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시〔西征詩〕1)
정덕2) 갑술년 正德歲甲戌
가을 칠월에 序屬秋七月
한양으로 출발할 날을 잡으니 卜吉將西征
바로 스무하루이다 日惟二十一
어머님께 절 올리고 하직하는데 再拜辭萱闈
아쉬움에 차마 발을 떼지 못한다 依依不忍別
해질 무렵 도착한 앞 고을에는 薄暮抵前縣
등불 흐린 객관이 적막도 한데 燈殘孤館寂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들지 못해 欹枕耿不寐
경괄3)과 얘기하며 밤을 새운다 共談唯曔适
날이 밝아 말을 타고 출발하면서 天明上馬行
아직 푸른 가을 산을 돌아보는데 四顧秋山碧
모래밭에 흰옷 입은 사람4) 나타나 沙頭見白衣
시냇가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一壺臨溪酌
얼굴이 불그레해 헤어지는데 面酡欲分袂
아침 해가 동쪽 하늘에 떠오른다 東方朝日出
말 위에서 정신없이 졸다가 보니 馬背困睡魔
홀연 여현5) 골짜기를 다 지난지라 忽窮礪峴谷
원루에서 잠깐 동안 서성이는데 院樓薄夷猶
아침밥 짓는 연기 번져 나간다 朝炊煙一抹
느지막이 영양6) 길을 지나가다가 日晏永陽路
붉은 난간 기대서서 바라보려고 客倚朱闌曲
말을 두고 쌍청당7) 위로 오르니 舍馬上雙淸
눈에 가득 들어오는 가을 강 물빛 滿眼秋江色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누는 이는 坐談者誰子
창량과 윤석이로다 昌良與潤石
서성이며 고개 돌려 바라보는데 徘徊一回首
고향 산은 하늘가에 아득하구나 家山天際邈
이길보(李吉甫)8)가 향교에 몸담고 있어 吉甫在黌舍
저녁에 서루에서 묵게 됐는데 暮投西樓宿
술병 들어 권하고 마시노라니 擧酒聊相酬
거문고 가락 흥을 돋우어 준다 琴聲斷復續
피곤해져 새벽녘에 단잠을 자고 困來曉夢酣
일어나니 창이 이미 훤히 밝았다 睡起窓日赤
아침에 길을 떠나 이십 리쯤 가 朝行二十里
시냇가 바위 옆에 잠시 쉬는데 歇鞍川巖側
조용수(曺容叟)9)가 때마침 뒤따라와서 曺叟適後至
말에서 내렸다가 바로 출발해 下馬語未卒
동행하다 낮이 되어 또 헤어지며 同行午又分
내일 밤에 만나자고 약속하였다 重會期來夕
밥을 먹고 문소10)를 향해 가는데 憩飯向聞韶
산길이 너무도 깊고 험하여 山路何幽鬱
십 리를 가도 사람 보이지 않고 十里不逢人
곳곳에서 들려오는 꿩 울음소리 野雉鳴角角
찌는 듯한 골짝에는 바람도 없고 炎蒸谷無風
산길 험해 말이 자주 미끄러진다 徑險馬頻蹶
탄지(炭池)11)의 둑 너머로 해가 기울자 炭堤日西沈
시골 길에 하늘빛이 칠흑 같은데 村路天昏黑
주인이 날 안내해 들어가서는 主人引余入
마주 앉아 인사를 주고받은 뒤 坐語寒暄畢
함께 누워 단란하게 밤을 보내고 夜臥共團欒
새벽밥을 먹고 일찍 길을 떠난다 晨炊又早發
산길로 가다 보니 내가 있는데 山行得谿澗
물이 맑고 바위는 깨끗하므로 水淸且石潔
냇가 버들 아래에서 말을 풀고서 稅馬溪柳陰
옷을 걷고 앉아서 발을 씻으니 褰衣坐濯足
맑은 바람 산들산들 수면에 불어 淸風水面來
상쾌한 기운 몸을 맑게 해 준다 /爽氣淸肌骨
정오 무렵 쌍계역12)에 이르러 보니 卓午抵雙溪
작은 역사 무척이나 고즈넉한데 小軒頗幽闃
기다리는 친구가 오지를 않아 須友友不至
서성이며 일어섰다 앉았다 한다 彷徨坐復立
고요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夜靜群動息
누워서 넓은 하늘 바라보다가 臥看天宇闊
꿈에서 깨니 달은 높이 떠 있고 夢罷月高上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 들린다 遙聞鷄喔喔
서둘러 출발하여 길에 오르니 促行登前途
