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11월27일
WBA주니어 페더급챔피언 결정전에서
홍수환 선수는 2라운드에 카라스키야의 강펀치에 4번 이나 다운 당했다.
경기를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 3라운드에서 홍수환 선수는 폭풍처럼 몰이키며,
기적 같은 역전의 KO승을 거뒀다.
4전5기의 신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는 홍수환 권투위원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1라운드에서 카라스키야에게 맞았던 첫 펀치의 감을 아직도 느낀다.
정말 "아~"
살인 주먹이구나,
내가 KO시키지 않으면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기는 WBA가 "프리 넉다운"제도를 채택한 뒤 첫 경기였다.
그 "룰" 이 없었다면 나는 졌다.
1라운드 더 뛴 걸로 지금 내가 먹고산다
그래서 카라스키야의 존재가 감사하다.
그는 링에서 나에게 졌지만 인생에서는 진정한 챔피언이 됐다.
카라스키야 선수도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40년 전 경기는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줬다.
그 경기로 진 것은 진 게 아니라는 교훈도 얻었다.
둘 다 진정한 챔피언으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카라스키야는 홍수환 선수에게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한 뒤 복싱 선수로는 더는 날개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링보다 더 무서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그는 승자였다.
그는 1981년 프로 통산 전적 18승(16KO)5패를 끝으로 복싱 글러브를 벗은 뒤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시의원, 시장을 거쳐 이제는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홍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시 홍 회장에게 당했던 패배를 통해 정신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
또 당시 경기가 파나마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기에 이렇게 시장도 하고 국회의원도 할 수 있었다.
한 경기에 패배한 자도,
승리한자도 함께 진정한 승리를 경험한 이야기다
홍수환 선수가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시합을 계속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두 선수는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홍수환 선수가 오뚜기 처럼 4번씩이나 일어나서 경기를 함으로 경기에 승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카라스키야는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링밖에서 정치를 하며 인생을 일궈냈다.
자신의 패배를 활용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을 활용하여, 정치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시장과 국회의원을 할 뿐아니라,
자신을 패배시킨 홍수환 선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권투 경기에서 네번 다운된다고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경기에서 완전히 KO패를 당한다해도. 인생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패배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패배하지 않는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이다""