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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실절과 예수님의 부활
1.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 초실절
이스라엘은 안식일, 봄 절기, 가을 절기가 있다. 봄 절기(레23:4-22절)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맥추절)이고, 가을 절기(레23:24-44절)는 나팔절(신년절), 속죄절, 장막절(초막절)이다. 다른 표현으로 이스라엘은 일 년에 일곱 번의 중요한 절기가 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이다.
초실절은 농사지은 첫 열매를 하느님 앞에 드리는 것인데, 이는 죄 없는 하느님의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 두시지 않고 마침내 살려 내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에 대한 예표이다. 1코린15,20절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한다.
바로 초실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절기가 무슨 영적 의미인지도 모르고 율법으로 순종했지만, 마침내 예수가 실상으로 오셔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그 모든 예표와 비유를 완성하셨다. 이 절기는 “처음 것을 드리는 행위”를 위한 축제이다.
모세를 통해 하느님은 모든 농산물의 첫 열매나 동물의 첫 태생과 첫 아들은 하느님의 것임을 말씀하셨다(탈출22,29; 23,19; 34,26; 레위27,26; 민수18,16). 율법에 따르면 첫 아들은 한 달이 되면 제사장에게 드려야 한다(민수18,16). 루카2,24절은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한 달 후에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전에 데리고 가서 비둘기 두 마리를 희생 제물로 드려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관습 때문이었다. 곧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땅과 모든 소산물은 하느님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께 감사하며 모든 첫 번째 소산물을 하느님께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곡식이나 나무 열매나 포도와 같은 농작물만 드렸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하여 얻는 소산물까지도 드렸다. 이를테면, 올리브 열매에서 얻어지는 기름 같은 것이 좋은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절차가 끝난 후 그때야 비로소 그들은 나머지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던 것이다(탈출23,19; 민수15,20; 18,12; 신명26,2). 어떤 이들은 이 절기를 더 세분화하여 자연에서 얻은 것을 직접 드리느냐 아니면 가공하였느냐 혹은 짐승의 첫 새끼를 드리느냐 등도 다루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레위23,9-14절은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느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고 말한다.
초실절에 그들이 추수한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 그 단을 열납하도록 흔들어서 안식일 이튿날에 드려야 하며, 또한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드려야 했다. 물론 이 절기를 어떻게 지켜 나가느냐 하는 점에서 각 시대마다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유대 사회에서 이 절기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끔 고쳐 지켜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 절기에는 신약시대에 맞게끔 흥미로운 규범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나 가정 단위로 지켜졌던 이 절기에는 국가적으로 초실절 행사를 위해 사용할 첫 곡식 추수의 상징인 보리를 재배했다. 이 절기 며칠 전에 당시 유대인의 최고 정치 기구였던 산헤드린의 관리들은 그들이 심었던 보리 들판에 가서 세심하게 보리를 살핀 후 몇 단의 보리를 자르지 않고 묶어 두었다.
그리고 나서 해가 지면 초실절이 시작되는데 산헤드린의 관리들은 그때 낫과 바구니를 들고 들판에 나간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들이 성전을 떠날 때 함께 뒤쫓아 간다. 그리고 수확된 보릿단을 성전으로 운반한다. 그곳으로 키질을 하고 갈고 또 체로 친다. 그리고 그 중에 십분의 일을 제사장에게 가져간다.
제사장은 제분한 보리에 올리브 기름과 향을 뿌려 제물로 바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제사장은 제단 위에서 흔드는 방법으로 그 제물을 흔들어 봉헌한다. 그때 그들은 하느님께 수확을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보호하셔서 바람이나 기타 재앙으로 인해 곡식을 추수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제단에서 제사장이 흔들어 봉헌하는 것을 끝낸 후 한 줌의 곡식단을 번제로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으로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적으로 초실절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초실절을 위해 각 가정의 아버지는 어린양을 드렸다. 그러나 가난한 경우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초실절에 수확물의 첫 것을 하느님께 바쳤다.