사방에 드문드문 별이 떠 있고 四面星寥落
연무와 아침노을 산을 감돌아 煙霞帶翠微
강산의 풍광 더욱 아름답구나 江山更奇絶
수산에는 배편이 없다 하므로 水山無舟楫
상주의 낙동강을 향해서 간다 道由尙之洛
걷고 또 걸어 문득 강에 닿으니 行行忽到頭
가을 강은 말 그대로 초록빛인데 洛水秋正綠
누대에 올라가자 가슴 트이고 登樓快開襟
눈 아래로 넓은 세상 펼쳐져 있다 眼底乾坤豁
누대에 함께 오른 객이 있으니 客有共憑闌
배씨(裵氏)이고 칠곡(漆谷)에 산다고 하며 姓裵家在漆
용수도 때맞추어 남쪽에서 와 容叟亦自南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해후하였다 邂逅如有約
휘파람 길게 불고 서성이는데 長嘯更徙倚
살랑살랑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淸飆來習習
소년 시절 여기 와서 노닐던 때13)에 少年客遊此
기둥에 쓴 글씨가 그대로 있고 題柱字不滅
강산도 완연하게 어제 같은데 江山宛如昨
순식간에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俯仰成今昔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갈 때는 中流擊楫渡
한낮의 해가 쨍쨍 내리쬐었고 午日方炎爀
낙동강 옆 역원에서 밤을 보낸 뒤 暮投洛郵亭
새벽에 출발하니 이미 훤하다 曉發天已白
넓은 들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曠野入望中
황폐하여 농작물이 얼마 없으니 赤地少稼穡
농가의 근심 걱정 얼마나 크랴 田家幾勤悴
가련하게 가을걷이 할 게 없구나 可憐秋無穫
섭리하는 사람이 누구이던가 燮理者何人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겠는가 無乃有所缺
어찌하여 하늘의 재앙을 불러 云何召天災
해마다 심한 기근 들게 하는가/ 饑饉連歲酷
함창으로 난 길을 지나가는데 道過咸昌界
홀연히 눈에 띄는 우뚝한 고산14) 忽看孤山兀
여관에서 한 차례 서성이자니 旅館一徘徊
옛 추억에 마음이 서글퍼진다 惻然起感憶
지난날 남쪽으로 향하던 때에 去年向南秋
강과 박이 나와 길을 동행했는데 偕轡姜與朴
지금 나는 여길 또 지나가지만 今年余又過
강은 이미 저승으로 가 버렸으니 姜已成異物
담소하던 것이 바로 어제 일 같아 笑談如隔晨
사람의 마음을 더 슬프게 한다 令人更悽切
당교원15)에 도착하니 누대 위에서 唐橋院樓上
중 하나가 새로 칠을 하고 있는데 有僧施丹雘
그의 말이 이 건물을 지은 지가 自言起此宇
햇수로 팔 년이 넘었다 하며 積累歲逾八
사람들은 사졸로 편입이 되어 人或編士卒
갑옷 입고 눈서리에 고생하는데 被堅曝霜雪
자신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我生世無累
하릴없이 밥 먹는 게 부끄럽기에 竊愧空食粟
여행객들 쉬어 갈 집을 짓고자 欲構行旅庇
감히 작은 힘을 쏟게 되었다 한다 敢效螻蟻力
내가 듣고 말없이 자탄하기를 余聞默自歎
이 한 몸이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一身處蓬蓽
경세제민(經世濟民)하려는 뜻 품고 있는데 經濟負大志
조그마한 보탬조차 되지 못하니 不能效絲忽
천지간의 한 마리 반대좀일 뿐 天地直一蠹
세상에 끝내 무슨 보탬이 되랴 於世竟何益
부끄럽다 한 중의 힘만으로도 却愧一僧力
사람들에게 널리 혜택 미침이 猶能功利博
이렇게 깊은 곳에 누원이 있어 有樓是幽谷
올라가서 더위를 식혀 보는데 快登避暑溽
기둥에 걸려 있는 많은 제명은 棟宇多題名
모두가 남쪽 지방 인걸들이다 盡是南中傑
