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숙종의 아들 6명 낳은 엄마들이 모두 천민이었다네요.
우선 숙종의 여인 9명부터 대충 정리해 보기로 하지요
양반 출신 여인부터 살펴 보면
첫 왕비 인경왕후는 숙종과 동갑내기로 10살 때 숙종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가
14살 때 왕비가 되었고 젖먹이 때 하늘로 가 버린 두 딸을 따라 20세에 승하하였고,
둘째 왕비 인현왕후는 15살에 간택되어 왕비가 된 후 서인과 남인들의 정권투쟁에 휘말려
장희빈에게 왕비 자리를 넘겼다가 되찾았다가 고생하다가 자식도 없이 35세에 승하했으며
중간에 온 영빈 김씨는... 숙종이 천민 출신 궁녀 장씨와 너무 가까이 지낸다며...
천민 견제용으로 얼떨결에 후궁으로 간택되었다가 67세까지 외로이 살다가 인생 마쳤고
셋째 왕비 인원왕후는 인현왕후 승하 1년 뒤 16세의 나이로 간택되었다가
자식도 없이 71세까지 궁궐 한 쪽을 지키다가 하늘로 날아 가 버렸다네요.
양반 출신 여인 4명의 자식을 모두 합해도 첫 왕비가 낳은 딸 둘 뿐인데,
6명의 아들을 낳은 쪽은 숙종이 항상 아끼고 사랑했던 천민 여인들이라는군요...
천민 1호 희빈 장씨는 잠시 왕비까지 올랐었는데, 낳은 아이 2명이 모두 아들이었고,
큰 아들 경종이 33살에 임금 되었다가 37세에 승하하였지요
그리고 둘째 아들은 생후 10일만에 하늘로 가 버렸고,
천민 2호 숙빈 최씨가 낳은 아이 3명 또한 모두 아들이었고
이 중 둘째 아들 영조는 31세부터 83세까지 52년 간 왕을 지냈지만
큰 아들은 두 달만에, 막내 아들은 낳은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군요
천민 3호 명빈 박씨가 1명을 낳았는데, 이 역시 아들이었고
이 왕자는 연령군(延齡君) 이헌이라 하는데 역시 20세에 요절하였군요.
천민 4호 유 소의는 숙종이 40대 넘어서 만난 여자로 자식이 없었고,
천민 5호 김 귀인은 숙종이 50대 전후에 만난 여자로 역시 자식이 없었네요.
그럼 여기서 숙종 9명의 여인을 조금 더 소상히 살펴 보면서 숙종의 여성관을 알아 볼까요
숙종이 평생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철없던 세자 시절 10살 때 세자빈(김만기의 딸)으로 만난 동갑내기 인경왕후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딸 둘을 잃고 20살 때 그만 세상을 하직하고 맙니다.
인경왕후가 세상을 뜨기 약 두 달 전에 숙종이 할머니 궁에 시녀로 있던 두 살 연상의 나인 장씨를 만나게 되는데, 대감 댁 여자 종의 딸인 장씨를 알고부터 숙종의 여성 취향은 완전히 천인 취향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양반의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천민 여성으로부터 숙종은 최고의 감동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양반들 출신으로는 정식 왕비가 들어오든 후궁이 들어오든 모두 강 건너 불 보듯이 사랑을 주지 않게 됩니다.
숙종의 이런 낌새를 가장 먼저 눈치챈 어마마마 명성왕후(명성황후와 다름)가 일찌감치 천민취향의 싹을 자르고자 궁 밖으로 쫓아 버립니다.
그리고 숙종보다 6살 연하인 민대감네 딸을 새 중전으로 간택해 왔지만 별로 눈길을 주는 것 같지 않자 중전이 숙종이 그리워 하는 시녀 장씨를 데려 오려 하자 명성왕후가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말라며 결사 반대하였지요.
