말 빡센 보속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엄청나게 빡센 보속은 초기 교회 시대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전통 관행이었는데, 12세기 무렵까지 고해성사 후 보속이란 것은 굉장히 길고 엄했다. 예를 들면 폭행죄를 저지른 사람은 7년간 고행, 부모님을 막대한 사람은 3년간 고행, 점을 치거나 미신행위를 한 사람은 5년간 고행, 욕한 사람은 7일간 금식, 미사나 성사 중에 떠든 사람은 10일간 금식 등등....그 외에도 '지금 당장 성지순례 떠나세요', 혹은 '1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회 기도만 드리세요' 같은 무거운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 보속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심지어 젊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고백성사를 청한다 하더라도 거부하라는 지침이 나왔을 정도였다. 만약 그 젊은 사람이 죽을 위기를 넘기면 보속을 시행해야 하는데, 최소 몇 년, 혹은 평생 동안 이를 시행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자들도 당장 숨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면 고해성사를 보지 않음이 관례가 됐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보속들은 차차 가벼운 행위로 바뀌어 갔지만, 공식적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까지 남아 있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직자라고는 해도 남의 죄를 들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실제로 많은 신부들이 고해성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 위 보속과 비슷한 사례로 끊임없이 바람 피고 그 때마다 고해하러 오는 남자 때문에, 열 받다 못한 신부가 고해를 듣다가 말고 고해소를 뛰쳐나와 그 남자를 두들겨 팬 사례가 있다 한다. 신부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그 놈은 패야겠다고 했다나 뭐라나.(…) 신기하게도 얻어맞은 그 신자는 그 이후로 바람 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어떤 신부에게 보속을 받았는데 도저히 실행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다른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볼 때 그 이야기를 하고 보속을 바꿀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전에 받은 보속을 시행하지 않았음도 하나의 죄로 간주해서 고백하고, 다시 거기에 대한 보속을 받는 식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무리한 보속이 아니라면 그냥 시행하는 것이 신자의 도리. 신부가 주는 보속이라는 게 응보적, 예방적인 목적과 함께 앞으로는 좀 조심하시죠? 하는 의미에서 주는 교정적 목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고해한 사실에 대해 사제가 사죄경을 외고 보속(벌)을 주는데, 가끔씩 보속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일반 사제가 보속을 주기에 너무나 무거운 벌인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 '성체모독, 고해성사의 고해내용 노출, 성직자의 결혼 시도, 낙태, 살인, 무력을 통한 절도, 교황의 허가 없이 주교 임명' 등이다. 이 항목 중 몇 항목은 '파문'에 이르는 무거운 벌이다. 이러한 죄에 대한 고해는 교황이나, 혹은 교황으로부터 특별권한을 부여받은 고위 성직자에게 해야 한다. 단, 파문을 받은 사람이라도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아무 신부에게나 고해성사를 받고 파문을 해제 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심지어 신부로서의 권한이 정지된 사람에게 받아도 상관이 없다. 혹은 사제가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정말로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고 입으로만 나불대는 것 같다 싶으면 사죄경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원래는 저런 특별한 죄를 제외하고는 보속을 주는 것이 맞다.
때때로 면담식 고해라고 해서, 시간이 많을 때 사제를 따로 찾아가서 정말 길게 이야기한 뒤 사죄경을 받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경우는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할 때가 많다. 때로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비밀이 엄수되는 가운데 자기 속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고해성사는 아니어도 이런 면담을 사제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런 요청을 많이 받는 사제는 아예 '고백성사 수준의 비밀 엄수를 원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그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법에 규정된 특이한 (하지만 이해가 가는) 규정으로, 고해사제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공범자에 대한 사죄가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있다… 이건 성범죄가 아니라 어떤 범죄라도 신부 그 자신이 공범 관계에 있었을 경우라면 그 신부가 고해성사를 받아주지 못하는 게 원래 맞는 것 같지만.
