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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
백금종
친구 넷이 자리를 했다. 저녁식사와 함께 술 한 병을 주문했다. 평소 같으면 각 1병씩은 너끈히 처치할 실력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동차를 가져왔으니 삼가야겠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기기운이 있으니 사양하겠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점심에도 반주를 여러 잔 해서 저녁에는 속을 달래야겠다고 하니 한 사람의 몫이 되었다. 그는 재미없는 술을 마셔야할 형편이라며 지나가는 개라도 끌어 오라고 호통을 친다. 그러나 오늘 제일 중요한 한 사람이 빠졌다. 그는 3개월 전 모임에 참석해 소주 2병을 비우면서 ‘만나니 이렇게 즐거울 수가 어디 있느냐’며 다음에도 변함없이 만나 우정을 이어가자고 신신 당부를 했던 친구이다. 그는 술도 좋아하지만 사람도 좋아하고 이야기도 맛깔나게 해서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 사람을 만나서 서로간의 희로애락을 토파하다보면 몇 시간을 훌쩍 넘긴다. 알맞게 기분이 좋아진 그는 구수한 재담을 실타래 풀듯이 상위에 늘어놓을 때면 동석한 친구들은 맛 장구를 치구나 추임새를 넣는 등 줄거리에 양념을 친다. 그러니 친구 간에 동질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며 분위기도 한층 뜨거워진다. 일어설 시간이 되자 무르익은 분위기가 아쉬운 듯 자리를 털며 1막은 끝났으니 다음 모임에 2막의 커튼콜을 울리자며 돌아섰다. 그 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 모임이 있고 난 뒤 정확하게 45일이 지났다. 그의 부음이 꿈속에 환청처럼 날아들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그간 그렇게 건강하고 술도 잘 마셨는데? 간밤에 홍두깨라 더니 허무하게도 불귀의 객이 되었다니 이게 웬 말인가? 빈소에 모인 친구들은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도 이승에서 와 같이 호탕하게 세상을 살기를 향불에 실어 영전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못다 마신 술을 여전히 즐겁게 마시기를 기원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동료들은 한 가지 부언할 것은 그의 사망원인은 술과 관련이 없는 불치병으로 이 세상을 하직했으니 술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기 바랄 뿐이다.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그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건강하고 술도 여전히 즐겨서 아무 탈이 없으려니 했다. 그의 건강한 체구가 눈에 선한데 유명을 달리했다니? 그의 재담이 귓가에 맴돌고 껄껄껄 웃는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하는데. 그의 잔영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찧어지는 가슴을 안고 그를 영원히 하늘나라로 보냈다. 이 세상에서와 같이 저 세상에서도 무심 무탈하게 지내라고 잔을 올렸다. 지금쯤 그도 우리를 바라보며 술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을까? 그날 밤의 술자리는 그냥 무덤덤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다른 모임의 친구들이 있다. 모두 세 사람이다. 그들은 지난 나뭇잎들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초에 만났다. 아직도 건강한 모습들이기에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들도 인생의 계절로 치면 가을을 넘어선 군상이라며 계절에 비유를 했다. 나뭇잎들도 물들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대지의 품에 안기듯이 우리들도 가을의 언저리에 앉았으니 잠시 후면 물들기 시작 할 테고 그리되면 곧장 그 색깔이 짙어져 낙엽처럼 저 세상으로 가리라며 건강을 가꾸자고 했다. 그리고 식사와 함께 술도 주문했다. 지난날의 흐릿한 추억을 반추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니 상위에 빈 술병이 즐비하다. 두 친구는 아예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히 부어 퍼 마신다. 목 넘기는 소리가 꼴깍 꼴깍 술맛을 돋운다. 나는 분위기를 맞추러 서 너 잔을 비웠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일곱 병을 비웠다. 그 들 한 사람씩 3병 이상을 비운 것이다. 술도 먹으려면 이쯤 되어야지. 나는 그들에게 엄지 손 가락을 올려 보였다. 몇 번에 걸쳐 술 주문을 했는데 가져오던 주인이 우리를 유심히 바라본다. 아마도 제 딴에도 놀랍다는 뜻이겠지. 그런대도 그들의 안색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말소리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대단한 주선들이다. 다행인 것은 두 친구는 지금까지 건강검사에서 이상하다고 체크된 항목이 없고 특히 간 검사 수치에서도 항상 정상 범위 내에 든다고 한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선천적으로 술에 강한 체질이 아닌 가해서 부러웠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열심히 술을 마셔서 술 매출에 일조하길 바라고 국세를 늘려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길 빌 뿐이다.
