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입암별곡立巖別曲은 장현광張顯光의 입암기立岩記를 토대로 하여 이를 가사歌詞로 만든 것으로 근래까지는 박인로의 작품으로 알아 왔으나 작품미상作品未詳이라는 주장이 나온바 있으며 이에 따르면 제작년대製作年代도 박인로朴仁老의 존세시存世時가 아닌 입암서원立巖書院이 세워진 1657년(효종孝宗 8년) 이후로 추정된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塵世上(진세상) 살암들아 立巖風景(입암풍경) 보앗난다
武陵(무릉)이 죳타 한들 이에서 나을쇼냐
峯頭(봉두)에 뜬 白鶴(백학)은 雲間(운간)에 츔을 츄고
深源(심원)의 숨은 杜鵑(두견) 月下(월하)의 슬피운다
峯來(봉래)가 어듸메오 瀛洲(영주)가 녀긔로다
日躋堂(일제당) 올라안자 二十八景(이십팔경) 도라보니
卓立巖(탁입암) 두렷하야 淸川(청천)의 砥柱(지주)되고
起予岩(기여암) 삼겨나셔 戒懼臺(계구대)도 여시니
臨危戒懼(림위계구) 하신말씀 잇때예 뫼왓는덧
九仞峯(구인봉) 놉흔봉에 功虧一簣(공휴일궤) 조심하쇼
吐月峯(토월봉) 달 뜬거동 峯頭出生(봉두출생) 라는 덧다
小魯岑(소로잠) 올라안자 天下(천하)를 젹단말씀
孔夫子(공부자)의 大觀(대관)이라 우리어의 의논할니
産芝嶺(산지령) 올라가셔 紫芝歌(자지가) 생각하고
含輝嶺(함휘령) 바래보니 玉蘊山含(옥온산함) 비치로다
停雲嶺(정운령) 놉흔재예 가는구름 머무는덧
隔塵嶺(격진령) 둘려시니 世路(세로)를 굿쳐떠라
耕雲野(경운야) 도라드니 隱者(은자)의 취미로다
惹煙林 洛洛松(야연림락락송)에 墓烟(묘연)이 잠겨셔라
招隱洞(초은동) 차쟈드니 숨는 사람 부르는 덧
尋眞洞(심진동) 어드매오 林下(림하)의 동자로다
紫門(자문)에 무러본들 白雲(백설)이 덥폇더라
採藥洞(채약동) 도러가니 百草(백초)을 심겨는 덧
鏡心臺(경심대) 鳶飛(연비)하고 數魚淵(수어연)에 魚躍(어약)이라
避世臺(피세대) 안쟈시니 世念(세념)이 전혀업
尙巖臺(尙巖臺) 건내간이 富春(부춘)이 이곳진덧
浴鶴淵(욕학연) 盤潔處(반결처)에 舞鶴巖(무학암)이 더욱 긔타
畫裡臺(화리대) 구어보니 모든 景(경)을 긔렷는덧
合流台(합류대) 노힌바희 一壑(일학)을 그렷더라
釣月灘(조월탄) 내려가셔 발근달 말근 물에
銀鱗(은린)을 낙가내니 달이 뜨여 나오는덧
洗耳潭(세이담) 도라드니 巢夫許由(소부허유) 긔아닌가
響玉橋(향옥교) 건네오니 溪聲(계성)이 琤琮(쟁종)고
踏苔橋(답태교) 발바오니 石面(석면)에 苔生(태생)일쇠
勿幕井(물막정) 말근 샘이 井卦上六(정괘상육) 깃쳐 잇고
象斗石(상두석) 노힌돌이 七星(칠성)을 버렷더라
一區仙境(일구선경)을 임재업시 바려이셔
新羅一千年(신라일천년)과 高麗 五百載(고려 오백재)예
몃 英雄(영웅) 몃 豪傑(호걸)이 수업시 지내던고
天公(천공)이 有意(유의)하셔 四友(사우) 깃치시니
一年華山(일년화산)으로 旅軒(여헌)을 請(청)신대
靑黎杖(청려장) 부들부쳐 陳園公(진원공) 본을바다
淸風(청풍)에 羊醉(양취)하셔 田老(전노)를 期約(기약) 하야
日躋堂(일제당) 놉히짓고 友蘭悅松(우란열송) 齊號(제호)하셔
經傳(경전)을 사하두고 道義下講(도의하강)을 上劘(상마)하니
三隱(삼은)에 加兩(가양)이오 四皓(사호)에 倍一(배일)이라
命名(명명)하신 二十八景(이십팔경)이 眼前(안전)에 버려시니
都都(도도)한 仙味(선미)을 塵外(진외)예 알니 업다
渭水(위수)에 고기 낙고 南陽(남양)에 밧 가는 덧
閒隱(한은)에 잠겨시니 따라리 긔 뉘런고
이러한 杖屢所(장루소)을 千秋(천추)에 깃쳐시니
溪山物色(계산물색)이 절로절로 배렷더라
山(산)절로 水(수)절로 山水間(산수간)에 나도 절로
아마도 절로 배린 인생이 절로절로 늘그리라
첫댓글 너무나 어려운 옛글이라서~.요로코롬 어려워설랑 ㅋㅋㅋ.
임암이 정말로 빼어난 곳이네요
다시한번 고향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