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 대나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풀꽃 같은 사람이 되렴. 대나무는 곧게 자라 비바람에 부러지고 만단다. 엄마는 숨죽여 울고 있는 나에게 아주 고요히 말씀하셨다. 끝내 흘려버린 마지막 눈물이 피부에 스며들 때까지, 묵묵히 나의 곁을 지켜주셨다.
어릴 적부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나는 작고 조용한 우리 마을에 황혼이 찾아올 때면 사색의 거리에 나가 '나'라는 사람과 진정으로 마주하며 얻은 것을 마음에 조심스레 심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마음에는 죽순이 돋았고, 줄곧 걸어오던 사색의 거리에 막다른 길이 보일 때 즈음, 나의 마음은 이미 대나무 숲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숲을 아꼈다. 물을 주고, 잡초는 뽑아냈다. 정성이 담긴 숲의 푸른 내음은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 숲을 꼭 쥐고서 그럴듯하게 살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았다. 나의 숲은 강인했고, 그것이 곧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숲은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니, 완벽해야 했기에. 나의 치열한 자아성찰이 담긴 대나무 숲은 남들의 그저 그런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자만심으로 그득했다. 옳은 것을 지키겠다는 고집 센 사명감으로 대나무를 꽁꽁 싸맸다. 타인의 생각이 대나무와 다르다면 그것을 틀렸다고, 곧은 대나무는 항상 옳다고 증명해 내기 위해 열성을 다했다. 결국 시퍼런 안개만이 숲을 농밀하게 가두었다. 안개는 순식간에 나를 집어삼켰다.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았다. 시퍼런 안개는 차디찬 시선을, 무관심을, 가시 돋은 단어를, 그리고 인색과 외로움을 낳았다. 대나무를 지키기 위해 내가 쏜 화살이 다시 날 향해 돌아오면 대나무는 그런 나를 비웃듯이 부러졌다. 나는 나의 숲에서 도망쳐야 했다. 나의 숲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 비겁하게도 아팠다. 곧은 대나무는 틈이 생기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팔을 뻗었다. 안개는 걷힐 줄을 몰랐다. 나에게 들이닥친 이 불행이 너무나 원망스러워 아주 철저하게 숲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숲은 우거졌고 나는 여전히 외로웠다.
끝내 나는 숲을 들여다 보았다. 이 쓰라린 외로움을 끝내기 위해서는 내면의 대화가 필요했다. 어릴 적의 내가 생각한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지금의 나는 퍼렇게 질린 대나무 숲이 되어버린 걸까. 내가 바라는 모습은 곧고 푸르른 멋을 우쭐대며 조급하게 하늘로, 하늘로만 향하는 대나무였을까? 아니, 대나무보다 작고 보잘것없어도 붉게, 노랗게, 가끔은 빛깔을 바꾸어 하늘을 보기도, 땅을 보기도 하는 풀꽃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넉넉하고 따스한 멋을 가진 그 풀꽃이 아니었을까. 아아, 나는 참 모순투성이였구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늘로 조금만 가까이 가면 정말 하늘이라도 된 양 잘난 체하며 내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모습은 손가락질하였구나. 생각에 잠긴 나를 본 엄마는 당신의 열아홉도 대나무였다고 말씀하셨다. 열아홉의 당신도 그것이 옳은 것이라 여기며 자만하다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며 담담히 고백하셨다. 당신과 닮은 나의 성장통을 이해하기에, 풀꽃이 된 엄마는 대나무인 나에게 풀꽃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 풀꽃은 건듯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비바람에는 절대 부러지지 않으니까. 진실로 강인한 건 대나무가 아니라 풀꽃이었다.
나의 열아홉은 마음의 대나무 숲 한편에 풀꽃의 씨앗을 심는 봄이다. 씨앗은 땅 깊숙이 뿌리를 내려 풍랑이 일어도 나를 지탱해 줄 단단함이 되어주고, 조금 더 자라 표현이 서툰 대나무에게 넉넉함을 가르쳐 주고, 그리고 머지않아 어여쁜 마음의 뜰을 완성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봄이 지나 여름의 손님이 찾아올 때는 곱고 여유로운 꽃빛으로 나를 물들여 주기를.
첫댓글 엄청난 글🙊
문장 하나 하나 곱씹어 보게 되고 마음에 남는 글이에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