한국에서는 판공성사라고 하는, 한 해 모든 죄를 묶어서 참회하는 연례성사가 있어 평소 고백성사를 하지 못한 이들은 이때를 이용해 자신의 모든 죄를 참회하기도 한다. 평소에 고해성사는 신자 한 명 한 명의 죄를 보듬어주는 그런 성의 있는 성사를 주는 사제가 제대로 된 사제지만, 이 판공성사 기간에는 그런 거 없다. 사람이 무지 늘어서 있기 때문에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여주는 빨리빨리 잘하는 사제가 능력 있는 사제인 것이다.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
사제는 고해성사의 내용은 절대 발설하면 안 되는데, 이건 과거부터 현대까지 무수한 사회적 이야기가 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성인 요한 네포무크는 체코 왕비의 성사 내용을 끝까지 왕에게 말하지 않다가, 혀가 뽑혀 프라하 카를 다리에서 블타바 강으로 버려졌다. 왕 입장에서는 쳐죽일 놈(…)이지만, 성직자로서는 참으로 성인이 되어 마땅하신 분이겠다. 강의 수호성인으로 동상이 다리에 세워지곤 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격 인물인 마르틴 루터 또한 가톨릭 메인스트림을 박차고 나와 활동하던 중, 어느 주변 인물이 "거 수녀들은 평소에 무슨 고해를 합디까?" 하고 묻자 벼락같은 불호령을 작렬했다는 일이 있으며, 친구들과 술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한 친구는 루터가 조금 취한 것을 보고 그에게 고해 받은 사실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다가 루터가 갑자기 한 손에 병을 들고 자기를 치려고 날뛰었을 정도의 일화가 있을 정도로 그 자신 스스로 가톨릭에 반하는 행보를 선택했고, 교회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욕을 퍼부었으며, 심지어 고해성사는 마귀가 세운 것이라 할 정도로 온갖 악담을 퍼붓고 글로도 썼지만 고해성사의 비밀만은 끝까지 존중하고 지켰다고 하며, 죽을 때까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현대 미국에서는 이를 미국법 이하로 보는 판결을 한 전례가 있는데, 고해성사의 내용을 지킨 사제에게 상징적으로 1달러의 벌금 처분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해성사 내용에 대한 성직자의 비밀 유지 의무를 존중하여,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아니하여도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5공화국 시절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의 범인을 적극적으로 도피, 은닉하게 도와준 사제가 처벌된 일이 있었는데, 판례도 신고하지 않은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숨을 곳을 제공해주는 등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도피ㆍ은닉죄가 성립한 것이지, 소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해성사 비밀 유지 의무는 대중에게도 꽤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해괴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1996년에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가 범행 후 부천남부경찰서(現 부천소사경찰서)에서 한 블럭 거리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심곡본동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한 뒤 자수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신부에게 내용을 물어보는 병크를 저질렀다고...
