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12시쯤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땅 걷기 언니를 비롯한 몇 룸메이트가 잠들어 있어서 불을 켤 수가 없었습니다. 휴대전화 불빛을 빌어 세면도구와 갈아 입을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는데, 더운 물이 안 나옵니다. 양치 세수만 간단히 하고 이불 위에 누웠는데, 방바닥도 미지근..그래도 잠을 자야지 싶어 잠을 청해보지만 이노무 머리는 어제부터 잠 잘 생각을 안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오늘 일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한국 길 모임의 결성에 대한 각각 나름의 생각들과 내 생각의 차이점과 부합점을 찾아봅니다, 얼핏 잠이 들었다가도 부시럭 소리만 나면 잠은 자꾸 달아납니다. 그러다 또 하루가 밝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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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짐까지 챙겨들고 나가길래 혼자 올레길 떠나나 싶었는데, 산방산 온천에 다녀왔다는..미리 알았으면 거기나 따라갈 걸..차례로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 들락거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귀로 들어옵니다. 마지막 잠까지 다 달아난 터라 털고 일어납니다. 토끼잠을 자고 일어나서 바라본 바깥 풍경에 또 바람이 듭니다.
그냥 방에 앉아있기가 아까워 길을 나섭니다. 송악산까지 다녀오려합니다. 숙소가 있는 이 길은 올레 10코스 입니다. 송악산도 포함입니다. 길따라 나섭니다. 간판 너머로 말이 보입니다. 통영 이사와서 황소가 풀을 뜯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며 신기해했는데, 여기는 말이 소인양 곳곳에서 풀을 뜯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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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조랑말은 아닌 듯하지요. 다리가 좀 기네. 그래도 어린 말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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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닷가는 온통 까맣습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도 까맣고 모래사장도 까맣습니다. 우리 통영과는,,아니 뭍과는 또 다른 특색입니다. 날이 좀 흐려서 회색빛 하늘과 바다이지만, 까만 돌 때문에 포말의 흰빛이 더 눈부시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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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곳이 송악산 입니다. 게스트 주인 말로는 한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다 합니다만, 저는 조금 더 걸렸습니다. 저 말고도 송악산 까지 갔다 오려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잠깐씩 아침 인사를 곁들인 이야기를 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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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곳이라 그런지 선인장이 곳곳에서 자랍니다. 산양읍 쪽에도 선인장이 보이긴 하지만, 바닷가 돌 틈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드문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밀물이 들면 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지는 않을까..왜 하필 이 곳에 자리를 잡았을까..선인장 말고도 이름 모를 관목들이 줄 지어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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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들은 온전한 것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뒤틀리고 못 생기고 사그러드는 것들까지 거둔다고.. 생명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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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정확히 말하면 제주도에 산은 한라산 하나 뿐이고 다른 것들은 전부 오름이라는 택시 기사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래쪽에 일본군 기지로 쓰기 위해 파 놓은 동굴이 있습니다. 가마가제가 비행기만 있는 줄 알았는데, 배로도 가미가제 그 악날한 짓들을 했다네요. 저 동굴에 숨어 있다가 함대가 오면 쫓아가 자살테러를 감행했다는...우리땅 곳곳에 일본군 만행의 흔적이 존재함을..일본의 지진피해에 한없는 동정을 보내면서도 이런 것들을 보고 생각할 때면 치가 떨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저 왼쪽 끄트머리 가는 길인데, 이곳에도 곳곳에 참호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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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길을 따라 태평양을 바라보며 걷는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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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니 모슬포 저 동네도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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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정상쪽. 저 아래에도 말이 보이네요. 산 정상에는 흑염소 두 마리가 큰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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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0코스는 이 길을 따라갑니다. 오른쪽 갈림길은 정상쪽으로 가는 길이지만 어차피 조금 더 가면 만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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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소 보듯 보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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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정상에 분화구가 있다하여 올라가볼까 싶어 길을 들어섰는데, 몸살을 앓고 있다니 협조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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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짚어 나오는 길에,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계단이 보이길래 돌아가서 계단으로 내려가 봅니다. 가파른 계단 아래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 쪽이 감성돔 포인트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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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기암괴석을 지나는 좁은 길이 나오는데, 내려갈 때만 해도 그 길이 아까 보았던 동굴이 있는 해안으로 연결되어 있는 줄 알았답니다. 동굴도 한 번 가 보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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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 만치에서 길이 끝납니다. 낮은 울타리를 넘어가 바위길로 한 번 가 볼까 싶었습니다. 좀 위험하긴 하지만 해볼까 하다가 괜한 모험에 행사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에게 민페가 될까 싶어 참고 다시 되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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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색입니다. 파란색과 주황색. 우리는 노란색과 녹색 리본을 같이 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도심길인 1코스 지정 색이 녹색이고 미륵도길은 노란색이니 두 가지 색을 섞어 써도 무방하리라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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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을 찾기 전에 서명숙 이사장의 책으로만 보면 안내체계는 최소화 한다는 이념을 표명하는데, 오늘 걸어본 바로는 안내체계 촘촘합니다. 다음주부터 조금은 뜨문뜨문인 우리 안내체계의 보완이 들어가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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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확 트이고 오롯한 길은 이 코스 뿐 아니라 오늘 걸을 6코스에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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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 돌담을 끼고 자그마한 동백나무에 꽃이 소담스럽습니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서 한 번 더 꽃을 피우는 동백. 