저물녘에 조촐한 주연(酒宴) 가지니 黃昏設小酌
등불 하나 단청한 누각 비추고 孤燭輝畫閣
깊은 밤에 나그네 꿈 서늘도 한데 夜深客夢涼
창 밖에는 풀벌레 구슬피 운다 隔窓蟲語咽
새벽에 조용수와 작별을 한 뒤 黎明與曺別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가니 山盤路紆屈
맑은 새벽 골짝이 구름을 토해 淸晨谷吐雲
자욱하게 산허리를 뒤덮고 있다 / 靉遮山腹
골짜기의 물은 놀라 세차게 흘러 峽水豗驚湍
산을 찢어 버릴 듯이 시끄러우며 聒亂山欲裂
위태로운 벼랑에 잔도(棧道)가 걸려 崎嶇上危棧
밑을 보니 머리털이 쭈뼛해진다 豎髮臨不測
산허리에 낡은 보루 남아 있는데 山腰有古壘
어느 시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不知何代設
기억건대 지난날 삼국 시대에 憶昔三韓秋
분열하여 전쟁을 일삼느라고 分裂多戰伐
넘쳐 나는 무기를 거두지 않아16) 干戈爛不收
백성들이 어육이 되었었는데 生民盡魚肉
근래에는 오래도록 평화를 누려 邇來大平久
옛 성벽이 덤불 속에 묻혀 있구나 戰壁埋榛棘
그곳에서 수십 리쯤 되는 지점엔 前行數十里
골짝 어귀 송백이 아름다운데 谷口秀松柏
길 한쪽에 세워진 효자비에는 道左得孝碑
성명 앞에 관작이 갖춰져 있어 姓名具官爵
감탄하며 얼마 동안 그 앞에 서서 感歎立斯須
나지막이 읊조리며 서성거린다 沈吟更躑躅
고개 젖혀 새재를 올려다보니 參天見鳥嶺
돌벼랑이 새로 깎은 듯이 험한데 石崖如新削
험한 바위 옆에 길은 꼬부라지고 巉巖路百轉
골짝마다 냇물 소리 요란스럽다 谷谷溪流聒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말을 세우고 立馬最高巓
눈을 들어 아득히 먼 남북을 보니/ 擡眸極南北
한양은 햇빛 아래 아득히 먼데 長安邈日下
하늘의 한쪽에는 흰 구름이요 白雲天一壁
혼정신성(昏定晨省) 거른 지 여러 날인데 定省曠幾許
험한 산이 천리에 놓여 있구나 關山千里隔
정상에서 팔구 리쯤 내려온 곳에 下嶺八九里
맑은 냇물 무성한 수풀이 있어 川淨茂林木
돌 위에 앉았다가 세수하는데 坐石仍盥洗
푸른 산봉우리에 걸린 아침 해 碧嶂含朝旭
정오에 노루목을 벗어 나오니 午出獐項口
일대에 벽옥 같은 물이 흐른다 一帶流碧玉
물 옆으로 천 길의 절벽이 솟고 上有千仞壁
절벽 위엔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壁頭有小刹
위태롭게 걸린 바위 떨어질 듯해 巖石危欲墜
두려워서 말을 급히 달려 지난다 惕然驅馬疾
달천(獺川) 가에 뉘엿뉘엿 해가 지는데 日斜獺水頭
좁은 역원(驛院)17) 다리조차 펴기 어려워 草屋僅容膝
잠 못 들고 긴긴 밤을 뒤척이자니 輾轉夜似年
사방 벽에 귀뚜라미 울음소리뿐 四壁寒蛩唧
맑은 새벽 역원 앞의 여울 건너자 淸曉渡前灘
첩첩 산이 눈에 가득 펼쳐지더니 極目山萬疊
붉은 해가 공중으로 솟아오르자 金烏踴碧空
아침노을 하늘에 퍼져 나간다 紫錦散寥廓
충주에서 서쪽으로 사십 리 지점 忠西四十里
오래된 역원18) 옆에 미륵이 있어 古院有彌勒
담장으로 싸인 채 높이 섰는데 屹立繚垣墻
높이가 무려 수십 척이나 된다 身長數十尺
우리 도가 쇠퇴해지면서부터 自從吾道衰
불법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와 佛法入中國
널리 퍼져 사람들을 현혹시키자 流漫惑人遠
온 세상이 적멸을 추종하였다 擧世趨寂滅
조선에선 유학을 높여 왔지만 我朝崇丘軻
이단이 아직까지 그치지 않아 異端猶不息
번쩍이는 황금으로 불상 만들어 黃金塑神像
곳곳마다 바위굴에 감춰 두었다 處處藏巖穴
게다가 누가 다시 큰길 옆에다 誰復大道左