얼마 후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중전 민씨는 측은한 마음에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나인 장씨를 궁으로 불러 들이는데, 이 때부터 숙종과 천인 장씨는 그야말로 신이 났답니다. 둘이서 깨가 쏟아지게 놀다가 중전 방으로 쳐들어와서 약을 올리는 등 온갖 짓거리를 다하다가 보다 못한 중전 민씨가 따로 불러다가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지요.
서인 집권시대였던 이 때에 숙종이 천민 장씨를 좋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남인 쪽 대감들이 갑자기 천민 장씨 보호세력으로 자처하고 나섰지요. 양반들로 봐서는 보험 정도 든 셈이지만 멋도 모르는 천민 장씨 일가는 이것이 불행의 씨앗일 줄은 전혀 몰랐지요.
서인 쪽 양반들은 뒤늦게 눈치 채고 숙종에게 영의정의 손녀를 후궁으로 간택하여 궁으로 들여 보냈으나 한번 천민 취향으로 돌아 서 버린 숙종은 인현왕후도 후궁 김숙의도 쳐다 보지 않았고 따라서 이 쪽에서는 아이도 생길 기색이 안 보였습니다.
이 와중에 천인 장씨는 종 4품 숙원을 거쳐서 정2품 소의로 올랐고 왕자까지 낳았지요. 남인들 양반들은 옳다구나 하고 이 왕자를 왕세자로 삼자고 하였고 서인들은 당연히 결사 반대하였다네요.
서인들의 장기집권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숙종은 남인들 손을 들어 주었고, 기고만장해진 남인들은 서인들을 대거 축출하고 내친 김에 서인 성향의 중전 민씨까지 평민으로 강등시켜 궁 밖으로 쫓아 버렸습니다요.
그래서 천민 장씨는 본의 아니게 중전까지 올라 버렸는데. 둘째 아들까지 낳지요.(금방 사망)
본의든 아니든 중전이 된 장씨는 점차 양반 모드로 바뀌어 갔고, 이 때 숙종의 눈에 새로운 천민 무수리 최씨가 보였지요. 어느 사이엔가 숙원까지 올라 버렸는데. 중전의 오빠 장희재가 뒤늦게 알고 최숙원의 외사촌 형부, 외숙모를 매수하여 독살 계획까지 짰으나 최숙원이 잽싸게 왕자까지 낳게 되지요. 이 왕자는 두 달만에 죽었지만 최숙원은 또 둘째 아이를 임신하는데....
그리고 어느 정권이든 너무 설쳐 대면 안 되는 법... 임금 허락도 아니 받고 궁중의 천막을 마구 꺼내 집안 잔치에 사용하다가 숙종이 영의정을 서인 쪽 사람으로 바꾸어 버리자 서인 쪽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남인들의 죄상을 하나하나 폭로하기 시작하였고 남인들은 일거에 몰락해 버렸지요.
서인들이 재집권하자 장희재는 제주도로 귀양 가고 중전 민씨가 다시 돌아오고 장씨는 희빈으로 강등되어 취선당에서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지요. 정치인들 장난에 애꿎은 두 여인만 직급이 널뛰기하면서 오르락내리락 하게 되었던 셈이지요.
어쨌거나 이 와중에 최숙원은 두 번째 아들을 낳고 종2품 숙의로 승격이 되는데요. 이 아이가 바로 나중에 영조 임금이 되는 연잉군이지요.
뒷방에 힘없이 있던 장희빈이나 멀리 제주도에 가 있는 장희재가 최숙의나 연잉군을 거의 만날 일이 없었을텐데, 모 방송국의 드라마에서는 아직도 기세등등하게 이들을 괴롭히고 있더라구요... 그리고서는 뭐 역사적 사실과 일부 다를 수 있대나 뭐래나... 나 원 참...
최숙의는 얼마 후 종1품 귀인으로 오르면서 셋째 아들을 낳게 되는데, 며칠 만에 세상을 등지고 맙니다요.
