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지나가고>라는 영화가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의 많은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작품이다. 이 감독을 나는 작년 2018년 <어느 가족>이라는 미친 (미친 듯이 눈물 쏟게하는) 영화로 알게 되었다.
감독은 특이하게도 <태풍이 지나가고> 영화를 만든 후에 영화 내용을 장편이라기에는 약간 짧은 소설로도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의 한 장면을 글로 묘사한다면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작가 김봉곤의 인용문을 빌린다면, 이런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엄마(도시코)가 아들(료타)이 이혼한 전처와 손자가 떠나는 5초도 안 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도시코가 층계참에서 손을 흔든다.
다리가 좀 아파서 멀리 안 나간다고 하여 현관에서 헤여졌는데, 끝끝내 배웅을 하겠다고 계단을 반층만 내려와서는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베란다에서 손을 흔든다.)
료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버스 정거장까지 배웅해주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라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엾었다. 더구나 손자와 전 며느리까지 함께인데.
료타는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보았다. 도시코가 흔드는 팔이 너무도 얇아서 깜짝 놀랐다. 살이 쏙 빠진 것처럼 야위었다.
지난번에 배웅해 주셨을 때, 계단을 내려와서 심하게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엄살'잉라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분명 이제부터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들 터다. 이틀에 한 번이던 게 사흘에 한 번이 되고.... 그 시작인 것이다.
료타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의식하게 됐다.
그리고그 순간에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나무다. 단지가 어둑하다고 생각하게 했던 원인이었다. 료타가 어렸을 때는 2층에 닿을까 말까 했던 나무가, 5층을 넘어갈 정도로 자라나서 가지를 뻗치고 있다. 그래서 어둡게 느껴졌던 것이다.
차츰 단지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무들이 단지 전체를 집어삼킨다. 이끼가 끼고 깊숙한 삼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라앉는 것이다.
그 숲속 밑바닥에 태아와 같은 모습으로 잠이 든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잠든 어머니를 지켜봐 줄 사람은 누구일까. 료타는 마음속으로 물었다.
그러나 곧바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
영화에서 도시코는 계단을 곧잘 올라다닙니다. 그래서 소설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감독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소설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어느 장면이 소설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비교하다 보면, 묘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엿볼 수 있다.
http://aladin.kr/p/3U4fP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6548
첫댓글 저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거의 다 본것 같아요. 화려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인지시켜 주고 툭하고 건드려 주는 것이 있어 좋아 하지요
<어느가족>은 대박이었어요 그때부터 관심있게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