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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3 (요 4:23-24)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세계 3대 피자회사하면 '피자헛, 도미노, 리틀시저스' 이 세 회사를 꼽습니다. 이 3회사는 저마다 독특한 판매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를,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을, 리틀씨저스는 싼가격을 판매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그 회사들을 세계 1, 2, 3위의 피자회사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파파존스' 라고 하는 피자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6세의 젊은 사장 '슈네트' 라는 사람이 '파파존스'라고 하는 피자집을 만들었는데 그 매출이 매년 2배이상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파존스가 기존 3대 피자회사를 앞지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파파존스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구를 했더니 파파존스는 피자의 본질로 승부를 본다는 것입니다. 피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두말 할 것 없이 맛입니다. 맛으로 승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서 최고의 맛으로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본질,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기도일까요? 물론 중요합니다. 기도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봉사일까요? 봉사도 중요합니다. 봉사는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헌금일까요?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헌금은 드림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른 무수한 활동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배라는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예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요, 또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 A. W. 토저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셔서 먼저 예배자로 만드시고, 그 후에 일하는 자로 만드신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은 봉사하는 자를 찾으신다. 구제하는 자를 찾으신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아주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문제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예배드릴 때 예배드리지 않고 봉사만해서 그렇습니다. 예배자로 먼저 서지 못하고 일만 하니까 진작 자신의 영혼은 돌아보지 않아서 황폐화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운해 지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깨져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배 안에서 자신을 먼저 하나님 앞에서 조율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간사는 주일 저녁예배 때마다 예배는 안드리고 바깥에서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하냐? 그랬더니, 팀 주일출석 체크한답니다. 제가 팀을 뒷조사해 보니까 역시나 그렇게 부흥하는 팀은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먼저이고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어머니와 아들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나는 예배드리기 싫은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주일 아침은 늦잠 자고 싶어요.
둘째 장로님의 기도가 너무 길어요.
셋째 성가대의 불협화음이 싫어요.
그때 어머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예배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둘째 예배는 사람과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다.
셋째 너는 담임 목사니까 결석하면 안 된다. 우스게 소리 같지만 우리 사역자들과 직분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은혜받는 것을 소홀히 여기게 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했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과 같은 속성이 있어야만 교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때 사람들과 교제하고 사귀기 위해서, 예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누구와 사귀고 교제합니까? 사람들과 합니다. 또 사람들과 만이 진정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사람만이 서로 모양과 형상이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개하고 사귀는 사람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와 고양이에게는 사람의 형상과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예배를 통해서 사람과 교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인간에게 심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 전체는 예배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배 교과서 입니다
창세기는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말씀합니다. 출애굽기는 그의 백성들을 왜 출애굽 시키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예배드리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역사서에는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은 복을 받고 그러지 않는 사람은 징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시가서에는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 하는 예배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 잘 드리지 못해서 바벨론에 망한 이야기와 예배를 회복하여 축복받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불러서 구원하신 이유도 예배드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나는 예배드리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로서 영광돌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렸다 하는 것은 제물이 천개이다 그런 말도 되고 번제 횟수가 천번이라는 말도 되어집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예배 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너무 감동하셔서 친히 솔로몬을 찾아오셔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전무후무한 축복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예배 잘 드리는가 하고 찾고 계십니다. 오늘 모인 모든 성도님들도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를 드려서 하나님의 눈에 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성도의 이땅에서의 믿음 생활은 예배에서 시작하여 예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출생예배를 드립니다. 백일 되면 백일 예배, 돌이 되면 돌예배를 드립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입학 예배, 졸업하면 졸업예배, 군대가면 입대 예배, 제대하면 제대 예배, 개업하면 개업 예배를 드립니다. 