또 다른 술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나와 20여 년 전에 같이 근무한 동료가 있다. 그 또한 술 애주였다. 그 시대에는 술자리에 앉게 되면 서로 권하는 풍조가 있었다. 내가 정배로 한잔 받으면 마시고 바로 상대에게 답배를 올려야 했다. 이 것이 주법이라 하며 이것을 안 지키면 주석에서 지켜야 할 에치켓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니 술을 잘 못하는 사람도 그 속도에 맞추려면 억지 술을 마셔야 하고, 정말 술이 약해서 못 마신다면 상 밑에 있는 그릇에 비우고서라도 그 잔에 술을 부어 상대에게 권해야 한다. 반대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늦게 마시는 사람 때문에 술 배를 곯는다고 빨리 마시라 재촉하기도 했다. 또 자기가 권한 술을 안 마시고 버티면 기어이 옷에 붓기도 하고 심한 사람은 머리에 붓기도 했다. 그러하니 술이 약하거나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 사람은 술자석이 고통의 자리였다. 또한 술은 1,3,5,7,9 로 마셔야 한다며 그 잔 수가 모자라면 술을 더 불러서라도 잔 수를 맞추곤 했는데 위와 같은 일련의 주법은 양조회사들이 창안해 낸 아이디어가 아닌가 한다. 그래야 한 병이라도 더 팔 수 있으려니까. 그런데 내가 애기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이런 주법이나 주도는 무시하고 ‘한잔 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찌나 술 마시는 속도가 빠른지 자기 앞에 있는 잔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마시고 상대에게 잔을 들이 밀면서 ‘한 잔 줘’ 하고 외쳤다. 그 말은 들은 상대는 ‘그래요’ 하면서 술을 가득 채우면 또 꼴깍 털어 넣고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한잔 줘’ 하고 청한다. 이렇게 몇 순배가 돌면서 술 배가 채워진 듯 하면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비우곤 했다. 그 또한 술을 밥보다도 즐겨 마시지만 건강에는 아무 지장 없다 했다. 2년 동안 별 탈 없이 같이 근무하다 헤어졌다. 그분이 건강하시길 이 지면을 통해 빈다.
마지막으로 전하는 술 이야기는 대상이 여성이기에 조금 내근스럽고 심하게 말하면 외설스럽기도 해서 조금 망설여지나 사실에 근거하되 그분들의 신분에 누가 되지 않게 기술해 보려 한다. 내가 어느 직장에 근무할 때였다. 직원 중에는 남녀가 몇 분씩 있었는데 대체로 남자나 여자나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다. 그 중에 한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 분은 친구 간에 주부계라는 것이 있다 했다. 대상은 주부들인데 그 구성원은 술을 잘 마시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주부계의 주부란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는 여자 주인이란 뜻이 아니고 술주자를 써서 술을 잘 마시는 여자라는 뜻이란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죽을 정도로 퍼 마시는 모임인데 여기에 참여 하는 여인들이 어찌나 술을 잘 마시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하니 내 머리로는 감히 상상이 안 된다. 특히 저녁에 시작하면 날을 밝혀야 하고 아침에 시작하면 밤 12시가 되어 고주망태가 되어 귀가한다고 하니 그들의 가정이 건전히 지켜질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분의 말을 빌리면 부부간에 금슬이 좋고 가정생활도 모범이며 자녀들도 훌륭하게 기르고 있다하니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또 정기 모임 외에도 대표가 주령을 내리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전원이 참석해서 술판을 벌린다고 하니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여인들이 실행하는 객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대는 여성 상위시대라 가능 한 일인지?
또 다른 이야기는 위에서 이야기한 직장에서였다. 직원 간에 회식이라도 있으면 술도 따라 등장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애주가였는데 한 여직원의 기이한 행동에 술을 더 마시기도 하고 때론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면 술판에는 개인차가 나타난다. 술을 여전히 더 마실 수 있는 사람, 또는 약간 목이 차서 주저하는 사람들로 나눈다. 술을 권했는데 사양하거나 약간 뒤로 물러서는듯하면 그 여직원이 나타난다. 그는 사양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자기의 치마를 무릎위로 올리며 그래도 안 마시겠느냐고 회유성 엄포를 놓는다. 그러면 사양했던 사람도 무안하기도 하고 때론 어이없어서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의 수법은 한층 요염해지고 농익어진다. 몇 번을 권해도 사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번에는 자기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올리면서 미인계를 쓴다. 그럴 때면 술을 마지못해 마시는 시늉이라도 해야 그 직원의 행동은 멈춘다. 어쩔 때는 치마를 아예 벗으려는 행동까지도 하는데 같은 여직원이 말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미스러운 사태까지는 전개되지 않았음을 맹세코 확언한다.
