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 작성을 위한 자료수집중
돌을 뒤집다보면 집게벌레가 집게를
휘두르며 위협해오는 경우가 있다.
집게벌레는 이름 그대로 꼬리 끝에
붙은 큰 집게가 특징이다.
곤충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집게벌레는 매우 이른 단계에
출현한 원시종이다.
바퀴벌레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릴 만큼 원시적인 곤충의 본보기이다.
바퀴벌레에서는 길게 뻗은
두 가닥의 꼬리털을 볼 수 있다.
이 꼬리털은 원시적인 곤충에게서
특유하게 볼 수 있는 흔한 특성이다.
집게벌레의 집게는 이 두 가닥의
꼬리털이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집게벌레는 전갈이 독침을 추어올리는
꼴마냥 꼬리 끝에 붙은 집게를 번쩍
쳐들어 적으로부터 몸을 지킨다.
또 공벌레 (단고무시)나 나방 따위의
사냥감을 발견하면 집게로
옴짝달싹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느긋하게 먹는다.
돌을 꿈틀하고 뒤집으면 돌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집게벌레가 느닷없이
밝아진 찰나에 화들짝 놀라서
허둥지둥 도망치려고 쩔쩔맨다.
그런데 개중에는 도망가지 않고
꼼짝 않는 집게벌레도 있다.
아무래도 그냥 가만히 숨어 있는
모양새는 아닌 듯하다.
이런 집게벌레는 용감하게
집게를 들어 사람도 위협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돌을 뒤집어 엎었을 때 집게로
위협해오는 집게벌레는
어떤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집게벌레
옆에는 슬어 놓은 알이 있다.
사실인즉,
꼼짝 않은 채 달아나지 않는
이 집게벌레는 알의 어미이다.
어미인 암컷 집게벌레는 금쪽같은 알을
지키기 위해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집게를 휘두르는 것이다.
곤충붙이 가운데 육아를 하는 것들은
매우 드물다.
곤충은 자연계에서 약한 존재이다.
개구리나 도마뱀 무리, 새와 포유류 등
갖가지 포식자가 곤충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그런 곤충의 부모가 새끼를
지키려 해봤자 어미 아비와 함께
먹히고 말 것이다.
이래서는 몽땅 잃고 만다.
그래서 많은 곤충은 새끼 보호하기를
포기하고, 알을 낳은 채로 그냥
놔둘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식을 키우는
곤충이 있다. 예를 들면 독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전갈이
육아를 하는 곤충이다.
또 곤충은 아니지만 다른 곤충을
먹잇감으로 삼는 거밋과에도
육아를 하는 부류가 있다.
작은 물고기나 개구리까지 먹잇감으로
삼는 육식 수서 곤충인 물장군도
육아를 한다.
냉혹한 자연계에서, 새끼를 보살피며
기르는 '육아' 행위란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다.
전갈의 독침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집게벌레는 '집게'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집게벌레는 부모가
알을 지키는 생존 방식을 선택했다.
곤충의 육아는 어미가 알을 지키는 것과 아비가 알을 지키는것으로 나뉜다.
전갈과 거미는 어미가 알을 지킨다.
물장군은 아비가 알을 지킨다.
집게벌레의 알을 지키는 쪽은 어미이다.
집게벌레의 어미가 알을 슬 때,
아비는 이미 행방을 종잡을 수 없다.
새끼가 아비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자연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럽다.
집게벌레는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고,
겨울의 끝자락부터
이른 봄에 알을 슨다.
돌 밑의 집게벌레 어미는 낳은 알을
몸으로 덮어씌우듯이 하며
알을 지키고 있다.
알에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 정성스레 핥고,
공기가 통하도록 알의 위치를
옮겨가며 극진히 돌본다.
알이 부화할 때까지 어미는 알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물론 먹이를 입에 댈 짬도 없다.
먹이를 잡지도 않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쭉 알을 돌보기만 하는 것이다.
집게벌레가 알로 사는 기간은
곤충 중에서도 특히 길어,
40 일 이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알이 부화할 때까지 80일이
걸렸다는 관찰도 있다.
어미는 그동안 알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알을 계속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드디어 알이 부화하는
그날이 온다. 애타게 기다리던
사랑하는 자식들의 생일이다.
그러나 어미의 노고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집게벌레의 어미에게는 소중한 의식이 남아 있다.
집게벌레는 육식성으로,
작은 곤충 따위를 먹을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갓 부화한 작은 애벌레는
먹잇감을 사냥할 수 없다.
애벌레들은 배고픔을 참으면서
응석받이처럼 어리광부리며,
매달리듯 어미 몸으로
오글오글 모여든다.
이것이 의식의 첫 번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세상에! 새끼들이 친어미의
몸뚱어리를 파먹기 시작한다!
어미는 새끼들에게 습격당하면서도 도망가려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애지중지하듯 부드러운
배 부위를 새끼들에게 쑥 내민다.
어미가 의도하며 배를 내미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흔히 관찰되는
집게벌레의 행동이다.
뭐랄까.
집게벌레의 어미는 알에서 부화한
자기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몸을
먹거리로 이바지, 즉 공양(供養)하는
것이다. 그런 어미의 마음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집게벌레의 새끼들은 앞다퉈
게걸스럽게 어미의 몸을 처먹는다.
어찌 이리 끔찍하고 배은망덕한
존속살해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잔인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린 새끼들은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그럼 어미의 입장에서는 이제껏
무엇하러 힘들게 알을 지켜왔는지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는가?
어미는 가만히 새끼들이 자신을 먹는
모습을 꾹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 돌을 치우면,
지칠 대로 지친 몸에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집게를 번쩍 치켜든다.
집게벌레의 어미란 이런 것이다.
어미는 조금씩 조금씩 몸통을
잃어가며 숨통이 가느다래진다.
사라진 몸뚱어리는 새끼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미는 무슨 궁리를 하면서
최후를 맞고 있을까?
자식을 기른다는 것,
육아는 아이를 지킬 힘이 있는 강한
생명체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그리고 수많은 곤충 중에서도
집게벌레는 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
행복한 목숨붙이이다.
이런 행복감에 휩싸여 집게벌레는
마지막을 향해 가는 것일까?
새끼들이 어미를 몽땅 먹어
치웠을 무렵, 계절은 봄을 맞는다.
제법 그럴듯하게 자란 새끼들은
돌 밑에서 기어 나와 저마다의 길로
선뜻선뜻 나아간다. 돌 밑에 어미의
유해를 쓸쓸히 남겨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