취직하면 취직 감사예배, 회갑이면 회갑 예배, 진갑이면 진갑 예배, 고희가 되면 고희 예배, 돌아가시기 직전에 임종 예배, 죽으면 영결예배, 땅에 묻을 때 하관예배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지나면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죽고 나서도 그 사람 때문에 예배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가서도 계속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같이 예배는 평생이 아니라 영원히 드려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유혹에 빠져 교만해져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거부했을 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예배를 거부한 자체가 죽음이요 죄(罪)요 지옥(地獄)이라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예배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천국은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기쁨이 있고 생명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는 기독교가 조상 때부터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일에 장사하거나 일하는 이는 400만원 가량의 벌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수 천명 들어가는 교회에 30명가량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가 점점 타락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사라지는 곳에는 하나님도 떠나신다는 것입니다. (삼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이 가장 경제적으로 부흥한 시기가 크린턴 대통령 시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역사상 가장 추잡한 소문을 낸 대통령이 크린턴 대통령입니다.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크린턴 대통령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크린턴 대통령은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토요일 밤에 워싱턴에 눈이 3m가 내렸습니다. 웬만한 집은 눈속에 파묻혔습니다. TV에서 위험하니 모두 움직이지 말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크린턴 대통령은 이 교회 저 교회에 전화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때 워싱턴에 조그만 감리교회 목사님이 클릴턴의 전화를 받고 우리 교회는 나 혼자라도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보니 눈을 헤치고 크린턴 대통령이 예배드리러 나와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클린턴이 예배를 중요시여기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가 비록 허물이 있으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는 중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잠자는 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예배가 살아있는 나라입니다. 전에 전병욱목사님께서 중국에 갔다 오셔서 지하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중에는 99절짜리 찬송이 있다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교회에 가보니 이 찬송을 부르는데 한참 걸렸다고 합니다. 99절까지 다 부르고 나니까 찬양인도자가 너무 은혜를 받아서 "다시 한번 더"라고 말하는 바람에 기절할 뻔 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 예배를 잘 드리는 교회, 예배를 잘 드리는 국가를 특별히 축복하시고 사용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이 때 모세가 나타나서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 때 바로가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왜 가려고 하느냐?> 이때 모세는 한 번도 <자유가 그리워서 입니다> <배가 고파서 입니다.> <고향 땅이 그리워서입니다> 라고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는 매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출5: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예배>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니까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모세의 대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 주시고 광야 40년 내내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예배를 잘 드린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울과 다윗, 이 두 임금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사울이 한번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전쟁터에 나가야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이 빨리 안옵니다. 그러니까 사울 임금이 그럽니다. 자! 기다려도 안오니까 내가 제사드린다. "번제와 화목제 가져와" 자기가 제사장의 몫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립니다. 사울은 이 한번의 불순종의 예배 때문에 왕좌에서 쫓겨나게 되고 그의 인생이 파멸로 치닫게 됩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도 예배 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인의 잘못 드려진 예배가 동생 아벨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예배순서에 맞추어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는 것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내게 어떠한 상황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이 옳습니다. 하나님만 높으십니다. 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낮추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성전건축하겠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너는 안된다. 피를 많이 흘려서 이러한 하나님의 거절 앞에도 예!! 알았습니다. 순종할 줄 압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윗은 원수 갚을 기회가 있다고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을 내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거기에 자신의 자아와 의지를 꺾는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다윗보고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그러고 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연극 배우의 예를 들어서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잘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예배자는 배우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1. 배우는 늦지 않습니다.
배우가 늦는 연극은 없다는 것입니다. 배우가 늦으면 연극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예배에 늦으면 이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늦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나는 예배를 드리는 자가 아니라 보는 자다. 라고 인정하여야 합니다.
2. 배우는 연극이 끝나기 전에 집에 가지 않습니다.
배우가 일찍 가버리면 연극이 될 수가 없습니다. 배우가 연극을 다 끝낸 후에 숙소로 돌아가듯이 성도는 목사님의 축도가 완전히 다 끝난후 집에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말씀만 듣고 가는 자는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배우는 졸지 않습니다.
배우가 졸면 연극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시간에 졸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소속되어 있던 쿰란 공동체는 예배 시간에 조는 이에게는 한 달 간 예배출석금지령을 내리는 규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4. 배우는 연극의 내용을 분명히 파악합니다.
배우는 대사를 암기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연극의 흐름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배 드리는 사람은 설교 내용을 정확하게 숙지해서 집에 돌아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 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르는 사람은 예배를 드린 사람이 아니라 예배를 본 사람입니다.
