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께.
저는 저번 달 18일 성주의 롯데골프장 입구 진밭교 농성장으로 향했습니다. 떠나기 전, 주위에 “민주화가 된 지 언젠데 아직도 이래야 되나”라고 푸념하며, 무조건 차를 몰았습니다.
긴박한 현장에는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미 수천 명의 시민들이 소성리의 삼거리에 모여 천육백 만 촛불의 힘을 이제는 사드철폐로 옮기자고 했습니다. 한 젊은 엄마는 “박근혜가 저지른 잘못을 청소하자”고 자신의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이 군중들이 롯데골프장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한상렬 목사, 문규현 신부, 유정길 법사, 권영국 변호사, 이름 모를 스님들과 수녀님들, 그리고 낯익은 여러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미 기도를 마치고 밤샘 농성으로 들어가고자 할 때였습니다. 누군가 교무들을 위해 천막을 치자고 외치자 너도나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땅에 못을 박고나자 경찰들이 들이닥쳐 천막을 힘으로 철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도한 끝에 마침내 천막이 쳐지고, 밤늦게까지 그 주위에 둘러앉아 지켜주었습니다. 교무들을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고자, 자신들의 안위는 뒤로 한 채 남녀노소 울부짖으며, 온 힘을 다하는 모습에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교무들은 호텔같다고 했습니다. 밤바람이 세차게 불어 견디기 어려웠는데, 민중의 힘으로 천막이 쳐졌습니다. 농성하는 교무들의 머리위에 왜 천막을 쳐주고자 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야말로 최전방의 보루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힘없는 민초들에겐 종교야말로 희망의 등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최후의 보루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의 작은 힘들을 모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야말로 자신들의 정의로움을 대변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구현하는 종교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우리 곁에 온 예수이자 부처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정치적인 왕의 관이 아닌 법왕의 관을 씌워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새고 일터로 돌아오려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진밭교의 농성장으로 올라갔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이 평화의 성전을 지키는 파수꾼인 김선명 교무가 제게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 종교가 범한 가장 큰 죄악이 있다면, 작은 잘못에는 냉엄하면서도 큰 잘못에는 용서를 남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잘못을 참회하며, 민초들이 바라는 것처럼 힘없는 사람들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드는 미국이라는 욕망, 인류의 욕망의 덩어리인 미국이 보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사드를 막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삿된 욕망을 제거함과 동시에 정의로운 종교로서의 원불교는 물론 한국 모든 종교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만큼이나 한이 많은 아일랜드의 음악그룹 웨스트라이프의 <유 래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이라는 노래를 틀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혀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이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차가운 칼바람을 맞으며, 밤새워 농성하고 있는 교무들과 동지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또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쓸 때, 민중 모두가 부둥켜안고 환호하며 자랑스러워했던 대한민국이 평화의 나라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염원했습니다.
성주가 평화의 땅인 이유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송규가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 세계 건설하자”는 대동의 윤리로써 세계평화를 외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 송도성은 해방 직후, 해외에서 귀환하는 수십 만 명의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전국 각지에서 이끌다가 전염병에 걸려 열반했습니다. 민중에 대한 사랑은 이들 가문의 전통이었습니다. 두 아들의 부친 송벽조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일왕에게 정신차리라고 일갈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불경죄로 감옥에서 고초를 당했습니다.
성주야말로 이처럼 자비로운 정의가 샘솟은 곳입니다. 따라서 민초들의 평화를 짓밟고 고통을 안기는 사드가 어떻게 이 땅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사드가 진밭교를 건너가고자 한다면, 제 자신을 먼저 밟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사드는 비록 제 몸을 밟고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제 영혼을 밟고는 넘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사드계획이 철폐되어 마침내 성주가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평화의 성지가 되고, 돌아가는 길에는 기쁘게 성주참외를 한 보따리씩 싸가는 날이 오기를. 황 대통령 권한대행님, 부디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의 선한 마음과 의지로 이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첫댓글 () 지금 읽어보아도 애절합니다.
중생이 본시 부처이나, 배고픈 입을 달래지 못해서 쉽사리 죄업을 짓고
이 나라가 평화를 사랑하지만, 또한 전쟁을 막겠다고 하며 무리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