공공연히 돌부처를 세워 놨는가 公然立胡質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다지만 釋氏尙未謝
이런 불상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 不應有此佛
어떤 이가 호영19) 같은 뜻을 품고서 孰有胡穎志
버럭 노해 도끼로 부숴 버릴까 赫然加斧鑕
병든 말이 달리다가 꼬꾸라져서 羸駒走且僵
어렵사리 황산역에 이르렀는데 到得荒山驛
꿈속에서 고향 집을 서성거리니 夢魂繞桑梓
수심에 찬 어머님의 얼굴을 뵌 듯 宛見慈顔戚
요즈음 침식은 어떠하신지 眠食今何如
슬퍼져서 베개를 만지작댄다 撫枕空惻惻
새벽길을 말이 가는 대로 가는데 信馬天昧爽
오늘이 바로 팔월 초하루이다 乃八月初吉
산길과 시냇가로 출입하자니 出入山澗路
머리칼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 凄風吹鬢髮
이제 길은 충청도의 경계 벗어나 道過忠淸道
양지현(陽智縣)과 용인현(龍仁縣)을 지나가는데 邑歷仁智邑
산 밑에는 오래된 역원이 있고 山根有古院
길옆에는 초가집이 늘어서 있다 沿路多茅屋
기근으로 먹고살기 어려워져서 荒殘生理拙
객을 맞아 작은 이익 따지려 드니 邀客利升合
어찌하면 백만 곡의 곡식을 얻어 安得百萬斛
집집마다 충분하게 나눠 주려나 大畀家家給
닭이 울고 말발굽 소리 울려도 鷄鳴馬蹄響
하늘에는 별이 아직 총총하더니 滿天星斗列
잠시 뒤에 새벽빛이 감지되면서 須臾曙色分
붉은 기운 가을 하늘 끝에 퍼진다 晃蕩秋天末
사방 산에 자욱하던 연무 걷히자 四山煙霧收
말과 수레 도로에 몰려드는데 一路車馬遝
머리 들어 대궐 있는 쪽 바라보니 擧頭望北極
밝은 해가 지척에서 비추고 있다 白日臨咫尺
천지간에 바람 구름 다함이 없어20) 風雲浩無際
날개 쳐서 구만리를 날고 싶으니 九萬期奮翼
하늘은 높디높고 포부는 크나 天高懷抱遠
길이 멀어 말의 힘이 다하였구나 路長馬力竭
한양성이 홀연히 눈에 보이고 京城忽入眼
오색구름 대궐을 에워쌌는데 五雲繞閶闔
한수는 만고 이래 흘러왔었고 漢水萬古流
삼각산은 창처럼 벌여 서 있다 三角如列戟
상서로운 기운 용이 서린 듯하니 龍盤鬱佳氣
참으로 하늘이 낸 형승이로다 形勝眞天作
붉은 칠한 대궐이 하늘에 솟고 丹闕九天開
한양성의 사방 문이 활짝 열리니 金城四門闢
요순 같은 성군(聖君)이 임어하시고 紫極拱堯舜
기설21) 같은 현신(賢臣)이 보필하도다 廊廟登夔契
한 시대의 문물이 새로워지고 一代文物新
백 년 동안 예악이 흥기했으니 百年興禮樂
창해에서 버려진 명주를 찾고22) 蒼海搜明珠
기북에 한혈마가 남지 않았다23) 冀北空汗血
산림에서 머물다가 올라온 선비 士有來山林
시서를 일생의 업으로 삼아 詩書抱素業
초야에서 도의를 논해 왔지만 布談道義
어긋나서 세상에는 맞지 않도다 齟齬無所適
임금님 구중궁궐 깊이 계시어 君門鬱九重
벼슬길에 나아갈 길이 없기에 無路可通籍
일생 동안 구차한 뜻 가지지 않고 生平志不苟
성현을 배우기를 바라 왔으니 所希惟聖哲
귀히 여겨 상자 속에 간직해 두고24) 韞櫝聊自珍
발이 잘려 박옥(璞玉) 안고 울려 하지 않았다25) 泣璞愧三刖
천사라도 돌아보지 않을 터인데26) 千駟有不顧
일개를 구차하게 얻으려 하랴27) 一芥那苟得
진퇴(進退)는 마음 편한 바를 따르고 行藏隨遇安
출처는 내 뜻대로 정하면 그뿐 出處由我決
나귀 타고 한양에 올라왔지만 騎驢客京華
부귀한 자 추종하길 부끄러워해 恥隨肥馬迹
문을 닫고 들어앉아 책을 읽으니 閉門閱書史
창으로 불어 드는 서늘한 바람 窓戶新涼入
옛사람은 비록 이미 멀어졌지만 古人雖已遠
가르침은 아직까지 남아 있도다 遺訓猶在目
책을 펼쳐 그분들을 상상하건대 開卷想其人
내 마음을 실로 먼저 터득했으니 我心實先獲
천도를 따르면서 본분 다할 뿐 順天病在己
