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통증이 사라진 것을 경험하며 초가을 걸음 여행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좌골 신경통, 기침만 하여도 통증이 느껴졌고 옆으로 누워 뒤척이기만 하여도 심한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측면으로 발목아래까지 흐르다 어느 날은 다시 종아리 일직선으로 또는 정강이 쪽 일직선으로 타고 흐르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간혹 살짝 비치다 금세 사라진 경험과는 달리 강렬하여 걱정스러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신경외과로 달려 가 MRI 나 CT 촬영을 통해 원인을 밝힌 후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갰다는 생각이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해온 습관적인 절차대로 한 번 더 깊은 사려의 시간을 보낸 후 동안 가깝게 지내온 지인 중에 전문적으로 이 분야에 종사해 온 이가 있어 우선 나의 상태에 대하여 글로서 소상하게 남기고 발명일부터 적어 놓은 진행일지를 함께 보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려 대처했던 방법을 찾아내어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지인과 전화통화가 이어졌고 중요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좌골신경통의 발생은 허리와 관련될 수도 있지만 그 이외의 위치에서 생긴 염증 증세의 영향도 거의 같은 증세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대상포진의 영향으로도 그런 증세를 가질 수도 있고 척추 협착증으로도, 또는 엉덩이 근육 안 깊숙이 숨어 있는 근육에 생긴 염증으로도 그러한 증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스트레이징을 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하루 3회 이상 일주일 해보며 관찰하다 보면 점차 개선되는 것을 알 수 있고 발바닥 자극 효과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려 주었습니다.
이 날 이후 통증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치료만 상책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만은 아니고 평소에도 관리를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통증은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활동하고 생을 이어 나갈 때까지 함께하는 생리적 현상이라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방치하면 심한 통증으로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통증은 지속기간에 따라 급성통증과 만성통증으로 구별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근육, 인대, 관절과 같은 근골격계에 주로 나타나는 근골격계통증과 신경 손상으로 나타나는 신경병성 통증으로 구분되는 것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통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약물, 수술요법도 있지만, 물리치료와 운동치료와 함께 행동치료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특히 근골격계에서 오는 통증은 노후에 자주 나타나는 통증으로서 운동의 치료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평소 즐겨해 온 걷기 운동에 변화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트레킹화를 벗고 맨발로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첫날은 더 아픈 것을 느껴 지만 열흘이 지나면서 통증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열흘 이후부터는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근육이완제나 소염진통제 복용 없이도 개선된 것입니다.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통증이 사라진 날 오후 걸음 여행 길이 만들어졌습니다. 걸을 계획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지인들이 있어 승낙한 후 혹시 통증의 재발에 대하여 염두에 둔 계획을 잡았습니다. 아차 산으로 행선지를 잡은 것입니다. 손쉽게 도심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거리와 짧은 시간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일행들과 만나 편안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종착지를 알려 준 후 각자 편안한 마음과 자세로 걸을 것을 당부한 후 봄 벚꽃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접어들기 위하여 길을 건넜습니다. 그때 연 밥 익어가는 향기가 전신을 피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맑고 향기로운지 순간적으로 걸음을 멈춘 후 난설헌(蘭雪軒)을 가슴에 품고 난간에 기대어 섰습니다. 미덕을 찬미하고 고결하고 뛰어난 문재(文才)를 소유한 여성이라 의미에서 지어진 당호 난설헌(蘭雪軒) 여인은 강릉 초당리에서 태어나 한양 건천동에서 살다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하였으나 순탄하지 못했고 스물일곱 나이에 세상을 등진 여인 蘭雪軒, 죽어서도 남편 곁에 묻히지 못하고 단 아래 죽은 아이들과 나란히 묻혀 있는 불우한 여인입니다.
여인은 연밥 따기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 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차분한 걸음으로 걸음을 옮겨 삼 층 석탑 아래에 있는 숲 속의 빈 터를 찾았습니다. 숨 고르기 끝에 찾은 평온함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함께 찾아 든 이름 모를 근심을 지우기 위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고 옷고름을 풀어 가을바람을 불러 모았습니다. 하늘에 매달려 나 붓 기는 나무 잎, 아직은 가을이 멀었습니다. 세월이 더 익어야 그들도 익을 것 같습니다. 그 사이 누구나 꿈꾸는 건강한 삶도 함께 익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가을의 삶을 소원하며 기억으로만 남을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듯 하산 길을 잡아 나갔습니다. 통증이 느껴진다면 상상도 못 할 가을 걸음 여행이었습니다. 흰색으로 외벽을 곱게 칠해 놓은 작은 잡을 돌아서면 나오는 작고 아담한 그리고 정갈하게 나오는 한식 종류는 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고유의 음식들을 생생하게 재현시켜 주는 곳입니다. 특히 주문하면 곁들어 나오는 맑은술에는 가을 향취가 물씬 풍깁니다. 아직 낮은 기온이 30도를 유지하고 있어 마음은 정념처럼 뜨겁지만 맑은술 한 잔으로 가을을 부를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으로 시켜 각자 자신만의 음주법으로 마셔 보았습니다. 뒷맛에 우러나는 술 향기는 꼭 낙락장송에 걸려 있는 솔바람에 떠 다니는 보름달 향취였습니다. 가을향을 머금으려면 한 잔술로도 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술잔에 스치듯 한 모금으로 가을을 자신에게 입혀 보았습니다. 저녁자리를 파하기 전에 주인댁이 내어 준 맑은 차 한 잔이 가을로 성큼 다가서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곱고 고맙고 아름다운 인연의 시간이었습니다. 홀가분한 산책 행로의 끝을 공유하며 다음 또 기회로 맺을 것을 서로 약속하며 각자의 행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안부를 챙겼으니 그것으로 좋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