2.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
이스라엘의 절기는 역사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예언적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메시아의 사역을 예표한다. 특히 이 절기는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하고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에 이어 지켜지는 이 절기는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지켰다. 그리고 이 절기는 칠칠절(오순절)이라고 하는 절기의 날짜를 세는 기점이 되기도 했다.
마태28,1-6절은 “1 안식일이 끝나고 주의 첫날이 밝아오기 시작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돌무덤을 보러 갔는데, 2 보라, 큰 지진이 났더라. 이는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는 가서 그 입구에서 돌을 뒤로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기 때문이더라. 3 그의 용모는 번개와 같고 그의 옷은 눈과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 내가 아노라. 6 그분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일어나셨으므로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와서 주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말한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시기와 초실절 기간과의 밀접한 상관성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 날”이었는데 초실절도 “안식일 이튿날”에 지켰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두 사건의 시기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초실절은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 안식일이 지난 첫 날에 지켜졌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은 무교절이다. 그러므로 무교절에 속한 안식일 다음날이 초실절인 것이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한다면, 초실절을 지키는 날짜는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 날 부활하신 날과 일치한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1코린15,20-2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한 것 같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사람을 통해 임하였나니,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23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첫 열매를 가리키는 ‘아파르케’라고 하는 용어는 가장 먼저 맺힌 열매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새로운 생명이 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지 그리스도 혼자만의 단독적인 부활의 성격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다시 살아나셨음을 의미한다. 곧 부활을 의미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부활을 믿는 이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부활의 열매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첫 열매와 동일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모든 믿는 이들의 부활을 강조했던 것이다. 따라서 씨 뿌림과 자라는 시대가 끝나고 첫 열매되시는 주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일어나 부활하시고, 재림하신 후에 우리 산 사람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1테살4,16-17절은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한다.
물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한 부활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살아났지만 또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오자마자 예수님께 “예수님 제가 또 죽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또 죽는다고 했을 때 크게 실망했고, 심지어 그는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웃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베드로는 구제에 힘쓰던 다비다를 죽음에서 일으켰다(사도9,40).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설교를 들으면서 졸다가 떨어져 죽은 유리고를 살리기도 했다(사도20,9-12). 이것은 부활과 구분하여 소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모두 다시 죽었다. 정리해 보면, 예수님 시대에 죽었던 자가 살아난 사건은 부활이 아니었다. 예수님만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영원히 죽지 않으시는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언급하기 위하여 초실절의 첫 열매를 가리킨 것이다.
3.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
유월절과 무교절로 이어지는 첫 안식일 이튿날 하느님 앞에 “첫 열매(first fruits)”를 드리는 절기를 예언적 관점에서 볼 때,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이튿날 부활하셔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 첫 열매(the first fruits)”가 되셨던 것이다. 여기서 “그(the)”라고 하는 정관사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초실절을 지키면서 “첫 이삭들”을 바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 첫 열매”라고 함으로써 지금까지 절기마다 수없이 겪었던 첫 열매가 예시적인 사건으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첫 열매”가 되셨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유대인이 들었다면, 얼마나 초실절과 더불어 사도 바오로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들려왔을까?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율법에 묶여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그분께서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도 그 열매의 일부분이 될 소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예수님에 의해 완전하게 예언적으로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애굽에서의 첫 번째 유월절 어린양과 같이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 지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다가, 이것이 무교절의 의미이다.
그리고 초실절이라는 절기는 그분께서 다시 부활하실 것과 주님 안에서 모든 믿는 이들이 부활의 확신과 영원히 살 것을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주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의 일이다. 한 여인이 어린아이를 업은 채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나왔다고 한다. 굶주린 사자들이 주위를 돌면서 먹이를 노리고 있었다.
두렵고 무서운 아이가 어머니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울자 이 아이의 어머니는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얘야, 울지 마라! 곧 주님 앞으로 가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준비하신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것이란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의 열매를 따르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부활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 1코린15,17절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라고 바도 바오로는 외치고 있는 것이다.
4. 예수님의 비밀한 승천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체험(요한20,1-18)
부활절 복음 말씀 중의 중점은 두 가지이다. 그 첫째는, 요한20,8-9절의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목격한 빈 무덤의 사실만 믿는 두 제자, 곧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요한)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더욱이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18절).”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19절).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아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무덤에 가서(20,1절).”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이 빈 무덤의 사실을 말하였다(2절).” 마리아는 빈 무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간 제자들과는 달리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11절).”