만약 성직자가 이를 누설할 경우, 특히 고의적으로 누설한 경우 교회법에 따라 자동파문이 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목상으로는 형법 제317조 제2항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고해의 내용이 되는 사실이 타인에게 알려질 경우 고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기에 충분한 사실일 경우, 성직자가 이를 발설하는 것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고해사제가 실수로 내용을 누설했다면 파문까지는 아니지만 제재는 따르며, 신자들에게는 "난 신부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수로라도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사제들은 어지간한 고해 내용을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보안이란 듣자마자 잊는 것이다. 유럽은 우리나라 천주교와 달리 신부가 한 곳에 꽤 오래 정착하는 스타일이고 신자수(라기보다는 밀도)도 많지 않아 발설하면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경우가 많아 저런 금지 조항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국은 사제가 정기적으로 이동하며 신자 수도 많아 실질적으로 무슨 고해를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사실 고해성사 보러 오는 사람 대다수가 큰 죄가 아닌 때 되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사는 게 죄라고 하는 노인 분들도 계시다. 이봐요 원죄는 세례 받을 때 용서받았다니까 그 얘기가 아닌거 같은데 근데 그 내용은 어떻게 알았지 죄짓기 싫으면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카더라
가끔 고해소 밖에까지 목소리가 들리거나 해서 의도치 않게 고해 내용을 듣게 되는 일이 있는데,(고해를 통역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도 절대로 발설해선 아니된다. 우연히 듣게 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혹여 남이 고해한 내용을 듣게 되면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 는 것을 명심하자. 비 가톨릭 신자도 얄짤 없다. 파문 이전에, 고해 누설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문제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걸 깬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 (...) 이래서 고해성사 누설은 자동파문이다. 남미 지역에서 몇몇 성직자가 반체제 운동가의 고해성사를 누설하였다는 의혹, 그리고 105인 사건 당시 뮈텔 주교의 행동이다. 다만, 의심되는 사안의 상당수가 독재자나 식민지 당국자에 대한 '미래에 저지를 일'을 고해한 것으로, 윤리적으로 비난의 여지는 있겠지만 고해사제가 비밀 준수를 지켜야 할 의무가 없는 것들이었다. "내일 독재자 아무개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래에 일어난 것을 고해한 것이고, 자기의 범의를 밝힌 것이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악용한 것이므로 사죄경을 줄 수 없고, 설사 사죄경을 주었더라도 고해성사의 성사성을 모독한 모고해로 고해사제가 비밀준수의무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참조.
CSI 7기 5화에서는 한 여자를 두고 신부와 함께 삼각관계였던 남자가 여자를 살해한 뒤 그 신부에게 찾아와 그 여자를 살해하였음을 고해성사를 통해 밝혔지만 신부는 이를 그리섬에게 밝히지 않고, 오히려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어긴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였다가 그리섬에 의해 진상이 드러났다.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첫째, 고해자 혹은 고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은 것이다. 성직자들은 예비자나 일반 교우들에게 올바르게 고해성사를 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며, 그릇되게 고해하는 몇 가지 예를 든다. 통회의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고해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대표적인 예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군것을 고해하면서 핑계 삼아 며느리의 잘못에 대해 주절히 늘어놓는 것'을 설명하는 것 말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교우 아무개가 이런 고해를 했다고 떠벌리는 것은 당연히 내용누설 금지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미래에 범죄를 저지를 예비음모를 하고 있다고 고해하는 것이다. 어떤 범죄자가 범행의 실행 준비를 완료하고 착수하기 전에 고해 사제에게 찾아갔다. 그가 범죄 음모를 꾸민 것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것은 비밀 유지 의무의 대상이다. 그러나 범죄 음모를 뉘우친 것도 아니요,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테니 용서해주세요" 라며 고해성사를 단순히 종교적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잘못된 고해의 태도이다.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것을 허락해 달라던 이 아가씨는 이제 큰일났다. 고해성사가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형식적으로 사제의 사죄경이 있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해자가 다시는 범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 과연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테니 용서해주세요" 한 사람이 다시는 범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범행 전에 미리 고해성사를 보아, 자기의 죄값을 줄이려고 하는 꼼수의 발로일 수 있다. 이러한 고해는 무효이며 비밀준수의무가 없다.
가톨릭 고해성사 중 매우 유명한 일화로, 바로 위에서 설명한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인 마르틴 루터의 고해성사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마르틴 루터는 평상시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죄책감을 느껴서(예를 들어 다른 사제가 먹고 있던 빵에 괜한 욕심이 생긴다던가, 길 가다가 지나가는 처녀에게 욕정을 느낀다던가, 심지어 미사 드리는데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거나 등등) 툭 하면 밥먹듯이 고해성사를 해서 동료 사제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나.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게 하루는 무려 장장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고해(...)해서, 듣고 있던 신부가 참지 못하고 루터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해소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고만해, 미친놈아!” 그 날 이후 루터가 고해성사를 하려 하면 신부들이 죄다 루터를 피해다녔다고....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에 관해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19세기 말의 뒤믈린 사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성당의 문지기가 거액을 헌금하러 온 신자를 살해하고 그 사실을 사제에게 고해하였는데, 사제는 방에 돌아와서 신자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문지기의 소행이란 것을 바로 알았지만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 때문에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문지기가 흉기를 사제의 방에 숨겨두고, 거짓 증언까지 하는 바람에 사제가 대신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중노동을 하게 되었다. 사제는 25년 후에야 문지기가 사실을 자백하여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에 대해 강의할 때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위에서 강에 던져져 죽임을 당한 성인의 이야기는 몰라도 이 쪽 이야기를 아는 신자가 더 많다는 게 함정...