부귀는 급히 여길 바가 아니다 富貴非所急
[주1] 서정시(西征詩) : 이언적이 24세이던 1514년(중종9)에 별시(別試)에 응시하러 가면서 지은 135운(韻) 270구(句)의 5언 장편시로, 7월 21일 경주부의 집을 출발하여 영천(永川), 신녕(新寧), 의성(義城), 쌍계(雙溪), 상주(尙州), 함창(咸昌), 조령(鳥嶺), 충주(忠州)를 거쳐 8월 초 한양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읊은 것이다. 이언적은 당시 과거에 합격하여 권지 교서관 부정자(權知校書館副正字)가 되었다. 《晦齋集 文元公晦齋先生年譜》
[주2] 정덕(正德) : 명나라 무종(武宗)의 연호이다.
[주3] 경괄(曔适) : 이언적의 외사촌 손경(孫曔, 1492~1529)과 동생 이언괄(李彦适, 1494~1553)인 듯하다. 손경은 본관은 경주, 자는 여회(如晦)이며, 부친은 이언적의 외숙인 월성군(月城君) 손중돈(孫仲暾)이다. 충의위 현신교위(忠義衛顯信校尉)를 지냈고, 38세로 요절하였다. 이언적은 손경의 묘갈문과 그의 모친인 홍씨의 묘비명을 지었다. 《晦齋集 卷11 忠義衛孫君墓碣文, 夫人洪氏墓碑銘》 이언괄은 자는 자용(子容), 호는 농재(聾齋)이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 송라도 찰방(松蘿道察方) 등을 지냈으나, 뒤에는 관직을 그만두고 형을 대신해서 모친을 봉양하며 학문에 힘썼다. 《玉川集 卷15 聾齋李公行狀》
[주4] 흰옷 입은 사람 : 도잠(陶潛)이 중양절(重陽節)에 술 생각이 간절할 때 자사(刺史) 왕홍(王弘)이 흰옷 입은 심부름꾼을 보내 술을 선물했다는 ‘백의송주(白衣送酒)’의 고사가 유명한데, 여기서는 누군가 하인에게 술병을 들린 채로 이언적을 전송하러 온 것을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주5] 여현(礪峴) : 경주부 안강현(安康縣) 서쪽 30리 지점, 영천(永川)과의 경계에 있는 지명이다. 《韓國近代邑誌 8冊 慶州邑誌 209쪽》
[주6] 영양(永陽) : 영천(永川)의 별호(別號)이다.
[주7] 쌍청당(雙淸堂) : 영천군 객사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주8] 이길보(李吉甫) : 이언적과 교유한 인물인 듯하나, 《회재집》 권1에 실린 〈이길보의 강가 정자에서 자진의 시에 차운하다〔李吉甫江亭次子晉韻〕〉 시 이외에 그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는다. 영천 향교(鄕校)의 교관(敎官)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9] 조용수(曺容叟) : 조홍도(曺弘度)로, 용수는 그의 호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부친은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이다. 《淵齋集 卷40 忘機堂曺公墓表》 《韓國近代邑誌 8冊 慶尙道2 389쪽》
[주10] 문소(聞韶) : 경상도 의성(義城)의 고호(古號)이다.
[주11] 탄지(炭池) : 의성현 남쪽 30리 지점에 있었다는 못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5 慶尙道 義城縣》
[주12] 쌍계역(雙溪驛) : 경상도 비안현(比安縣) 동쪽에 있던 역원이다. 의성현(義城縣) 병천(幷川)에서 흘러와 비안에서 상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쌍계(雙溪) 근처에 있었다.
