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록(朝天錄) 정유년(1597, 선조30) 8월부터 무술년(1598, 선조31) 정월까지이다
이제묘1)〔夷齊廟〕
고금 세월 도도히 흐르는 저 난하수2) 今古灤河水
이름이 두 분 덕분에 유명해졌다오 名因二子奇
오래된 고죽국의 성은 썰렁하고 城寒孤竹國
고사리 캐먹던 산은 멀기도 해라3) 山遠採薇時
사당 향사는 천 년을 받들어 오고 香火千年廟
맑은 풍도는 백세의 스승일세4) 淸風百世師
길손 찾아와 거듭 공경심이 일어나니 客來重起敬
두 번 절하고 낡은 비석을 읽노라 再拜讀殘碑
[주] 조천록(朝天錄) : 지봉이 1597년(선조30) 가을에 명(明)나라 황실의 황극전(皇極殿), 중극전(中極殿), 건극전(建極殿) 등이 화재를 입은 것을 위문하는 진위사(陳慰使)에 차출되어 서장관 윤계선(尹繼善)과 함께 연경(燕京)에 갔다가 이듬해 봄에 돌아왔는데, 그 왕래하는 도중에 서장관 윤계선과 더불어 경물과 감회를 읊은 시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芝峯集 卷10 朝天錄 跋》
[주1] 이제묘(夷齊廟) : 백이(伯夷)ㆍ숙제(叔齊)의 사당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노룡현(盧龍縣)에 위치한 고죽성(孤竹城)의 옛터에 있다. 청(淸)나라 설복성(薛福成)의 《용암필기(庸盦筆記)》 〈일문(軼聞) 고죽고송(孤竹古松)〉에 “옛 고죽성은 영평부 대난하 서쪽 언덕에 있는데, 산 위에는 이제묘가 있고 사당 앞에는 청풍대가 있으며, 아래로 난수를 내려다보면 거울처럼 맑게 빛난다.[古孤竹城, 在永平府大灤河西岸, 山上有夷齊廟, 廟前有清風臺, 下望灤水, 晶瑩如鏡.]”라고 하였다.
[주2] 난하수(灤河水) : 중국 영평성(永平城) 서쪽 5리 지점에 있는 맑은 강 이름으로, 이 난하수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백이와 숙제를 모신 사당인 이제묘(夷齊廟)가 있다. 또 난하수가 흐르는 지역인 난주(灤州)는 옛날 고죽국(孤竹國)의 땅으로 연경에 사신 가는 사람들이 경유하는 곳이고, 이곳에는 백이와 숙제의 위패를 모신 청성사(淸聖祠)라는 사당이 있다.
[주3] 고사리 …… 해라 : ‘산’은 수양산(首陽山)을 가리킨다.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나라를 멸망시킨 뒤 천하가 주나라를 종주로 삼자, 백이와 숙제는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나머지 의리상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 죽게 되었는데, 이에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저 서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도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면서 그 그릇됨을 모르는구나. 신농과 우순(虞舜)과 하우(夏禹)가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돌아갈거나. 아, 떠나가자 내 명이 다하였도다.[登彼西山兮, 採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於嗟徂兮, 命之衰矣.]”라고 하고는,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주4] 맑은 …… 스승일세 : 백이의 맑은 풍도를 칭송한 말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백이는 성인의 맑은 자이다.[伯夷, 聖之淸者也.]”라고 하고, 〈진심 하(盡心下)〉에 “성인은 백세의 스승이니, 백이와 유하혜가 이런 분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완악한 지아비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지아비가 뜻을 세우게 된다.[聖人, 百世之師也, 伯夷ㆍ柳下惠是也. 故聞伯夷之風者, 頑夫廉, 懦夫有立志.]”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