이미 통영에는 개량꽃이 더 많은 듯 한데, 제주엔 토종 동백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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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는 감귤나무는 없고, 대신 마늘과 양배추 당근 등의 농작물을 기른답니다. 해안포대 때문에 그랬는가 몰라도 이 곳이 일제시대에는 널디 너른 비행장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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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 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일행들은 식사가 다 끝났고, 저는 게스트하우스 식구들 먹는 자리에 끼어 해물뚝배기와 어제 그 멸조림으로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10시에 6코스 시작점인 쇠소깍으로 이동합니다. 말이 사람들 많은 게 신기한 지 가까이 다가옵니다. 제가 얼굴이며 목덜미며 좀 쓸어 주었더니 제 운동화를 빨아 먹으려 하길래 한 대 쥐어 박아주려다 참았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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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갈기 앞 머리 부분에 풀씨가 잔뜩 앉아있습니다. 손이 없으니 떼어 낼 수도 없겠지만, 말도 풀씨가 거기 있다고 불편하다고 느끼지도 않을건데, 보는 사람마다 에고 풀씨좀 뜯어주지..안타까워 합니다. 잘못 보면 벌레가 알 까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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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한 시간 가량 이동하는 사이에 설문조사서도 나눠주고, 간세 인형과 캘린더를 선물로 건네줍니다. 배낭에 간세를 메달고 6코스 이정표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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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안은주 사무국장이 나와서 오늘 일정을 안내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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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고 시원시원한 안은주 사무국장은 저희와 있는 내내 함박웃음 지으며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립니다. 서명숙 이사장님 일 하는 것 보고 잠깐 도와주러 왔다가 아예 짐싸들고 내려온 고마운 사람. 그들이 있어 도보여행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입니다. 물론 도보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에 대한 홍보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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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고해 주실 올레지기님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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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사무국에서 나눠준 물과 전복 주먹밥, 고기 파래 주먹밥을 받아들고 올레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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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은 그리 감동적이지 않으나 같이 걷는 사람들이 있어 발걸음을 재촉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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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의 빛깔이 사뭇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백사장에 익숙한 눈에 거뭇한 모래가 거슬릴 만도 하려만 그 나름의 의미와 사연을 담은 모래가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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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로수가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벚꽃이 피었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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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나무입니다. 밤이면 전구에 불이 들어와 야간 조명과 조망의 역활을 하겠지요. 신기하긴 했지만, 없어도 될 아이템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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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어낸 기암괴석. 물놀이 하다가 잠깐 쉬기에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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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검은 돌들이 이어집니다.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통영과 제주이건만 보이는 풍광은 사뭇 다르니 아기자기 예쁜 통영의 바다와 이국적이고 색다른 제주의 바다는 그 나름 각자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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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들 또한 제 나름의 감동으로 길을 재촉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처지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여 올레지기보다 앞서다 "깃발보다 먼저 가면 벌금 내야 하는데요" 한 마디에 멈춰서서 대열에 맞추기도 하면서 눈 마주치고 얘기하고 웃으며 길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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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돌을 주워다 담을 쌓아서 그런가 집들의 돌담도 전부 꺼뭇꺼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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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할망집 현수막이 붙은 포장마차 같은 식당. 제주올레 사무국 지정업체는 물론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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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는 고 이주일씨 별장이었답니다. 요양차 가끔 내려와 계시며 자리물회 축제 때면 얼굴도 내보이고 하셨다는 올레지기님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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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세가 있는 곳에는 리본도 항상 같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중복설치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한 설치라는 생각도 잇달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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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제지기 오름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는 코스인데, 다시 내려온다는 말에 안 올라 가려던 사람들도 올레지기님의 강요에 하나 둘 올라가기로 하십니다. 자기네 코스에서 사람들이 그랬으면 본인들도 올레지기처럼 밀어붙였을 겁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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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미터가 좀 넘는 높이인데, 서귀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녹지조성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가 내려다보이는 시내가 참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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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 올라 한 숨 돌리며 서 있는 중에도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걷는 길 관계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다 모이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는 일도 쉬운 일도 아니기에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의 열정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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