[주13] 소년 …… 때 : 이언적은 일찍 부친을 여의고 외숙인 손중돈(孫仲暾)에게 수학하였고, 손중돈이 1506년(중종1)에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부임한 이후에도 상주로 따라가서 학문을 연마한 바 있다. 《晦齋集 文元公晦齋先生年譜》
[주14] 고산(孤山) : 경상도 함창현(咸昌縣)에서 동쪽으로 9리 정도 되는 곳에 있던 산으로,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아 마치 섬처럼 보였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9 慶尙道 咸昌縣》
[주15] 당교원(唐橋院) : 함창현 북쪽에 있던 역원(驛院)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29 慶尙道 咸昌縣》
[주16] 넘쳐 …… 않아 :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쳐서 승리한 뒤에 무기에다 피를 발라서 창고에 간직하고, 간과(干戈)는 뒤집어 싣고 호피(虎皮)로 싸 둠으로써 다시는 무력을 쓰지 않을 것임을 밝혔던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樂記》
[주17] 좁은 역원(驛院) : 달천(獺川) 근처에 있었던 단월역(丹月驛)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18] 오래된 역원 : 현재의 충주시 신니면 원평리에 있던 미륵원(彌勒院)으로, 충주목에서 서쪽으로 50리 되는 지점에 있었으며, 광수원(廣修院)이라고도 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州牧》 바로 앞 구(句)에서 이언적이 충주 서쪽 40리 지점에 있었다고 한 것은 기록상의 착오로 보인다.
[주19] 호영(胡穎) : 남송(南宋) 때의 인물이다. 성품이 간사함을 좋아하지 않고 신이(神異)를 말하는 것을 더욱 싫어하여 지방관으로 부임하는 족족 음사(淫祠)를 헐어 풍속을 바로잡았는데, 그가 헐어 버린 음사가 수천 채에 이른다고 한다. 《宋史 卷416 胡穎列傳》
[주20] 천지간에 …… 없어 : 바람과 구름은 《주역》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좇는다.〔雲從龍, 風從虎.〕”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훌륭한 임금과 신하의 만남을 뜻하는 말이다. 대궐이 있는 한양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마음껏 포부를 펼쳐 보고자 하는 기상을 드러낸 것이다.
[주21] 기설(夔契) : 순(舜) 임금 때의 두 현신(賢臣)이다.
[주22] 창해(蒼海)에서 …… 찾고 : 초야에 버려진 인재를 찾아 등용한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때 적인걸(狄人傑)이 변주 참군(汴州參軍)에 임명되자 염입본(閻立本)이 그의 높은 재주를 사랑하여 “그대는 바닷속에 버려진 구슬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卷115 狄仁傑列傳》
[주23] 기북(冀北)에 …… 않았다 : 숨은 인재를 모두 발탁하여 초야에 버려진 인재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기북은 본래 준마(駿馬)가 많이 생산되는 곳인데, 말에 대한 뛰어난 감식력을 가진 백락(伯樂)이 기북의 들판을 한 번 지나가자 이곳에 좋은 말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韓昌黎文集 卷21 送溫處士赴河陽軍序》 한혈마(汗血馬)는 고대 서역(西域)에서 생산된 준마로, 땀을 피처럼 줄줄 흘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24] 귀히 …… 두고 : 자신의 재능이나 덕을 귀하게 여겨 그에 상응하는 예우를 해 주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함부로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아름다운 옥이 여기에 있다면 궤에 담아서 감춰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받고 파시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가 “당연히 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子罕》
[주25] 발이 …… 않았다 : 박옥(璞玉)은 돌 속에 들어 있는 가공되지 않은 옥이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직경이 한 자나 되는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잘못 보고 돌이라 하여 두 차례에 걸쳐 발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형산 아래에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슬피 우니, 문왕이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물었는데, 변화가 대답하기를 “나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내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 한다. 《韓非子 和氏》 여기서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기를 쓰고 벼슬길에 나갔다가 몸을 해치게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26] 천사(千駟)라도 …… 터인데 : 천사는 4천 필의 말로, 엄청난 부(富)를 뜻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제 경공(齊景公)은 말 4천 필을 가졌지만 죽는 날에 그의 덕을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즉 세속적인 부귀 따위는 염두에 없다는 말이다.
[주27] 일개(一芥)를 …… 하랴 : 일개는 지푸라기 하나로, 아주 작은 물건을 가리킨다. 《맹자》 〈만장 상(萬章上)〉에 “의에 맞지 않고 도에 맞지 않으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고,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서 받지 않는다.〔非其義也, 非其道也, 一介不以與人, 一介不以取諸人.〕”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