나도 술 마신후 추태를 부린적이 있다 전주에 있는 전라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나는 6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다. 대개 6학년은 젊으면서도 학습지도력이 있는 교사들이 맞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학교에서 4년을 근무하면서 3년동안을 내리 6학년을 맞은바 있다. 학습지도력을 인정받아선 그런지, 교장선생님이 편애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기있는 6학년을 내리 3년이나 맡으니 주위의선생님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그러나 나는 어떤 로비를 하거나 부탁을 한일이 없으므로 그들의 눈총을 의식하지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근무했다. 하루는 어떤 학부형이 저녁이나 하지고 제안해 왔다. 몇번을 거절했는데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하는수 없이 승낙을 했다. 특히 나혼자만 초청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와 같이 나오라는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네도 부부가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학부모들의 진정성이 보여 그렇게 하자고 약속을 했다. 마침 그 학부형의 자제는 품행도 바르고 성적이 우수하여 소위 모범생이었다. 초대 받는 나로서는 부담이 덜 갔다. 만난곳은 시내의 어느 일식집이었다. 맛있고 품위 있는 메뉴와 양주 몇잔을 겻들이니 분위기도 좋아지고 화기 애애했다. 그집 아이의 학습태도 생활습관 교우관계 진로문제 등등 을 상담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흘렀고 또 한 취기도 기분좋게 올랐다. 나는 취중에도 그분들께 헛점을 보이지 않토록 정신을 바짝 차렸다. 소위 말하는 교사의 정도를 지키려 노력했다. 그분들도 예의를 다해서 우리 내외를 대우해 주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분들은 우리내와를 위해 택시까지 잡아 주셨다. 나는 택시를 타고 나니 더욱 취기가 올랐다. 아마 긴장에서 벗어나니 핏속에 웅크리고 있던 취기가 일시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정신줄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뒤자석에 나란히 앉은 나는 운전사 아저씨와 무슨말을 주고 받았다.그런데 지금 기억으로는 무슨 말을 주고 받았는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운전사 아저씨가 술 취한 사람들을 성토했거나 아니면 교사를 비하하는 말을 한것 같다. 운전사 아저씨의 말을 듣고있다가 내가 뒤에서 그뿐의 뺨을 떼리고 말았다. 아저씨는 운전중이었으므로 대항을 하지 못하고 폭언을 내 뱉었다. 재차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아내가 뜯어 말리고, 운전사 아저씨께 참으라며 애원하고 사과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자기도 괜한 소리 했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별다른 대구도 하지 않고 우리를 집앞에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 나는 그 일을 돌아보면서 곰곰 생각해 본다. 운전사 아저씨가 실수를 했더라도 참았으면 무사히 넘어갈일을 참지 못한것도 반성해 볼 일이고 그렇다고 주먹을 휘두르는 주사를 부린것도 후회막심한 일이었다. 그 시절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오늘날 같았으면 자기가 잘못을 했더러도 폭행을 당했으면 얼씨구 잘됐다 하고 경찰에 고발할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형사상 책임을 면할수 없으며 최소한 벌금이라도 내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을 마셨어도 얌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메너를 길러야 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된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성격도 다르고 또 술 습관도 다르다. 이제 모두 흘러간 옛 이야기이지만 그 시절이 그립고 그분들의 모습이 선하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은 어느 곳에 있던지 열심히 술 마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 기기를 기원해 본다. (끝)
첫댓글 술판의 갖가지 영웅적 주담을 들으면 꽤 재미있고 삶의 흐드러진 행간의 원초적 모습을 보는 듯하여 귀를 나팔처럼 열곤 합니다. 주담에 으레 따르는 추태도 이해가 되며 거치른 성깔의 생생한 허세도 받아드릴만 하지요. 세상에 살아남는 이유는 갖가지로 설득하거나 설명되지만 자기도취만큼 남의 관여가 필요없는 즐거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한들 중용은 어느모로나 필요한 적정수준임을 잊어선 안 되겠지요. 백금종선생의 흐트러진 만용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군요. 근사하게 한잔 걸치는 날이 있을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