또한 키에르 케고르는 배우과 관객의 예를 들면서 예배를 보는 자와 드리자는 구별하고 있습니다. 관객은 연극을 보는 자요, 배우는 연극을 드리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배우처럼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관객은 꼭 한 분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배를 본다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란 우리 모두는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한 분만이 예배를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의미있는 비유요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인생의 성공은 예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배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예배 드리는 것이 성공적인 예배입니까? 딱 두 단어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24절
1.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NIV성경을 보면 신령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을 in spirit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안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3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번역했고, 쉬운 말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드리고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예배드리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적인 힘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예배드릴때 나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되게 하시고 위로부터 능력을 부어달라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헐레벌떡 지각하지 말고 미리와서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배도중에 들어온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수 없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진정이라는 원어는 에바르 세이아라고 되어 있는 데 이 말의 원뜻은 진리라는 말입니다. 무엇이 진리입니까?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된 예배가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지 사람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나타나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회갑 축하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고 회갑을 맞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면 예배가 아닙니다. 박사학위 축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예배라는 말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데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면 이미 예배가 아닙니다. 차라리 <회갑축하식> <박사학위 축하식>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보기 좋습니다. 모든 기념예배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예배는 예배가 아닙니다.
또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할렐루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사람을 소개하는 말로 바뀌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사회자가 부흥강사 목사님을 성도들에게 소개하면서 이런 멘트를 합니다. 우리 최목사님 나오실 때 두 손을 들어 할렐루야로 맞이 합시다. 그리고 온 교인들이 <할렐루야>로 부흥강사를 맞이합니다. 할렐루야를 단골강사 소개멘트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차라리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좋습니다.
또 성가대가 찬양을 하고나면 박수를 치는데 그 박수의 의미가 성가대 찬양 잘 불렀습니다. 라는 칭찬의 의미로 박수를 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가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부르지 않았지만 우리도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런 자세로 박수를 쳐야 옳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하다가 하나님께서 너 부흥강사, 너 성가대 내 영광을 가로챘으니 저주를 받아라 그렇게는 하지 않으시겠지만, 예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고, 예배 때 유일하게 찬양과 박수를 받아야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예를 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합니다. 어떤 예배가 성공적인 예배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성공하는 예배입니다. 다시 해석하면 성령의 도움심을 구하는 예배, 하나님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하나님이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어떤 목사님이 교회를 아주 아름답고 웅장하게 잘 짓고 나자 청와대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여기는 청와대고 저는 대통령 비서실장인데요, 대통령께서 목사님이 교회를 아주 아름답게 잘 지으셨다고 올해의 건축상 받으러 오라고 하십니다. 그 목사님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다 날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럼 언제 청와대에 가면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전화를 통하여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이 만우절입니다> 그리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목사님은 큰 회개와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이 나를 찾는다고 해도 이렇게 감격스러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찾으시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이제부터 예배 잘 드려서 하나님이 찾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십니까?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사하는 곳마다 우선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도 돌단을 쌓아 놓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엘리야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돌단을 쌓아 놓고 송아지 제물을 올려 놓았을 때 하나님이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적인 지도자 네 명이 나왔습니다. 지금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이크 우드라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교회에서 네 아이를 가르쳤는데 모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네 어린이를 예수 잘 믿는 아이들로 길렀습니다. 네 명은 다 대학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네 명에게 세상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섬기는 법,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들은 오늘 금세기에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지방 고등학교를 나와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서 사업을 하였습니다. 하버드에 들어갔지만 중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빌게이츠의 영향력과 재산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실 것입니다. 지금 빌 게이츠 재산이 1천억불 그러니까 120조원입니다. 앞으로 몇년만 지나면 그의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져서 전 영국국민의 재산을 다 모아야 빌게이츠 한사람의 재산과 맞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보잉입니다.
보잉기라고 하면 비행기 이름으로 아는데 이 고등학교 출신 사람 이름입니다. 비행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엔진이 뒤에 달린 것이 있고 하나는 날개에 엔진이 달려 있는데,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보잉 747기는 엔진이 다 날개에 달려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발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비행기 여객기로는 보잉이 거의 세계를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애틀에 가면 보잉회사가 있고, 한 건물에 수 만 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맥 콜드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핸드폰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지금 세계 모두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맥 콜드가 발명한 것입니다.
또 한사람은 코스트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한 사람입니다. 보잉과 함께 합자회사로 세계적인 기업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축복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의 구심점과 기준은 예배입니다. 예배 생활이 흔들리면 다 흔들립니다. 예배에 실패하면 다 실패합니다. 가인이 예배에 실패하니까 살인자가 되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예배가 실패하여 나라를 잃어 버렸습니다. 예배만은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서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