“마리아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다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15).” 주님은 마리아의 지극한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분의 비밀스런 승천 전에 그분을 마리아에게 드려내셨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라뿌니!’하고 불렀다(16절).”
요한20,17-18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주님에 대한 만남, 곧 체험을 추구하고 있었던 반면에 제자들은 빈 무덤의 사실을 보고 믿는 차원에서 만족했다. 제자들은 마리아와는 달리 그분과 인격적인 만남의 체험이 없다. 많은 경우 우리 믿는 이들은 성경의 지식으로 만족하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체험을 추구하기 위하여 오래 머물지 않는다.
때때로 교회 안의 어떤 구성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단지 지식이나 교리로 만족하지 않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만남의 체험을 추구하는 마리아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5. 초실절의 첫 열매
두 번째의 중점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 이른 아침 비밀하게 아버지께로 가셨다. 이것은 비밀한 승천이다. 17절에서 주님은 마리아에게 자기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그분이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셨기”때문이었다. 아버지에게로의 이 비밀한 승천은 16,5-7절에서 예언된 가심의 궁극적인 성취였다.
이 일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승천하시기 사십일 전에 일어났다(사도1,9-11). 그분은 비밀하게 승천하여 아버지를 만족시켜 드린 후 제자들에게 다시 오셨다(요한20,19). 이것은 구약에서 수확물의 첫 열매를 맨 먼저 하느님께로 가져갔던 것처럼, 주님의 부활의 신선함도 반드시 맨 먼저 아버지의 누림을 위한 것이었다.
레위23,10-11절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라고 말한다.
11절에서 첫 열매가 하느님께 드려진 날은 안식일 바로 다음 날, 곧 주의 첫 날이었다. 백성들은 첫 열매가 드려진 날로부터 칠 주를 세어야 했다(레위23,15-16). 오순절은 그런 다음 오십 일째가 되는 날에 지켜졌다. 요한복음 20장에서부터 사도행전 2장에 있는 오순절까지의 기간은 정확히 오십 일이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사십 일의 기간 동안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사십 일이 만료되어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분의 공개적인 승천 후 제자들은 열흘 동안 기도한 다음에 오순절을 맞은 것이다. 주님의 비밀한 승천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요한복음의 기록 속에 삽입되어 있다.
우리는 요한의 기록에 그러한 삽입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주님은 부활하신 직후 첫 열매로 아버지의 만족을 위하여 아버지께로 가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사랑과 슬픔으로 인하여 잠시 동안 저지를 당하셨다. 마리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그곳에서 그분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애절함을 보신 그분은 즉시 가시지 못하셨다.
그분은 그분의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울고 있는 마리아를 돌보시기 위하여 한 동안 그곳에 머무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그녀와 몇 마디 이야기하신 후 첫 열매로 아버지께로 올라 가셨다.
만일 그곳에서 마리아가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17절).”고 하신 이 위대한 계시를 말씀하실 대상이 없었을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주님의 부활의 날에 그분의 형제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겠는가? 만일 우리에게 이 말씀이 없다면, 아버지의 누림을 위하여 부활의 첫 열매를 아버지께 드리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비밀한 승천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초실절에 대한 세밀한 설명이 요한복음 20장에 기록되어 있다.
6. 곡물의 첫 이삭 한 단
“곡물의 첫 이삭 한 단(레위23,11절)”은 무엇인가? 마태27,51-53절은 “보아라,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잠들었던 많은 성도의 몸이 일으켜졌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나타내 보였다.”라고 말한다.
수확의 첫 열매는 한 줄기의 밀이 아니라 한 단의 밀인데,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할 뿐 아니라,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분의 부활 후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진 성도들을 예표한다.
마태27,51-53절까지에 열거된 모든 것은 주님의 죽음이 지닌 뛰어난 효능의 여러 방면이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에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가 추적할 길이 없다. 아마도 소생했다가 다시 죽어 천국에 갔을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