그나저나 애 셋까지 낳은 최귀인께서도 왕년의 천티, 촌티는 점차 약해지고 양반 냄새가 서서히 나기 시작하자 숙종은 또 새로운 천민 출신 박 상궁에게로 눈길을 돌리게 되지요. 아들 하나 낳고 숙원으로 올라 가는데, 이 왕자가 연령군 이헌이지요.
이 때를 전후하여 서인 소론파 양반들이 약 200년 전에 돌아가신 노산군을 복권하자면서 숙종에게 상소를 올리자 숙종은 "단종"이라는 임금 이름을 새로 만들어 올리고 그 기념이라면서 뜬금없이 천민 출신의 세 후궁의 직급을 각각 올려 주더라구요... 최귀인은 숙빈으로, 유숙원과 박숙원은 숙의로... 숙종은 매일 양반들 눈치를 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천민 출신 후궁들 직급 올려줄 궁리만 했던 모양입니다그려..
얼마 후 중전 민씨가 35세의 나이로 승하하는데, 최숙빈이 “장희빈이 신당에서 뭔가를 빌었대요”라고 하자 뭘 빌었는지 제대로 확인도 않고, 조용히 지내는 장희빈에게 사약이 바로 내려 와서 취선당의 전설은 여기서 막을 내리지요. 여기서도 서인 쪽 아저씨들의 정치적 계산이 물론 개입이 되었겠지요.
이내 김대감 댁 따님이 숙종의 마지막 왕비로 간택되어 16세의 나이로 인원왕후가 되는데요... 한번 양반댁을 떠난 숙종의 여성 취향은 돌아 올 줄 모르고.... 새 왕비만 가련하게 되었지요... 새 왕비 입궁 보너스로 후궁들이 일제히 승진하게 되었지요. 김귀인은 영빈, 박 귀인은 명빈, 유숙의는 소의로...(참, 유 소의도 천민 출신이었지요)
얼마 후 박 명빈이 세상을 뜨는데, 장례를 지내는 상주들이 모두 천민 출신들이라 궁중 관리들이 시원찮은 목재들만 내 오자 숙종이 화를 내며 “아무리 그래도 왕자를 생산한 후궁인데... 양반용 목재라도 좋으니 당장 내 오라”고 하였고... 계속 담당자들이 시큰둥하자 숙종이 책상을 뒤엎는 등 한 바탕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공무원들 생각으로는 아무리 임금이 총애하더라도 천민은 천민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소동이 있고 나서도 숙종은 나이 50에 또 한 명의 천민 김 숙의를 귀인으로 올려 놓고 말지요... 양반댁 여인들은 옛날 어렸을 때 첫 사랑 인경왕후만 빼고는 다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요.. 그 때는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정말 알기나 했는지 모르겠지만서도요...
그리고 얼마 후 숙종은 57세의 나이로 승하하시고, 장희빈의 아들이 33세의 나이로 경종 임금이 되는데요.
그 이듬 해에 무수리 출신 최숙빈이 49세에 세상을 뜨고, 그 3년 뒤에 아들 연잉군이 골골하던 경종의 뒤를 이어 30세의 나이로 영조 임금이 되지요...
남인 몰락 이후 남인을 대신하여 계속 장희빈 아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서인 소론 양반네들이 갑자기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비상시에 대비하여 계속 연잉군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서인 노론 아저씨들만 살 판이 났지요.
이 때 줄을 잘 선 서인 노론 아저씨들은 200년 뒤에 조선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요... 나라 망한 거요? 아, 그거... 그것은 전적으로 마지막 임금이 바보같았기 때문이고요... 또 뭐가 있더라.... 참, 이완용 그 놈이 책임 져야 할 문제라니까요... 아, 글쎄... 우리 양반들 보고 자꾸 뭐라 그러지 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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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남자들의 정치싸움에 말려 들어 마음 고생만 하다 가신 인현왕후와 장희빈, 최숙빈 등 가련한 여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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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인천교육연수원 연수부장)
추신:인기리에 방송중인 동이를 보면서 극작가들 의 맹란한 창의력에 혀를 두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