정교회의 고백성사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고백성사'로 번역하는데, 정교회의 고해성사와 가톨릭의 고해성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교회는 공개된 장소에서 신부님을 직접 대면하고 성사를 본다는 것이다. 정교회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을 일종의 병처럼 생각하며, 어떤 인간이 어떤 죄를 고백하는지 사제가 마치 의사처럼 진단해주고 치료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고해소 같은 것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훨씬 시각적인 의식이 곁들여지는데, '에피트라힐리온'이라는 사제는 영대로 사람의 머리를 덮은 뒤 '하느님의 주권으로 하느님의 종 아무개를 용서하소서'라고 사죄경을 외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 이콘 앞에서 의식이 치뤄지는데 이는 가톨릭의 대리인적 관점이 아닌 증언자, 집행자의 관점에서 치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회의 고해예식
성공회에도 가톨릭과 비슷한 형식의 고해가 있으나, 교리적으로는 '성사'로 보지 않고 '예식 또는 준성사'로 본다.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교리를 수용하는 넓은 의미의 개신교라서 성공회에서 고해는 가톨릭에서와 달리 신앙생활에서 필수가 아니다. 즉, 다른 개신교단 처럼 신자가 죄를 직접 하느님께 고백해도 되고, 로마가톨릭교회처럼 사제를 통해 고해를 해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시스템이다. 따라서 고해를 보는 신자가 거의 없다. 신자가 고해를 보겠다고 할 때 신부님이 긴장을 탄다 카더라
성공회에서 고해를 보는 신자는 주로 천주교 신앙생활을 오래했다가 성공회로 옮긴 신자 정도이다. 반면에 장로교 등 개신교회 출신의 성공회 신자들은 고해를 안한다고 보면 된다. 고해 형식은 가톨릭과 비슷하다. 당연히 천주교 수준의 비밀엄수 의무가 있다.
사죄경
고백성사 시 사제가 죄의 용서를 선언, 혹은 기원하는 형태인 기도문. 사제가 이 사죄경을 하지 않으면 그저 '고백'했을 뿐이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톨릭의 사죄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용서하기 바라며, 교회의 직무 수행으로, 나도 그분의 권한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라는 형태로 돼 있다. 사제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교회에 맡겨진 권한을 행사한다는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그 기도문이 간결하며, 필요한 요점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동방교회의 사죄경과 대비된다.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는 정교회에서는 "나(사제)는 그대(신자)가 하느님 심판대전 앞에서 단죄받지 않기를 빕니다."라고 하느님의 용서를 기원하는 형태로 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윗, 베드로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죄가 용서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이 사람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그와 같이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내용이다. 동방교회의 특징대로 대단히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도문 자체는 실로 아름다운 대신 장황하며 매우 길다.
하지만 러시아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정교회에서는 사죄경이 가톨릭의 것과 비슷하다. 즉, 그리스도의 대리인 관점이 반영되어 교회에 맡겨진 권한으로 죄를 사하는 형식인데, 이는 17세기 표트르 대제의 서유럽 문화 유입 시기에 반영된 교회 문화이다. 이 시기 러시아 정교회는 서구적 리얼리티를 담은 이콘 문화, 성경의 정경 목록 설정 등 많은 면에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
첫댓글 웃지 않을 수 없는 고해성사의 일화들이 재미있었어요. 신부님 귀가 얼마나 힘드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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